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또하나, 제목은..땡땡이~@~!!

이미희2007.06.16
조회57

지금에와서 선생님이 보신다해도 별 일이야 없겠지..

몇학년인지는 모르겠어. 그리 어리지만은 않던 시절이라고 생각해.

이야기에 앞서 이러다가 나의 모든것이 폭로되어 남은 인생에 하자가 되는건 아닐지 모르겠다. ㅎㅎ

 

어느 가을날,

하늘은 파랗게 높고 바람은 한들한들 불어 시원하고 햇빛은 따사했어.

"어머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한동네 살던 한 학년 후배인 사촌동생과

여느때처럼 학교를 향해 등교를 하는 중 이었어.

학교생활에 별 재미가 없었는지 가기 싫을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 날이 바로 그 날(?)이었어.

아마도 내 잔머리가 동생을 꼬득였겠지.

"@@야, 우리~ 학교가지 말을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었지만 거진 협박에 가까웠던 질문이었어.

"언니, 혼나면 어떻게 하지? 집에선 모를수도 있지만 선생님한텐 뭐라고 해?"

"결석계를 써줄수는 없고  아파서 못왔다고 이야기하자~"

동생의 염려를 잠재우는것으로 하여간 갑작스런 내 계획에 차질을 갖고싶지 않았다.

"@@야, 하루만 아팠다고 하면 거짓말 같으니까 연달아 이틀을 결석하면 많이 아파서 못온걸로 아실꺼야."

말도 안되는 위험한 생각을 감히 하고있었다.

동생도 나의 위로에 약발을 받았는지 순한 양처럼 내 뜻에 맡기고 밀행에 동참했다.

걱정도 크지만 뜻은 나와  같다는것이  그애의 얼굴에 역력하게 나타났다. 

우리는 용기란 용기는 다 동원해서 우리의 비밀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지금은 없어진 도덕산의 아지트로 우린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학교와는 반대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마나 많은 사탕발림으로 꼬득였을까?

학교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도덕산 중턱에 있는  넓다란 바위가 우리의 목적지였다.

우리 두사람의 바위는 얼마나 크고 좋았던지 세상을 다 가진것처럼 마음이 부풀었다.

나는 위엄있는 언니로써 몇가지 룰을 동생에게 제시했다.

첫번째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야한다.

두번째로  우리가 비록 학교는 안갔지만 학교 종소리에 맞춰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쉬는시간만 쉬는거다.

손가락을 걸고 맹세에 맹세를 하면서 다음날까지 이렇게 진행될것을 설명했다.

정말 재밌었다. 학교에서 들려오는 알림 종소리에 맞춰 시간표대로 책과 공책을 펴고 산이 떠내려 가도록 큰소리로

책을 읽었고, 동생의 공부를 봐준답시고 이것저것 참견도 했다.

산에서의 한시간 수업은 목사님의 설교만큼이나 길고 지루했다.

또 한번 나는 동생을 꼬득이기 시작했다.

"@@야, 우리 점심시간 먼저 하고 공부할래?"

아마도 도시락이 지참된것을 보면 저학년은 아닐듯고 하고 아니면 도시락 지참일 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다른사람의 가려운곳을 알아채주는 센스가 있었던지 바로 동생의 가려움도 그것 이었다.

그런 꿀맛같은 도시락은 지금껏 먹어본적이 없었다. 나뭇가지를 꺾어 나무젓가락을 만들고 도시락의 밥을

반으로 쪼개 뚜겅에 나눠먹었던것을 친구들도 상상해보라.

어쨌거나 땡땡이를 시작하자마자 첫째시간은 도시락 까먹기로 떼웠고 빈둥빈둥 소꿉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놀다 자연학습을 하기로 했다.

빈도시락을 들고 여기저기에 지천이던 먹거리를 구하러 떠났다.

개암이며 보리수며... 남는게 시간이라 산 속 깊은곳까지 들어가보니 이전에 볼수없던 크기들의 열매들이

우리의 근심걱정을 모두 빠앗아가고 탄성마져 지르게했다.

주먹만한 개암과 엄지손톱만한 빨간 보리수를 훑어먹는것도 모자라 도시락에 가득 담고 주머니마다 채웠다.

그러다 물이먹고 싶으면 산너머에 있는 약수터로 달려가 목을 축이면서 그렇게 시간가는줄 모르게 놀았다.

해가 저물쯤 우리도 가방을 싸고 산을 내려와 하교길의 아이들과 뒤엉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학교에다녀왔습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땡땡이를 성공적으로 마친 나와 동생은 이틀후에 학교에 가서

많이 아팠던 모양으로 여린모습을 보여주었고 30년이 지난동안 완전범죄로 만들었다.

신선도 부러워할 우리의  땡땡이!

학창시절 6년동안,  이틀간의 무단 땡땡이였지만 결코 후회되지 않는 추억이다.

조용하고 순하기만 했던 내 모습뒤에 감춰진 나의 엉뚱한 용기는 그 이후의 삶에 커다란 변화로 성장할수 있었다.

지금, 동생은 그 기억이 없다고 했다.

지금, 나의 아이가 이런 엄청난 사고를 일으킨다면.......?

글쎄, 무어라  대답할수는 없지만 나의 아이, 나만의 아이, 그렇기때문에 무엇도 용납할수 없다는 생각은 피하고싶다.

그냥 아이, 내가 지나왔던 그 시절의 그 나이의 아이로 대하고 싶다.

그 때는 너그럽지 못한 비좁은 생각으로 친구들을 생각할수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들이 웃음을 삼키는 추억이 되어 그때를 말한다.

또 한번 아주 강하게 땡땡이 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