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조금 식상하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학벌 사회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기에 그에 따른 대책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민주노동당 같은 정당에서도 내세운 지 이미 오래되었다. 앞으로도 몇 십 년간은 계속 될 거 같은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구나, 하고 사회 탓을 하며 지나쳐 버릴 수도 있지만, 김동춘(성공회대 사회학 교수)이 “결국 학벌 사회 문제에서 대학생이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역설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출신 대학별로 듀오에서 매기는 결혼 지수 점수나 기업 인사팀만 알고 있는 출신 학교별 가중치 점수, 사회에서 밀어주고 당겨주는 학연 등을 학벌 사회의 병폐로 여길 수 있는데, 오히려 내가 실감하는 부분은 그것보다는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면서도 잘 인식하기를 껴려 하는 부분이었다. 서울 시내의 강연회에 참석할 때, 그 가운데 대학생이 질문을 던질 때, 이상하게도 질문을 하기 전에 현재 재학 중인 대학을 밝히는 경우는 두 개 학교, 고려대와 연세대(가나다순) 학생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는 내 경험에서 오는 진단이지 결코 확실한 통계가 아님을 밝혀둔다. 그것이 두 학교의 전통, “민족 고대”나 “통일 연세”를 먼저 말하면서 자신의 소속과 특징을 자신 있게 밝히고 했던, 이른바 FM을 하던 습관에서 오는 건지, 아니면 명문대학생이라고 하면 자신의 질문을 유심히 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에서 나오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 별 뜻 없이 말 한 건지 알 도리는 없다. 그냥 지나쳐 버리기에는 내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알게 된, 여러 여자 명문 대학생에게 장난스레 물어보게 되었다. 여태까지 교제한 남자는 왜 거의 명문대 생이었냐고. 그들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활동하게 된 단위에서 만난 사람이다” 혹은 “소개 받은 남자가 명문대 생 뿐 이었다” 그렇다면 그 활동한 단위에 있었던 남자는 모두 명문대 생이었을까. 그리고 왜 주변 사람들은 명문대 생 남자만 소개시켜 주었던 걸까.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개 쯤 지니고 있는 블로그나 싸이월드 미니홈피(이하 통칭해서 홈피로 부르기로 하자)의 프로필을 살펴보자. (오해의 소지가 있기에 첨언하자면 이 역시 내가 관심이 있던 주제였기에 유심히 관찰하기는 했으나, 현실적인 제약으로 전국 대학생 모두의 홈피 프로필을 알 수는 없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내 경험에서만 오는 판단일 뿐이다.) 이번에는 앞서 말한 것과는 조금 다른 현상이 벌어진다. 명문대 생들은 홈피에 짤막한 시나 격언, 경구 그리고 그림 등을 배치하는 반면, 오히려 그렇지 못하다고 평가되는 대학생들이 자신의 학내 외 활동 경력, 공모전 수상 내역 등을 배치시켜 놓았다. 물론 요즘 기업에서는 이력서에 홈피 주소를 써 넣게 하여 지원자의 성향이나 경력을 알고 싶어 하기에 그렇게 프로필에 자신 있는 것만 골라 넣었을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명문 대학생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한 선배가 내게 “소위 비명문대 생들은 활동 경력이나 공모전 수상 내역으로 처지는 학벌을 만회하려는 경향이 있고, 학벌을 의식하기에 홈피에서 만큼은 처지는 느낌이 나지 않게 하려 한다” 고 했는데 이것이 정말 그 선배만의 생각일까.
누구나 학벌 중심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는 깨져야 한다고 하고 있으나, 앞선 예를 보면 어느 정도 사고가 유연한 대학생에게조차 학벌에 대한 강박관념은 상당한 것 같다. 그런데 아쉬운 일이지만 실제로 대학생 한 명 한 명 에게는 학벌 사회 구조 자체를 바꿀 역량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김형태(너 외롭구나의 저자 겸 카운슬러)의 말마따나 사회에 문제가 있다면 당장 내 주변부터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동료를 만들라는 조언을 새겨볼만 하다. 나는 대학 생활 중에 그런 식으로 학벌 사회의 폐해를 인식하고 그것에 따른 개인적인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민 사회 단체인 학벌없는사회 학생모임의 전 대표 김고종호는 그 방법으로 동문 멘탈리티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기에 어떤 곳에서든지 자신의 학교를 밝히지 않으며, ‘우리 학교’라는 표현을 일체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곳에서 활동한 엄수홍은 학벌이 준 부수적인 이득인 과외를 거부하고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에게 그런 행위를 권유한다고 한다. 또 한 선배는 조금 완화된 방법을 썼는데, 과외 역시 아르바이트의 평균 시급과 같은, 대략 3천 원 정도로 계산해 나름대로의 과외 가격을 책정한 바가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땠을까, 한 번 돌아보자. 어떤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교를 말하지 않았다. 강연회나 세미나에서는 소개를 하게 될 때, “서울 사는 대학생”, “열정적인 청년” 등으로 시작을 했는데, 한 번은 같이 참여한 후배가 고맙게도 내 이후에 소개할 때 “이 사람과 같은 곳에서 온”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 연합 커뮤니티 같은 곳을 갈 때에는 같은 학교 학생끼리 모이게 되는 경우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다른 학교 대학생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기회가 되어 자연스럽게 서로 학교를 말하게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사람의 학교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인위적으로 상대방의 학교에 신경 쓰지 말자고 주문을 걸었는데, 지금은 전보다 조금 나아진 것 같다. 가령 무슨 학과의 누구, 어떤 동아리의 누구, 어떤 일을 좋아하는 혹은 잘 하는 학생으로 인식을 하려고 노력하고, ‘어느 대학 몇 학번 누구’라는 식의 사고를 버리고 있는 중이다.
사실 내가 학벌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그래도 소통과 교류를 좋아하는 녀석이 단순히 상대방이 재학 중인 학교 하나 때문에 스스로 다른 사람과의 그것을 막아버리면 어떻게 할까, 라는 걱정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가 나로 인해 소외감을 느끼면 어쩌나, 하는 생각. 그렇게 보면 내 행동은 다분히 의식적이기만 했고 부질없는 짓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글을 보는 이들이 열린 마음으로 이런 사례가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또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하고 한두 번쯤 고민해보고 하나씩 실천해 본다면 학벌 사회의 폐해를 완화시킬 수 있는 더 좋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학벌사회문제, 개인적 실천부터
학벌사회문제, 개인적 실천부터
이제 조금 식상하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학벌 사회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기에 그에 따른 대책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민주노동당 같은 정당에서도 내세운 지 이미 오래되었다. 앞으로도 몇 십 년간은 계속 될 거 같은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구나, 하고 사회 탓을 하며 지나쳐 버릴 수도 있지만, 김동춘(성공회대 사회학 교수)이 “결국 학벌 사회 문제에서 대학생이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역설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출신 대학별로 듀오에서 매기는 결혼 지수 점수나 기업 인사팀만 알고 있는 출신 학교별 가중치 점수, 사회에서 밀어주고 당겨주는 학연 등을 학벌 사회의 병폐로 여길 수 있는데, 오히려 내가 실감하는 부분은 그것보다는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면서도 잘 인식하기를 껴려 하는 부분이었다. 서울 시내의 강연회에 참석할 때, 그 가운데 대학생이 질문을 던질 때, 이상하게도 질문을 하기 전에 현재 재학 중인 대학을 밝히는 경우는 두 개 학교, 고려대와 연세대(가나다순) 학생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는 내 경험에서 오는 진단이지 결코 확실한 통계가 아님을 밝혀둔다. 그것이 두 학교의 전통, “민족 고대”나 “통일 연세”를 먼저 말하면서 자신의 소속과 특징을 자신 있게 밝히고 했던, 이른바 FM을 하던 습관에서 오는 건지, 아니면 명문대학생이라고 하면 자신의 질문을 유심히 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에서 나오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 별 뜻 없이 말 한 건지 알 도리는 없다. 그냥 지나쳐 버리기에는 내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알게 된, 여러 여자 명문 대학생에게 장난스레 물어보게 되었다. 여태까지 교제한 남자는 왜 거의 명문대 생이었냐고. 그들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활동하게 된 단위에서 만난 사람이다” 혹은 “소개 받은 남자가 명문대 생 뿐 이었다” 그렇다면 그 활동한 단위에 있었던 남자는 모두 명문대 생이었을까. 그리고 왜 주변 사람들은 명문대 생 남자만 소개시켜 주었던 걸까.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개 쯤 지니고 있는 블로그나 싸이월드 미니홈피(이하 통칭해서 홈피로 부르기로 하자)의 프로필을 살펴보자. (오해의 소지가 있기에 첨언하자면 이 역시 내가 관심이 있던 주제였기에 유심히 관찰하기는 했으나, 현실적인 제약으로 전국 대학생 모두의 홈피 프로필을 알 수는 없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내 경험에서만 오는 판단일 뿐이다.) 이번에는 앞서 말한 것과는 조금 다른 현상이 벌어진다. 명문대 생들은 홈피에 짤막한 시나 격언, 경구 그리고 그림 등을 배치하는 반면, 오히려 그렇지 못하다고 평가되는 대학생들이 자신의 학내 외 활동 경력, 공모전 수상 내역 등을 배치시켜 놓았다. 물론 요즘 기업에서는 이력서에 홈피 주소를 써 넣게 하여 지원자의 성향이나 경력을 알고 싶어 하기에 그렇게 프로필에 자신 있는 것만 골라 넣었을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명문 대학생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한 선배가 내게 “소위 비명문대 생들은 활동 경력이나 공모전 수상 내역으로 처지는 학벌을 만회하려는 경향이 있고, 학벌을 의식하기에 홈피에서 만큼은 처지는 느낌이 나지 않게 하려 한다” 고 했는데 이것이 정말 그 선배만의 생각일까.
누구나 학벌 중심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는 깨져야 한다고 하고 있으나, 앞선 예를 보면 어느 정도 사고가 유연한 대학생에게조차 학벌에 대한 강박관념은 상당한 것 같다. 그런데 아쉬운 일이지만 실제로 대학생 한 명 한 명 에게는 학벌 사회 구조 자체를 바꿀 역량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김형태(너 외롭구나의 저자 겸 카운슬러)의 말마따나 사회에 문제가 있다면 당장 내 주변부터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동료를 만들라는 조언을 새겨볼만 하다. 나는 대학 생활 중에 그런 식으로 학벌 사회의 폐해를 인식하고 그것에 따른 개인적인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민 사회 단체인 학벌없는사회 학생모임의 전 대표 김고종호는 그 방법으로 동문 멘탈리티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기에 어떤 곳에서든지 자신의 학교를 밝히지 않으며, ‘우리 학교’라는 표현을 일체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곳에서 활동한 엄수홍은 학벌이 준 부수적인 이득인 과외를 거부하고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에게 그런 행위를 권유한다고 한다. 또 한 선배는 조금 완화된 방법을 썼는데, 과외 역시 아르바이트의 평균 시급과 같은, 대략 3천 원 정도로 계산해 나름대로의 과외 가격을 책정한 바가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땠을까, 한 번 돌아보자. 어떤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교를 말하지 않았다. 강연회나 세미나에서는 소개를 하게 될 때, “서울 사는 대학생”, “열정적인 청년” 등으로 시작을 했는데, 한 번은 같이 참여한 후배가 고맙게도 내 이후에 소개할 때 “이 사람과 같은 곳에서 온”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 연합 커뮤니티 같은 곳을 갈 때에는 같은 학교 학생끼리 모이게 되는 경우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다른 학교 대학생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기회가 되어 자연스럽게 서로 학교를 말하게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사람의 학교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인위적으로 상대방의 학교에 신경 쓰지 말자고 주문을 걸었는데, 지금은 전보다 조금 나아진 것 같다. 가령 무슨 학과의 누구, 어떤 동아리의 누구, 어떤 일을 좋아하는 혹은 잘 하는 학생으로 인식을 하려고 노력하고, ‘어느 대학 몇 학번 누구’라는 식의 사고를 버리고 있는 중이다.
사실 내가 학벌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그래도 소통과 교류를 좋아하는 녀석이 단순히 상대방이 재학 중인 학교 하나 때문에 스스로 다른 사람과의 그것을 막아버리면 어떻게 할까, 라는 걱정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가 나로 인해 소외감을 느끼면 어쩌나, 하는 생각. 그렇게 보면 내 행동은 다분히 의식적이기만 했고 부질없는 짓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글을 보는 이들이 열린 마음으로 이런 사례가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또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하고 한두 번쯤 고민해보고 하나씩 실천해 본다면 학벌 사회의 폐해를 완화시킬 수 있는 더 좋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