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아직도 노예인가

유형원2007.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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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아직도 노예인가

나는 이제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구태의연하지만,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역겹고 거북스러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현실에 대해 낙관적이며 결혼과 사랑, 남자와 여자의 문제에 대해 낭만과 기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부디 읽지 말기를 권한다.

 

여풍이 대단한 시대다. 국내 사법고시 최연소 합격 및 최단기간 합격 기록을 여학생이 줄줄이 갈아치우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 여성 정치지도자가 배출되고 있으며 이미 직업인구의 50%를 육박하는 비율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여성의 시대가 온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에 띠는 것은 바로 여성에 대한 성(性)적 굴레가 점점 벗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굴레란 다름아닌 순결에 대한 강박적 규범이다. 단 이때의 순결은 처녀막의 상태만을 규정한다. 처녀막은 '가치'의 보증수표이자 도덕의 담지자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순결의식이 이제는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사실 순결관념은 매우 전형적인 남성들의 카르텔이다. 즉 순결관념은 재화에 대해 그 기능에 알맞는 속성을 내재화시키는 과정이며, 이때 재화는 물론 여성을 일컫는다(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여자의 몸뚱아리를!). 남성들의 대화에서 여자가 '너'가 아닌 '그것'으로 지칭되는 일은 역사와 함께 시작된 인습이다.

 

남자들은 여자의 문제를 다룰 때, 마치 눈 앞에 쌓인 파이조각을 어떻게 나눌것인지와도 같이 생각하곤 한다. 여자라는 파이 앞에서는 모든 남자가 경쟁상대이다. 그런데 이 경쟁은 기본적으로 룰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실력경쟁이므로, 모든 남자는 서로를 철저히 불신하기 마련이다. 서로를 믿지 않는 상황에서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옵션은 바로 여성 스스로로 하여금 한 명의 남자만 선택하도록 강요함으로써 소수엘리트의 재화독점사태를 방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제도는 바로 결혼이다(적어도 구조적인 의미에서는 그렇다). 결혼은 1대 1의 공평한 재화분배를 법제화한 인류 역사의 발명품이며, 일종의 사회주의적인 정책이다. 그리고 여기에 수정주의적으로 가미된 것이 성매매이다. 즉 성매매는 1대1의 제한적 소유관계에서 빚어지는 결핍해소의 도구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결혼과 성매매의 다른점은 오직 성욕해소를 위한 재화분배정책의 전략적 차이에서만 발생한다.

 

따라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소비될 수 있는 재화이기 위해서는, 여성은 처녀막을 잃어서는 안된다. 만일 첫날밤의 '개통식'에서 기대와는 다른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제품하자를 의미하며, 심한 경우에는 소비자가 리콜을 신청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결혼관계에서 여자는 원초적으로는 상품이다. 결혼과 성매매는 제도 안에서 자라났느냐 제도 밖에서 자라났느냐와의 차이만 제외하면 구조상 똑같다.

 

이것은 이미 아주 오래전에 여성들이 발견해낸 남성들의 통치 헤게모니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식에 대한 각성으로 인해 나타난 사회적 탄성반응이 바로 여성의 '순결의식으로부터의 해방 운동'이다. 이제 여성들은 자유롭게 섹스하고자 한다. 순결을 지키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남성들이 만들어낸 제품 품질보호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을 것이기 떄문이다. 처음에는 남성 기득권 계층으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이제는 매우 당연한 일처럼 되어가고있고, 실제로 어느정도는 달성되었다. 서구는 더 그렇고 비서구는 조금 덜 그렇다. 어쨌든 설정된 경향성만은 확실하다. 여성은 해방된 것 같다.

 

글쎄...... 정말 그럴까? 마음대로 섹스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해방을 의미할까? 여성성욕 억압에서 여성성욕 해방으로의 이행이 곧 여성억압에서 여성해방으로의 이행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실 오늘날 (특히 지식인) 남성이 (非지식인) 여성에게 저지르는 가장 잔인한 폭력 중 하나는 페미니즘적 성관념을 여성에게 수출하여 여성 자신이 자기억압적 구질서 속에 격리수용되어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준 뒤, 그것을 통해 여성의 기존 성윤리관을 붕괴시켜서 성적으로 착취하고 떠나는 것이다. 여성 해방을 부르짖는 수많은 남성들의 실제 목표는 (여성이 아닌)섹스를 순결관념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자신이 마음껏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해방이라기보다는 섹스 서비스상품의 해방이며, '결혼과 순결관념'이라는 긴축재정정책에 대항하는 일종의 확장재정정책이다. 즉 혼전성교에 흔쾌히 임하는 여성을 늘리는 통화량 증가현상을 기대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페미니스트 진영의 여성들은 순결의식 파괴를 주장해줌으로써 그러한 남성들의 새로운 정책적 요구를 여성 커뮤니티에 잘 반영해주고 있다. 페미니즘 진영의 목적은 여성을 남성에 대해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하게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남성들에게 섹스기구 바겐세일잔치나 열어주는 결과를 낳고 마는 것이다.

 

우스운 표현일지도 모르겠으나, 내 생각에는 페미니즘 진영도 마초이즘 세계체제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에서 주변부 동유럽이 '강제 환금작물 노동'이라는 봉건적 노동통제방식을 가지고 자본주의적 유럽세계경제에 접속한 것과 마찬가지이다(즉 '전체와는 다른' 부분이 전체를 위해 봉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니면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반대하면서 결국 자본주의의 팡파레를 울려준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여성해방이니 어쩌니 하는 것이 모두 찻잔 속의 태풍일지도 모른다.  

 

또한 남성과 여성의 문제는 서양과 동양의 문제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오리엔탈리즘의 문제는 수십년동안 제기되어왔고 이제 비서구권의 정체성 확보시도가 한창이지만, 결국에는 그러한 시도 자체가 서구사회에 의해 상품으로 소비된다. 동양이 자기 정체성을 풍부하게 발견할 때 마다 서구사회가 소비할 수 있는 컨텐츠도 다양해질 뿐이다. 동양이 커지면 서양도 커진다. 동양이 뚜렷해지면 서양도 뚜렷해진다. 여성해방운동이 거세지면 거세질 수록, 여성억압의 기제는 더욱 교묘해진다.

 

서구남성-비서구여성의 문제도 비슷하다. 오리엔탈리즘의 문제를 지적하며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 처럼 보이는 민주적 서구남성의 이념형에는 이미 성행위에 관해서도 똑같은 좌표가 존재한다. 이데올로기적 우월성에 기반해 비서구여성을 계몽시킨 서구남성은, 그날 밤에 질펀하게 뒹굴 수 있다. 성욕은 채운 쪽은 남자고, 여권확립의 허상속에서 허우적대는 쪽은 여자다.

 

결과적으로 그 어떤 정중과 예의와 문명과 첨단과 진보의 옷을 입었다 할지라도, 모든 성관계는 남성 중심적으로 이루어지고 만다. 설령 눈에 보이는 자유가 매우 크다 할지라도, 절대 함부로 그것을 믿어서는 안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별로 위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드러나지 않는 것이야 말로 더 위험하다. 어쩌면 여성들은, 다가올 미래에는 여태까지보다 훨씬 더 위험한 감옥에 갇히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