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綠豆)를 물에 담가 천으로 뒤집어 씌워 일주일 쯤 지나면 연두색 잎사귀가 붙어 있는 싹이 돋아 나온다. 이를 뽑아 무쳐서 먹는 것이 바로 숙주나물이다. 숙주나물은 콩나물과는 달리 처음부터 약용이 아닌 식용으로 쓰였던 중요한 음식이었다. 이러한 숙주나물에 대해서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는 ‘녹두나물’이라 하고, 「만기요람(萬機要覽) 」에서는 ‘녹두장음(菉豆長音)’이라고 불리우는 등 여러 명칭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콩나물 보다는 숙주나물을 잘 먹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생일상이나 잔칫상에는 반드시 끼게 되는 생소한 반찬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 체질에는 숙주나물보다는 콩나물이 제격인지 그리 잘 먹는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영양학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좋은 반찬이고, 또한 부드러워서 노인들이 좋아하는 나물이기도 하다. 더구나 나물의 역사를 보면 숙주나물이 콩나물보다 훨씬 선배라는 사실에서 숙주나물을 푸대접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긴 우리나라만 그렇지 아직도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콩나물보다는 숙주나물을 더 좋아하고 즐겨 먹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조금이라도 큰 것이 좋았던 것인지 숙주나물보다는 콩나물을 선호하고 있는데, 이것이 한국인의 특성이라면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이면에서는 아마도 숙주나물과 관계되는 옛날 이야기와도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여겨진다. 숙주나물이라는 명칭의 역사를 보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2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즉 “숙주나물은 신숙주(申叔舟)가 집현전 동료였던 사육신을 배반하고 세조(1455-1468)의 공신이 되었으며, 죄없는 남이(南怡)장군을 죽이고 거듭 공신의 호를 받은 사람이 되자 서울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성(姓) 자체를 박탈하기 위해서 지어진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또 이용기(李用基)의 「조선무쌍요리제법(朝鮮無雙料理製法) 」에서는 “숙주라는 것은 우리나라 세조 임금 때 신숙주가 여섯 신하를 고변(告變)하여 죽인 고로 이 나물을 숙주라 하였다. 이 나물을 만두속으로 넣을 적에 짓이겨 넣는 고로 신숙주를 이 나물 찧듯하자고 하여서 숙주라 하였으니, 이 사람이 나라를 위하여 그리하였다 하나 어찌 사람을 죽이고 영화를 구할 것인가? 결코 성인군자는 못 된다”고 하였다. 홍기문(洪起文)은 “숙주나물이 하도 잘 쉬기 때문에, 신숙주의 변절을 숙주나물에 빗대어 숙주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였다. 바로 이러한 신숙주에 대한 미움에서 숙주나물을 대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고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그리 맞지 않아서 일 것이라 여겨진다.
「산림경제」 와 「한정록(閑情錄) 」 등에 보면, 숙주나물에 대한 조리법을 설명해 여기에 녹두를 펴고 천으로 가린다. 하루에 두 번 정도 물을 뿌려서 싹의 길이가 3센티 정도 되기를 기다린다. 두피를 씻어 내고 끓는 물에 데쳐 생강,초,참기름,소금 등으로 무쳐서 먹는다”고 하였다.
숙주나물의 역사를 보면, 역시 중국이 가장 빠르다. 중국에서는 12세기 전반에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 」이라는 책이 나오는데, 이 책을 보면, “숙주나물이 마을 시장에서 팔렸다”고 하는 기록이 나온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숙주나물에 관한 중국의 기록이다. 그러다가 14세기에 들면 「거가필요사류전집(居家必要事類全集)」에 보면 숙주나물의 요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즉 “숙주나물을 끓인 물에 넣어 삶은 다음 생강, 식초, 기름, 소금을 넣어 묻혀서 먹는다”는 것인데, 한국하고 그 기본 조리방법은 같으나 양념을 넣는 면에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 (1670년 경)이라는 책에「잡채(雜菜)」라고 하는 요리를 소개하면서 “숙주나물이 사용된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그러나 신숙주와 관계되어 이름이 지어질 정도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미 그가 살던 15세기 중엽 이전에 숙주나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숙주나물의 기록은 17세기에 나오는데, 대표적인 책인 「대화본초(大和本草) 」 (1708년)가 그것이다. 이 책을 보면, 「녹두」 항목에 “녹두를 물에 넣어 흰 싹을 나오게 한 다음 이를 잘라 데쳐서 두유와 식초를 넣어 묻힌 후 먹는다”고 되어 있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맛이 없었을까 공연히 생목이 탈 지경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숙주나물을 먹기 시작한 시대별 순서는 역시 중국, 한국, 일본 순이라고 할 수 있다. 숙주나물의 역사만 보더라도, 일본은 문화적인 면에서는 언제나 꼴찌였음을 알 수 있다.
숙주나물의 일본 전래는 임진왜란시 일본 병사들에 의해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도자기만이 그들의 주요 약탈 대상이 아니라, 그 많은 병사들이 조선에 와서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먹고 지내면서 조선의 음식에 동화되었던 것이고, 돌아갈 때 녹두나물 재배법을 배워서 녹두를 가져다가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중국을 거쳐 조선에 들어 온 숙주나물은 결국 일본에까지 전해지게 되는데, 이러한 숙주나물의 역사는 발명과 지식의 전래, 책들의 교류, 인간의 왕래, 전쟁 등 여러 사실들이 어울려져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좋든 나쁘든 한중일 삼국의 운명적 만남이 숙주나물 속에 그대로 배어 있는 것이다. 즉 그 맛이 차이가 있던 없던 간에 콩나물과는 달리 숙주나물은 일찍부터 한중일 삼국이 공동으로 먹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자문화권 내지 동아시아 문화권의 특징인 것이다. 그러한 운명적 만남의 고귀함을 일본인만이 모르고 있는 것은, 역시 문화적 소양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 여길 수밖에는 없을 듯하다.
숙주나물 이야기
일반적으로 우리는 콩나물 보다는 숙주나물을 잘 먹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생일상이나 잔칫상에는 반드시 끼게 되는 생소한 반찬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 체질에는 숙주나물보다는 콩나물이 제격인지 그리 잘 먹는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영양학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좋은 반찬이고, 또한 부드러워서 노인들이 좋아하는 나물이기도 하다. 더구나 나물의 역사를 보면 숙주나물이 콩나물보다 훨씬 선배라는 사실에서 숙주나물을 푸대접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긴 우리나라만 그렇지 아직도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콩나물보다는 숙주나물을 더 좋아하고 즐겨 먹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조금이라도 큰 것이 좋았던 것인지 숙주나물보다는 콩나물을 선호하고 있는데, 이것이 한국인의 특성이라면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숙주나물의 역사를 보면, 역시 중국이 가장 빠르다. 중국에서는 12세기 전반에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 」이라는 책이 나오는데, 이 책을 보면, “숙주나물이 마을 시장에서 팔렸다”고 하는 기록이 나온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숙주나물에 관한 중국의 기록이다. 그러다가 14세기에 들면 「거가필요사류전집(居家必要事類全集)」에 보면 숙주나물의 요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즉 “숙주나물을 끓인 물에 넣어 삶은 다음 생강, 식초, 기름, 소금을 넣어 묻혀서 먹는다”는 것인데, 한국하고 그 기본 조리방법은 같으나 양념을 넣는 면에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 (1670년 경)이라는 책에「잡채(雜菜)」라고 하는 요리를 소개하면서 “숙주나물이 사용된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그러나 신숙주와 관계되어 이름이 지어질 정도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미 그가 살던 15세기 중엽 이전에 숙주나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숙주나물의 기록은 17세기에 나오는데, 대표적인 책인 「대화본초(大和本草) 」 (1708년)가 그것이다. 이 책을 보면, 「녹두」 항목에 “녹두를 물에 넣어 흰 싹을 나오게 한 다음 이를 잘라 데쳐서 두유와 식초를 넣어 묻힌 후 먹는다”고 되어 있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맛이 없었을까 공연히 생목이 탈 지경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숙주나물을 먹기 시작한 시대별 순서는 역시 중국, 한국, 일본 순이라고 할 수 있다. 숙주나물의 역사만 보더라도, 일본은 문화적인 면에서는 언제나 꼴찌였음을 알 수 있다.
어쨌거나 중국을 거쳐 조선에 들어 온 숙주나물은 결국 일본에까지 전해지게 되는데, 이러한 숙주나물의 역사는 발명과 지식의 전래, 책들의 교류, 인간의 왕래, 전쟁 등 여러 사실들이 어울려져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좋든 나쁘든 한중일 삼국의 운명적 만남이 숙주나물 속에 그대로 배어 있는 것이다. 즉 그 맛이 차이가 있던 없던 간에 콩나물과는 달리 숙주나물은 일찍부터 한중일 삼국이 공동으로 먹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자문화권 내지 동아시아 문화권의 특징인 것이다. 그러한 운명적 만남의 고귀함을 일본인만이 모르고 있는 것은, 역시 문화적 소양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 여길 수밖에는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