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난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이동국 등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보여주는 종횡무진 활약상에서 눈을 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 저 자리에서 남일이가 뛰고 있어야 하는데... " 라는 진한 아쉬움도 내뱉곤 한다. 사실 언론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남일은 한국 선수 최초로 정식 오퍼를 받고 프리미어리그에 도전한 선수였다.(사실 김남일보다 먼저 이천수, 송종국이 각각 사우스햄튼(Southampton FC)과 토트넘(Tottenham Hotspur)로부터 영입제의를 받았었다. 그러나 한국 선수 중 트라이얼을 감수하고 도전한 선수는 김남일 뿐이었다.)
당시 난 황선홍 코치와의 인연으로 이반스포츠에 재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남 일화의 수석코치로 활약하던 안익수 코치의 해외 연수를 맡아 영국을 떠돌고 있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 박공원씨, 프리미어리그 팀 중 하나가 김남일에게 관심이 있다고 정식으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
김남일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프리미어리그 팀의 정체는 웨스트햄(Westham FC). 당시 강등 위기에 빠진 웨스트햄을 이끌고 분투하던 글렌 로더(Glenn Victor Roeder) 감독은 김남일을 직접 보고 싶어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공식 레터로 김남일의 트라이얼을 요청했다.
왜 트라이얼을 요구했을까?
보통 에이전트사가 해외 구단에 접촉할 때 가장 먼저 준비하는 일이 선수에 대한 소개 및 이력서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선수가 뛸 수 있는 포지션이 취약한 구단을 찾아 구단 스카우트 및 테크니컬 파트에 공식 레터를 팩스로 보내는 게 다음 일. 반응이 바로 오지는 않지만, 관심이 생긴다면 조건을 묻는 팩스가 돌아온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일이 시작되는데, 아시아 선수는 잘 알지 못하기에 보통 트라이얼을 요청한다.
그렇다면 왜 김남일은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은 받지 않은 트라이얼을 요구받았을까? 사실 박지성과 이영표는 네덜란드를 거치면서 챔피언스리그에서 자신의 활약을 증명했다. 소위 검증된 선수였기에 트라이얼 요청은 의미가 없었다. 설기현도 안더레흐트(Anderlecht)에서 챔피언스리그를 뛰었을 뿐만 아니라 프리미어리그 바로 아래 단계인 챔피언쉽 경기는 언제나 감독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김남일은 이런 부분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월드컵 당시의 테이프는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어차피 트라이얼(Trial)을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유리한 조건에서 받아야 했다. 소리 없는 전쟁의 시작이었다. 어떤 것을 요구하고 얼마나 대우받을 것인가. 이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 있었다. 비행기 티켓, 숙식제공 , 차량지원, 용품 등 김남일이 최상의 컨디션에서 트라이얼을 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싶었다. 다행히 웨스트햄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매니저 겸 통역을 맡아야 했던 나를 포함 두 명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는 조건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웨스트햄이 있는 영국, 런던으로 떠나는 것뿐이었다.
#2003. 1. 5. 13:15 인천 공항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이제 김남일과 난 2주간 운명을 걸고 트라이얼에 도전해야 했다. 떠날 때는 그 어떤 이의 주목도 받지 않았지만, 돌아올 때는 달라질 것이었다. 실패하던 성공하던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2시간 전에 만났을 때는 긴장하던 남일이가 오히려 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손을 잡는다. 그리고 굳게 마음을 다진 채 출국 심사대에 올라섰다. 이제 12시간이 지나면 서울이 아닌 런던이다.
#2003. 1. 5. 16:34 런던 공항
시차를 거슬러 올라간 여행. 한국보다 9시간이나 빠른 시간의 마법 덕에 우린 한국에서 떠난 지 몇 시간 만에 지구 반대편에 도착하는 시간의 여행을 경험했다. 공항에 나와 있는 웨스트햄 직원의 도움을 받아 도착한 웨스트햄의 홈구장 업튼 파크. " 아니? 호텔이라면서 왜 경기장에 데려왔지? " 이상해서 물어본 나에게 직원은 웃으며 경기장 안에 호텔이 있다고 대답했다. 곧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웨스트햄의 스카이박스는 평소에는 호텔, 경기가 있는 날은 스카이박스로 활용되는 곳이었다.
#2003. 1. 6 08:00 업튼 파크(Upton Park)
익숙지 않은 곳에서의 첫 날밤은 불편했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커튼을 여는 순간 김남일과 난 환호성을 질러야 했다. 장엄한 업튼 파크의 경기장이 눈 아래로 보이면서 이제 남일이가 이곳에서 뛰어야 한다는 각오가 떠올랐다.
아침 식사가 끝난 뒤 트레이닝캠프에서 느낀 영국의 첫 느낌은 차갑다였다. 웨스트햄을 이끌고 있는 글렌 로더 감독은 호의적이었지만, 강등에 대한 위기로 긴장해 있는 1군 선수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 김남일에 대해 경계하고 있는 듯 했다. 낯선 곳, 완전치 않은 몸 상태에서 자신을 경계하는 선수들과의 훈련은 김남일에게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트라이얼의 첫 시작은 우울했다.
예민한 선수, 나타난 경쟁자
어떤 힘든 일도 이겨내겠다는 각오를 하고 왔지만, 낯선 타지에서의 도전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특히 남일이는 영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전술이나 훈련 방식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드러나기도 했다. 훈련이 끝난 후 남일이는 나에게 면양말 좀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보통 한국 선수들은 면양말을 신고 나이롱 스타킹을 잘라 발목부터 테이핑 하듯 움직이곤 한다. 그런데 영국 선수들이 면양말을 신지 않다보니 남일이가 익숙지 않은 나이롱 스타킹에 당황했던 것이다. 어쩐지 생각 외로 훈련 도중 계속 발이 미끄러운지 고개를 갸우뚱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축구화만 준비하라던 그 쪽의 의견에만 따랐던 나의 실책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은 스타킹뿐이 아니었다. 김남일 혼자 트라이얼을 받는 것으로 알았던 상황에서 경쟁자가 등장한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남일이의 경쟁자로 나타난 주인공은 2002 월드컵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던 시릴 은자마. 더 이상의 여유는 없었다.
운명의 도전, 김남일과 네덜란드<1>
작년부터 난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이동국 등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보여주는 종횡무진 활약상에서 눈을 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 저 자리에서 남일이가 뛰고 있어야 하는데... " 라는 진한 아쉬움도 내뱉곤 한다. 사실 언론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남일은 한국 선수 최초로 정식 오퍼를 받고 프리미어리그에 도전한 선수였다.(사실 김남일보다 먼저 이천수, 송종국이 각각 사우스햄튼(Southampton FC)과 토트넘(Tottenham Hotspur)로부터 영입제의를 받았었다. 그러나 한국 선수 중 트라이얼을 감수하고 도전한 선수는 김남일 뿐이었다.)
당시 난 황선홍 코치와의 인연으로 이반스포츠에 재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남 일화의 수석코치로 활약하던 안익수 코치의 해외 연수를 맡아 영국을 떠돌고 있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 박공원씨, 프리미어리그 팀 중 하나가 김남일에게 관심이 있다고 정식으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
김남일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프리미어리그 팀의 정체는 웨스트햄(Westham FC). 당시 강등 위기에 빠진 웨스트햄을 이끌고 분투하던 글렌 로더(Glenn Victor Roeder) 감독은 김남일을 직접 보고 싶어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공식 레터로 김남일의 트라이얼을 요청했다.
왜 트라이얼을 요구했을까?
보통 에이전트사가 해외 구단에 접촉할 때 가장 먼저 준비하는 일이 선수에 대한 소개 및 이력서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선수가 뛸 수 있는 포지션이 취약한 구단을 찾아 구단 스카우트 및 테크니컬 파트에 공식 레터를 팩스로 보내는 게 다음 일. 반응이 바로 오지는 않지만, 관심이 생긴다면 조건을 묻는 팩스가 돌아온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일이 시작되는데, 아시아 선수는 잘 알지 못하기에 보통 트라이얼을 요청한다.
그렇다면 왜 김남일은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은 받지 않은 트라이얼을 요구받았을까? 사실 박지성과 이영표는 네덜란드를 거치면서 챔피언스리그에서 자신의 활약을 증명했다. 소위 검증된 선수였기에 트라이얼 요청은 의미가 없었다. 설기현도 안더레흐트(Anderlecht)에서 챔피언스리그를 뛰었을 뿐만 아니라 프리미어리그 바로 아래 단계인 챔피언쉽 경기는 언제나 감독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김남일은 이런 부분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월드컵 당시의 테이프는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어차피 트라이얼(Trial)을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유리한 조건에서 받아야 했다. 소리 없는 전쟁의 시작이었다. 어떤 것을 요구하고 얼마나 대우받을 것인가. 이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 있었다. 비행기 티켓, 숙식제공 , 차량지원, 용품 등 김남일이 최상의 컨디션에서 트라이얼을 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싶었다. 다행히 웨스트햄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매니저 겸 통역을 맡아야 했던 나를 포함 두 명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는 조건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웨스트햄이 있는 영국, 런던으로 떠나는 것뿐이었다.
#2003. 1. 5. 13:15 인천 공항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이제 김남일과 난 2주간 운명을 걸고 트라이얼에 도전해야 했다. 떠날 때는 그 어떤 이의 주목도 받지 않았지만, 돌아올 때는 달라질 것이었다. 실패하던 성공하던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2시간 전에 만났을 때는 긴장하던 남일이가 오히려 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손을 잡는다. 그리고 굳게 마음을 다진 채 출국 심사대에 올라섰다. 이제 12시간이 지나면 서울이 아닌 런던이다.
#2003. 1. 5. 16:34 런던 공항
시차를 거슬러 올라간 여행. 한국보다 9시간이나 빠른 시간의 마법 덕에 우린 한국에서 떠난 지 몇 시간 만에 지구 반대편에 도착하는 시간의 여행을 경험했다. 공항에 나와 있는 웨스트햄 직원의 도움을 받아 도착한 웨스트햄의 홈구장 업튼 파크. " 아니? 호텔이라면서 왜 경기장에 데려왔지? " 이상해서 물어본 나에게 직원은 웃으며 경기장 안에 호텔이 있다고 대답했다. 곧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웨스트햄의 스카이박스는 평소에는 호텔, 경기가 있는 날은 스카이박스로 활용되는 곳이었다.
#2003. 1. 6 08:00 업튼 파크(Upton Park)
익숙지 않은 곳에서의 첫 날밤은 불편했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커튼을 여는 순간 김남일과 난 환호성을 질러야 했다. 장엄한 업튼 파크의 경기장이 눈 아래로 보이면서 이제 남일이가 이곳에서 뛰어야 한다는 각오가 떠올랐다.
아침 식사가 끝난 뒤 트레이닝캠프에서 느낀 영국의 첫 느낌은 차갑다였다. 웨스트햄을 이끌고 있는 글렌 로더 감독은 호의적이었지만, 강등에 대한 위기로 긴장해 있는 1군 선수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 김남일에 대해 경계하고 있는 듯 했다. 낯선 곳, 완전치 않은 몸 상태에서 자신을 경계하는 선수들과의 훈련은 김남일에게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트라이얼의 첫 시작은 우울했다.
예민한 선수, 나타난 경쟁자
어떤 힘든 일도 이겨내겠다는 각오를 하고 왔지만, 낯선 타지에서의 도전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특히 남일이는 영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전술이나 훈련 방식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드러나기도 했다. 훈련이 끝난 후 남일이는 나에게 면양말 좀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보통 한국 선수들은 면양말을 신고 나이롱 스타킹을 잘라 발목부터 테이핑 하듯 움직이곤 한다. 그런데 영국 선수들이 면양말을 신지 않다보니 남일이가 익숙지 않은 나이롱 스타킹에 당황했던 것이다. 어쩐지 생각 외로 훈련 도중 계속 발이 미끄러운지 고개를 갸우뚱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축구화만 준비하라던 그 쪽의 의견에만 따랐던 나의 실책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은 스타킹뿐이 아니었다. 김남일 혼자 트라이얼을 받는 것으로 알았던 상황에서 경쟁자가 등장한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남일이의 경쟁자로 나타난 주인공은 2002 월드컵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던 시릴 은자마. 더 이상의 여유는 없었다.
다음에는 '운명의 도전, 김남일과 네덜란드 < 2 > '편이 연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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