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부름을 받고 고향에 아내와 모짓기를 하러 갔다. 새벽에 도착하니 온갖 풀내음이 머릿속까지 향긋해 오는게 이루 말할수 없었다. 잠시후 여명이 밝아오자!! 덥기 전에 일을 마치자는 어머님에 성화로~ 한참 시간이 흘렀을까?? 배고픔과 피로 허리통증이 나와 아내를 괴롭혔다. (이것이 내 어머님에게는 늘 일상이리라~) 어머님을 힐끔 보았다 어머님은 연신 이마에 땀을 훔치시며 정말 열심이셨다!! 히유~ 작은 한숨과 아련히 가슴속 깊이 뭔가가 저며옴을 느꼈다. 슬펐다. 매우 슬펐다. 깊게 파인 주름도 슬펐고, 굽은 허리도 슬펐고, 가려린 어깨위로 짓누르는 삶에 연륜도 싫었다. (아버님은 10여년 전 부터 지병에 앓아 누우신지 오래다.) 늘 그렇듯 어머님은 앞으로도 당신에 그런 삶속에서 또 그렇게 살다 가시리라~ 슬프다;;; 해가 중천에 걸릴즈음~ 우리는 약간에 맥주와 물을 마시며 작은 담소를 나누는 도중 문득 아내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나의 장모님~ 많은 굵곡을 가지고. 현재 진행형으로 그 굵곡에서 우리와 또다른 삶을 사시고 계신 장모님..., 아내를 보았다. 아내는 여전이 맑은미소로 어머니와 모내기에 대해 이야기 중이였다. (아내도 아주전에는 내 장모님에 귀여운 딸이였으리라~ ) 많이 사랑하고 이해하며 살아가야지~ 사랑하는 내 아내!! 많이 사랑스러웠다....., 문현듯, 아무래도 오늘내로 끝내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분에 말을 자르고, 어머니에게 아내가 먼저 병원에가(장모님은 한달전에 진천효병원에 입원중) 장모님을 뵙으면 한다고 말씀드렸고, 어머님은 흔케이 허락하시어 아내 먼저 장모님이 계신 병원으로 향했고, 어느정도 일은 마치고, 분주히 인천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중..., 요란한 핸펀소리에 난 아내겠지 언제 오냐고.., 나즈막한 소리를 하며,무심히 핸펀을 들었지만..,아내에 다급한 절규와 울음소리로 어안이 벙하기만 했다. 아내에게 마음을 가라 앉히기를 강요하길 여러번 겨우 그뜻을 알수있을 만치..., 아내의 단, 한소리 "엄마 돌아가셨어"란 말만 남긴채..., 아무리 불러도 저쪽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아니했다. 차에 쟁여 넣던 짐을 아무렀게나..., 병원으로 급히 차를 몰며 별스러운 일까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놓아주질 않았다. 장모여!! 아내여!! 병원에 도착하니, 장모님은 이미 운명을 달리하고 영안실에 드러가기위한 소정에 절차만이 남아있었고, 아내와 처형은 넋이 나간듯 울부짓고 있었다. 난!! 난 무얼 어떡게 해야하나 그저 막막하였고, 그냥 아무말 없이 아내를 꼬옥 안아 주는일 말곤 없었다. 그 힘겨운 죽엄앞에 난 한낱 나약해 보였고...,전에 누구에겐가 들은 한소절이 생각이 났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고...,영생의 세계에서 자식들을 위해 기도 하고 계실 거라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여기저기 친인척과 가까운 친구들이 방문해 주었고, 어느정도는 안정을 취할수 있었다. 장지는 종덕이와 정배가 길을 같이 해주었고, 시간은 그렇게 그냥 흘러갔다. 화장터 붉은 불속으로 향하실때도 장모님은 말씀이 없었고, 그렇게 한 줌에 재가되어 그렇게 돌아왔다. (난 둘째사위로 한일이 없었고, 살아 생전 효도는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제 나이 62세!! 길지 않으신 인생이 당신에 삶에 무게보다도 하찮게 작은 무게로 그렇게 작은 나무상자안에 들어 가셨다. 영동!! 당신 묻히기를 거부 하시는지 가는 길은 꼬불꼬불 험난하고, 멀기만 했다. 가는 도중 장모님영정은 몇번이나, 내손을 뿌리치고 떨어지려 했다. (당신이 마지막 가시는길이 남은 자식들과 이별이 싫었으리라~) 영동 맑은 숲!! 당신닮은 예쁜 조선소나무 한그루 골라!! 안치하고 이후로 소나무를 당신 보듯하라시며, 그렇게 당신은 이생과 작별을 마치셨다. 나의 인생도 저러려니~~~~ 친구여!! 그길 나와 동행해 줘서 고맙고..., 힘든길 찿아 와줘서 고맙고.., 못오는 심정 안타까움으로 멀리서 함께 해줘서 고맙고.., 그래서 더 고마운 친구여!! 내 남은 여생도~ 그 친구들과 영원히 함께 하고프다. 고맙다. 친구여!! 사랑한다~모두. . . .
장모님과 어머니 그리고 친구!!
어머님의 부름을 받고 고향에 아내와 모짓기를 하러 갔다.
새벽에 도착하니 온갖 풀내음이 머릿속까지 향긋해 오는게 이루 말할수 없었다.
잠시후 여명이 밝아오자!! 덥기 전에 일을 마치자는 어머님에 성화로~
한참 시간이 흘렀을까??
배고픔과 피로 허리통증이 나와 아내를 괴롭혔다. (이것이 내 어머님에게는 늘 일상이리라~)
어머님을 힐끔 보았다 어머님은 연신 이마에 땀을 훔치시며 정말 열심이셨다!! 히유~
작은 한숨과 아련히 가슴속 깊이 뭔가가 저며옴을 느꼈다.
슬펐다. 매우 슬펐다. 깊게 파인 주름도 슬펐고, 굽은 허리도 슬펐고,
가려린 어깨위로 짓누르는 삶에 연륜도 싫었다.
(아버님은 10여년 전 부터 지병에 앓아 누우신지 오래다.)
늘 그렇듯 어머님은 앞으로도 당신에 그런 삶속에서 또 그렇게 살다 가시리라~
슬프다;;;
해가 중천에 걸릴즈음~ 우리는 약간에 맥주와 물을 마시며 작은 담소를 나누는 도중
문득 아내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나의 장모님~ 많은 굵곡을 가지고. 현재 진행형으로 그 굵곡에서 우리와 또다른 삶을 사시고 계신
장모님...,
아내를 보았다. 아내는 여전이 맑은미소로 어머니와 모내기에 대해 이야기 중이였다.
(아내도 아주전에는 내 장모님에 귀여운 딸이였으리라~ ) 많이 사랑하고 이해하며 살아가야지~ 사랑하는 내 아내!! 많이 사랑스러웠다.....,
문현듯, 아무래도 오늘내로 끝내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분에 말을 자르고,
어머니에게 아내가 먼저 병원에가(장모님은 한달전에 진천효병원에 입원중)
장모님을 뵙으면 한다고 말씀드렸고, 어머님은 흔케이 허락하시어
아내 먼저 장모님이 계신 병원으로 향했고,
어느정도 일은 마치고, 분주히 인천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중...,
요란한 핸펀소리에 난 아내겠지 언제 오냐고..,
나즈막한 소리를 하며,무심히 핸펀을 들었지만..,아내에 다급한 절규와 울음소리로
어안이 벙하기만 했다.
아내에게 마음을 가라 앉히기를 강요하길 여러번 겨우 그뜻을 알수있을 만치...,
아내의 단, 한소리 "엄마 돌아가셨어"란 말만 남긴채...,
아무리 불러도 저쪽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아니했다.
차에 쟁여 넣던 짐을 아무렀게나...,
병원으로 급히 차를 몰며 별스러운 일까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놓아주질 않았다. 장모여!! 아내여!!
병원에 도착하니, 장모님은 이미 운명을 달리하고 영안실에 드러가기위한
소정에 절차만이 남아있었고, 아내와 처형은 넋이 나간듯 울부짓고 있었다.
난!! 난 무얼 어떡게 해야하나 그저 막막하였고, 그냥 아무말 없이 아내를 꼬옥 안아 주는일 말곤 없었다.
그 힘겨운 죽엄앞에 난 한낱 나약해 보였고...,전에 누구에겐가 들은 한소절이 생각이 났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고...,영생의 세계에서 자식들을 위해 기도 하고 계실 거라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여기저기 친인척과 가까운 친구들이 방문해 주었고, 어느정도는 안정을 취할수 있었다.
장지는 종덕이와 정배가 길을 같이 해주었고, 시간은 그렇게 그냥 흘러갔다.
화장터 붉은 불속으로 향하실때도 장모님은 말씀이 없었고, 그렇게 한 줌에 재가되어 그렇게 돌아왔다.
(난 둘째사위로 한일이 없었고, 살아 생전 효도는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제 나이 62세!! 길지 않으신 인생이 당신에 삶에 무게보다도 하찮게 작은 무게로 그렇게 작은 나무상자안에 들어 가셨다.
영동!! 당신 묻히기를 거부 하시는지 가는 길은 꼬불꼬불 험난하고, 멀기만 했다.
가는 도중 장모님영정은 몇번이나, 내손을 뿌리치고 떨어지려 했다.
(당신이 마지막 가시는길이 남은 자식들과 이별이 싫었으리라~)
영동 맑은 숲!! 당신닮은 예쁜 조선소나무 한그루 골라!! 안치하고 이후로 소나무를 당신 보듯하라시며,
그렇게 당신은 이생과 작별을 마치셨다.
나의 인생도 저러려니~~~~
친구여!!
그길 나와 동행해 줘서 고맙고...,
힘든길 찿아 와줘서 고맙고..,
못오는 심정 안타까움으로 멀리서 함께 해줘서 고맙고..,
그래서 더 고마운 친구여!!
내 남은 여생도~
그 친구들과 영원히 함께 하고프다.
고맙다. 친구여!!
사랑한다~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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