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 규정할 수 없는 그 무언가는 곧 적으로 간주되던 시대, 냉전이 불러온 또 다른 공포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고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하던 시대..
의 감독 브래드 버드의 장편 데뷔작 는 바로 그 시절 195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미국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외계에서 정체 불명의 거대 로봇이 불시착하고 이를 처음으로 발견한 호갈드라는 소년은 이 로봇을 애지중지 하며 종족(?)을 뛰어넘는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이 낯선 이방인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군병력을 이용해 로봇을 몰아내려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정부요원 켄트 맨슬리. 전형적인 악당이자 그 시절 래드 컴플렉스에 사로 잡혀있던 미국 정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익숙하다. 익숙한 내용이다.
이미 우린 스필버그의 전대미문의 걸작 에서 이런 식의 어린 아이와 외계 생명체 간의 진심 어린 교감을 확인한 적이 있으며, 얼마 전에는 피터잭슨의 을 통해 덩치 큰 괴물 녀석의 내재된 폭력성이 사랑과 관심을 통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 본 적이 있지 않은가.
두 작품 다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본인이지만 는 이 두 영화의 완성도에 결코 밀리지 않는, 오히려 앞선 두 영화와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 옆에 또 다른 얘기들을 늘어 놓으며 냉전시대 우매한 미국정부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는 작품이다.
“우린 이상하고도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는거야. 스푸트니크(소련이 쏘아 올린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를 아니? 다른 나라의 위성이지. 궤도를 돌면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단다. 볼 순 없지만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지. 마치 숲속의 괴물처럼.. 난 위협을 느끼는데 넌 어떠니?”
“무슨 말씀이죠?”
“무슨 말씀이냐고? 제길, 난 지금 너의 빌어먹을 안전을 말하고 있는거야!! 모두 미국을 노리고 있어!”
로봇을 감추려는 호갈드와 로봇을 적대국의 비밀병기쯤으로 간주하며 이를 파괴하려고 위치를 캐묻는 정부요원 켄트의 영화 속 대화이다.
그렇다.
진일보한 높은 과학기술력으로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영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과연 그 기술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될지에 대해서는 아직 올바른 가치관과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 우리가 만든게 아니기 때문에 깡그리 없애버려야 우리의 안보가 보장된다고 믿었던 때, 우릴 파괴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파괴해야 된다는 신념이 통하던 현실,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덮어져 있지만 그 속을 들춰보면 평화와 공존의 길을 찾기 보다는 여전히 권력의 헤게모니 안에 서로가 서로를 가두려고만 하던 그 시절.
영화 는 그때를 반추하며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영화는 이러한 정치적 담론 뿐만 아니라 소년의 환타지, 호소력 짙은 감수성, 자기희생의 숭고한 가치, 그리고 재기발랄한 유머까지 담고 있으며 이를 너무도 능수능란하게 조율하고 있다.
백인 중산층의 이데올로기를 교묘하게 웃음과 노래로 포장하며 관객을 세뇌시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대표되는 미국 애니판에서 자기 갱생적인 이런 보석과 같은 작품이 나왔다는 것이 진정으로 반가울 따름이다.
미국 영화가 끊임없이 욕을 먹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이유.
바로 같은 영화들이 보여주는 가능성 때문은 아닐까?
영화가 만들어진 1999년,,
정말 이해할 수도 없게도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흥행에 참패하며 제작비의 반도 못 건져내고 소리소문 없이 간판을 내려야 했던 저주받은 걸작이다.
저주받은 걸작 - <아이언 자이언트>
브래드 버드 / (Voice) 제니퍼 애니스턴, 해릭 코닉 Jr, 빈 디젤 /
86분 / 1999년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 규정할 수 없는 그 무언가는 곧 적으로 간주되던 시대, 냉전이 불러온 또 다른 공포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고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하던 시대..
의 감독 브래드 버드의 장편 데뷔작 는 바로 그 시절 195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미국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외계에서 정체 불명의 거대 로봇이 불시착하고 이를 처음으로 발견한 호갈드라는 소년은 이 로봇을 애지중지 하며 종족(?)을 뛰어넘는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이 낯선 이방인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군병력을 이용해 로봇을 몰아내려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정부요원 켄트 맨슬리. 전형적인 악당이자 그 시절 래드 컴플렉스에 사로 잡혀있던 미국 정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익숙하다. 익숙한 내용이다.
이미 우린 스필버그의 전대미문의 걸작 에서 이런 식의 어린 아이와 외계 생명체 간의 진심 어린 교감을 확인한 적이 있으며, 얼마 전에는 피터잭슨의 을 통해 덩치 큰 괴물 녀석의 내재된 폭력성이 사랑과 관심을 통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 본 적이 있지 않은가.
두 작품 다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본인이지만 는 이 두 영화의 완성도에 결코 밀리지 않는, 오히려 앞선 두 영화와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 옆에 또 다른 얘기들을 늘어 놓으며 냉전시대 우매한 미국정부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는 작품이다.
“우린 이상하고도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는거야. 스푸트니크(소련이 쏘아 올린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를 아니? 다른 나라의 위성이지. 궤도를 돌면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단다. 볼 순 없지만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지. 마치 숲속의 괴물처럼.. 난 위협을 느끼는데 넌 어떠니?”
“무슨 말씀이죠?”
“무슨 말씀이냐고? 제길, 난 지금 너의 빌어먹을 안전을 말하고 있는거야!! 모두 미국을 노리고 있어!”
로봇을 감추려는 호갈드와 로봇을 적대국의 비밀병기쯤으로 간주하며 이를 파괴하려고 위치를 캐묻는 정부요원 켄트의 영화 속 대화이다.
그렇다.
진일보한 높은 과학기술력으로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영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과연 그 기술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될지에 대해서는 아직 올바른 가치관과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 우리가 만든게 아니기 때문에 깡그리 없애버려야 우리의 안보가 보장된다고 믿었던 때, 우릴 파괴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파괴해야 된다는 신념이 통하던 현실,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덮어져 있지만 그 속을 들춰보면 평화와 공존의 길을 찾기 보다는 여전히 권력의 헤게모니 안에 서로가 서로를 가두려고만 하던 그 시절.
영화 는 그때를 반추하며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영화는 이러한 정치적 담론 뿐만 아니라 소년의 환타지, 호소력 짙은 감수성, 자기희생의 숭고한 가치, 그리고 재기발랄한 유머까지 담고 있으며 이를 너무도 능수능란하게 조율하고 있다.
백인 중산층의 이데올로기를 교묘하게 웃음과 노래로 포장하며 관객을 세뇌시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대표되는 미국 애니판에서 자기 갱생적인 이런 보석과 같은 작품이 나왔다는 것이 진정으로 반가울 따름이다.
미국 영화가 끊임없이 욕을 먹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이유.
바로 같은 영화들이 보여주는 가능성 때문은 아닐까?
영화가 만들어진 1999년,,
정말 이해할 수도 없게도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흥행에 참패하며 제작비의 반도 못 건져내고 소리소문 없이 간판을 내려야 했던 저주받은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