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렸다.(여기서 말하는 그림은 현실의 재현으로서의 그리는 행위의 결과물을 뜻한다.)
심지어 수천년 전 동굴 벽화에서도. 우리는 어쩌면 사진의 원형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것이 주술적이든 아니든 간에. 그들은 무언가를 빈 동굴에 남기고자 했다. 현실을 반영한 무언가를.
그때 사람들도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어대는 그들처럼
그 순간을 남기고 소유하고 싶어했던 거다.
물론 포토샵을 거치지 않은 사진이 왜곡된 장면을 담는 것이든 있는그대로를 찍든 간에 사물자체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에 비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그리는 자의 사고와 손끝의 감각에 의해 재해석되어 남는다.
어찌되었던 사진을 찍고자 하는 욕망은 이천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반없이 존재했을것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건 사람들의 욕망의 발현이었을 것이다.
#2. 재현으로서의 사진
사람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즉 시간을 인식한다.
동물들과 대화하지 않아서 알 순 없지만
인간이 10년 뒤 경제 전망을 걱정하듯이
10년 뒤 생태계 전망을 내다보는 사람을 제외한 동물은
아마 없으리라 생각한다.
인간은 지금 현재 그 순간의 찰나가 곧 지나갈 것이란 것을 안다.
오래전 먼나라 어느 왕이 자신의 반지에 "이것또한 지나가리라" 라고 새긴것에 만족하더라는, 류시화 시집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현재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이 유한한 상태라는 것을 알기에 더 잡고 싶은 욕망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것을 붙잡아 두려고 재현의 느낌을 가지는 필름, 사진, 파일, 등등을 만들어낸것은 아닐까.
#3. 사진을 꺼내보는 사람의 심리
싸이 사진첩을 몇페이지고 넘겨본다거나
자기 컴터 오래된 파일들을 버리지 않고 뒀다가 두고 두고 꺼내보는 것. 그리고 꺼내지 않더라도 결코 버리지 않는 것.
무슨 의미인걸까.
추억이 묻어있다.
시간이, 함께한 사람과의 기억이, 그때의 햇살과 바람과 그 사람의 냄새와 촉감과 심지어 자동차 소리, 거리에서 들려오던 음악소리.. 그 모든 것들이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사진 한장에 묻어있다.
그래서 그 추억들을 기억하려고 사라지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사진을 들여다 보는걸까?
아니면 그 그리움이 앞서서 들여다 보는걸까?
사진을 들여다 보는 행위는 때로 잔잔한 미소가 떠오르게 하고 가끔은 사진 속 현재의 인물에게 익숙한 미래가 부재한다는 사실에 슬퍼지기도 한다.
또 때로는 사진 속 인물이 보고싶어진다. 그것은 사실 그 존재가 보고싶고 그 존재의 현재 실존하는 자체가 그립다는 것보다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그 존재가 아직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는 것, 그리고 그리워하는 것은 사진속 현재의 그 존재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사진을 넘기게 된다.
S씨는 몇백기가가 넘는 사진을 지우지 않고 몇개의 하드상태로 보관한다고 했다. 그것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으나 한편으로는 그것은 어쩌면 말그대로 기억보조장치가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시간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심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영원히라는 단어를 쓴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무섭고도 굉장한 말인가.. 영원이라.. 끝이 없다. 모든 것이 유한한 존재들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영원이란 개념을 생각하는 건 인간뿐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는 동물들에게는 모든 순간이 영원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죽을 때가 되면 죽을자리를 찾아간다는 여우나 개나 고양이, 연어 얘기만 들어도.. 그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결국 인간에 대한 오만을 가지고 있는지도.
어쨋든 사진은 팔자모양의 무한대 기호를 생각해낸 인간이 유한한 시간과 기억을 붙들고 싶어하는 욕망의 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4.감성적 사물로서의 사진
그리고 추억이라는 단어와 함께 현실의 반영을 나타내는 객관적 사물로서의 사진은 극히 감상적인 어휘로 변모하는 것을 본다.
인간은 결국 이성적이려고 하는 감성적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없이 무디어 보이는 사람들은 사실 파고 들어가보면 깊은 감성적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사진은 어쩌면 그처럼 이성적이고 싶어하는 감성적 사물일지도.
사진에 대한 명상
#1. 왜 사진을 찍는가.
사람들은 왜 사진을 찍는걸까.
폰카는 왜 뜨게 된것일까.
사람들은 예쁜 것 신기한 것 혼자보기 아까운 장면 등을
사진으로 찍는다. 남긴다.
때로 사진은 고발의 용도로도 쓰이고 증거로도 사용된다.
그래 사진이 발달하기 전에 인물화 풍경화 몽타주..
그림을 그렸다.(여기서 말하는 그림은 현실의 재현으로서의 그리는 행위의 결과물을 뜻한다.)
심지어 수천년 전 동굴 벽화에서도. 우리는 어쩌면 사진의 원형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것이 주술적이든 아니든 간에. 그들은 무언가를 빈 동굴에 남기고자 했다. 현실을 반영한 무언가를.
그때 사람들도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어대는 그들처럼
그 순간을 남기고 소유하고 싶어했던 거다.
물론 포토샵을 거치지 않은 사진이 왜곡된 장면을 담는 것이든 있는그대로를 찍든 간에 사물자체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에 비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그리는 자의 사고와 손끝의 감각에 의해 재해석되어 남는다.
어찌되었던 사진을 찍고자 하는 욕망은 이천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반없이 존재했을것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건 사람들의 욕망의 발현이었을 것이다.
#2. 재현으로서의 사진
사람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즉 시간을 인식한다.
동물들과 대화하지 않아서 알 순 없지만
인간이 10년 뒤 경제 전망을 걱정하듯이
10년 뒤 생태계 전망을 내다보는 사람을 제외한 동물은
아마 없으리라 생각한다.
인간은 지금 현재 그 순간의 찰나가 곧 지나갈 것이란 것을 안다.
오래전 먼나라 어느 왕이 자신의 반지에 "이것또한 지나가리라" 라고 새긴것에 만족하더라는, 류시화 시집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현재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이 유한한 상태라는 것을 알기에 더 잡고 싶은 욕망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것을 붙잡아 두려고 재현의 느낌을 가지는 필름, 사진, 파일, 등등을 만들어낸것은 아닐까.
#3. 사진을 꺼내보는 사람의 심리
싸이 사진첩을 몇페이지고 넘겨본다거나
자기 컴터 오래된 파일들을 버리지 않고 뒀다가 두고 두고 꺼내보는 것. 그리고 꺼내지 않더라도 결코 버리지 않는 것.
무슨 의미인걸까.
추억이 묻어있다.
시간이, 함께한 사람과의 기억이, 그때의 햇살과 바람과 그 사람의 냄새와 촉감과 심지어 자동차 소리, 거리에서 들려오던 음악소리.. 그 모든 것들이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사진 한장에 묻어있다.
그래서 그 추억들을 기억하려고 사라지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사진을 들여다 보는걸까?
아니면 그 그리움이 앞서서 들여다 보는걸까?
사진을 들여다 보는 행위는 때로 잔잔한 미소가 떠오르게 하고 가끔은 사진 속 현재의 인물에게 익숙한 미래가 부재한다는 사실에 슬퍼지기도 한다.
또 때로는 사진 속 인물이 보고싶어진다. 그것은 사실 그 존재가 보고싶고 그 존재의 현재 실존하는 자체가 그립다는 것보다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그 존재가 아직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는 것, 그리고 그리워하는 것은 사진속 현재의 그 존재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사진을 넘기게 된다.
S씨는 몇백기가가 넘는 사진을 지우지 않고 몇개의 하드상태로 보관한다고 했다. 그것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으나 한편으로는 그것은 어쩌면 말그대로 기억보조장치가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시간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심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영원히라는 단어를 쓴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무섭고도 굉장한 말인가.. 영원이라.. 끝이 없다. 모든 것이 유한한 존재들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영원이란 개념을 생각하는 건 인간뿐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는 동물들에게는 모든 순간이 영원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죽을 때가 되면 죽을자리를 찾아간다는 여우나 개나 고양이, 연어 얘기만 들어도.. 그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결국 인간에 대한 오만을 가지고 있는지도.
어쨋든 사진은 팔자모양의 무한대 기호를 생각해낸 인간이 유한한 시간과 기억을 붙들고 싶어하는 욕망의 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4.감성적 사물로서의 사진
그리고 추억이라는 단어와 함께 현실의 반영을 나타내는 객관적 사물로서의 사진은 극히 감상적인 어휘로 변모하는 것을 본다.
인간은 결국 이성적이려고 하는 감성적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없이 무디어 보이는 사람들은 사실 파고 들어가보면 깊은 감성적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사진은 어쩌면 그처럼 이성적이고 싶어하는 감성적 사물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