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음에 관한-Q의 표류기] 프랑크푸르트 - 걸죽한 맥주

조규영2007.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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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음에 관한-Q의 표류기] 프랑크푸르트 - 걸죽한 맥주


 

 

명훈과 Q가 집을 나서 프랑크푸르트 중심으로 가는 S반을 탔을 때는 오후 2시가 넘어서 였다

 

오펜바흐의 작은 역에서 명훈은 Q의 유레일 패스의 개시와 함께 열차 예약을 도와줬다.

 

내일 밤 프랑크푸르트 발 파리행 야간열차였다.

 

 

명훈의 저음이면서 맑은 독일어는 감동적이었다.

 

성악가들은 따로 독일어 발성을 배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들어보니 정말 놀라웠다.

 

오히려 역 창구 안에 앉아 있던 독일인이 촌스럽다고 여겨질 정도 였으니까.

 

Q는 모국어 때문에 한국 사람은 절대로! 완벽한 독일어 발음이 불가능하다고 피력하던 교수가 떠올랐다. 그 교수의 독일어를 들을 때면 머리속에는 늘 '하일 하틀러!'가 맴돌았던 기억도 함께.

 

일요일 오후 S반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눈이 부셔 밖을 똑바로 보고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기차안은 더웠다. 금새 땀이 목과 이마에 베어났다.

 

-에어컨 없는거에 적응하려면 시간 좀 걸릴꺼야

이마의 땀을 닦으며 명훈이 말했다.

 

-웬만해서는 안 틀거든. 대중교통 뿐만 아니라 관공서도 마찬가지야. 아 백화점이나 옷가게 같은 곳은 틀어 주는데도 있지. 아무래도 뭔가를 팔아야 하니까 말야.

 

-한국 같았으면 난리가 났을텐데.. 에어컨 틀어 달라고. 아시죠? 여름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려면 긴 셔츠를 꼭 가져가야 하는거.

 

-맞아 그랬었지.

 

Q의 말에 명훈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질꺼야. 오히려 건강에 더 좋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여긴 한국처럼 습하지 않아서 아무리 뜨거운 날씨에도 그늘 아래 있으면 시원하거든. 밤에는 약간 쌀쌀하기도 해.

 

 

-외롭지 않으세요?

 

창밖을 바라보던 Q의 갑자스런 물음에 명훈은 당황한 듯 했다.

 

계속 솟아나는 얼굴의 땀을 손등으로 훔치면서 그가 말했다.

 

-외로움이라는 거 그냥 하나의 욕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마치 배가 고픈 것처럼 말야.

점심을 배가 터지도록 먹었는데도 집을 나서 길을 걷다보면 갑자기 허기가 지는 날도 있지.

옆에 누군가 있다고 배가 안 고픈 건 아니잖아?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 살아 있기 때문에 외로운 거야.

 

 

기차가 땅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머리 위쪽에 열린 창문을 통해 끽끽 거리는 소리가 났다.

 

 

 

명훈이 Q를 데려 간 곳은 뢰머 광장이었다.

광장을 내려다 보고 있는, 지붕이 계단 모양을 하고 있는 Roemer (뢰머)라는 집이름을 따서 뢰머 광장이라고 한다. 이 집은 1405년부터 시청건물로 사용되고 있었다.

 

 

[낯설음에 관한-Q의 표류기] 프랑크푸르트 - 걸죽한 맥주


 

 

광장 가운데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청동분수가 있었다.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분수. 뢰머보다 200년쯤 뒤에 만들어졌고 한다.

 

독일은 어느 지역을 가든 보통 시청사 건물이 중심지 역할을 한다. 또한 대걔 시청건물이 주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도 한다. 독일여행책에 Markt Platz(막크트 플랏츠)라고 나오는 중심지는 시청 앞 광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작은 도시에서는 주말마다 Markt Platz에서 장이 열린다. 대부분 집에서 수확한 것들을 팔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도 알뜰하게 장을 볼 수 있다.

 

 

많은 여행객들이 분수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광장 주위에 맥주 가게 앞에 놓인 야외 파라솔 아래 테이블에서 더위를 피하며 독일 사람들은 그런 외국인들을 구경하고 있다. 손에는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잔을 든 체였다.

 

-독일 남자들은 모두 대장간 사람 같아요

Q가 말했다.

 

-덩치가 좀 크긴 하지. 하하. 그래도 얼마나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데 저 큰 덩치에 조그만한 콘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귀여워서 쓰러질껄.

 

명훈은 Q를 분수가 잘 보이는 호프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Q가 테이블에 앉아서 분수대 앞을 시끄럽게 지나가는 일본 단체 관광객들을 보고 있는 동안,

명훈이 두 잔의 맥주와 부어스트(소세지), 브롯(빵)을 사왔다.

 

-자 독일에 왔으니까 맥주 한 잔 해야지!

 

-아직 낮인데요? 낮술도 나쁘진 않지만..

 

-맥주가 술이었던가? 여기선 맥주를 음료수처럼 여기니까 괜찮아 한국 같았으면 좀 그랬지만.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키며 명훈이 웃었다.

 

-그런데 독일은 맥주가 물보다 싸다는게 사실이에요?

 

생각났다는 듯 Q가 명훈에게 물었다.

 

-한국보다는 싼 편인데, 물보다 싸다는건 좀 오바지. 물론 마트가면 물보다 싼 맥주도 있어. 비싼 것도 있고. 그래도 분명한 건 한국보다는 확실하게 싸게 음주생활을 즐길 수 있을거야. 무엇보다 안주값이 안드니까.

 

-이거 맛이 좀 특이한데요? 걸죽한게..

Q는 거품이 위에 가득한 맥주잔을 들여다 봤다.

 

-Weiss Bier(바이스 비어, 비어=맥주)야. Hefeweizen Bier 라고도 하는데 밀로 만들었다고 하더군. 걸죽한게 꼭 막걸리 같지?

 

-좀 시큼한 것 같기도 하고.. 특이하지만 맛은 있는데요?

 

-독일 맥주가 워낙에 다양하고 종류가 많은 걸로 유명하지. 통설에 의하면 500 종류의 맥주가 있다고 해. 크게 분류하면 우리가 한국에서 먹었던 맥주같은 필스(pilsner bier)랑 그 바이젠으로 나뉘지. 그 아래로 또 수없이 갈라져 나가는거야.

 

-그럼 좀 곤란한데요. 돌아가기전에 종류별로 다 먹어보는 게 목표인데.

 

-아마 불가능 할껄...그러려면 독일 전 지역을 다 돌아다녀야 되니까 말야. 지역마다 마시는 맥주가 다르거든. 여긴 워낙에 지역성이 강해서 맥주가지도고 서로 자기 지역 맥주가 더 좋다고 싸우고 그러거든. 다른 지역에 팔지도 못하게 하고. 축구처럼 말야.

 

- 수백개로 쪼개져 살아서 그런가 봐요? 독일역사 시간 배운 기억이 나는데.. 유럽에서 가장 늦게 민족국가 된게 독일이니까.. 1891년인가. 비스마르크가.

 

Q의 말에 명훈이 놀랍다는 표정을 짓자 Q가 잔을 들며 말했다.

 

- 그정도는 알아요.

 

-그래서일지도 모르지. 암튼 재미있는 나라야!

 

술기운이 올라오는지 벌써 명훈의 얼굴이 불그스름해졌다.

 

그는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