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로 만난 6 25사변 회상

진영수2007.06.24
조회69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은 내가 어린이로 세상을 배워가던 국민학교 2학년 때 였다.

고향 솔섬은 밀물과 설물로 학교 등교길이 위험하여 외할머니댁이 있는 오천으로 유학길을 결정하여 오천공립국민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이 되었던 해이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학교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휴교되었고 어머님은 지병으로 누워계셨는데 아버님은 어부로 중선배를 타고 바다로 무질을 나가셔 계셨다.

나는 고향으로 보내어졌고 바다에 고기잡이나가신 아버님은 북한군 진입으로 어업조합 문이닫혀 고기잡은 돈은 한푼도 받지 몼하고 귀가하셨는데 어머님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오천에 돌아가자 어머님이 계시던 자리는 텅비어 있었고 아버님은 나를 데리고 학교운동장에 나가 자식을 공부시키러 갔던 목적이 이루지몼함을 허탈해 하셨다.

인민군은 아버님을 찾아와 해안 땅굴을 파러 가라고 협박 하였고

밤에는 학교 운동장에 군중을 모여놓고 지방 유지로살던 사람을 붙들어 앞에 세우고 인민재판을

하였고 3개월밖에 않되는 짧은 점령기간동안에 인민위원회와 여성동맹조직과 소년단을 조직하여 가동 하였다.

나의 고향 솔섬 사람들중 중선배로 어로에 나갔던 사람들은 고기잡이하여 법성포에 들렸다가 어부가 사슬에 매에 죽창에 참사되어 수복후 유가족이 찾아가니 산기슭 웅덩이에 쌓여진 시신을 찾아 애통하며 떼과부가 발생 하였으나 ..현재에도 진상조사 말이 나오는것을 들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