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위홀 _ 그의 슬픔에 빠지다.

이재민2007.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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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 _ 그의 슬픔에 빠지다.


앤디위홀 _ 그의 슬픔에 빠지다.

 앤디 워홀의 슬픔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전시회를 다녀와서 들어버린 생각인데 워홀은 아주 깊은 슬픔을 간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이미지들은 정말로 이미지일 뿐, 그의 진실은 누구도 알지 못할 것 이라는 혼자만의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니 생전에도 신성시 되어버린 그를 나는 그저 위대한 작가라던 지 천재라던 지 그런 수식어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를 알고 싶지 않았던 부분도 있으리라. 나도 미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천재에 대한 질투 같은 것 일수도 있고 쉽게 미술을 하는가. 같기도 하고 미술을 너무 상업화 시킨 것 같아 그저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대충 알았었다. 지금 나는 그때의 불성실한 태도를 후회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위대한 화가들(고흐, 클림트, 모네, 비어즐리, 벨라스케스, 에곤 쉴레등)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그림으로야 아직도 모네의 수련이 좋고 비어즐리의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견주어 손색이 없을 것 같다고 함은 아마도 내가 캠벨수프를 보고 슬픔을 느꼈기 때문일 것 이다. 앞서 부제로도 달았던 그의 슬픔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앤디워홀은 늘 즐거울 것 같았는데 그건 나의 섣부른 판단이었다.


 리움에서 전시를 했지만 역시나 유명한 작가인지라 사람들이 붐볐다. 예약제가 아니기에 쾌적한 관람은 아니었다. 큐레이터도 부촌의 사모님들에게 열성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는데 학생들에게는 질문도 안하는 모습과 엄청나게 굴리는 발음들이 나에게 반항심을 일으키기 까지 했다. 설명 좀 들어보려고 하니 인터넷과 별 반 차이가 없었고 또 부촌의 사모님부대의 또각 거리는 구두소리가 신경 쓰여 설명하는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사실 그때까지도 워홀에 대해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책으로만 보았던 작품들을 실제로 보아서 좋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감동을 주는 작품은 없었다. 내가 그 무리들을 빠져 나온 지점이 중요하다. 아주 작은 섬세한 폴라로이드 사진이었는데 자신을 분장하기도 하고 그냥 찍기도 하고 혹은 자신의 유년시절도 있고 워홀의 개인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폴라로이드 시리즈가 있었다. 손바닥 보다 더 작은 그 사진을 보다보니 그가 작품에서 느껴지는 펑키한 감성의 소유자는 아닌 듯싶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사진속의 워홀은 너무 슬프고 외로워 보였다. 애써 화장을 하고 생뚱한 표정으로 감추려 해도 슬퍼 보였다.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기분은 작품을 대하면 대할수록 더해져 갔는데 무성영화를 볼 때 극에 달했다. 그 지루한 영화들은 울고 있는가. 같았다. 이 감정들은 나만의 감정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스운 것은 나중엔 나오는 길에 맥주상자의 설치물도 슬펐다는 것이다.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슬쩍 보고 나온것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만 맥주상자를 보고 감동하다니 앤디워홀은 역시 천재일까? 하는 의문점이 생겼다.


워홀라 _ 워홀

 앤디 워홀은 원래 성이 워홀 라였다. 세련된 감각에 맞추어 워홀이라고 줄여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상품화시키고 미화시키고 작품으로써 평가 받으려 한다. 자기애도 강했을 것 같다.

앤디위홀 _ 그의 슬픔에 빠지다. 워홀의 삶은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이었다. 워홀이 꾸었던 미국의 꿈은 스타가 되는 것이었다. 스타……. 하지만 스타도 품위를 잃지 않는 스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스타들을 작품ㅇ에서 다룬다. 이를테면 엘비스 프레슬리나 마릴린 먼로 같은 유면한 스타들을 캔버스로 옮겼다. 그는 생전에 마티스같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것은 뭐든 유명세를 탔던 마티스처럼 되고 싶다는 말이었다. 이러한 스타가 되기 위한 그의 열정은 자신을 스스로 신비화 시키는 데부터 시작된다. 다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감춤으로써 스타로의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워홀의 말이 있다. “만약 당신이 앤디워홀에 대해 알고 싶다면 나의 그림의 표면과 영화, 그리고 나를 보기만 하면 된다. 거기에 내가 있다. 배후엔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감춤으로써 스타로서의 신비감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먼저 그는 출생년도도 분명하지 않다. 자신의 출생 신고서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였으며 따라서 연보 또한 28~31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어릴 때 워홀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일을 하러 오랜 시간을 비우시는 아버지와 체코이민자인 어머니사이에서 가난하고 불우한 시절을 살았으며 이러한 가정환경 때문인지 그는 성장한 후로 자신을 완전히 열어 보인 적이 없었다. 부분적으로는 유달리 수줍음을 많이 탈수도 있겠지만 의도적인 감추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자신을 신비롭게 가장할 뿐 아니라 교묘하게 이상한 행동이나 엉뚱함을 보여줌으로써 천재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이라고 이름 짓고 개방함으로써 자신을 노출시키는가 하면 자신을 감추고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그가 타고난 비즈니스맨이나 연예인의 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그림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하느냐도 그림의 한부분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하튼 작업실 팩토리는 개방 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데 영화제작자, 레즈비언, 화가, 시인, 학생, 배우는 제도와 전통에 대한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워홀에게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제공하였고 후에 아이디어가 바닥났다고 생각했을 때 바스키아나 키이스헤링같은 앤디워홀에게 영감을 얻어 작품을 하는 2세대가 출현하면서 다시 힘을 얻게 되는 등 주변의 사람들을 적절히 수용함으로써 지배적인 경향이 아닌 수동적으로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였다. 도서출판 재원에서 펴낸 앤디워홀에 관한 책에서 강홍구씨는 이러한 워홀의 방식이 르네상스의 도제방식과 유사하다고 한다.1) 그렇게 생각하니 또 그런 것도 같다.

 상업적인 미술로 돈을 벌었던 그는 50년대후 상업적인 미술의 다가 아닌 것을 깨달았다. 50년 후 반부터는 순수미술가로 활동하는데 처음부터 미술가로써의 입신이 빨리 이루어 진 것은 아니다. 상업미술을 그만둔 워홀은 세련된 이미지의 드로잉과 결별하고 일상적인 이미지에 주의를 기울인다. 만화, 깡통, 병, 깡통라벨과 그 밖에 대량생산화 된 것들이 그의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고 60년대에는 기법에서도 거친붓자국과 실크스크린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대량생산화 된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앤디위홀 _ 그의 슬픔에 빠지다. 워홀에게 1962년은 특별한 해였을 것이다. 워홀이 그토록 바라던 스타 미술가로써의 진보를 보인 해이기 때문이다. 워홀은 LA에서 전시 후에 뉴욕의 제니스 화랑에서 팝아트 전시회에 초대되었고 그 후 전기의자 자동차 사고는 재난시리즈가 시작된다. 재난 시리즈는 전체적으로 다운된 느낌의 그림들인데 실제로 사람이 죽은 전기의자를 그냥 실크스크린 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소름이 끼치기도 하고 내가 그 의자에 앉아 있는가. 같기도 하다. 자동차 사고 또한 마찬가지로 숙연해 지기도 하지만 역시 워홀의 실크스크린은 그런 감정마저도 컨트롤 하고 있는 듯하다. LA에서의 전시는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 못했으나 제니서 화랑에서의 전시는 큰 호응을 얻었고 그의 실크스크린 작업은 조수들에 의하여 대량 생산 되었다, 그림의 소재도 대량생산되었던 것들이었으나 자신의 그림도 마찬가지로 대량 생산 된 것이다. 62년에서 42년 사이에만 2000점이 넘었다고 한다.    워홀이 선택한 소재들은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코카콜라병, 스프캔, 지폐, 브릴로 상자 등의 일상적인 소비품과 재난시리즈에서 집중적으로 인용된 매스미디어가 생산한 대중적인 이미지들이 있다. 그리고 마릴린 몬로나 앨비스 프레슬리처럼 연예계스타나 마오쩌뚱, 빌리 브란트 같은 문화계 유명인사등 이미 알려진 이미지들을 묶을 수 있다. 이러한 소재들 중에 어떤 것이 가장 워홀 다운가 일까? 이 조사를 하기 전에는 당연 마릴린 먼로라고 하겠으나 지금은 캠밸수프나 코카콜라병 혹은 브릴로 상자라고 말하고 싶다.

앤디위홀 _ 그의 슬픔에 빠지다. 일단은 일상적인 것으로 사물에 대한 생각과 대량 생산과 소비 또 바로 작품의 생산과 소비 등을 이중적으로 바라본 것이 워홀답고 마그리트나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보다는 현실적이지만 사물의 기이함을 발견하는 엉뚱함이 워홀다운 것 같다. 이런 점에 대하여 워홀은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 미국의 위대성은 가장 부유한 소비자들도 본질적으로는 가장 가난한 소비자들과 똑같은 것을 구입한다는 전통을 세웠다는 점이다. T.V광고에 등장하는 코카콜라는 리즈테일러도, 미국대통령도 그것을 마신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당신들도 마찬가지로 콜라를 마실 수 있다. 콜라는 그저 콜라일 뿐 아무리 큰 돈을 준다 하더라도 길 모퉁이에서 건달이 빨아대는 콜라보다 더 좋은 콜라를 살 수는 없다. 유통되는 콜라는 다 똑같다.”

앤디위홀 _ 그의 슬픔에 빠지다.

생각 자체는 그 당시로써는 획기적이지 않았을까? 지금에서야 여러 비평가들이 여러 입장을 취하며 좋고 나쁨을 따지지만 말이다.

 상업적으로도 대단히 성공한 그이지만 그의 천재적인 신비감 만들기는 나같은 사람은 감히 따라가지도 못했을 것 같다. 그의 파란 만장한 삶들 속에 마지막은 혼자 쓸쓸히 가명의 이름으로 죽었다고 하니 그가 진정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얻고자 했던 스타의 자리도 마지막 가는 길엔 가명으로 병원에서 아무도 모르게 쓸쓸히 떠났으니 마치 스타의 말년 같기도 하다. 뭐 죽어선 전 세계의 사람들의 애도와 현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으니 그의 소원은 이루어진 셈 일수도 있겠다.

 그의 이런 여러 가지 상황 등을 몰랐더라도 저 브릴로 상자를 보고 슬픈 감정이 들었다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다. 그때 나의 감성이 풍부해 졌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리움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새우깡 박스를 보고도 감동적일 수 있을까? 전시장의 단위에 있는 브릴로 박스이기에 감동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에 스타가 되길 바란 그이기에 마지막은 쓸쓸했어도 그의 삶에는 스타가 되기 위하여 감추고 살았기에 더 더욱 깊은 슬픔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고 추리해 본다. 그러기에 재난시리즈나 일상적인 물품을 실크스크린 한 작품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가. 같다.

 작가조사를 하면서 내가 관심 있는 시리즈를 중심으로 조사하였다. 그래서 후반부의 성서나 명화를 모티브로한 작품들은 이 보고서에는 넣지 않았다. 책을 통하여, 리움에서는 작품을 통하여 접했으나 사실 조금 들 여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홀이 수술이 잘못 되지만 않았어도 훨씬 더 성숙된 그림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그런 아쉬움은 뒤로하고 일상적인 물품을 그린 작품을 위주로 조사하였다.

 이번 기회를 통해 워홀의 슬픔과 스타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고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면 콜라병이 보고 싶어 졌다.


 혹은 이번 기회를 통해 또 느꼈다.

모든지 드로잉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 또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 으로써 게을러 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봄같이 화창한 날 기분 좋게 슬픔에 빠졌다.

그리고 그림에 빠졌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빠졌다. 마치 워홀처럼 


참고문헌

강홍구, 앤디워홀_거울을 가진 마술사의 신화, 도서출판 재원, 1995

린다 볼튼, 고정아엮, 팝아트_미술세계를 강타한 즐거운폭풍, 보림, 2002

인터넷싸이트 _ www,andyWorhol.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