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인간의 이기심(번뇌, 망상; 無明) 때문에 본질이 너무나 많이 가리워져 서로 다투고, 그로인하여 고통 속에서 살아 가고 있습니다.
창조론으로 보거나, 진화론으로 보거나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의 조상이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같은 것을 본다는 것은 나의 고정관념(번뇌,망상;無明)을 없앤다는 것입니다.
같은 것을 보는 사람은 항상 긍정적이고, 다른 것을 보는 사람은 항상 부정적이므로 늘 자기생각이 옳다고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하여, 늘 분쟁을 일으키며,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우물안의 개구리와 같이 자기것만 알고 남의것은 전혀 알 수 없게되어 결국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자기것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남의 것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같다-다르다는, 옳다-그르다의 뜻과도 같아서, 같다는 것은 옳고 그릇된 것을 분별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옳고 그름은 원래 없는 것이나, 사람마다 자기의 주관적인 판단(지식,알음알이)에 의해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기독교와 불교는 물론, 모든 종교는 같은것(본질;體)으로 보면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종교는 인간의 영원한 행복(고통이 없는 것;만족)을 얻고저 함이 공통점 입니다. 다만 종교가 발생된 환경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발전된 형태가 다를 뿐입니다. 이것은 다른 만물과 마찬가지로 근본은 같으나 쓰임새(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의 방편만 조금씩 다를 뿐입니다. 예컨데 내가 있는 위치에 따라서 서울로 가는 길이 모두 다른 것과 같습니다.
서양의 종교는 사막에서 발생 되었으며, 동양의 종교는 숲에서 발생 되었으므로, 사막에서는 무엇보다도 물이 있어야 생존이 가능 하므로, 물을 찾아야만 가장 큰 고통이 해결될 것이며, 숲에는 먹을 것은 풍부하나 그것 만으로는 늘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없으므로 종교가 생겨난 것입니다.
종교에 대해서는 많은 학설이 있으며, 이 문제는 예민한 것이므로 여기서는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종교의 본질에만 충실하고, 종교안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만들어진 것에는 집착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종교의 본질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학설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모든 학설은 분별심 으로부터 시작되며, 이것은 전부 망념(妄念)이며, 망념이란? 요즘 말로는 관념이고, 관념을 잘 정리해 놓은 것이 개념 이며, 개념을 잘 정리해 놓은 것을 학설이나 논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모든 개념은 망념이며, 개념이 전문화 되면 이것을 `조작적 개념'이라고 합니다.
과학은 과학대로, 문학은 문학대로 각 분야별로 조작적 개념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잘 발표하는 사람들을 신학설을 잘 발표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이것은 진리(본질,본성,깨달음, 眞如, 中道)의 입장에서 보면 무슨 소리를 해도 개념에 불과한 것이며, 조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즉 아무리 훌륭한 학설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가 진리는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용어들이 계속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며, 이것들은 계속 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래 관념(망상)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모든 관념에서 해방되는 것, 즉 관념을 초월하는 것이며, 이것을 무념(無念)이라하고, 무념은 같은 것을 보는 것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또한 이것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이며, 내 생각(我相)으로 만들어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종교도 이렇게 보면 다를 것이 없으며, 배타시 하려는 마음이 일어 나지 않습니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신(神)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라고 말씀 하셨으므로 `유일하시다'라고 가르침니다.
이 가르침은, 진리는 하나 밖에 없는 것이어서 모두가 같이 하나로 통하므로 유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유일하기 때문에 `절대적이다'또는 `최고다'로 잘못 해석해 버리면, 자기의 고정관념이 되어 이웃종교를 배척하게 됩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 가정에서, 사회에서, 국가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종교의 본질인 `사랑'과 `자비'에 너무나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종교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원인을 제공해 주는 가장 중요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
종교는 믿음을 떠나서는 의미가 없어 집니다.
인간의 이기심이 들어간 학설을 믿어서는 않되고, 본질만을 믿어야 하는데, 문제는 종교가 발전되는 과정에서 본질과 학설이 너무 많이 섞여 졌다는 말입니다.
본질(진리)은 오직, "우주는 하나다" 이것 뿐이므로, 같은 것만 찾아서 보는 습관을 만드십시요. 믿음은 나를 바꾸기위한 방편이기 때문에 다른사람에게 믿음을 강요하면 그것은 `우상'이 되어 버리고, 고정관념이 되고맙니다.
그래서 우상이란? `내것 만이 최고다, 이것만이 진리다'라고 생각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고, 다른 것은 일체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 우상입니다.
무엇이 되었든 자기가 이룬것을 취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우상이 됩니다. 예컨데 돈을 많이 벌어서 자기가 다 가지게 되면, 돈이 그사람의 우상이 되어, 그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되며, 돈으로서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진리(法)도 다 깨치고 나면 버려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깨치고 나서 그 깨달음을 자기것으로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다른 것을 배척하게 되고, 깨달음이 지혜가 아닌 지식이 되어 다른 것들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버린다는 것은, 깨달았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말씀이며, 그리고 깨달음을 나누어 주되 주었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70~80%가 물입니다.
그래서 몸 밖에 있는 물은 또 다른 나(我)입니다.
같은 것으로 보면 어느 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나눔의 삶을 살게 되며, 미물의 생명체 까지도 함부로 죽이지 않게 됩니다.
같은 것을 보자 !
같다는 것은 하나라는 말이며, 하나라는 말은 둘이 아니다(不二), 다르지않다(不異)는 뜻이며, 너와 나의 분별이 없어져 모두가 나(我)로 되는 것, 즉 하나됨(無我)을 뜻합니다.
우주만물을 형상(形相,모양;쓰임새,用)으로 보면 똑같은 것은 단 한가지도 없습니다. 그러나 본질(근본;體)로 보면 모두가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우주만물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4대(4大)가 인연(因緣)으로서 만들어지고, 없어지므로 본질에 있어서는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의 이기심(번뇌, 망상; 無明) 때문에 본질이 너무나 많이 가리워져 서로 다투고, 그로인하여 고통 속에서 살아 가고 있습니다.
창조론으로 보거나, 진화론으로 보거나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의 조상이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같은 것을 본다는 것은 나의 고정관념(번뇌,망상;無明)을 없앤다는 것입니다.
같은 것을 보는 사람은 항상 긍정적이고, 다른 것을 보는 사람은 항상 부정적이므로 늘 자기생각이 옳다고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하여, 늘 분쟁을 일으키며,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우물안의 개구리와 같이 자기것만 알고 남의것은 전혀 알 수 없게되어 결국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자기것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남의 것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같다-다르다는, 옳다-그르다의 뜻과도 같아서, 같다는 것은 옳고 그릇된 것을 분별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옳고 그름은 원래 없는 것이나, 사람마다 자기의 주관적인 판단(지식,알음알이)에 의해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기독교와 불교는 물론, 모든 종교는 같은것(본질;體)으로 보면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종교는 인간의 영원한 행복(고통이 없는 것;만족)을 얻고저 함이 공통점 입니다. 다만 종교가 발생된 환경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발전된 형태가 다를 뿐입니다. 이것은 다른 만물과 마찬가지로 근본은 같으나 쓰임새(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의 방편만 조금씩 다를 뿐입니다. 예컨데 내가 있는 위치에 따라서 서울로 가는 길이 모두 다른 것과 같습니다.
서양의 종교는 사막에서 발생 되었으며, 동양의 종교는 숲에서 발생 되었으므로, 사막에서는 무엇보다도 물이 있어야 생존이 가능 하므로, 물을 찾아야만 가장 큰 고통이 해결될 것이며, 숲에는 먹을 것은 풍부하나 그것 만으로는 늘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없으므로 종교가 생겨난 것입니다.
종교에 대해서는 많은 학설이 있으며, 이 문제는 예민한 것이므로 여기서는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종교의 본질에만 충실하고, 종교안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만들어진 것에는 집착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종교의 본질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학설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모든 학설은 분별심 으로부터 시작되며, 이것은 전부 망념(妄念)이며, 망념이란? 요즘 말로는 관념이고, 관념을 잘 정리해 놓은 것이 개념 이며, 개념을 잘 정리해 놓은 것을 학설이나 논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모든 개념은 망념이며, 개념이 전문화 되면 이것을 `조작적 개념'이라고 합니다.
과학은 과학대로, 문학은 문학대로 각 분야별로 조작적 개념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잘 발표하는 사람들을 신학설을 잘 발표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이것은 진리(본질,본성,깨달음, 眞如, 中道)의 입장에서 보면 무슨 소리를 해도 개념에 불과한 것이며, 조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즉 아무리 훌륭한 학설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가 진리는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용어들이 계속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며, 이것들은 계속 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래 관념(망상)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모든 관념에서 해방되는 것, 즉 관념을 초월하는 것이며, 이것을 무념(無念)이라하고, 무념은 같은 것을 보는 것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또한 이것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이며, 내 생각(我相)으로 만들어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종교도 이렇게 보면 다를 것이 없으며, 배타시 하려는 마음이 일어 나지 않습니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신(神)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라고 말씀 하셨으므로 `유일하시다'라고 가르침니다.
이 가르침은, 진리는 하나 밖에 없는 것이어서 모두가 같이 하나로 통하므로 유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유일하기 때문에 `절대적이다'또는 `최고다'로 잘못 해석해 버리면, 자기의 고정관념이 되어 이웃종교를 배척하게 됩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 가정에서, 사회에서, 국가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종교의 본질인 `사랑'과 `자비'에 너무나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종교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원인을 제공해 주는 가장 중요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
종교는 믿음을 떠나서는 의미가 없어 집니다.
인간의 이기심이 들어간 학설을 믿어서는 않되고, 본질만을 믿어야 하는데, 문제는 종교가 발전되는 과정에서 본질과 학설이 너무 많이 섞여 졌다는 말입니다.
본질(진리)은 오직, "우주는 하나다" 이것 뿐이므로, 같은 것만 찾아서 보는 습관을 만드십시요. 믿음은 나를 바꾸기위한 방편이기 때문에 다른사람에게 믿음을 강요하면 그것은 `우상'이 되어 버리고, 고정관념이 되고맙니다.
그래서 우상이란? `내것 만이 최고다, 이것만이 진리다'라고 생각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고, 다른 것은 일체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 우상입니다.
무엇이 되었든 자기가 이룬것을 취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우상이 됩니다. 예컨데 돈을 많이 벌어서 자기가 다 가지게 되면, 돈이 그사람의 우상이 되어, 그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되며, 돈으로서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진리(法)도 다 깨치고 나면 버려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깨치고 나서 그 깨달음을 자기것으로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다른 것을 배척하게 되고, 깨달음이 지혜가 아닌 지식이 되어 다른 것들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버린다는 것은, 깨달았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말씀이며, 그리고 깨달음을 나누어 주되 주었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70~80%가 물입니다.
그래서 몸 밖에 있는 물은 또 다른 나(我)입니다.
같은 것으로 보면 어느 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나눔의 삶을 살게 되며, 미물의 생명체 까지도 함부로 죽이지 않게 됩니다.
모두가 나(我)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