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판다씨 (제가 쓴 소설입니다 ^^;)

하재성200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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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날에 인터뷰라니요... 딱딱한건 질색이랍니다."

 화려한 파란색 빅하와이 셔츠에 펑퍼짐한 노란색 반바지를 입고 커다란 부채를 연거푸 펄럭이며 판다씨가 웃고 있다. 이런날에 인터뷰가 질색이 아니라, 주체못할 판다씨의 몸뚱이가 질색이라구요.

 "아하하.. 조금 봐주세요. 저도 이런 부탁을 드리게 되서 정말 죄송하다구요.. 안으로 들어가시는게.."

 이런 무더위에 굳이 밖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판다씨의 괴이함이 싫다.

 "인위적인 냉랭함을 견디는 것 만큼 끔찍한 일은 없답니다. 피나양도 여름에는 더위따위 가볍게 물리칩시다. 하하하!!"

 결국 끈적거리며 움직이는 동그랗고 피둥피둥한 판다씨의 걸음걸이를 따라 파라솔이 펼쳐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아하하.. 파라솔이 이렇게 고마울줄은 몰랐네요. 판다씨 바로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최대한 정중하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마음같아서는 파라솔을 접어서 마구 찌르고 싶지만, 어디까지나 공적인 나의 일을 위해서 참았다.

 "하하하!! 피나양같은 미인과의 인터뷰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기름지다. 느끼하다. 뚱뚱하다. 어째서 저런 인간의 글이 인기가 있는거지. 분명 뇌에도 기름이 그득할게 분명한데... 어째서냐.

 "아..네.. 감사해요. 저도 이렇게 최고의 소설가와 인터뷰를 하게 되서 영광이네요. 먼저, 판다씨의 소설의 매력중에 하나인 시간의 흐름에 대해 묻고 싶은데요. 언제는 시간이 멈춘듯하고, 언제는 긴박감 넘치는 시간전개를 기막히게 사용하시는데요. 노하우... 같은 것이 있는건가요?"

 질문이 끝나자, 흐리멍텅하던 눈이 조금은 진지해졌다. 티비 인터뷰가 아니라구, 판다씨! 어설픈 연기는 그만두라구.

 "피나양. 사랑하는 사람과의 달콤한 하루는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고, 끔찍한 사람과의 지겨운 시간은 몇분이 몇일같지. 내말이 맞나?"

 그래, 그게 바로 지금 내 심정이다. 이 끔찍한 판다씨 같으니라고.

 "아.. 정말~ 그래요. 지금 인터뷰도 너무 빨리 지나갈까봐 걱정이에요. 아하.. 그러니까 빨리 대답해주세요~"

 할말만 하라구.

 "하하하! 피나양이 나를 사랑하고 있었던건가? 하하! 지금은 공적인 인터뷰자리이니, 그 이야기는 인터뷰 끝나고 하지. 시간 얘기였지. 그러니까 나는 단지 행복한 시간은 그 행복의 크기만큼 길게 늘리고, 불행한 시간은 그 불행의 크기만큼 짧게 줄였을뿐이야. 내가 한 것은 단지 이야기의 길이를 조절했을뿐, 아무것도 한게 없네. 하하하!"

 무슨말을 하고 있는거야. 질문에 집중하라구!

 "아...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네요. 그러니까 노하우라는 것이 쉽게 어떤건지.."

 "피나양.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약간의 생각이라는 수고가 귀찮은건가?.. 인터뷰하기 전에 내 책 몇권 정도는 읽고 오는 편이 좋지 않겠어?.. 좋아 좋아.. 피나양은 미인이니까 특별히 노하우라는 과일을 따서 먹기 좋게 깍은 후, 접시에 담아 포크를 꽂아서 주도록 하지. 나는 지금 기분이 아주 좋아. 아주 행복하지. 그래서 이시간을 길게 늘릴꺼야. 단지 지금을 길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잘 담아 두었다가 언제고 불행의 그림자가 가까이 왔을때 꺼내볼꺼야. 그러려면 지금의 순간을 잘게 쪼개서 기억의 한쪽에 뭉쳐놔야겠지. 지금이 몇시지? 오후.. 3시 10분이군. 나는 피나양이 입고 있는 하얀색 티셔츠의 모양과 거기 새겨진 프린트를 자세히 기억할꺼야. 그리곤 피나양의 목소리와 말투를 기억할거야. 다음으로는 지금 앉아 있는 의자의 감촉과 바닥의 감촉, 테이블의 감촉을 기억할꺼야. 그리고 지금의 냄새를 기억할꺼야. 그런후 태양의 뜨거움의 정도를 기억하고 천천히 주위 풍경의 세세한 부분을 쪼개서 기억할거야. 여기까지. 나는 반복해서 같은 순서로 기억을 하면서 쪼개고 쪼개서 그 모든것은 하나의 세포보다 작게해서 한쪽 구석에 놓아둘거야. 그런후 필요할때 꺼내보는거지. 한마디로 나는 이시간과 공간자체를 통째로 복사해둔거야. 필요할때 언제든 꺼내보고 변형할거야. 지금의 행복한 순간은 이제 내 소유가 된거야. 답변이 조금 된건가?"

 갑자기 그렇게.. 어렵다구 판다씨.

 "아...네... 그러면 다음으로.."

 

 

 역시.. 괴짜였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그정도일줄이야. 판다씨의 소설은 요즘 무척 인기가 좋다. 나도 진열된 책들은 몇번 봤지만, 겉표지를 넘기고 나오는 푸짐한 그의 모습에 바로 닫아버렸었다. 나는 뚱뚱한 사람이 싫다. 정말 싫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나역시 그런류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뚱뚱한게 진심으로 싫었기 때문에 죽을힘을 다해 다이어트를 했다. 지금은 성공이다. 여전히 애인이 없긴 하지만.. 그건 내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내 피나는 노력후의 달콤한 열매로 선정할만한 품질좋은 남자가 없었다. 그건 내탓이 아니지 않은가. 열심히 검색중이다. 품질좋은 남자.

 어쩔 수 없이 판다씨의 전화번호를 적어오긴 했지만, 전화를 걸 의향은 눈꼽만치도 없다. 절대 안 걸거다. 공적인 일이 생기기 전에는. 절대로, 절대로!

 이럴줄 알았으면 티비 리포터에 다시 도전해 보는건데.. 그시험, 뚱뚱해서 떨어졌다. 성적으로는 내가 1등이었는데, 어째서인지 5명의 리포터를 뽑는 그 시험에서 나는 37등을 했다. 그 후 나는 숫자 4보다 더, 13보다 더, 심지어는 666보다 더 37을 싫어하게 되었다. 로또를 사도 37은 절대로 마킹하지 않는다. 그런데 판다씨는 올해 37살인 뚱뚱한 소설가이다. 한마디로 최악이다.

 "뚜르르르르~ 왓! 왓! 왓! 왓 해픈!!"

 핸드폰이 미친듯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더 크게 울리는 것 같다.

 "모시모시..."

 "왓썹! 머해~ 빨리나와! 집앞이야~"

 "그게, 지금은 내..."

 끊켰다. 이건 통화가 아니라 통보라구. 조안은 늘 이런식이다. 자기멋대로.. 그전엔 나보다 예뻣으니까, 끌려다녔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끌려다닌다. 사람이라는게 한번 길들여지면 그것을 바꾸기가 쉽지가 않다. 코끼리가 그런다지. 아기코끼리때 묶여있던 그 사슬때문에,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던 그 사슬때문에, 그깟 약한 사슬이 된 어른 코끼리가 되어서도 그 사슬에 묶여서 산다지.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