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야기 100선 미추월,인천의 옛이름 인천의 옛이

윤인기200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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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100선

미추월,인천의 옛이름

인천의 옛이름은 미추월이다. 위치는 지금의 남구 문학산 일대였이리고 추정하고 있는데, 비류가 그 곳에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고구려 장수왕 시절에는  매소홀현 신라 경덕왕 대는 소성현이라 불렀다. 고려에 들어와 숙종과 인종의 어머니의 고향이라 하여 경원군; 인주로 각각 높여 불렀고 공양왕때는 7대에 걸쳐 왕가의 내향이었다하여 경원부라 승격시켰다. 인천이란 지명이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것은 조선 초기였다. 건국 초 태조는 즉위하자마자 고려 왕가의 이미지를 희석하려 했는지 경원부 를 인주 로 인천군 이라 개친했던 것이다. 그 후 인천은 조선 말기까지 도호부 로서의 명맥을 이어왔는데,인천의 판도를 동국여지승람 같은 옛 지리서는 부치에서 서족으로는 제물량까지 17리,북족으로는 부평까지24리 라고 밝히고 있다. 1883년 일본의 강압 속에 인천이 개항되자, 지명 호칭에 작응 혼란이 일었다. 조선 정부가 개항장의 관리,감독을 위해 감리서를 제물포에 설치하고 그 업무를 인천부사에게 겸임케 했는데,그런 연우로 제물포는 인천의 한 포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인천이 세계에 널리 알려제게 된 것은 러일전쟁 때문이었다.. 세계 각국은 인천 앞바다에서 일어났던 러일 간의 전쟁을 지금도 제물포 해전 으로 기록하고 있다. 지금과 같이 로마자 표기법이 있을 리 없던 때라 미국에서는 제물포를 chemulpo 등등 제멋대로 적었다. 그런가하면 일본은 인천의 일본식 한자 발음인 jinsen 을 통용시켰고,중국은 자신들으 발음인 런추안을 고집했다..인천이 비로소 인천으로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6.25전쟁 당시 인천상룩작전에 의해서 였다. 그 때의 영문 표기가 Inchon 이었다. 그러나 동족 상잔의 전댕터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알려진 지명 이었다.

21게기 벽두에 인천은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재 데뷔했다. 인천국제공항의 개항으로   송도신도시 및 인천의 위상을 세계 알려지게 되었다.

 저자 조우성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