Une vie francaise 프랑스적인 삶

남상욱2007.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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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e vie francaise 프랑스적인 삶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두 살 때의 기억이다. 만으로 따지면 한 살이 갓 넘었을 때이다. 나는 86년 가을 사당동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후 부모님은 이수 근처로 이사를 했다. 나는 내 동생이 태어나기 전 까지 그 어떤 기억도 가지고 있지 않다. 동생은 88년 3월에 태어났다. 동생이 병원에서 집으로 왔을 때, 그러니까 내가 동생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동생의 얼굴이나 배를 쿡쿡 찌르며 “이 뭐야?”를 연발 했다고 한다. 나와 내 동생은 주로 식탁 밑에서 놀거나 부엌의 서랍을 뒤지며 놀았다. 가끔 하루에 한번쯤은 부엌서랍을 빼고 기어 올라가 싱크대를 점령하기도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거기서 바로 우리를 샤워 시키고 거실의 카펫위에 서 우리를 말리고는 했다.

 

  내가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집의 구조였다. 두 살 때 그 집을 떠나 이사를 간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그 집을 찾아가 본 적이 없지만 집의 구조를 부모님이나 주변 친척들에게 이야기 하면 모두 수긍하며 놀라워한다. 삼층으로 된 건물의 일층은 상점이었고 이층이 우리 집, 삼층에는 이웃이 살았다. 이 건물의 특이한 점은 계단이 일층부터 삼층까지 직선으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이다. 보통 계단은 한층 올라갈 때 마다 두 번 꺾이며 지그재그모양을 이루는데 이 집의 계단은 한번의  꺾임도 없이 삼층까지 뻗어 있으며 그 끝에는 창문이 있었다. 그리고 삼층의 창문만이 계단을 비추는 유일한 조명이었다. 일층 현관으로 들어서서 고개를 들면 저 계단의 꼭대기에 빛이 있는 것이었다. 삼층에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여자아이와 나와 동갑인 남자아이가 살았다. 나의 어머니는 윗집 아주머니와 차나 커피를 마시기 위해 나와 내 동생을 이웃집 거실에 풀어놓았다. 그러면 동생을 이리저리 굴러다녔고 나는 이웃집 아이들과 함께 소꿉장난을 하고는 했다. 이웃집은 우리 집이랑은 구조가 달라서 화장실의 위치도 달랐고 거실의 위치도 달랐다. 거실이 우리 집보다 좁았으며 거실 소파 위에는 창문이 있었다.

 

  어느 날 또 이웃집에서 그렇게 놀고 있는데 거실의 창문이 열려있고 창문 밖 하늘은 거짓말처럼 파랬다. 나는 어떤 이끌림에 소파를 딛고 올라가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그때의 감격이란 지금도 형언 할 수 없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지평선 까지 단독주택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건물들의 옥상에는 하나같이 모두 파랑색, 노랑색의 물탱크가 있었다. 그 파랑, 노랑의 물탱크들은(그때는 그것들이 물탱크라고 불리는지도 몰랐다) 내 속에서 어떤 강렬한 것을 깨웠다. 그것은 미지의 것에 대한 동경이나 어떤 알고 싶은 욕망이었다. 저마다 다른 모양의 건물에 모두 크기는 다르지만 똑같은 모양의 파란, 노란 덩어리를 얹고 있으니 신기해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더욱 들여다보기 위해 소파의 등받이를 기어올랐다. 그러자 이웃집 아주머니는 위험하다며 나를 들어서 바닥에 내려놓고 창문을 닫아버렸다. 우리 집의 같은 창문은 안방에 있었는데 어머니의 화장대 거울이 가리고 있어서 열어도 내 키로는 밖을 내다볼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이웃집에 갈 때마다 창문 밖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후 우리가족은 광장동으로 이사를 갔다. 두 살 때부터 여섯 살 때까지의 기억 중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네 살 크리스마스 때 아주 마음에 드는 곰 인형을 선물 받고는 ‘상돌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만 특별이 기억난다. 여섯 살 때 광장동에서 상계동으로 이사했다. 이사하는 날 나는 면목동의 외삼촌댁에 맡겨졌다. 밤늦게 이사한 집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박스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가족 모두가 피곤해서 바로 안방 바닥에 널브러져 잠들어 버렸다. 어릴 적 나는 유난히 악몽에 많이 시달렸다. 괴물이나 귀신에게 쫓기고, 분명히 내가 사는 동네인데 길을 잃어 해매고, 옷을 잃어버린 채 발가벗고 다니고. 그런 꿈을 많이 꾸었다. 그러나 그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 상쾌함이란……. 난 꿈을 꾸지 않았던 것이다.

 

  가족들은 모두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내 머리높이의 문고리를 잡고 조용히 문을 열어 거실로 나아갔다. 약간 추웠다. 이삿짐들이 정말 거대하게 쌓여있었다. 반들반들한 바닥에 반사된 햇볕이 거실을 훤하게 밝혔다.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눈이 뜨이는 느낌이 들었고,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으며, 먼지 냄새도 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머리가 깨인 것 같았다. 간밤의 꿈 없는 깊은 잠으로 뇌가 완전히 포맷 된 상태였다. 새로운 것들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미지, 음향, 향기. 그 모든 것이 기억에 각인되었다.

 

  6살 상계동으로 이사 간 그날 아침, 나는 내가 다시 태어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오는 그런 순간이다. 감각이 깨어나고 다시 태어나는 느낌.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기분. 6살 때의 기억이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기억보다 생생하고 많다. 1991년 일 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사람이 죽는 것을 직접 목격했고, 두발자전거를 처음 타기 시작했으며, 팔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스케이트와 수영을 배우고 누구보다도 활달한 유치원 생활을 했지만, 천자문을 통째로 외우도록 세뇌 당하는 고행을 하기도 했다.

 

  특히 천자문 외우기는 나에게 가해진 첫 핍박이었다. 나는 천자문 보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각국의 나라이름과 수도, 위치, 국기 등을 외우는데 더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매일 아침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저녁 식사 후 한 시간. 그렇게 하루에 두 번 부모님의 감독 하에 천자문을 외워야 했다. 나는 항상 무릎을 모으고 꿇어앉아 벌서는 자세로 외워야 했고, 잘 외우지 못하면 싸리나무 회초리를 맞았다. 매일 눈물을 한 바가지씩 쏟아가며 천자문을 외웠다. 기나긴 그 한 시간이 끝나면 나는 다리가 저려 일어서지 못했다. 그때는 내가 정말 잘못해서 그런 고난을 당하는 줄 알았다. 혼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나를 왜 그렇게 다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아마도 대대로 이어져온 전통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모두 격은 그런 나쁜 전통 말이다.

 

  그 무렵 막내삼촌은 군대에 가있었고 고모는 학부 졸업반인가 대학원생인가 그랬었다. 고모는 신림동에서 하숙하지 않고 우리가족과 함께 살았었다. 고모는 종종 나와 내 동생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곤 하였는데 하루는 "어린왕자"를 읽어주었다.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와 말투로 사막의 여우 흉내를 내던 고모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하루는 저녁식사 전에 고모와 내 동생과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늦가을이어서 해가 일찍 기울었다. 아파트 옆에 몇 백원을 내면 트램펄린을 탈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고모는 동전을 쥐어 주며 나와 내 동생에게 트램펄린을 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른 꼬마들과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드디어 스프링 위로 올라갔다.

 

  스프링의 힘을 받아 붕붕 하늘로 날아올랐다. 앞으로 텀블링하고 뒤로 돌고, 그렇게 뛰다가 문득, 스카이라인을 보았다. 주변의 개인주택으로 이루어진 스카이라인에 붉고 커다란 해가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어린왕자가 생각났다. '그는 마흔세 번이나 석양을 보았어. 나는 마흔네 번만 봐야지' 해가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나는 높이 뛰어야 했다. 석양을 서른여덟 번 보자 트램펄린 주인할머니가 그만 내려오라고 했다. 나는 무시하고 계속 뛰었다. 네 번 더 뛰자 할머니는 보호망을 손으로 잡고 흔들며 나오라고 했다. 차례를 기다리던 다른 아이도 불만을 터트렸다. 그러나 나는 기어코 두 번을 더 뛰고 내려왔다.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가며 나는 고모에게 “석양을 마흔네 번이나 봤어” 하고 자랑했다. 그러자 대학생 고모는 “으이그, 너 어린왕자보고 흉내 낸 거구나!” 하고 소리쳤다. 멍청하고 뚱뚱한 내 여동생은 그냥 쭐래쭐래 고모에게 매달려 걷고 있었다.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가며 뒤돌아보았다. 해는 지고 주위는 어둑어둑했다. 나는 저녁을 먹고 또 천자문을 외워야 했다.

 

  여섯 살 때의 기억이 또 하나 있다. 그때 동생은 놀이방에 있었고 나는 유치원에서 막 돌아왔다. 어머니는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유치원 옷을 입은 상태로 가방만 풀고 어머니를 따라 나섰다. 은행에 갔다가 장을 볼 것이었다. 상가 2층의 제일은행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어떤 이상한 기계가 붙어있는 벽에 가서 먼가를 만졌다. 띵띵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쥬르르르~ 소리가 나고, 털컥~ 하면서 구멍에서 만 원짜리 지폐가 여러 장 나타났다. 어머니는 그걸 꺼내 지갑에 넣어 내 손을 끌고 은행을 빠져 나갔다. 상가 계단을 내려갈 때 나는 걸음을 멈추고 어머니의 손을 잡아당겼다. 어머니는 나를 끌고 그냥 계단을 내려가려 하였다. 그러나 내가 너무나도 완강히 저항해서 어머니도 포기 하고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나는 어머니를 이끌고 제일은행 ATM앞으로 다시 갔다.

 

  그때 나도 내가 왜 아무 말도 못하고 ATM을 가리키며 끙끙거리기만 했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아마도 표현력이 부족했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아버지와 돈 문제 가지고 그렇게 매일 다툼하시는 것을 두고 볼 수 가 없습니다. 밤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언성을 높이며 다툼할 때면 제 혈액에 아드레날린 수치가 너무 높아져 심장이 터질 정도로 박동이 빨라지고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습니다. 지금 앞에 놓여있는 이 기계에서는 돈이 그냥 나오니까 여기 서 돈을 더 꺼내 가면 집에서 안 싸울 수 있잖습니까?" 하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겨우겨우 의사소통을 해서 어머니가 내 끙끙거림을 이해하자 어머니는 웃다가 울다가 웃으셨다. 그리고 장보러가서 나에게 맛있는 과자를 사주셨다. 나는 그 과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 이 책을 손에 얻게 된 때가 기억난다. 2006년 2월 설 전날 대구에서 나의 할아버지께서 사주셨다. 할아버지와 산책을 하다가 영풍문고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책을 한권 사줄 테니 고르라고 하셨다. 나는 도서 검색대로 가서 내가 사고 싶었던 소설책이 그 서점에 없음을 확인하고는 바로 베스트셀러 진열대로 가서 이 책을 골랐다. 책을 고르느라 시간을 끌기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매년 추석과 설은 피할 수 없이 대구 할아버지 댁에서 보내야 했다. 항상 그랬지만 대구에서의 2박 3일은 끔찍한 일이다. 나의 할아버지는 매우 엄하셔서 매번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호통을 쳤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집에서는 알 수 없는 무거운 공기가 사람들을 누르고 있었다. 나는 항상 TV 채널을 돌리다가 열심히 제사음식 준비하고 있는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에 방으로 숨어들어가 가지고 있던 소설책을 들지만 곧 견딜 수 없는 집안 공기의 무거움에 잠들어 버린다. 도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스무 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이 책은 내 책장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프랑스 소설을 새로 읽고 서평을 써야 해서 나는 내 책장을 훑어보았다.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은 책 몇 권이 눈에 들어왔다. 헤르만 헤세의 , 라우라 에스키벨의 . 그러나 프랑스 소설이 아니다. 책장 맨 꼭대기까지 시선이 올라갔다. 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제목부터 프랑스군. 그런데 조금 두꺼운데?” 하지만 전공공부가 너무 하기 싫어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시작은 조금 상투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은 주인공 뽈 블릭이 자신의 형의 죽음을 접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뽈은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형의 장난감을 취하며 만족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행의 씨앗이었다. 뽈의 어린 시절, 친가와 외가 친척들, 부모님의 침묵, 친구를 통해 성에 눈을 뜨게 됨, 혁명, 시위, 구호, 대학 입학, 자유로운 생활, 병역기피, 사랑, 취직, 결혼, 출산, 양육, 아버지의 죽음, 사진작가로 성공, 외도, 아내의 배신과 죽음, 어머니의 죽음, 정신병을 앓는 딸, 장인과의 항해,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뽈은 자신의 딸과 피레네를 오르며 인생을 돌아본다. 이야기의 구분이 대통령의 이름으로 되어있다. 주인공이 망명하고 쫓기고 거짓을 말하도록 강요받는 쿤데라의 소설과 달리 정치적 상황이 개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배경으로써, 큰 흐름으로써 주인공들을 지배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옛 기억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소설을 한장 한장 넘기며 나만의 이야기가 함께 떠올랐다. 내가 이란 책을 쓴다면 두 살과 여섯 살 때의 기억으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 나의 불행의 씨앗이라 볼 수 있는 투신자살한 중년남자의 시체를 보게 된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초등학교 일이학년 때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김일성의 사망, 한국전쟁 재발위기, 천상병 시인의 별세 같은 사건들은 나의 기억에 아주 선명하게 각인 되어있다. 이전의 학생운동이나 민주화운동만큼 격정적이지는 않지만 새로운 세대도 경험과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 의 주인공 뽈 블릭이 군대를 가는 이야기는 전채 400여 페이지의 소설 중 64쪽에 나온다. 나는 뽈로 치면 아직 인생의 1/6도 살지 않은 샘이니 아직 인생을 더 오래 살아봐야 무언가 생각해보고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뽈도 ‘사람이 어쩜 저렇게 생각 없이 살 수 있을 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없는 젊은 시절을 보내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여행을 하고, 가족의 죽음을 접하며,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성숙해져간다.

 

  한 두 달 전 교회의 간사님이 나에게 물었다. “상욱아, 너는 왜 사니?” 그때 나는 무심결에 “저는 죽기위해 살아요.”라고 대답했다. 대답을 하고도 내가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 섬뜩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다. 사람은 죽기위해서 산다. 다른 목적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