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말은 아마도 평등이라는 말을 제외하곤 현대사회에서 가장 많이 말해지는 단어이며, 가장 중요한 단어 중의 하나일 것이다. 자유경쟁이라는 말은 너무도 자주 이야기되며 시민의 권리를 말할 때도 우리는 자유를 말한다.
자유와 같은 단어는 단순히 하나의 단어가 아니다. 자유와 평등은 현대 자본주의 민주국가를 이루는 사상의 기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단어들을 너무도 많이 듣게 된다. 우리는 평등하다 라던지,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다는 명제는 논쟁에서 가장 든든히 믿을 수 있는 논거가 된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더 이상 사고를 진전시킬 수 없는, 진전시켜서도 안 되는 막다른 길이다. 거의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무게가 그 명제에 얹혀 있으므로 그것은 건드리기 어려운 성역이다. 그런가?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는가?
현실에서의 자유
그러나 많은 과학적 이론이 그러하듯 자유라는 개념은 현실에 대한 근삿값에 불과하다. 즉 진정한 의미의 자유란 사회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성립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가정은 많은 경우 참에 가까울 수 있다. 예를 들어 거대한 호수가 있고 거대한 숲이 있다고 하자. 몇몇 사람들은 자유롭게 물을 길어오고 나무를 베어다 쓸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내가 물을 푸는 행위나 나무를 베는 행위가 남에게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조그만 방에 열 사람이 들어가 있는데 의자는 하나밖에 없다고 하자. 집주인이 우리 집에는 자유롭게 의자에 앉을 자유가 있다고 한다면 이는 틀린 말이 된다. 누군가 하나만 의자에 앉으면 다른 사람들은 내내 서있어야 한다. 다리가 아픈 사람이 앉아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말하자 앉아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이 집에서는 자유롭게 의자에 앉을 자유가 있습니다.' 이 경우 자유라는 명제는 오히려 더 다수의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데 쓰이게 되고 만다.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갑갑한 세상을 만들고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든다. 세상이 좁고 자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
한국에서 자유란 무엇일까?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는 기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기자단을 만들고 간사를 뽑아서 군소 매체의 기자들에게 굴욕을 주는 행위가 언론의 자유인가? 기자들은 서로 동업자 의식으로 언론매체들의 존엄함을 살리는데 열심인 것이 언론의 자유인가?
기업활동의 자유란 뭔가? 에버랜드 주식을 싸게 빼돌려서 다수의 주주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가 일어나는 나라, 그 돈을 굴리고 굴리면 몇 년이 안돼서 자산이 수 조에 이르게 되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자유를 말하는 건 뭔가? 시중의 유명 회사들 사장들이 얼마나 많이 서로 친인척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나라는 자유시장을 주장하는가?
경제나 언론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자유라는 개념이 단순하게 성립하기에는 애초에 너무나 작은 나라다.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한두 다리 건너면 서로 다 아는 사람이 되고 기존의 업자들이 친분을 만들어 서로 뒤봐주기 시작하면 새로운 사람들은 그 분야에 진출하는 게 금방 불가능해지는 나라다.
대학교에서는 아직도 많은 대학원생이 나에게 찍히면 넌 갈 곳이 없다며 교수들에게 협박당하고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는 상사가 부하직원을 협박한다. 나에게 찍히고 이 바닥에 소문나면 갈 곳 없기는 마찬가지다. 초중고교 선생님들도 사학재단에 굽실거리지 않을 수 없다. 공무원 사회도 마찬가지고 정치판도 노동운동하는 곳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이렇게 좁으니까 평등도 흔들린다. 국회의원이나 재벌들이 죄를 저지르면 그 얼마나 일사천리로 자애로운 원칙에 따라 일이 진행되는가? 이 나라에 공헌한 것이 많고 사회적 파장이 크다는 이유가 항상 거론된다. 진실을 말하자면 한두 다리 건너면 아들이 아버지에게 법을 공평하게 집행하기 어려운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지니 그럴 것이다. 반면에 가진 것 없고 빽 없는 사람에게 법이란 얼마나 융통성이 없는가? 얼마나 자주 가진자들의 위엄은 알아서 존중되고 없는 자들의 굴욕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가?
이 나라에 평등한 자유가 있는가? 숨막혀 죽도록 자유는 억압되고 어떤 사람들의 자유만이 찬양되고 존중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나마 숨 쉴 수 있는 이유
그나마 이 땅이 숨 쉴만한 이유는 인터넷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란 곳은 미국이나 일본이나 유럽보다 훨씬 세상이 좁아서 어떻게 하든 독과점이 판치기 쉬운 곳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나오고 나서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독과점은 소비자의 이익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흘러나온 정보들은 다수의 소비자에게 반독과점적인 영향력을 만들어 낼 것을 촉구했다. 독과점은 두 가지 때문에 생긴다. 하나는 판이 너무 작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세상이 너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법률 서비스를 독점하기 위해 일부러 법률가를 안 만들어 낸다고 하자. 세상이 불투명하면 사람들은 불편해 하면서도 왜 그런 줄 모른다. 세상에 인터넷이 깔리고 나자 상황은 바뀌었다. 이제 국민적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누가 이런 나쁜 상황을 유지시키는가. 이게 누구에게 좋은 일인가. 독과점은 이런 식으로 약화되고 한국사회는 이런 식으로 조금은 숨 쉴 수 있는 곳으로 변해온 것이다.
한국 사회는 투명해 져야 한다. 외국에서보다 더 투명해질 필요가 있다. 나라가 작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죽겠다고 하면서 나라에서 돈 받아다가 그걸로 임원들이 잘 먹고 잘사는데 쓰고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들은 나라의 교육에 쓰겠다며 세금을 왕창 받아다가 자기 배를 불리는데 쓰고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들은 국민에게 그들의 주권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고 당을 만들고 나서는 자기 세력 키우기에만 골몰하고 당의 문을 걸어잠그는데만 골몰하지 않았던가?
이 땅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이유는 그나마 인터넷이 있어서다. 우리는 인터넷에 무한한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
공격받는 인터넷
당연하게도 이 땅에서 돈 가진 자들은 인터넷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투명성이 증대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불투명성을 지키고자 하는 것은 간단한 이유다. 그게 돈이 되고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불투명성은 임의로 할 수 있는 일을 늘려준다. 세상이 모르는데 이웃집 아들 청탁받아 취직시켜준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세상이 모르는데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 몇 명이 모여 손뼉치고 무슨 회의를 통과했다고 하는 날치기 수법을 쓴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세상이 모르는데 탈세를 하면 어쩔 것인가? 보험료 조금만 내면 어쩔 것인가? 나중에 선거에 나가도 당선되는데 문제가 없다. 세상이 모르면 몇 사람만 모여서 입맞추면 못하는 게 없다. 그게 우리나라다.
당신이 형사라면 살인사건이 났을 때 그 피해자의 어머니의 진술만 듣고 사건을 판단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나라 언론들만을 믿고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가?
사학재단과 우리나라 조중동은 서로 관련없는 단체들인가? 사학재단이 관련되어 있는데 신문에 보이는 교수들의 발언은 정말로 중립적인가?
삼성에서 광고로 일 년에 천문학적인 돈을 뿌리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언론이 삼성에 대해 편파적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가? 종이신문은 정보를 파는 정보지라기보다는 광고전단에 더 가깝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들이 보기 싫다고 하는데도 억지로 밀어넣고 있는 거 아닌가?
우리나라 정치계 특히 한나라당의 면면을 보면 조선일보와 친인척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떻게 생각하면 조선일보의 말은 선거에 중립적이고 네티즌의 말은 편파적이 되나. 어떻게 생각하면 조선일보는 구속하지 않고 네티즌은 구속의 대상이 되나.
문화예술계는 돈과 인맥에서 자유로운가? 법조계는 어떤가. 다들 자유롭게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가? 정말 당신들은 자유로운가? 이 나라에서 자유로운 건 누구인가.
인터넷이 죽으면 우리나라는 죽는다. 우리나라는 꼭 인터넷의 수준만큼만 성장할 수 있다. 설사 하늘에서 황금 비가 쏟아지고 삼성이 인텔과 마이크로 소프트를 합한 것보다 더 커지고 현대자동차가 세계를 제패한다고 해도 인터넷이 죽으면 우리나라는 죽는다. 독과점이 반드시 만들어지고 부는 어디론가 전부 다 새나가 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십 년간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한 거 그거 인터넷 때문이다. 왜 부패가 줄고 세상이 보다 효율적이 되었는가. 인터넷이 정보를 주고 투명성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 땀흘려 일하는 농부들은 자신들만 열심히 일해서 풍년이 든 줄 알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비가 적당히 내리고 기온이 알맞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영광의 핵심은 인터넷에 있었다. 인터넷이 한국사회를 선진화시켜온 것이다.
맺는 말
가장 시장경제에서 동떨어져 있는 재벌들이 시장경제를 찬양하는 발언을 하면 황당하다. 가장 험악한 소리만 내뱉는 자들이 정부를 두들겨 패고 국회를 마비시킨 자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말하고 행동의 적법성을 말하며 심지어는 탄압받고 있다는 소리까지 한다.
한나라당의 정치가들이 일찍이 김대중 정부를 가리켜 역사상 가장 부패한 정부라고 말하고 노무현 정부가 정치 공작을 하고 대통령이 평등을 지키지 않는다고 흥분한다. 이런 황당한 현실은 기자들이나 지식인들의 심장에 아무 부담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노무현 정부는 소수의 지지자들을 제외하곤 버림받아 버렸다. 가진자들이 이토록 파렴치할 수 있는 것은 언로를 그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오로지 인터넷만이 완전히 장악되지 못했다.
네티즌이 말할 권리를 빼앗고 볼 권리를 빼앗고 자유를 논하지 말라. 장막 뒤의 자유는 반드시 부패한다. 돈이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으로 보인다. 하긴 그게 경제동물인 법인의 본질이기도 하다. 형식적으로 자기들에게 월급받는 언론들만 내버려 두어 언론의 자유를 논하고 국민을 전부 침묵하게 하지 말라.
기자들도 그렇다. 저들의 시도가 성공하여 정치적 개혁은 불가능해지고 국민이 패배의식에 젖어 이제 너희도 필요 없어진다면 당신들은 어찌될 것인가? 사냥 끝난 후의 사냥개에 불과하게 된다. 전두환 때나 박정희 때 기자들이 살기 좋았다면 왜 선배기자들이 저항했겠는가? 정말 인터넷의 굴욕은 인터넷의 굴욕으로 끝날 것인가? 이게 별일이 아닌가?
자유라 모두가 자유롭고 싶을 것이다. 이 땅에서 자유가 존재할 수 있는 오직 한가지 길은 투명성을 극대화하는 것뿐이다. 자유롭게 행동하라 단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식들이 있다면 집에 가서 그들의 눈과 얼굴을 보며 생각해 보라. 우리 아이들은 어떤 세상에 살아야 하나. 인터넷에 글 올리면 경찰에 가서 조서 쓰고 전 한나라당에 대해서 이리저리 생각한다고 진술해야 하는 사회? 세상은 다시 독과점으로 돌아가 빽 업고 돈 없으면 경쟁에 참여할 기회도 없는 그런 사회? 그들을 자유로운 세상에 살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가. 이 나라의 유일한 숨통을 막고 나면 세상은 알게 될 것이다. 죽는 건 네티즌만이 아니다. 나라 전체다. 대한민국의 혼을 자유롭게 하라.
이나라 자유의 미래
머리말
자유라는 말은 아마도 평등이라는 말을 제외하곤 현대사회에서 가장 많이 말해지는 단어이며, 가장 중요한 단어 중의 하나일 것이다. 자유경쟁이라는 말은 너무도 자주 이야기되며 시민의 권리를 말할 때도 우리는 자유를 말한다.
자유와 같은 단어는 단순히 하나의 단어가 아니다. 자유와 평등은 현대 자본주의 민주국가를 이루는 사상의 기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단어들을 너무도 많이 듣게 된다. 우리는 평등하다 라던지,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다는 명제는 논쟁에서 가장 든든히 믿을 수 있는 논거가 된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더 이상 사고를 진전시킬 수 없는, 진전시켜서도 안 되는 막다른 길이다. 거의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무게가 그 명제에 얹혀 있으므로 그것은 건드리기 어려운 성역이다. 그런가?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는가?
현실에서의 자유
그러나 많은 과학적 이론이 그러하듯 자유라는 개념은 현실에 대한 근삿값에 불과하다. 즉 진정한 의미의 자유란 사회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성립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가정은 많은 경우 참에 가까울 수 있다. 예를 들어 거대한 호수가 있고 거대한 숲이 있다고 하자. 몇몇 사람들은 자유롭게 물을 길어오고 나무를 베어다 쓸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내가 물을 푸는 행위나 나무를 베는 행위가 남에게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조그만 방에 열 사람이 들어가 있는데 의자는 하나밖에 없다고 하자. 집주인이 우리 집에는 자유롭게 의자에 앉을 자유가 있다고 한다면 이는 틀린 말이 된다. 누군가 하나만 의자에 앉으면 다른 사람들은 내내 서있어야 한다. 다리가 아픈 사람이 앉아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말하자 앉아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이 집에서는 자유롭게 의자에 앉을 자유가 있습니다.' 이 경우 자유라는 명제는 오히려 더 다수의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데 쓰이게 되고 만다.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갑갑한 세상을 만들고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든다. 세상이 좁고 자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
한국에서 자유란 무엇일까?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는 기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기자단을 만들고 간사를 뽑아서 군소 매체의 기자들에게 굴욕을 주는 행위가 언론의 자유인가? 기자들은 서로 동업자 의식으로 언론매체들의 존엄함을 살리는데 열심인 것이 언론의 자유인가?
기업활동의 자유란 뭔가? 에버랜드 주식을 싸게 빼돌려서 다수의 주주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가 일어나는 나라, 그 돈을 굴리고 굴리면 몇 년이 안돼서 자산이 수 조에 이르게 되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자유를 말하는 건 뭔가? 시중의 유명 회사들 사장들이 얼마나 많이 서로 친인척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나라는 자유시장을 주장하는가?
경제나 언론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자유라는 개념이 단순하게 성립하기에는 애초에 너무나 작은 나라다.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한두 다리 건너면 서로 다 아는 사람이 되고 기존의 업자들이 친분을 만들어 서로 뒤봐주기 시작하면 새로운 사람들은 그 분야에 진출하는 게 금방 불가능해지는 나라다.
대학교에서는 아직도 많은 대학원생이 나에게 찍히면 넌 갈 곳이 없다며 교수들에게 협박당하고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는 상사가 부하직원을 협박한다. 나에게 찍히고 이 바닥에 소문나면 갈 곳 없기는 마찬가지다. 초중고교 선생님들도 사학재단에 굽실거리지 않을 수 없다. 공무원 사회도 마찬가지고 정치판도 노동운동하는 곳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이렇게 좁으니까 평등도 흔들린다. 국회의원이나 재벌들이 죄를 저지르면 그 얼마나 일사천리로 자애로운 원칙에 따라 일이 진행되는가? 이 나라에 공헌한 것이 많고 사회적 파장이 크다는 이유가 항상 거론된다. 진실을 말하자면 한두 다리 건너면 아들이 아버지에게 법을 공평하게 집행하기 어려운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지니 그럴 것이다. 반면에 가진 것 없고 빽 없는 사람에게 법이란 얼마나 융통성이 없는가? 얼마나 자주 가진자들의 위엄은 알아서 존중되고 없는 자들의 굴욕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가?
이 나라에 평등한 자유가 있는가? 숨막혀 죽도록 자유는 억압되고 어떤 사람들의 자유만이 찬양되고 존중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나마 숨 쉴 수 있는 이유
그나마 이 땅이 숨 쉴만한 이유는 인터넷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란 곳은 미국이나 일본이나 유럽보다 훨씬 세상이 좁아서 어떻게 하든 독과점이 판치기 쉬운 곳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나오고 나서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독과점은 소비자의 이익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흘러나온 정보들은 다수의 소비자에게 반독과점적인 영향력을 만들어 낼 것을 촉구했다. 독과점은 두 가지 때문에 생긴다. 하나는 판이 너무 작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세상이 너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법률 서비스를 독점하기 위해 일부러 법률가를 안 만들어 낸다고 하자. 세상이 불투명하면 사람들은 불편해 하면서도 왜 그런 줄 모른다. 세상에 인터넷이 깔리고 나자 상황은 바뀌었다. 이제 국민적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누가 이런 나쁜 상황을 유지시키는가. 이게 누구에게 좋은 일인가. 독과점은 이런 식으로 약화되고 한국사회는 이런 식으로 조금은 숨 쉴 수 있는 곳으로 변해온 것이다.
한국 사회는 투명해 져야 한다. 외국에서보다 더 투명해질 필요가 있다. 나라가 작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죽겠다고 하면서 나라에서 돈 받아다가 그걸로 임원들이 잘 먹고 잘사는데 쓰고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들은 나라의 교육에 쓰겠다며 세금을 왕창 받아다가 자기 배를 불리는데 쓰고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들은 국민에게 그들의 주권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고 당을 만들고 나서는 자기 세력 키우기에만 골몰하고 당의 문을 걸어잠그는데만 골몰하지 않았던가?
이 땅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이유는 그나마 인터넷이 있어서다. 우리는 인터넷에 무한한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
공격받는 인터넷
당연하게도 이 땅에서 돈 가진 자들은 인터넷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투명성이 증대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불투명성을 지키고자 하는 것은 간단한 이유다. 그게 돈이 되고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불투명성은 임의로 할 수 있는 일을 늘려준다. 세상이 모르는데 이웃집 아들 청탁받아 취직시켜준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세상이 모르는데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 몇 명이 모여 손뼉치고 무슨 회의를 통과했다고 하는 날치기 수법을 쓴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세상이 모르는데 탈세를 하면 어쩔 것인가? 보험료 조금만 내면 어쩔 것인가? 나중에 선거에 나가도 당선되는데 문제가 없다. 세상이 모르면 몇 사람만 모여서 입맞추면 못하는 게 없다. 그게 우리나라다.
당신이 형사라면 살인사건이 났을 때 그 피해자의 어머니의 진술만 듣고 사건을 판단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나라 언론들만을 믿고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가?
사학재단과 우리나라 조중동은 서로 관련없는 단체들인가? 사학재단이 관련되어 있는데 신문에 보이는 교수들의 발언은 정말로 중립적인가?
삼성에서 광고로 일 년에 천문학적인 돈을 뿌리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언론이 삼성에 대해 편파적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가? 종이신문은 정보를 파는 정보지라기보다는 광고전단에 더 가깝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들이 보기 싫다고 하는데도 억지로 밀어넣고 있는 거 아닌가?
우리나라 정치계 특히 한나라당의 면면을 보면 조선일보와 친인척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떻게 생각하면 조선일보의 말은 선거에 중립적이고 네티즌의 말은 편파적이 되나. 어떻게 생각하면 조선일보는 구속하지 않고 네티즌은 구속의 대상이 되나.
문화예술계는 돈과 인맥에서 자유로운가? 법조계는 어떤가. 다들 자유롭게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가? 정말 당신들은 자유로운가? 이 나라에서 자유로운 건 누구인가.
인터넷이 죽으면 우리나라는 죽는다. 우리나라는 꼭 인터넷의 수준만큼만 성장할 수 있다. 설사 하늘에서 황금 비가 쏟아지고 삼성이 인텔과 마이크로 소프트를 합한 것보다 더 커지고 현대자동차가 세계를 제패한다고 해도 인터넷이 죽으면 우리나라는 죽는다. 독과점이 반드시 만들어지고 부는 어디론가 전부 다 새나가 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십 년간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한 거 그거 인터넷 때문이다. 왜 부패가 줄고 세상이 보다 효율적이 되었는가. 인터넷이 정보를 주고 투명성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 땀흘려 일하는 농부들은 자신들만 열심히 일해서 풍년이 든 줄 알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비가 적당히 내리고 기온이 알맞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영광의 핵심은 인터넷에 있었다. 인터넷이 한국사회를 선진화시켜온 것이다.
맺는 말
가장 시장경제에서 동떨어져 있는 재벌들이 시장경제를 찬양하는 발언을 하면 황당하다. 가장 험악한 소리만 내뱉는 자들이 정부를 두들겨 패고 국회를 마비시킨 자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말하고 행동의 적법성을 말하며 심지어는 탄압받고 있다는 소리까지 한다.
한나라당의 정치가들이 일찍이 김대중 정부를 가리켜 역사상 가장 부패한 정부라고 말하고 노무현 정부가 정치 공작을 하고 대통령이 평등을 지키지 않는다고 흥분한다. 이런 황당한 현실은 기자들이나 지식인들의 심장에 아무 부담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노무현 정부는 소수의 지지자들을 제외하곤 버림받아 버렸다. 가진자들이 이토록 파렴치할 수 있는 것은 언로를 그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오로지 인터넷만이 완전히 장악되지 못했다.
네티즌이 말할 권리를 빼앗고 볼 권리를 빼앗고 자유를 논하지 말라. 장막 뒤의 자유는 반드시 부패한다. 돈이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으로 보인다. 하긴 그게 경제동물인 법인의 본질이기도 하다. 형식적으로 자기들에게 월급받는 언론들만 내버려 두어 언론의 자유를 논하고 국민을 전부 침묵하게 하지 말라.
기자들도 그렇다. 저들의 시도가 성공하여 정치적 개혁은 불가능해지고 국민이 패배의식에 젖어 이제 너희도 필요 없어진다면 당신들은 어찌될 것인가? 사냥 끝난 후의 사냥개에 불과하게 된다. 전두환 때나 박정희 때 기자들이 살기 좋았다면 왜 선배기자들이 저항했겠는가? 정말 인터넷의 굴욕은 인터넷의 굴욕으로 끝날 것인가? 이게 별일이 아닌가?
자유라 모두가 자유롭고 싶을 것이다. 이 땅에서 자유가 존재할 수 있는 오직 한가지 길은 투명성을 극대화하는 것뿐이다. 자유롭게 행동하라 단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식들이 있다면 집에 가서 그들의 눈과 얼굴을 보며 생각해 보라. 우리 아이들은 어떤 세상에 살아야 하나. 인터넷에 글 올리면 경찰에 가서 조서 쓰고 전 한나라당에 대해서 이리저리 생각한다고 진술해야 하는 사회? 세상은 다시 독과점으로 돌아가 빽 업고 돈 없으면 경쟁에 참여할 기회도 없는 그런 사회? 그들을 자유로운 세상에 살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가. 이 나라의 유일한 숨통을 막고 나면 세상은 알게 될 것이다. 죽는 건 네티즌만이 아니다. 나라 전체다. 대한민국의 혼을 자유롭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