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 OPEN - 의문의 상자

장기영2007.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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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을 꾸리는 참이다. 때묻은 벽지와 다 헤진 장판은 지난 10년의 흔적을 침묵으로 대변하는 노쇠한 동반자다. 찬장엔 이사와 집들이때 받아 아직도 포장조차 뜯지 않은 그릇들이며 가히 골동품이라고 할만한 검댕이 양은냄비까지 하나같히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털털거리며 이별을 슬퍼하던 세탁기도 마침내 멈춰섰고 지직 거리던 텔레비젼은 버려질 자신의 신세를 알기라고 하는듯 덜렁거리던 버튼을 토해내더니 아무리 얼르고 달래도 전원에 불이 들어오질 않는다.

 

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살림살이들과의 소박한 송별식을 마무리 지을때즈음, 장롱 구석에서 뿌옆게 먼지가 내려앉은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한 아름에 겨우 안길법한 의문의 상자...

곰팡내가 솔솔 풍기는데다 눅눅한 자태를 뽐내며 축쳐진 모냥이 볼품 없어 보였지만 연분홍색 색지로 사방을 덧대고 주둥이에다 보기 좋게 테잎까지 발라 놓은걸 보니 누군가 꽤나 정성을 쏟았던 모양이다.

 

도대체 이 속엔 뭐가 들었을까?

괜시리 두근거리는 심장을 겨우 가라앉히자 이번엔 양손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낡은 종이 상자가 찢어지기라도 할새라 갓난 아기 다루듯 아주 조심스런 손길로 테잎을 떼어냈다. 코를 킁킁거리며 힘겹게 놈의 입을 열어 재꼈다.

 

그제서야 기억의 실타래가 어지럽게 널부러졌다. 겨우내 멈춰있던 추억의 시내가 다시 흐르자 물 위를 동동 떠가는 가녀린 나뭇잎에 내 한 몸 억지로 구겨 싣고 저 멀리 보물섬을 향해 적막한 항해를 시작한다.

 

그리고 아득한 그 곳에 아련한 기억속의 잔상이 나를 향해 힘없이 손짓한다.

 

Written by. J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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