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아기들보다 약간 납작한 얼굴에 큰 머리 그리고 짧은 팔다리... 하지만, 그 어느 아기보다도 초롱초롱한 눈을 갖고 있는 아기 영진이... 영진이는 ‘치명적인 신생아 난쟁이 증후군’ (Achondrogenesis TypeⅡ)라는 왜소증을 지니고 2005년 가을에 태어났다. 애교도 많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예쁜 영진이었지만, 입양 가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입양 아동 가운데 장애 아동들은 대부분 국내가 아닌 해외, 특히 미국으로 입양되는데, 미국에서조차도 영진이를 입양하겠다는 사람은 선뜻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영진이는 백일 잔치, 돌 잔치 모두 동방영아일시보호소에서 위탁모와 직원들과 함께 했다.
그래도 영진이를 보호하고 있던 동방사회복지회는 포기하지 않고 미국 협력 복지 기관을 통해 영진이를 입양할 가족을 구준히 찾아보았고,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미네소타주 아동복지회의 사회복지사를 통해 영진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양부모를 찾았다는 서신을 받았다. 그게 작년 11월의 일. 태어난 지 14개월 만이었다.
영진이의 양부모는 네 명의 친자를 회사원, 의대생, 교사, 대학생으로 훌륭하게 키웠으며, 네째가 태어난 지 9년이 되던 때부터 한국에서 아동들을 다섯 명이나 입양했다. 30대의 큰 누나부터 여덟 살 꼬마까지 연령, 취미, 개성, 외모 모두 다르지만 아홉 자녀 모두 한국에서 막내가 하루빨리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7월 3일, 아침 영진이를 처음 만난 양모 팻시 씨에게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영진이를 입양하게 된 이유에 대해 묻자 “영진이가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입양한 자녀들 다섯 명 가운데, 발가락, 손가락이 열개 씩 다 있는 아이는 영진이 한 명 뿐이랍니다. 그리고 주변에 훌륭한 특수학교도 있고, 좋은 의사 선생님도 있답니다.”
이미 성인으로 성장한 네 자녀 이외에 입양한 다섯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고 있는 팻시 씨는 대가족의 장점에 대해, “아이들이 남을 존중하는 것을 배우고, 나눔에 익숙해지게 된답니다.”하고 말했다. 의료적 도움이 필요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영진이에게 의대생인 큰 형과 음악 교사인 작은 형이 좋은 친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이들 때문에 자신의 삶이 희생되는 부분이 많지 않느냐는 우려에 대해서도 “아이들은 나의 삶 그 자체.” 라고 말했다. 영진이를 15개월 동안 키운 위탁모 최선희 씨는 “영진이가 장애로 인해 입양 가족을 찾기 힘들어서, 시설로 갈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형과 누나가 많은 집으로 가게 되어 너무 기쁘다.”면서도 오랜 시간동안 함께 해온 영진이와의 이별을 생각하며 눈물을 적셨다.
영진이는 7월 6일 아침, 영구적인 부모님과 형제 자매가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영진이가 동방에 있는 동안 많은 선생님들과 후원자분들이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주셨는데, 이제 가정을 갖게 되어 영진이가 더욱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어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왜소증 아기 영진이 미국 가정에 입양되었어요.
다른 아기들보다 약간 납작한 얼굴에 큰 머리 그리고 짧은 팔다리... 하지만, 그 어느 아기보다도 초롱초롱한 눈을 갖고 있는 아기 영진이... 영진이는 ‘치명적인 신생아 난쟁이 증후군’ (Achondrogenesis TypeⅡ)라는 왜소증을 지니고 2005년 가을에 태어났다. 애교도 많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예쁜 영진이었지만, 입양 가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입양 아동 가운데 장애 아동들은 대부분 국내가 아닌 해외, 특히 미국으로 입양되는데, 미국에서조차도 영진이를 입양하겠다는 사람은 선뜻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영진이는 백일 잔치, 돌 잔치 모두 동방영아일시보호소에서 위탁모와 직원들과 함께 했다.
그래도 영진이를 보호하고 있던 동방사회복지회는 포기하지 않고 미국 협력 복지 기관을 통해 영진이를 입양할 가족을 구준히 찾아보았고,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미네소타주 아동복지회의 사회복지사를 통해 영진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양부모를 찾았다는 서신을 받았다. 그게 작년 11월의 일. 태어난 지 14개월 만이었다.
영진이의 양부모는 네 명의 친자를 회사원, 의대생, 교사, 대학생으로 훌륭하게 키웠으며, 네째가 태어난 지 9년이 되던 때부터 한국에서 아동들을 다섯 명이나 입양했다. 30대의 큰 누나부터 여덟 살 꼬마까지 연령, 취미, 개성, 외모 모두 다르지만 아홉 자녀 모두 한국에서 막내가 하루빨리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7월 3일, 아침 영진이를 처음 만난 양모 팻시 씨에게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영진이를 입양하게 된 이유에 대해 묻자 “영진이가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입양한 자녀들 다섯 명 가운데, 발가락, 손가락이 열개 씩 다 있는 아이는 영진이 한 명 뿐이랍니다. 그리고 주변에 훌륭한 특수학교도 있고, 좋은 의사 선생님도 있답니다.”
이미 성인으로 성장한 네 자녀 이외에 입양한 다섯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고 있는 팻시 씨는 대가족의 장점에 대해, “아이들이 남을 존중하는 것을 배우고, 나눔에 익숙해지게 된답니다.”하고 말했다. 의료적 도움이 필요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영진이에게 의대생인 큰 형과 음악 교사인 작은 형이 좋은 친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이들 때문에 자신의 삶이 희생되는 부분이 많지 않느냐는 우려에 대해서도 “아이들은 나의 삶 그 자체.” 라고 말했다. 영진이를 15개월 동안 키운 위탁모 최선희 씨는 “영진이가 장애로 인해 입양 가족을 찾기 힘들어서, 시설로 갈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형과 누나가 많은 집으로 가게 되어 너무 기쁘다.”면서도 오랜 시간동안 함께 해온 영진이와의 이별을 생각하며 눈물을 적셨다.
영진이는 7월 6일 아침, 영구적인 부모님과 형제 자매가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영진이가 동방에 있는 동안 많은 선생님들과 후원자분들이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주셨는데, 이제 가정을 갖게 되어 영진이가 더욱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어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영진이의 성장해온 모습은 동방홈페이지
http://eastern.or.kr/bbs/zboard.php?id=adop_news01&no=118
를 통해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