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지수진2007.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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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MARGIN-TOP: 2px; MARGIN-BOTTOM: 2px} 우리는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하여 사랑에 빠지며, 우리의 무지를 욕망으로 보충한다.....따라서 성숙한 사랑의 이야기에서는 첫눈에 반하는 일이 없다. 자신이 뛰어드는 물이 얼마나 깊은지 알고 나서야 그 물에 빠진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 정치, 예술, 과학, 그리고 저녁에 무엇을 먹고 싶은지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한 뒤 두 사람은 서로 사랑에 빠지 준비가 되었는지 판단해야 한다. 이 판단은 상호 이해, 그리고 가정된 것이 아니라 확인된 유사성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성숙한 사랑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상대를 진정으로 알 때에만 사랑이 자라날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왜곡된 사랑의 현실에서는 아는 것이 늘어날 경우 그것은 유인이 아니라 장애가 될 수도있다. -- 유토피아가 현실과 위험한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슬픔에 빠지는 것은 그 삶들을 다 살 수 있었을 가능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선택이 필요 없었던 시간, 모든 선택[아무리 멋진 선택이라고 해도]에 따를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실로 인한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이 존재한다.

 

 

 "문제를 말하면 진짜로 문제가 생겨." ........ 버클리 주교는 눈을 감으면 바깥 세계는 꿈이나 다름없이 비현실적인 것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닌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환각의 힘이 위로가 된 것 같았다. 진실을 정면으로 보지 않으려는 충동, 생각만 하지 않으면 불쾌한 진실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일단 한쪽이 관심을 잃기 시작하면, 다른 한쪽에서 그 과정을 막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구애와 마찬가지로 떠나는 일도 과묵이라는 담요 밑에서 고통을 겪는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가동되던 대화의 매력과 유혹은 사라져버리고 이제 대화는 짜증만 일으킬 뿐이다. 연인이 적법하게[다정하게] 행동해도 아이러니가 담긴 행동이 되어버린다. 사랑을 소생시키려다가 오히려 질식시키고 마는 행동이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연인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짝에게 다시 구애를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게 되고, 그 결고 낭만적 테러리즘에 의존하게 된다. 이것은 대책 없는 상황의 산물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에 대한 응답을 강요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꾀[삐지기, 질투, 죄책감 자극]를 부리기도 하고, 그 앞에서 폭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울음을 터뜨리거나, 분노를 터뜨리는 등] 테러리스트가 된 연인은 현실적으로 자신의 사랑이 보답받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연애에서나 정치에서나] 어떤 일이 쓸모없다고 해서 반드시 그 일을 안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꼭 누가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도 말하는것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하는 말도 있는 법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를 즐겁게 하고 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기를 불쾌하게 하는 것을 악이라고 부른다. 사람이란 그 기질이 서로 다 다르기 때문에 선과 악의 일반적인 구별에서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아가톤 히플로스, 즉 그냥 좋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점진적으로 자아를 다시 정복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습관들이 만들어졌고, 클로이 없는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나의 정체성은 오랫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로 돌아가려면 나 자신을 다시 만들다시피 해야 했다. 클로이와 내가 함께 쌓아올렸던 수많은 연상들이 희미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거의 모든 물리적 장소를 다시 찾아가, 클로이와 내가 나누었던 대화의 모든 주제를 다시 고쳐쓰고, 모든 노래와 모든 활동을 되풀이해야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재를 위해서 그거들을 재정복할 수 있었고, 그 연상들이 조성하는 위기를 해소할 수 있었다. 어쨌든 나는 차차 잊어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