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컬처 코드

박상준2007.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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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는 60억 인구가 살고 있고 그들은 저마다의 개성과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보이는 생활 습관은 그들이 속한 국가, 민족, 사회에 따라 구분되어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테두리를 문화라는 하나의 거대한 상위 개념에 담아 놓는다면 문화는 곧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문화를 읽는 것, 즉 저자가 명명한 컬처 코드를 이해하는 것은 미시적인 차원의 개인에서 거시적 차원의 사회, 국가까지 그 행동 패턴을 읽고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라파이유’가 규정지은 컬처코드의 정의는 ‘자신이 속한 문화를 통해 일정한 대상에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의미이다.’


  저자는 그의 전공인 심리학과 심리치료사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삼단계의 실험을 통해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사물과 개념의 의미를 유추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도출된 의미들을 분석하여 ‘컬처코드’를 찾아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주로 미국과 프랑스의 ‘컬처코드’가 담겨있으며 일반인들에게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랑, 섹스, 아름다움, 건강, 가정, 음식, 직업 등의 보편적 가치를 예로 ‘컬처코드’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비만이 ‘도피’를 의미한다는 개별적 코드를 단순히 이해하기보다 조금 더 거시적으로 사회, 국가의 시스템을 분석함으로써 미국 내에 자리 잡은 전체적인 현상과 문화를 바라보는 것이 긍정적인 작업일 것이다. 내가 미국을 그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것은 미국에 대한 나의 관심과 얇지만 그나마 쥐꼬리만 한 지식이 있다는 점, 그리고 이 책에서 미국을 주요 대상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라파이유’의 분석을 보고, 활용하여 나는 보다 사회적인 접근을 통해 미국을 분석하고 싶다.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저자의 말을 돌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찾아낸 미국의 코드는 ‘현대 사회’이다.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분석이기도 하고 미국의 주도 하에 벌어지는 일련의 정치경제 코드이기 때문에 진부한 것일 수도 있지만 ‘현대사회’는 미국인들을 이해하는 모습 코드와 부합한다.


  미국인들은 바쁘다. 그리고 그들은 ‘성공’에 목말라하고 있다. 그들에게 성공은 명예와 함께 금전적인 ‘부’가 주어지는 것이다. ‘부’가 주어지기 위해서 건실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건강’이 요구된다. ‘건강’을 위해서는 적절한 ‘연료’인 음식이 공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부’를 들어내기 위해서는 계급을 드러낼 수 있는 효과적인 ‘사치품’과 ‘쇼핑’이 뒤따라야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성공’에 대한 목마름, ‘부’에 대한 목마름으로 인해, 다시 말해 바쁘게 뛰는 그들에게 ‘가정’은 삶의 활력소이자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스위트 홈’이며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때때로는 스트레스로 인한 과부하가 걸려 ‘비만’을 도피처로 여기는 피해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미국 사회 내의 ‘현대 사회’라는 코드를 읽을 수 있겠는가? 성공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이 존재하는 미국, 이것은 바로 ‘아메리칸 드림’의 원인이 되며 미국의 ‘민주화’를 의미한다. ‘민주화’는 현대사회의 핵심 코드이다. 성공과 활동성을 의미하는 ‘부’와 ‘직업’은 민주화를 바탕으로 한 ‘자유자본주의’ 시대의 핵심 코드이다. ‘자유자본주의’는 곧 ‘현대 사회’이자 ‘엘빈 토플러’의 한국판 저서 제목처럼 ‘부의 미래’인 것이다. 그리고 ‘부’의 창조를 위해서는 개인은 열심히 일해야 하며 이러한 동력이 활동력이 필수 가치이자 활동력을 가능케 하는 연로로써의 ‘음식’이 요구되어진다. 그러나 미국의 현대 사회에서는 연료로써의 음식만이 있기 때문에 ‘패스트푸드’ 문화가 성행한 것이며 그저 많이 먹고 에너지만을 끌어올리면 된다. 한편 성공한 개인은 그들의 성공을 내보일 필요가 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기 때문에 ‘성공과 부’가 절대 천박하지 않으며 절대적인 지지와 관심이 대상이 된다. 따라서 성공을 드러내기 위한 상위 계급의 무리 짓기, 드러내기 활동에 무엇보다 적합한 것은 일반 시민들이 따라할 수 없는 고가의 사치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현대 사회’는 많은 ‘스트레스’와 ‘가정의 파괴’를 낳았다. 업무와 성공에 대한 노이로제,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의 심화는 ‘스트레스’를 유발시켜 과식과 비만, 스트레스성 질병을 가져왔다. 또한 현대 사회는 가정의 의미를 축소시키고 최소한의 영역만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가족의 유대를 약화시키며 핵가족화, 가족의 이동성 증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가정’은 미국인에게 애틋한 무엇인가가 되버렸다.


  이처럼 미국의 ‘컬처코드’는 ‘현대 사회’이다. 저자의 말처럼 미국의 코드가 ‘꿈’이고 ‘해방자’이며 ‘풍요로움’일 수도 있겠지만, 문화가 서서히 진보한다고 밝힌 저자의 의견대로 미국의 ‘컬처코드’는 점진적으로 발전해가는 - 그 방향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 현대 사회인 것이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계는 닮아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미국과 너무나도 닮아버린, 그리고 닮아가고 있는 우리나라를 보았다. ‘컬처코드’, 그 10년 뒤의 행방이 궁금하다. 그리고 당장에 우리나라의 ‘컬처코드’를 알아보고 싶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빨리 진중권의 ‘호모 코레아니쿠스’, 강준만의 ‘인간 사색’을 읽어보고 싶다.

 

2007.2.23 열한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