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KBS심야 토론에서 군 가산점 문제를 다룬 이후로 군 가산점이 다시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동서고금을 떠나 병역문제는 사회의 주된 논란거리가 되어 왔다는 점에서 이번 군 가산점 논쟁이 딱히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1999년 헌법재판소가 군 가산점제에 위헌판결을 내린 이후 병역문제는 남녀갈등의 양상을 띄며 격렬한 논쟁과 대립을 낳아왔다. 특히나 고위층의 병역 기피나 군 내부의 폭력사태와 같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보고되는 가운데 병역문제는 단순한 대립이나 갈등 수준을 넘어 욕설과 비방, 악플이 난무하는 '난타전'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번 MBC100분 토론만 보더라도 이른바 '전거성' 이라는 별명을 얻은 전원책 변호사의 직설적인 발언 이후 각종 게시판이나 블로그 등에서 남녀갈등 현상이 나타났다.
남녀를 떠나 상대를 '공격' 하는것이 속이 후련해지는 화풀이의 역할을 할지언정 병역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을 마련하지는 못한다. 물론 갈등 가운데 종종 건설적인 대안이나 토론이 나오기는 하지만 "꼴폐년들 다 때려죽이자." 거나 "마초새끼들은 군대 하나 다녀왔다고 저 지랄한다." 식의 '악플' 난무는 갈등을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솔직히 병역문제는 워낙 관련된 사람도 많고, 민감한 문제라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란 참 어려운 문제인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병역의 의무'에 현실적으로 매여있는 '대한민국 남성' 의 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조심스레 내 생각을 말해본다.
[나폴레옹 전쟁은 근대적인 징병제의 탄생을 알렸다.]
근대 징병제(국민개병제)의 탄생
한국의 현재 병역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일단 병역의 의무, 더 정확히는 '근대적 의미의 징병제'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 징병제를 단순히 '국가가 국민에게 병역의 의무를 지우는 것' 이라면 징병제는 과거 삼국시대에도 있었고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이른바 '부병제' 라 불리는 것으로 병농일치의 명분아래 농민들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하였다. 그렇지만 이런 전근대적 '부병제' 가 아닌 근대적 '징병제' 의 시작은 근대 유럽의 시민 혁명 이후로 봐야 할 것이다. 더 정확히는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며 프랑스에서 최초로 근대적 의미의 징병제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시 징병제가 보여준 강력한 힘을 알게 된 프러시아나 영국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징병제를 도입하였고, 일본 역시 메이지 유신기에 징병제를 실시한 바 있다.
이러한 근대 징병제가 부병제와 다른점은 무엇일까? 그 차이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근대 징병제는 '근대 국민국가' 의 이념(?)아래 형성되고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평민들에 대한 일방적인 의무 부여나 혹은 귀족들의 특권이였던 '병역' 을 온 국민에게 동등하게 부여함으로서 국민 평등의 이념을 시행하고 국민들에게 일체감을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다. 동시에 근대 징병제는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과정에서 '전사' 한 군인에 대한 범 국가적인 예우를 통해 국민들에게 국민의식 혹은 민족의식을 불어넣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병역의 의무' 를 다한 '국민' 에게는 '시민' 으로서의 '권리' 가 부여되고, 역으로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국민들은 '불완전한 시민' 으로 일종의 차별을 받게 된다. 근대 시민혁명 이후 '민주주의' 가 시행된 구미 선진국들에서도 여성들이 참정권을 가지지 못한 이유 중하나가 바로 이 '근대 징병제' 에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 있어서의 근대 징병제
현재 한국은 분명 '근대화' 되었다. 현재 한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징병제 역시 조선시대의 부병제가 아닌 '근대 징병제'의 모습을 띄고 있다. 그렇다면 그 징병제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불행하게도 한국에서의 근대 징병제는 일제에 의해 시작되었다. 구한말 개화 지식인들이 국민 개병제를 추진(혹은 건의?)한 적이 있다지만 실질적인 징병제의 시작은 1938년 일제가 시행한 '국가 총동원령' 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광복 이후 분단과 6.25전쟁, 그 이후의 격렬한 남북갈등을 거치며 징병제는 '당연한 것' 으로 한국 사회에 고착화되었다.
근대 징병제가 일제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의 현 징병제를 비판할수는 없다. '근대 교육' 역시 그 틀을 온전히 갖춘 것은 일제시대이니까. 문제는 근대 징병제가 지니고 있는 미덕이라 할 수 있는 '국민 평등의 이념' 과 '근대 시민의 양성' 을 한국의 징병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시도때도 없이 붉어져 나오는 고위층의 병역비리나 '까라면 까' 식의 왜곡된 병영문화(군대란 곳이 상명하복 원칙에 충실한 곳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유없는 폭력이 정당화되는 곳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군대야말로 합리적인 규율과 규칙에 따라 움직여야지 상급자의 주관에 따른 린치가 군대의 본질은 아니다.)는 한국의 징병제가 근대적 의미의 징병제가 아닌 전근대적 '부병제' 에 가깝다는 느낌을 준다.
학창시절 국사책을 읽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조선시대 본디 모든 '양인' 들이 부담해야 하는 '병역의 의무' 를 양반들은 이런 이유로 빠지고, 저런 이유로 빠지고 결국 '힘없고 빽없는' 농민들에게 모든 부담이 전가되었던 '부병제' 의 실상을. '돈있고 빽있는' 사람들은 각종 핑계로 빠져나가고 '돈없고 빽없는' 사람들은 군대에 가서 구타를 당하고 의문사를 당하고 총기사고를 당해도 하소연할 곳 하나 제대로 없는 현실(물론 요즘은 아주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은 현재 한국의 '징병제' 가 비록 '국민 평등' 을 지향하는 근대 징병제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본질은 '신분제' 에 얽매인 과거 부병제의 성격을 띄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과거 군사정권 아래에서 이루어진 이른바 '녹화사업' 은 '나라를 지키는 명예로운 의무' 인 병역의 의무를 '국가폭력의 장' 으로 악용하였다. 따라서 한국의 징병제/병역의 의무는 본디 '나라를 지키는 명예로운 의무' 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고통스러운 의무' '왜 쟤는 안가는데 나는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의무' 로 그 성격이 상당부분 왜곡된 측면이 있다.
[70년대의 징병검사장. 이 시기는 병역의무에 대한 '보상' 으로 '주류사회 편입권리' 가 주어졌다.]
잘못된 보상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왜 억울한 병역을 거부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양심적 병역거부'는 '징병제' 가 국가폭력의 수단으로 빈번이 악용되었던 독재정권 하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민주화된 이후 공공연하게 제기되었다. 물론 학생운동권 일각에서는 '전방입소 거부투쟁' 같은 것이 있기도 했지만 그것은 병역에 대한 거부라기보다는 반미나 반독재 투쟁에 가까웠다. 지금보다 더욱 혹독했던 시절에도 사람들이 '묵묵히'(내심 싫었더라도)군대에 갔던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내 소견으로는 '냉전에 기반한 안보의식' 과 사회 전반의 '군사적/남성적 문화' 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깊이 언급할 것 없이 우리나라는 분단되어 있고, 전면적인 충돌은 아니더라도 국지적인 충돌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우리 젊은이들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이른바 '서해교전' 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최근의 상황도 이러한데 냉전적 세계질서가 유지되고 있었으며, '반공을 제일의 국시로 하는' 정권이 집권하던 시기에는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이 더 강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병역의무는 그 신성함이나 명예, 자발성 등을 떠나서 '국가의 안위를 위해' 거부할 수 없는 의무였던 것이다.
'부병제에 가까운 징병제' 를 지탱한 또 하나의 기둥으로 나는 한국사회 전반의 군사적/남성적 문화를 들고 싶다. 즉 군대에 다녀온 남성은 한국사회의 '주류' 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병역의무에 대한 '보상'으로 받게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민주화되기 이전, 권위주의 통치기의 이야기이며 현재는 이러한 군사적/남성적 문화는 상당부분 '해체'되었다. 그렇지만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된다" 혹은 "군대도 제대로 안 다녀온 사람은 조직문화에 제대로 적응을 못 해" 등의 '평범한 상식' 이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아직까지도 군사적/남성적 문화가 한국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것 만은 사실이다.
이는 적잖은 '남성들' 에게도 상처를 입혔고, 때로는 총기사고와 같은 슬픈 불상사를 낳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군사적/남성적 문화(혹은 지배구조)의 '주류'가 될 수 있는 '자격' 이 '부병제' 에 시달려야 했던 남성들에게 '나름대로의 보상' 을 해 주었다는 점이다.
보상은 사라지고 의무는 남은 병역
그러나 민주화 이후 많은것이 바뀌었다. 사회 약자들과 소수자들, 그리고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도, 그들의 권익이 점차 향상되었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의 붕괴, 중국과 베트남의 개혁개방은 냉전적 세계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주류 문화(?)였던 군사적/남성적 문화 역시 동요하게 되었다. 아직도 냉전적 사고에 기반한 반공 이데올로기나 남성우위의 사회문화(여기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대선때가 되면 '이념논쟁' 이 벌어지고 국가 보안법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또한 비록 '꼴폐년들' 이 목소리를 크게 낸다지만 어린 여선수를 성추행하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난 박명수 감독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아직까지 '남성들' 이 '여성들' 보다 살기 쉬운 나라라는 게 내 생각이다. 최소한 남자인 내가 '남자'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밤거리를 걸으며 두려움에 떨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다른 모든걸 떠나서라도 '빨갱이' 와 '페미니스트' 는 그 행동이 어떠했든 그 자체만으로 욕을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영향력이 약화되었으며 앞으로는 더 약해질 것이 분명하다. 또 그러한 '변화' 는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사회 전반의 '바람직한 변화' 는 다른 문제를 낳았다. 그것이 바로 병역문제이다. 그동안 '징병의 탈을 쓴 부병제'를 지탱해 온 것이 정신적으로는 냉전-반공 이데올로기이고 물질적(?)으로는 군사적/남성적 문화였다는 이야기는 앞에서 한 바 있다. 그렇다.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부병제'를 지탱해온 두 축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물론 군대라고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복무기간도 상당부분 단축되고 봉급도 늘었으며, 군 내 폭력행위도 많이 사라졌다. 이는 인권운동가들과 군 당국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며 그러한 노력에 대해 마땅히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비해 군 내부의 변화가 상대적으로 더딘 것이 사실이다. '많이 좋아졌음' 에도 불구하고 병역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의무' '돈없고 빽없는 자들의 의무' 로 남아있다. 즉 '의무'는 이전처럼 남아있지만 거기에 따르는 '보상'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정당한 보상없는 의무를 반길 사람은 거의 없다. 그나마 남아있던 군 가산점마저 '뻬앗긴' 남성들이 분노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나는 군 가산점을 둘러싼 논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보상은 사라졌으나 의무는 남은 현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른바 '전거성' 전원책 변호사]
보상의 문제
그렇다. 군 가산점과 병역에 대한 논쟁과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합당한 보상'의 문제인 것이다. 전원책 변호사는 "세상에 가고싶은 군대가 어디있느냐. 100만원을 줘도 군대는 가기 싫다." 는 말로 많은 남성들의 지지를 받았다. 지당한 말씀이다. 나 역시 100만원을 받고 군대에 가느니 열심히 '알바' 를 뛰어 50만원밖에 못 벌더라도 일상의 '자유' 를 누리는 편을 택할 테니까.
여기서 잠시 엉뚱한 질문을 하나 해 보자. 과연 국내 최고의 대기업이라는 삼성이나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공기업/공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직장에 다니고 싶을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그렇다고 실업을 좋아한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마찬가지로 이른바 '명문대' 에 다니는 학생도 학교가서 공부하는 것은 귀찮아한다. 그렇다면 삼성과 중소기업의 차이, '명문대' 와 '지방대(특정 대학에 대한 차별이 아니고 일단 비교를 위해 사용한 표현이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보상의 차이' 이다. 똑같이 짜증나고 힘든 직장생활이라도 삼성에 다니는 편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다. 공부는 누구에게나 귀찮지만 명문대에 가는 것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기에 학생들은 참고 공부를 한다.
자, 이제 '직장' 이나 '학교' 의 자리에 '군대' 를 집어넣어 보자. 100만원을 준다고 해도 군대에 가기 싫은것은 일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군대 다 때려쳐! 라고 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당장 모병제를 실시할 형편도 되지 않고. 군대에 가기 싫은건 100만원을 주나 8만원(현재 상병 1달 봉급이라고 합니다.)을 주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100만원을 준다면 8만원보다 '덜' 억울하다. 어느정도는 '기쁜' 마음으로 참을 수 있다. 징병제 자체를 폐지하지 못한다면 '적절한 보상' 을 해주는 것이 병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군 가산점제를 지지하는 이유
이제 적절한 보상의 수준을 결정하는 일이 남았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모병제, 즉 지원병제가 궁극적으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탈국가주의/탈민족주의가 '대세' 로 자리잡은 세계화된 현대 사회에서 '근대 징병제'가 존재해야 할 명분은 별로 크게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 '근대 징병제' 의 기본 취지마저 왜곡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더더욱. 하지만 모병제가 만병통치약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직업군인의 질 저하 문제나 군과 민간의 괴리감 심화 등의 '근본적' 문제를 떠나서라도 당장 모병제를 실시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 모병제로의 전환은 군의 체질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이다. 그런 작업이 일이년만에 이루어질 수도 없을 뿐더러, 남북 대치상황 아래에서 섣불리 '변화'를 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징병제의 틀 자체는 유지하되 의무의 '부담' 은 줄이고 의무에 따른 '보상'은 확대하여야 한다. 즉 [모병제의 확대 + 징병제로 인한 남성들의 부담 완화 + 적절한 보상의 확대] 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군 가산점제 부활을 지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흡하나마 '보상'이 된다는 점. 이전의 3-5%가산점은 어느정도 지나친 감이 있는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재개정하고자 하는 가산점은 2%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생각해 보자. 남성들 중 공무원시험을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중에서 2%가산점의 '혜택'으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실제로 가산점으로 '혜택' 을 보는 사람은 소수 중에서 소수, 즉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최근 공무원 시험 결과를 보면 '여초현상'/'여성시대'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성들의 '능력' 이 '남성' 들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성들 스스로가 보여주고 있다. 장애인? 맞다. 장애인들의 경우에는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차라리 장애인 할당제를 확대하는 게 낫다.
여성들은 분명 남성 중심의 사회, 남성적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를 싫어할 것이다. 수많은 여성주의자들이 남성적 문화와 남성 중심 사회에 저항하였고, 여권의 비약적인 신장을 가져왔다. 여성의 권익 확대 좋다. 남녀 평등도 좋다. 하지만 '병역의 의무' 를 져야 하는 남성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 역시 중요하다. 물론 명목상으로 여성들에게도 '국방의 의무' 는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다수의 여성들이 '국방'문제에 있어서만은 '무임승차' 하는 측면이 강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왜 남성들이 '극소수' 밖에 혜택을 보지 못하는 가산점에 그렇게 '집착' 하는지 생각을 해 보았을까? 나의 경우에는 그나마 덜 억울하니까 그렇다. 내가 마초라서 그런것도 아니고, 이기주의자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의무는 떠넘기면서 보상은 바라지 말라는 태도야말로 진정 이기적인 태도이다.
[아직도 장병들에 대한 보상은 열악한 수준이다.]
한국군의 열악한 현실
대안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현재 한국의 '징집병' 들이 처해있는 열악한 현실을 짚어보도록 하자. 전원책 변호사는 100만원을 언급했다지만 실제로는 100만원의 반의 반에도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100만원을 줘도 '가기싫은' 군대라면 현재의 보상 아래에서 '가고싶은' 마음이 들 리 없다.
잘 안 보인다면 클릭해서 선명하게 보시기를 바란다. 복무기간에 있어서 한국군에서 가장 '짧은' 육군의 경우 24개월이다. 그것도 몇번의 '단축' 을 거쳐서 24개월이다. 독일이야 통일이 되었다 치더라도 우리와 형편이 유사한 대만도 16개월이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동서 분단시기, 쿠바 미사일 위기때 최대 복무기간이 18개월이였다. 과연 베를린 봉쇄와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의 독일 정세가 현재 한국보다 안전해서 18개월이었을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독일이야 '선진국' 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하자. NATO의 지원도 받을 수 있을테이고. 하지만 대만의 16개월에 비해 10개월이나 긴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 일이다. 터키는 15개월, 4년제 대학 졸업생은 12개월이다. 우리가 터키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가? '터무니 없이' 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무 복무 기간이 결코 짧지 않은 게 사실이다.
봉급에 있어서는 더욱 열악하다. 현재(계획대로라면)월급이 6만5천 원이다. 그것도 상병 기준으로. 과연 다른 나라는 얼마나 받을까? 앞서 언급한 독일의 사례를 보자.1유로를 1200원으로 계산할 경우 '일급'(월급이 아니라 일급)이 계급에 따라 최소 8892원에서 19020원이다.(2006년 기준, 이하같음) 최고 약 2만원 정도니까 한달 월급이 60만원 가량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선진국' 독일이 아닌 우리와 경제규모가 비슷한 대만은 어떨까? 대만의 경우 1TWD = 30원 의 환율을 적용했을 때, 급여는 한달에 약 176700원(2006기준, 이하같음)이다. 한국군 봉급의 3배 가량에 해당한다. 거기에 부식비로 월 90000원이 추가로 나오고, 연말에는 265050원 정도의 상여금도 나온다.
'군필자' 들을 욕하기에 앞서 '군필자' 들이 어떤 현실 아래에서 '의무' 를 다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여러모로 좋을 듯 하다.
[웃으며 나올 수 있는 군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누누히 강조하지만 문제는 '보상' 이다. 2%정도 가산점. 어서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상징적인 가산점제다. 그 상징마저 빼앗으려고 하는가? 차별받는 건 여성도 장애인도 아니다. 젊은 시절의 2년이라는 중요한 시간을 '의무' 에 바쳐야 하는데 아무런 보상도 해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차별이다. 군 복무기간도 점진적으로 축소시켜야 할 것이다. 동시에 징집병들의 봉급을 어느정도 현실화해 줄 필요가 있다. 혹자는 군대에서 입혀주고 재워주는데 무슨 돈이 필요하냐고 물을수도 있다. 하지만 독일군은 숙박비를 받아서 월 60여 만원의 봉급을 주는가? 대만군에서는 병사들이 급식을 자비로 사서 먹는가? 한마디로 대답할 가치가 없는 우문이다.
든든하게도 국방부의 "2020 국방개혁" 과정에는 징집병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들이 적잖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 역시 보상으로는 미약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소한 '부역' 에 시달려야 하는 징집병들에게 '부담'은 줄이고 '보상'은 늘리는 방안으로 개혁안의 방안이 정해진 것 같아 매우 기쁘다. 보상 문제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아무래도 예산 문제이다. 가능하다면 스위스와 같이 군 미복무자에게 세금을 걷는 방안도 생각해 볼 법 하다. 스위스에서는 장애인을 포함하여 군 미필자는 소득의 약 3%의 방위세를 부담한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도 원칙적으로는 군역을 지지 않으려면 군포를 내야 했다. 무임승차는 없어야 한다. 지금이 조선시대보다 못할 것이 무엇인가? 병역문제에 있어서만은 조선시대보다도 '불평등' 해졌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궁극적으로는 '모병제' 를 선호하지만 그것은 먼 미래, 아무래도 통일이 되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긴장이 어느정도 완화된 후에 추진할 일이고,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독일식 징병제를 실시하였으면 한다.
직업군인을 중심으로 하고, 징병제를 병행하며 징집병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 주는 쪽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군 복무기간을 18개월 전후로 축소하고 봉급도 현실화했으면 좋겠다. 100만원은 아니더라도 30-40만원 수준만 되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징병자들에게 '실질적인' 보상책이 될 것이다.
마치며
병역문제는 애초에 남녀가 싸울 일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남녀가 힘을 모아 대안을 마련해야 할 문제이다. 일부 여성들의 책임 회피와, 일부 남성들의 여성 비하 - 모두가 썩 보기 좋지는 않다. 과거 불합리한 징병제를 지탱했던 왜곡된 '냉전 - 반공주의'와 '군사주의/남성주의' 문화는 하루빨리 타파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신 징병자들에게는 적절한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들 입장에서도 딱히 억울해할 것은 없다. 군 복무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기본적으로 군사주의/남성주의의 타파를 전제로 하기(정확히는 함께 이루어지는)때문이다. 쓸데없이 긴 글이지만 요지는 두 글자로 정리된다. "GIVE & TAKE" 전원책 변호사의 말처럼 아무리 보상이 좋아진다 할지라도 '가고 싶은 군대' 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돌아오며 웃을 수 있는 군대'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군대를 만드는 건 남녀 모두의 과제이다. 국방의 의무는 국민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병무청, "2006 국제징병검사 세미나 준비 및 결과 보고서", 2006 한국국방연구원, "06 국방예산 분석 평가 및 07전망", 2006 온만금, "군대사회학", 황금알, 2006 권인숙, "대한민국은 군대다", 청년사, 2005 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 1", 한겨레출판, 2001 김기정 외, "세계적 국방개혁 추세와 한국의 선택", 오름, 2006
출처: 다음 블로거 by 이녁님
군 가산점제를 지지하는 이유 - [펌]
들어가며
[나폴레옹 전쟁은 근대적인 징병제의 탄생을 알렸다.]지난주 KBS심야 토론에서 군 가산점 문제를 다룬 이후로 군 가산점이 다시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동서고금을 떠나 병역문제는 사회의 주된 논란거리가 되어 왔다는 점에서 이번 군 가산점 논쟁이 딱히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1999년 헌법재판소가 군 가산점제에 위헌판결을 내린 이후 병역문제는 남녀갈등의 양상을 띄며 격렬한 논쟁과 대립을 낳아왔다. 특히나 고위층의 병역 기피나 군 내부의 폭력사태와 같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보고되는 가운데 병역문제는 단순한 대립이나 갈등 수준을 넘어 욕설과 비방, 악플이 난무하는 '난타전'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번 MBC100분 토론만 보더라도 이른바 '전거성' 이라는 별명을 얻은 전원책 변호사의 직설적인 발언 이후 각종 게시판이나 블로그 등에서 남녀갈등 현상이 나타났다.
남녀를 떠나 상대를 '공격' 하는것이 속이 후련해지는 화풀이의 역할을 할지언정 병역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을 마련하지는 못한다. 물론 갈등 가운데 종종 건설적인 대안이나 토론이 나오기는 하지만 "꼴폐년들 다 때려죽이자." 거나 "마초새끼들은 군대 하나 다녀왔다고 저 지랄한다." 식의 '악플' 난무는 갈등을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솔직히 병역문제는 워낙 관련된 사람도 많고, 민감한 문제라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란 참 어려운 문제인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병역의 의무'에 현실적으로 매여있는 '대한민국 남성' 의 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조심스레 내 생각을 말해본다.
[70년대의 징병검사장. 이 시기는 병역의무에 대한 '보상' 으로 '주류사회 편입권리' 가 주어졌다.]근대 징병제(국민개병제)의 탄생
한국의 현재 병역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일단 병역의 의무, 더 정확히는 '근대적 의미의 징병제'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 징병제를 단순히 '국가가 국민에게 병역의 의무를 지우는 것' 이라면 징병제는 과거 삼국시대에도 있었고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이른바 '부병제' 라 불리는 것으로 병농일치의 명분아래 농민들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하였다. 그렇지만 이런 전근대적 '부병제' 가 아닌 근대적 '징병제' 의 시작은 근대 유럽의 시민 혁명 이후로 봐야 할 것이다. 더 정확히는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며 프랑스에서 최초로 근대적 의미의 징병제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시 징병제가 보여준 강력한 힘을 알게 된 프러시아나 영국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징병제를 도입하였고, 일본 역시 메이지 유신기에 징병제를 실시한 바 있다.
이러한 근대 징병제가 부병제와 다른점은 무엇일까? 그 차이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근대 징병제는 '근대 국민국가' 의 이념(?)아래 형성되고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평민들에 대한 일방적인 의무 부여나 혹은 귀족들의 특권이였던 '병역' 을 온 국민에게 동등하게 부여함으로서 국민 평등의 이념을 시행하고 국민들에게 일체감을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다. 동시에 근대 징병제는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과정에서 '전사' 한 군인에 대한 범 국가적인 예우를 통해 국민들에게 국민의식 혹은 민족의식을 불어넣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병역의 의무' 를 다한 '국민' 에게는 '시민' 으로서의 '권리' 가 부여되고, 역으로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국민들은 '불완전한 시민' 으로 일종의 차별을 받게 된다. 근대 시민혁명 이후 '민주주의' 가 시행된 구미 선진국들에서도 여성들이 참정권을 가지지 못한 이유 중하나가 바로 이 '근대 징병제' 에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 있어서의 근대 징병제
현재 한국은 분명 '근대화' 되었다. 현재 한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징병제 역시 조선시대의 부병제가 아닌 '근대 징병제'의 모습을 띄고 있다. 그렇다면 그 징병제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불행하게도 한국에서의 근대 징병제는 일제에 의해 시작되었다. 구한말 개화 지식인들이 국민 개병제를 추진(혹은 건의?)한 적이 있다지만 실질적인 징병제의 시작은 1938년 일제가 시행한 '국가 총동원령' 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광복 이후 분단과 6.25전쟁, 그 이후의 격렬한 남북갈등을 거치며 징병제는 '당연한 것' 으로 한국 사회에 고착화되었다.
근대 징병제가 일제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의 현 징병제를 비판할수는 없다. '근대 교육' 역시 그 틀을 온전히 갖춘 것은 일제시대이니까. 문제는 근대 징병제가 지니고 있는 미덕이라 할 수 있는 '국민 평등의 이념' 과 '근대 시민의 양성' 을 한국의 징병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시도때도 없이 붉어져 나오는 고위층의 병역비리나 '까라면 까' 식의 왜곡된 병영문화(군대란 곳이 상명하복 원칙에 충실한 곳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유없는 폭력이 정당화되는 곳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군대야말로 합리적인 규율과 규칙에 따라 움직여야지 상급자의 주관에 따른 린치가 군대의 본질은 아니다.)는 한국의 징병제가 근대적 의미의 징병제가 아닌 전근대적 '부병제' 에 가깝다는 느낌을 준다.
학창시절 국사책을 읽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조선시대 본디 모든 '양인' 들이 부담해야 하는 '병역의 의무' 를 양반들은 이런 이유로 빠지고, 저런 이유로 빠지고 결국 '힘없고 빽없는' 농민들에게 모든 부담이 전가되었던 '부병제' 의 실상을. '돈있고 빽있는' 사람들은 각종 핑계로 빠져나가고 '돈없고 빽없는' 사람들은 군대에 가서 구타를 당하고 의문사를 당하고 총기사고를 당해도 하소연할 곳 하나 제대로 없는 현실(물론 요즘은 아주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은 현재 한국의 '징병제' 가 비록 '국민 평등' 을 지향하는 근대 징병제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본질은 '신분제' 에 얽매인 과거 부병제의 성격을 띄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과거 군사정권 아래에서 이루어진 이른바 '녹화사업' 은 '나라를 지키는 명예로운 의무' 인 병역의 의무를 '국가폭력의 장' 으로 악용하였다. 따라서 한국의 징병제/병역의 의무는 본디 '나라를 지키는 명예로운 의무' 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고통스러운 의무' '왜 쟤는 안가는데 나는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의무' 로 그 성격이 상당부분 왜곡된 측면이 있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른바 '전거성' 전원책 변호사]잘못된 보상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왜 억울한 병역을 거부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양심적 병역거부'는 '징병제' 가 국가폭력의 수단으로 빈번이 악용되었던 독재정권 하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민주화된 이후 공공연하게 제기되었다. 물론 학생운동권 일각에서는 '전방입소 거부투쟁' 같은 것이 있기도 했지만 그것은 병역에 대한 거부라기보다는 반미나 반독재 투쟁에 가까웠다. 지금보다 더욱 혹독했던 시절에도 사람들이 '묵묵히'(내심 싫었더라도)군대에 갔던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내 소견으로는 '냉전에 기반한 안보의식' 과 사회 전반의 '군사적/남성적 문화' 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깊이 언급할 것 없이 우리나라는 분단되어 있고, 전면적인 충돌은 아니더라도 국지적인 충돌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우리 젊은이들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이른바 '서해교전' 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최근의 상황도 이러한데 냉전적 세계질서가 유지되고 있었으며, '반공을 제일의 국시로 하는' 정권이 집권하던 시기에는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이 더 강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병역의무는 그 신성함이나 명예, 자발성 등을 떠나서 '국가의 안위를 위해' 거부할 수 없는 의무였던 것이다.
'부병제에 가까운 징병제' 를 지탱한 또 하나의 기둥으로 나는 한국사회 전반의 군사적/남성적 문화를 들고 싶다. 즉 군대에 다녀온 남성은 한국사회의 '주류' 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병역의무에 대한 '보상'으로 받게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민주화되기 이전, 권위주의 통치기의 이야기이며 현재는 이러한 군사적/남성적 문화는 상당부분 '해체'되었다. 그렇지만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된다" 혹은 "군대도 제대로 안 다녀온 사람은 조직문화에 제대로 적응을 못 해" 등의 '평범한 상식' 이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아직까지도 군사적/남성적 문화가 한국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것 만은 사실이다.
이는 적잖은 '남성들' 에게도 상처를 입혔고, 때로는 총기사고와 같은 슬픈 불상사를 낳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군사적/남성적 문화(혹은 지배구조)의 '주류'가 될 수 있는 '자격' 이 '부병제' 에 시달려야 했던 남성들에게 '나름대로의 보상' 을 해 주었다는 점이다.
보상은 사라지고 의무는 남은 병역
그러나 민주화 이후 많은것이 바뀌었다. 사회 약자들과 소수자들, 그리고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도, 그들의 권익이 점차 향상되었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의 붕괴, 중국과 베트남의 개혁개방은 냉전적 세계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주류 문화(?)였던 군사적/남성적 문화 역시 동요하게 되었다. 아직도 냉전적 사고에 기반한 반공 이데올로기나 남성우위의 사회문화(여기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대선때가 되면 '이념논쟁' 이 벌어지고 국가 보안법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또한 비록 '꼴폐년들' 이 목소리를 크게 낸다지만 어린 여선수를 성추행하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난 박명수 감독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아직까지 '남성들' 이 '여성들' 보다 살기 쉬운 나라라는 게 내 생각이다. 최소한 남자인 내가 '남자'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밤거리를 걸으며 두려움에 떨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다른 모든걸 떠나서라도 '빨갱이' 와 '페미니스트' 는 그 행동이 어떠했든 그 자체만으로 욕을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영향력이 약화되었으며 앞으로는 더 약해질 것이 분명하다. 또 그러한 '변화' 는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사회 전반의 '바람직한 변화' 는 다른 문제를 낳았다. 그것이 바로 병역문제이다. 그동안 '징병의 탈을 쓴 부병제'를 지탱해 온 것이 정신적으로는 냉전-반공 이데올로기이고 물질적(?)으로는 군사적/남성적 문화였다는 이야기는 앞에서 한 바 있다. 그렇다.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부병제'를 지탱해온 두 축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물론 군대라고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복무기간도 상당부분 단축되고 봉급도 늘었으며, 군 내 폭력행위도 많이 사라졌다. 이는 인권운동가들과 군 당국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며 그러한 노력에 대해 마땅히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비해 군 내부의 변화가 상대적으로 더딘 것이 사실이다. '많이 좋아졌음' 에도 불구하고 병역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의무' '돈없고 빽없는 자들의 의무' 로 남아있다. 즉 '의무'는 이전처럼 남아있지만 거기에 따르는 '보상'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정당한 보상없는 의무를 반길 사람은 거의 없다. 그나마 남아있던 군 가산점마저 '뻬앗긴' 남성들이 분노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나는 군 가산점을 둘러싼 논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보상은 사라졌으나 의무는 남은 현실!
[아직도 장병들에 대한 보상은 열악한 수준이다.]보상의 문제
그렇다. 군 가산점과 병역에 대한 논쟁과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합당한 보상'의 문제인 것이다. 전원책 변호사는 "세상에 가고싶은 군대가 어디있느냐. 100만원을 줘도 군대는 가기 싫다." 는 말로 많은 남성들의 지지를 받았다. 지당한 말씀이다. 나 역시 100만원을 받고 군대에 가느니 열심히 '알바' 를 뛰어 50만원밖에 못 벌더라도 일상의 '자유' 를 누리는 편을 택할 테니까.
여기서 잠시 엉뚱한 질문을 하나 해 보자. 과연 국내 최고의 대기업이라는 삼성이나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공기업/공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직장에 다니고 싶을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그렇다고 실업을 좋아한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마찬가지로 이른바 '명문대' 에 다니는 학생도 학교가서 공부하는 것은 귀찮아한다. 그렇다면 삼성과 중소기업의 차이, '명문대' 와 '지방대(특정 대학에 대한 차별이 아니고 일단 비교를 위해 사용한 표현이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보상의 차이' 이다. 똑같이 짜증나고 힘든 직장생활이라도 삼성에 다니는 편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다. 공부는 누구에게나 귀찮지만 명문대에 가는 것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기에 학생들은 참고 공부를 한다.
자, 이제 '직장' 이나 '학교' 의 자리에 '군대' 를 집어넣어 보자. 100만원을 준다고 해도 군대에 가기 싫은것은 일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군대 다 때려쳐! 라고 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당장 모병제를 실시할 형편도 되지 않고. 군대에 가기 싫은건 100만원을 주나 8만원(현재 상병 1달 봉급이라고 합니다.)을 주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100만원을 준다면 8만원보다 '덜' 억울하다. 어느정도는 '기쁜' 마음으로 참을 수 있다. 징병제 자체를 폐지하지 못한다면 '적절한 보상' 을 해주는 것이 병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군 가산점제를 지지하는 이유
이제 적절한 보상의 수준을 결정하는 일이 남았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모병제, 즉 지원병제가 궁극적으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탈국가주의/탈민족주의가 '대세' 로 자리잡은 세계화된 현대 사회에서 '근대 징병제'가 존재해야 할 명분은 별로 크게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 '근대 징병제' 의 기본 취지마저 왜곡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더더욱. 하지만 모병제가 만병통치약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직업군인의 질 저하 문제나 군과 민간의 괴리감 심화 등의 '근본적' 문제를 떠나서라도 당장 모병제를 실시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 모병제로의 전환은 군의 체질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이다. 그런 작업이 일이년만에 이루어질 수도 없을 뿐더러, 남북 대치상황 아래에서 섣불리 '변화'를 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징병제의 틀 자체는 유지하되 의무의 '부담' 은 줄이고 의무에 따른 '보상'은 확대하여야 한다. 즉 [모병제의 확대 + 징병제로 인한 남성들의 부담 완화 + 적절한 보상의 확대] 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군 가산점제 부활을 지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흡하나마 '보상'이 된다는 점. 이전의 3-5%가산점은 어느정도 지나친 감이 있는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재개정하고자 하는 가산점은 2%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생각해 보자. 남성들 중 공무원시험을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중에서 2%가산점의 '혜택'으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실제로 가산점으로 '혜택' 을 보는 사람은 소수 중에서 소수, 즉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최근 공무원 시험 결과를 보면 '여초현상'/'여성시대'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성들의 '능력' 이 '남성' 들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성들 스스로가 보여주고 있다. 장애인? 맞다. 장애인들의 경우에는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차라리 장애인 할당제를 확대하는 게 낫다.
여성들은 분명 남성 중심의 사회, 남성적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를 싫어할 것이다. 수많은 여성주의자들이 남성적 문화와 남성 중심 사회에 저항하였고, 여권의 비약적인 신장을 가져왔다. 여성의 권익 확대 좋다. 남녀 평등도 좋다. 하지만 '병역의 의무' 를 져야 하는 남성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 역시 중요하다. 물론 명목상으로 여성들에게도 '국방의 의무' 는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다수의 여성들이 '국방'문제에 있어서만은 '무임승차' 하는 측면이 강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왜 남성들이 '극소수' 밖에 혜택을 보지 못하는 가산점에 그렇게 '집착' 하는지 생각을 해 보았을까? 나의 경우에는 그나마 덜 억울하니까 그렇다. 내가 마초라서 그런것도 아니고, 이기주의자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의무는 떠넘기면서 보상은 바라지 말라는 태도야말로 진정 이기적인 태도이다.
한국군의 열악한 현실
대안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현재 한국의 '징집병' 들이 처해있는 열악한 현실을 짚어보도록 하자. 전원책 변호사는 100만원을 언급했다지만 실제로는 100만원의 반의 반에도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100만원을 줘도 '가기싫은' 군대라면 현재의 보상 아래에서 '가고싶은' 마음이 들 리 없다.
잘 안 보인다면 클릭해서 선명하게 보시기를 바란다. 복무기간에 있어서 한국군에서 가장 '짧은' 육군의 경우 24개월이다. 그것도 몇번의 '단축' 을 거쳐서 24개월이다. 독일이야 통일이 되었다 치더라도 우리와 형편이 유사한 대만도 16개월이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동서 분단시기, 쿠바 미사일 위기때 최대 복무기간이 18개월이였다. 과연 베를린 봉쇄와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의 독일 정세가 현재 한국보다 안전해서 18개월이었을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독일이야 '선진국' 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하자. NATO의 지원도 받을 수 있을테이고. 하지만 대만의 16개월에 비해 10개월이나 긴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 일이다. 터키는 15개월, 4년제 대학 졸업생은 12개월이다. 우리가 터키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가? '터무니 없이' 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무 복무 기간이 결코 짧지 않은 게 사실이다.
봉급에 있어서는 더욱 열악하다. 현재(계획대로라면)월급이 6만5천 원이다. 그것도 상병 기준으로. 과연 다른 나라는 얼마나 받을까? 앞서 언급한 독일의 사례를 보자.1유로를 1200원으로 계산할 경우 '일급'(월급이 아니라 일급)이 계급에 따라 최소 8892원에서 19020원이다.(2006년 기준, 이하같음) 최고 약 2만원 정도니까 한달 월급이 60만원 가량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선진국' 독일이 아닌 우리와 경제규모가 비슷한 대만은 어떨까? 대만의 경우 1TWD = 30원 의 환율을 적용했을 때, 급여는 한달에 약 176700원(2006기준, 이하같음)이다. 한국군 봉급의 3배 가량에 해당한다. 거기에 부식비로 월 90000원이 추가로 나오고, 연말에는 265050원 정도의 상여금도 나온다.
'군필자' 들을 욕하기에 앞서 '군필자' 들이 어떤 현실 아래에서 '의무' 를 다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여러모로 좋을 듯 하다.
[웃으며 나올 수 있는 군대가 되기를 바랍니다.]그렇다면 대안은?
누누히 강조하지만 문제는 '보상' 이다. 2%정도 가산점. 어서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상징적인 가산점제다. 그 상징마저 빼앗으려고 하는가? 차별받는 건 여성도 장애인도 아니다. 젊은 시절의 2년이라는 중요한 시간을 '의무' 에 바쳐야 하는데 아무런 보상도 해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차별이다. 군 복무기간도 점진적으로 축소시켜야 할 것이다. 동시에 징집병들의 봉급을 어느정도 현실화해 줄 필요가 있다. 혹자는 군대에서 입혀주고 재워주는데 무슨 돈이 필요하냐고 물을수도 있다. 하지만 독일군은 숙박비를 받아서 월 60여 만원의 봉급을 주는가? 대만군에서는 병사들이 급식을 자비로 사서 먹는가? 한마디로 대답할 가치가 없는 우문이다.
든든하게도 국방부의 "2020 국방개혁" 과정에는 징집병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들이 적잖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 역시 보상으로는 미약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소한 '부역' 에 시달려야 하는 징집병들에게 '부담'은 줄이고 '보상'은 늘리는 방안으로 개혁안의 방안이 정해진 것 같아 매우 기쁘다. 보상 문제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아무래도 예산 문제이다. 가능하다면 스위스와 같이 군 미복무자에게 세금을 걷는 방안도 생각해 볼 법 하다. 스위스에서는 장애인을 포함하여 군 미필자는 소득의 약 3%의 방위세를 부담한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도 원칙적으로는 군역을 지지 않으려면 군포를 내야 했다. 무임승차는 없어야 한다. 지금이 조선시대보다 못할 것이 무엇인가? 병역문제에 있어서만은 조선시대보다도 '불평등' 해졌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궁극적으로는 '모병제' 를 선호하지만 그것은 먼 미래, 아무래도 통일이 되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긴장이 어느정도 완화된 후에 추진할 일이고,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독일식 징병제를 실시하였으면 한다.
![군 가산점제를 지지하는 이유 - [펌]](https://pds3.egloos.com/pds/200707/08/23/e0030223_06075690.jpg)
직업군인을 중심으로 하고, 징병제를 병행하며 징집병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 주는 쪽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군 복무기간을 18개월 전후로 축소하고 봉급도 현실화했으면 좋겠다. 100만원은 아니더라도 30-40만원 수준만 되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징병자들에게 '실질적인' 보상책이 될 것이다.
마치며
병역문제는 애초에 남녀가 싸울 일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남녀가 힘을 모아 대안을 마련해야 할 문제이다. 일부 여성들의 책임 회피와, 일부 남성들의 여성 비하 - 모두가 썩 보기 좋지는 않다. 과거 불합리한 징병제를 지탱했던 왜곡된 '냉전 - 반공주의'와 '군사주의/남성주의' 문화는 하루빨리 타파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신 징병자들에게는 적절한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들 입장에서도 딱히 억울해할 것은 없다. 군 복무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기본적으로 군사주의/남성주의의 타파를 전제로 하기(정확히는 함께 이루어지는)때문이다. 쓸데없이 긴 글이지만 요지는 두 글자로 정리된다. "GIVE & TAKE" 전원책 변호사의 말처럼 아무리 보상이 좋아진다 할지라도 '가고 싶은 군대' 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돌아오며 웃을 수 있는 군대'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군대를 만드는 건 남녀 모두의 과제이다. 국방의 의무는 국민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병무청, "2006 국제징병검사 세미나 준비 및 결과 보고서", 2006
한국국방연구원, "06 국방예산 분석 평가 및 07전망", 2006
온만금, "군대사회학", 황금알, 2006
권인숙, "대한민국은 군대다", 청년사, 2005
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 1", 한겨레출판, 2001
김기정 외, "세계적 국방개혁 추세와 한국의 선택", 오름, 2006 출처: 다음 블로거 by 이녁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