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안미쳤거든사회에서 버림받은 가문은 아니거든그리고 아이들이 사생아도 아니거든꾀병도 아니거든 나는 이렇게 자랐는데 살아온 생활터와 감각이 달라서 내가 실수해온 것을 모두 말하고 내가 주장하는 이유를들어보라고,,,,듣고 나쁜 게 있으면 충고해주시라고요 이 글을 쓰는 거예요 자이제 나는 14세부터서 17세까지 내게 일어난 큼직한 일들을 적었어.더 말해야 할 거 같아자전적 소설 하나를 쓰라고 하신 분의 말씀을 듣고서 나는 자신감을얻었는데 어머님이 웃더군너가 뭐 한게 있다고 쓰니라고 하시더구ㄴ기가 꺾여그,마ㄴ 둘까 어머님그래해봐라고 나중에 다시 말씀하셔서 ...못살아도 사랑이 살아온 굴곡은죽어가면서 바른 말하다 돌아가신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어서.... 나는 사회 감옥에 있는 거나 다름없어 이제 나는 뭘 쓰지 까먹었다.28살 때에 꽃다운 나이에 청춘을 도적에게 바쳤던 것일까?나는 그 시각에 여왕벌이라면 수많은 알을 낳고 죽는데.나는 운이 좋게도 아이를 낳은 뒤의 22년간 아직도 살아있다. 남편이 다른 도로 훈련을 갔는데 중간에 다시 왔다가 4월 25일에 왔는데.그 후 5월이었다.중간에 와서 보고싶어 죽을 뻔 했다면서돈을 달라면서 또 다시 갔다가 4월 25일에 일주일만에 왔었는데.. 7일만에 다시 온 것이었다. 5월경이었다.나는 숨어서 있었다가 하긴 미행하려는 혹은 추적하려는형사적 감각이 였을까? 의심이 많은 나였다.추리소설을 유일하게 보던 나였다.연애소설은 한번도 보질 못했었다. 나를 물어보았다어머니의 태아때의 내가 궁금했다.아버지가 모래를 샀었는데 모두 팔았는데 돈을 안주어서 거의 1년내내 돈받으러 다녔는데.임신내내 그랬었다고...그래서 남에게 돈을 줄까 하고 또 거짓말을 할까 하는생각으로 돈받으러 다니셨는데 나는 마치 빚받으러 다니는 엄마의 심정으로남편의 뒤를 밟으러 마침 외출복이 따로 없었는데 외출이니 가볍게 화려한외출을 해보기로 했다.있는 한복인데 좀 입어보면 어떻나?그런데 그게 화근이 되어 좁은 마을에서 소문이 크게 번져서 지금의 노무현대통령을 앞세운 그 마을주민의 심기를 건드렸었다고 한다. 아악나는 왜 이렇게 남들의 대중심리를 몰라던 것일까참 어지간히 남들의 입에 눈에 오르내리기도 참 모르는 대중심리공부를 톡톡히 비싼 값을 내고 하게 된다. 28살때에는 어땠을까?게다가 다방이 없었다.나는 다방인줄 알았다.창문이 안밖에서 안 밖이 보이는 투명한 유리창이였으니까 ....나는 그곳에 들어갔다.거기서 시간을 보고 꼼짝않고 창문 벽 안에서 밖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그런데 기본이 술 한병이네요나는 지금도 그 때도 술을 안한다.오징어 한마리도 주었다.그것을 꼭 손으로 꼭 쥐고 있다가 남편이 오면 드리려고 했는데남편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거기에 내려놓고 집으로 왔다.한복입고 나가니까아줌마가보고카페 주인이 보고마을에 삽시간에 군인들이 보고와우참 어지간히 주변버리 없는 행태르 벌인 나를 돌아다보면서나를 힐책하지만그게 무슨 소용이랴 내 아들 딸이 나 때문에 결혼 취업을 못한다면다 내탔인데 어떻게 할까걱정되어서 나는 내 수기를 쓰기로 맘먹고 쓰는데누군가 내 아들 딸의 결혼 및 취업의 추천인이 보증인이 되어주면 좋겠다
차라리 모두 잊고...사랑하자
나 안미쳤거든
사회에서 버림받은 가문은 아니거든
그리고 아이들이 사생아도 아니거든
꾀병도 아니거든
나는 이렇게 자랐는데
살아온 생활터와 감각이 달라서
내가 실수해온 것을 모두 말하고 내가 주장하는 이유를
들어보라고,,,,
듣고 나쁜 게 있으면 충고해주시라고요
이 글을 쓰는 거예요
자
이제 나는 14세부터서 17세까지 내게 일어난 큼직한 일들을 적었어.
더 말해야 할 거 같아
자전적 소설 하나를 쓰라고 하신 분의 말씀을 듣고서 나는 자신감을
얻었는데 어머님이 웃더군
너가 뭐 한게 있다고 쓰니
라고 하시더구ㄴ
기가 꺾여
그,마ㄴ 둘까
어머님
그래해봐
라고 나중에 다시 말씀하셔서 ...못살아도 사랑이 살아온 굴곡은
죽어가면서 바른 말하다 돌아가신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어서....
나는 사회 감옥에 있는 거나 다름없어
이제 나는 뭘 쓰지 까먹었다.
28살 때에
꽃다운 나이에 청춘을 도적에게 바쳤던 것일까?
나는 그 시각에 여왕벌이라면 수많은 알을 낳고 죽는데.
나는 운이 좋게도 아이를 낳은 뒤의 22년간 아직도 살아있다.
남편이 다른 도로 훈련을 갔는데 중간에 다시 왔다가 4월 25일에 왔는데.
그 후 5월이었다.
중간에 와서 보고싶어 죽을 뻔 했다면서
돈을 달라면서 또 다시 갔다가 4월 25일에 일주일만에 왔었는데..
7일만에 다시 온 것이었다.
5월경이었다.
나는 숨어서 있었다가 하긴 미행하려는 혹은 추적하려는
형사적 감각이 였을까? 의심이 많은 나였다.
추리소설을 유일하게 보던 나였다.
연애소설은 한번도 보질 못했었다.
나를 물어보았다
어머니의 태아때의 내가 궁금했다.
아버지가 모래를 샀었는데 모두 팔았는데 돈을 안주어서 거의 1년내내 돈받으러 다녔는데.
임신내내 그랬었다고...그래서 남에게 돈을 줄까 하고 또 거짓말을 할까 하는
생각으로 돈받으러 다니셨는데 나는 마치 빚받으러 다니는 엄마의 심정으로
남편의 뒤를 밟으러 마침 외출복이 따로 없었는데 외출이니 가볍게 화려한
외출을 해보기로 했다.
있는 한복인데 좀 입어보면 어떻나?
그런데 그게 화근이 되어 좁은 마을에서 소문이 크게 번져서
지금의 노무현대통령을 앞세운 그 마을주민의 심기를 건드렸었다고 한다.
아악
나는 왜 이렇게 남들의 대중심리를 몰라던 것일까
참 어지간히 남들의 입에 눈에 오르내리기도 참 모르는 대중심리
공부를 톡톡히 비싼 값을 내고 하게 된다.
28살때에는 어땠을까?
게다가 다방이 없었다.
나는 다방인줄 알았다.
창문이 안밖에서 안 밖이 보이는 투명한 유리창이였으니까 ....
나는 그곳에 들어갔다.
거기서 시간을 보고 꼼짝않고 창문 벽 안에서 밖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본이 술 한병이네요
나는 지금도 그 때도 술을 안한다.
오징어 한마리도 주었다.
그것을 꼭 손으로 꼭 쥐고 있다가 남편이 오면 드리려고 했는데
남편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거기에 내려놓고 집으로 왔다.
한복입고 나가니까
아줌마가보고
카페 주인이 보고
마을에 삽시간에 군인들이 보고
와우
참 어지간히 주변버리 없는 행태르 벌인 나를 돌아다보면서
나를 힐책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랴
내 아들 딸이 나 때문에 결혼 취업을 못한다면
다 내탔인데
어떻게 할까
걱정되어서 나는 내 수기를 쓰기로 맘먹고 쓰는데
누군가 내 아들 딸의 결혼 및 취업의 추천인이 보증인이 되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