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테마의 생태공원 평강식물원

윤화숙2007.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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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길과 산길이 포함된 80여리, 상여를 매고 가면 꼬박 이틀이 걸려도 버거운 길이다.


한 조에 48 명으로 이루어진 3 개 조 150 여명의 상여꾼, 그리고 수많은 유족과 조문객이 뒤를 따랐다면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그렇게 운구를 하는 데 기와집 한 채 값이 족히 들었다고 한다.


설사, 그만한 돈을 쓸 여력이 있다 하드라도, 그 시절엔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65 년 전, 증조부께서 별세하셨을 때 바로 그렇게 했다.



우리 집안에서 그 때 그 현장을 목격한 유일한 며느리가 지난 주 운명을 하셨다.

 

이제, 나 하나 말고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며느리가 집안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차이는 엄청나다.


함께 살다 보면 자연, 장점보다 단점이 더 잘 보이게 마련이다.


그럴 때, 그런 것조차도 없다면 밖에서 들어온 자의 입장에선 형편없이 보이는 집안과 남편을 폄하하기 십상일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칫, 집안 자녀들의 가정교육에까지 영향이 미치게 마련이겠고.... 



어쨌든, 이런저런 일로 해서 우울한 주말을 맞게 되었다.


뭔가 기분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일정을 살펴보니 ‘평강식물원 초청방문’이란 메모가 눈에 띄었다.


평소 같았으면 의례히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사안이었으나 이 날만은 그렇지가 않았다.


모든 걸 차치하고, 그 쪽을 선택했다. 

 


 


 

포천은 지리적으로 수도권과 얼마 떨어지지 않았으면서도 드물게 난개발에 시달리지 않은 곳이라 아직도 아름다운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산우물같이 맑은 호수란 뜻의 산정호수나 태봉의 궁예가 고려 왕건을 피해서 숨어들어와 울부짖었다는 전설이 얽힌 명성산(鳴聲山), 맑은 물 속의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계곡이 무려 10 ㎞나 된다는 백운계곡 등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눈이 가는 곳곳이 그야말로 선경이요 절경이다.



산정호수 인근 18만 평의 토지에 조성된 평강식물원은 한 학교 후배가 10 여 년 동안, 물경 50억 원의 거금을 들여 조성해서 지난 해 개원을 했다고 한다.


한의원인 남편이 코나무 껍질(유근피)에 살구씨, 수세미, 목련꽃 봉우리 등 20 여 가지의 약재를 첨가해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청비환” 덕분에 돈을 좀 벌었는데, 그 돈을 몽땅 투자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세계 각지의 유명 식물원을 다 둘러보고 대학원에서 식물생태학 공부까지 했다니 그 열정 또한 감탄스러웠다.



평강식물원은 그 안에 널따란 잔디광장을 비롯하여 고층습지, 고산습원, 암석원, 습지원, 이끼원, 만병초원 등과 같은 12개의 테마정원을 조성하고 5,000 여종의 국내와 자생식물을 심어놓았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넓이가 1800 평에 이르는 암석원이다.


한국의 백두산과 한라산, 네팔의 히말라야, 유럽의 알프스, 미주의 로키 산맥 등 세계의 고산 지역에서 자라는 고산식물과 바위에 붙어사는 다육식물(多肉植物)이 무려 1천 여 종이나 심겨져 있다.


백두산의 장지 연못을 생태적으로 재현한 고층습원은 생태보전과 희귀식물 연구에 있어 중요한 교육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고산의 작은 계류(溪流)와 그 주변의 습원(濕原)을 응용한 고산습원은 높은 산 속 계곡의 시원하고 습한 지역에서 서식하는 수변식물(水邊植物)과 침수식물(沈水植物)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다.


자연 초지에서 야생화가 군락 혹은 혼식되어 자라는 환경을 응용해 식물을 전시하는 들꽃원은 이름 그대로 초지의 생태적 특징을 고려해서 식물의 천이(遷移) 과정뿐만 아니라, 봄부터 가을까지 피고 지는 갖가지 꽃을 감상할 수 있다.


‘만 가지 병에 쓰이는 약초’라는 의미의 만병초를 400여 종이나 모아둔 만병초원 또한 인상적이다.


인공증식이 어려워 5년간 시험재배를 하면서 재배에 적합한 토양과 환경을 찾아내었다니 그 집념 또한 대단하다.



평강식물원은 식물원을 조성함에 있어, 가급적이면 원래의 자연을 거스리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 곳이다.


그래서 일견, 좀 산만해 보일지는 모르나 자세히 뜯어보면 그 자연스러움이나 과학성이 세계의 어느 보타닉가든보다도 더 돋보인다.


그래서 단순한 구경보다는 오히려, 생태학습이나 연구에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산책을 하듯이 천천히 곳곳을 돌아보고 있는 중도에 한 직원이 찾아와서,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자고 한다.


어느 새 한 나절이 다 지나가고 만 것이다.


식물원의 한켠에는 느릅나무를 뜻하는 ‘엘름’이란 이름의 아담한 식당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데크에 앉아서 내어온 시원한 한방주스를 한 컵 들이키며 땀을 식히는 사이, 식탁이 차려졌다.


식물원 내에서 직접 가꾸었다는 유기농 채소를 주재료로 하여 정갈하게 차려진 야채비빔밥은 그야말로 훌륭한 웰빙음식이었고, 담백한 맛 또한 각별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밖으로 나오니, 이 번에는 식물의 즙을 이용한 손수건을 직접 만들어 보라고 했다.


하얀 천 위에 나뭇잎을 배열한 후, 그 위에 다시 두꺼운 투명비닐을 깔고 숟가락으로 문지르니 식물의 즙이 배어나와 나뭇잎 무늬가 자연스레 나타났다.

 

그 손수건을 선물삼아 주머니에 넣고 하직인사를 하려는데, 후배가 또 푸짐한 선물꾸러미 하나를 건네주었다.


하직인사를 마치고 차를 타고 나오면서 비록, 주마간산 격이나마 식물원을 한 바퀴 둘러본 소감을 정리해 보니, 지난해 11월에 노무현 대통령이 방문해서, ‘퇴임 후 자연과 벗하며 살 방법을 묻기 위해 찾아왔다.’라고 한 말이 공연한 인사치레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