容 恕 (2007.7.13)-4

이휘달200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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容 恕 (2007.7.13)-4

容 恕 (2007.7.13)-4 [ ⅲ 영혼이 살아있는 얼굴 ]

 

 달라이 라마의 명상하는 방은 이른 아침의 부드러운 빛으로 채워져 있었다. 공들여 만든 목재 진열장들이 벽을 따라 줄지어 서 있고, 그 안에는 수많은 청동 불상들과 종교적인 예술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맞춤 선반들 위에는 황색 천과 아름다운 무늬를 넣어 짠 옷감으로 싸인 티베트 경전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방 한가운데는 화려하게 장식된 불단이 차지하고 있었다. 불단 위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는 크기가 50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불상이 유리와 나무로 만든 작은 사원 모형 안에 모셔져 있었다. 그 공간은 눈이 부실 만큼 평화로웠다. 그것이 지닌 우아함은 언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텐진 타클라가 내게 출입문 근처에 놓은 사각형의 작은 티베트 양탄자 위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삼각대에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했다. 달라이 라마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간소한 마호가니 탁자 뒤켠으로 갔다. 그는 샌들을 벗고 나무판에 등을 기댄 뒤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런 다음 옷자락을 추스리고,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나는 카메라를 켰다. 디지털 테이프에 달라이 라마의 모습이 포착되면서 모터가 희미하게 씽하는 소리를 내며 돌았다.
 한번은 달라이 라마가 내게 자신의 아침 일정을 말해 준 적이 있다.
 "요즘에는 정확히 3시30분에 일어납니다. 일어나자마자 만트라(반복해서 외면 정신적인 힘과 집중력을 가져다주는 단어나 문장)나 기도문을 낭송합니다. 눈을 뜬 뒤 내가 맨 먼저 생각하는 것은 붓다와, 자비에 대한 그의 가르침, 그리고 상호 의존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난 언제나 그렇게 합니다. 하루의 나머지 시간은 오직 그 두 가지, 즉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과 상호 의존의 진리에 따라 진행됩니다. 그런 다음 절을 합니다. 절과 약간의 운동을 하는 시간이 합쳐서 약 30분 가량 됩니다. 그런 뒤 언제나 목욕을 하고 샤워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 5시경이나 4시 40분쯤에 아침을 먹습니다. 내 남동생이 늘 놀리곤 하지요. 일찍 일어나는 진짜 목적이 아침식사 때문이라고! 나는 불교 수도승으로서 대개 저녁은 먹지 않거든요."
 달라이 라마가 명상에 들면서 내 눈도 차츰 실내의 어슴푸레한 불빛에 적응이 되었다. 내가 앉은 맞은편 벽에는 유리와 목재로 만든 진열장 안에 천 테두리를 두른 인상적인 불화 한 점이 걸려있었다. 그림 속에는 단순한 오렌지색 옷을 입은 붓다가 앉아 있고, 배경에는 초록색으로 우거진 산과 구불구불한 길들이 그려져 있었다. 붓다의 머리는 전통적인 비례에 따라 그려져 있었는데, 길다란 귓불과 깨달음을 상징하는 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붓다는 미소 짓고 있는 것인지 잠자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중간 상태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약간 통통한 뺨, 작은 턱, 긴 눈꺼풀 선 등 그의 얼굴 전체에 절대적인 환희의 빛이 가득 넘쳤다.
 달라이 라마는 아주 빨리 깊은 명상 상태로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외부 세계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방도 사라지고, 몇 발자국 앞에 앉아 있는 텐진과 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달라이 라마의 명상 방식은 흔히 말하는 선승들의 방식과 달랐다. 많은 티베트 라마승들이 그렇듯, 그는 바위처럼 정지해 있거나 엄숙하게 앉아 있지 않았다. 거기 언제나 약간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는 옆으로 몸을 흔들다가 멈추고는 한동안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손을 목 뒤로 뻗어 가려운 부분을 긁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중얼 짧은 만트라를 외었다. 전에 그가 깊은 명상에 잠긴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면, 나는 그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다고 단정했을 것이다.
 갑자기 그의 눈동자가 정면 위치로 돌아오더니 반쯤 뜬 눈꺼풀이 저절로 떨렸다. 실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과 거의 흡사했다.
 달라이 라마의 탁자는 어질러져 있었다. 묶지 않은 경전 더미, 꽃이 꽂힌 투명한 유리 화명,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탁상용 램프, 작은 청동 불상 등이 탁자 위에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탁상용 시계 옆에 작은 그릇이 놓여 있고, 그릇 안에는 고급 스위스제 군용칼이며 맨 위에 놓인 작은 입상을 비롯해 별의별 물건들이 담겨져 있었다. 그의 왼쪽에는 무릎 높이의 목재 진열장이 있고, 붉은색 서류철들이 그 위에 얹혀 있었다. 작은 벽감이 나 있는 오른쪽 벽에도 비슷한 높이의 진열장이 있었다. 그 위에는 책과 더 많은 티베트 경전들, 볼펜들과 야광펜이 담긴 그릇 3개, 단백질 보충제가 들어 있는 병이 놓여 있었다. 이런 잡동사니들 위로는 백합과 장미로 이루어진 노랗고 붉은 꽃들이 도자기 화병에 꽂혀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꽃잎에 매달려 있는 작은 이슬 방울들까지, 꽃들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바로 옆에는 텔레비전 리모컨이 놓여 있었다.
 그 방은 업무도 보고 명상도 하는, 달라이 라마의 개인 성소였다. 그곳은 그가 진정 홀로 있을 수 있는 장소였다. 정부 관리들과 회의를 열고 외부 방문객을 맞는 일은 사택 입구 쪽에 있는 접견실 건물에서 이루어졌다. 명상을 통해, 그리고 고대 티베트 스승들의 가르침을 되풀이해 읽음으로써 자신과 국민들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지혜를 얻어내는 곳이 바로 여기, 이 방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명상할 때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나는 그의 나이를 정확히 가늠할 수 있었다. 눈 아래 처진 살과, 광대뼈 아래에서 턱까지 수직으로 패인 주름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이 티베트 지도자는 60대 중반이었다.
 달라이 라마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기쁨이었다. 그의 얼굴은 나와는 정반대였다.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자름 하나하나에는 투쟁과 고통과 즐거움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달라이 라마보다 고작 열 살이 젊은데도, 내 얼굴은 비교적 매끈하고, 아직 뚜렷한 주름살 하나 없었다. 하지만 내 자신이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종종 기분이 나빠졌다. 못생겨졌거나 공격적으로 생겨서가 아니었다. 평범하고 평균적으로 생긴 얼굴이었다. 문제는 언제나 죽을 것 같은 얼굴이라는 점이었다. 누가 봐도 생명력 넘치는 얼굴이 아니었다.
 나는 전통적인 중국 가정에서 자랐다.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은 금지 사항이었다. 진정한 기쁨을 드러낸 경우는 아주 가끔있었다. 설날 삼촌이 내게 달러 지폐가 든 붉은색 봉투를 선물로 주었을 때, 나는 기쁜 나머지 벌어진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그리고 몹시 화를 낸 적도 있었다. 여동생이 내가 가장 아끼는 무협 소설을 창 밖으로 집어 던졌을 때처럼. 하지만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대부분은 무표정한 얼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유독 자의식이 강했고, 보호막은 갈수록 두꺼워졌다. 대학 때 포커 게임으로 이름을 날린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립적인 얼굴을 갖는 것은 내 삶의 대부분에서 잘 들어맞았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 나는 그것 때문에 내가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음을 발견했다. 시간이 갈수록 감정을 경험하는 능력이 줄어들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극에 달했다. 장례식에서 나는 의식적으로 슬픈 감정을 끌어내야만 했다. 속을 알 수 없는 전형적인 동양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얼굴에 영혼이 드러나 있었다. 심리학 교수이자 얼굴 표정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폴 에크먼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에크먼은 인간 얼굴 강정가이다. 그는 지난 40년간 인간 얼굴에 대해 깊이 연구해 왔다. 이 연구에서 에크먼은 얼굴 근육을 분류하고, 그 근육들이 어떻게 움직여 7천여 가지의 표정을 만들어 내는지 조사했다. 그는 얼굴 근육의 어떤 부위의 움직임이 인간의 중요한 감정들과 관계가 있는가를 밝혀 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뛰어난 인간 거짓말 탐지기가 되었다. 9.11 뉴욕 세계 무역 센터 테러가 발생한 뒤, CIA와 FBI 합동의 테러 대책 본부는 용의자를 심문할 때 거짓말을 탐지하는 방법을 일러 주는 자문역으로 에크먼을 고용할 정도였다.
 그가 요원들에게 가르쳐 준 것 중 하나는 매우 미묘한 표정이었다. 예를 들어, 내측부 전두근이라 불리는 눈썹 안쪽 근육이 약간 움직이면 슬프다는 표시다.
 2000년 3월, 폴 에크먼은 다람살라에서 열린 제8차 마음과 인생 학술 회의에서 처음으로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전세계 불교도들과 서양 과학자들이 그 자리에 참석했고, 회의 주제는 파괴적인 감정이었다. 5일 동안 진지한 토론과 모임을 거치면서 그 심리학자는 티베트 지도자를 관찰할 충분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 에크먼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얼굴들을 연구해 왔지만, 달라이 라마 같은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얼굴 근육은 생기가 넘치고 유연했다. 20대의 사람에게서나 볼 수 있는 얼굴 근육이었다.
 이 놀라운 불일치의 이유가 무엇일까? 에크먼은 그 해답을 알것만 같았다. 달라이 라마는 에크먼이 지금까지 알았던 어느 누구보다 얼굴 근육을 더 활발히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감정이나 느낌을 매우 정확히 표현했다. 신호를 애매하게 뒤섞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행복할 때, 그는 백 퍼센트 행복했다. 그 기분을 희석시키는 어떤 다른 감정도 끼어들지 않았다.
 에크먼이 달라이 라마의 얼굴에 깊은 인상을 받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어린아이들의 경우를 제외하면 이 티베트 지도자의 얼굴은 수십 년간의 연구 기간 동안 에크먼이 만난 가장 가식적이지 않은 얼굴이였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처첨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전혀 숨김이나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자기 감정에 대해 남을 의식하거나 창피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회의 도중, 캘리포니아에서 온 참관인 한 명이 달라이 라마에게 다람살라에서 한 아이가 광견병 걸린 개에 물려 죽었다고 전했다. 참석자 모두 이 티베트 인의 얼굴에 서린 깊은 슬픔을 똑똑히 보았다. 에크먼에게 이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달라이 라마가 마치 자기 자식을 잃은 듯 몹시 상심해 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에크먼은 그런 슬픈 표정이 얼마 가지 않는다는 데 놀랐다. 불과 몇 분 만에 슬픔의 메아리는 모두 사라졌다. 비슷한 얘기로, 달라이 라마는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 전혀 거리낌없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몇 초 만에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게 집중하곤 했다. 그는 자신의 감정뿐 아니라 어떤 것에도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았다.

 달라이 라마의 명상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처음 5분 동안은 그의 흉내를 내면서 엉성한 가부좌 자세를 하고 있었지만, 다리의 통증이 참을 수 없이 심해졌다. 나는 자세를 바꾸어 무릎을 꿇고는, 비디오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먼저 한쪽벽을 따라 천천히 카메라를 움직이면서 채색된 고대 티베트의 두루마리 그림들과 정교한 불상들을 카메라에 담은 다음, 달라이 라마에게로 돌아왔다. 나는 달라이 라마처럼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방의 깊은 고요와 평화는 나와는 무관했다. 달라이 라마에게서 발산되는 것이 분명한 강력한 명상의 빛이 방안에 물결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오른쪽 허벅지와 오른쪽 엉덩이를 연결하는 힘줄의 참기 힘든 통증이었다.
 그때 무엇인가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방 맞은편, 소형 청동 불상들과 새로 꽃꽂이한 꽃병 사이에 짙은 초록색 틀의 작은 액자하나가 반쯤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액자 속의 사진은 불화와 예술품들, 오래된 경전들을 통틀어 그 방에 있는 유일한 사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것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몇 달 전 대화를 나누던 중에 내가 달라이 라마에게 주기 전까지 내 작품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1985년 티베트에서 찍었다. 두 명의 수도승이 붉은색 승복을 입고 사원 지붕 난간에 반쯤 기대어,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일을 열심히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찍은 것이었다. 뒤에서 찍었기 때문에 사진에는 두 수도승의 뒷모습만 보였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아래로 떨어질 것처럼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기대어 있었다. 그들 앞으로는 낮은 구릉들이 물결쳐 내리고 있었다.
 아주 훌륭한 사진이었다. 짙고 화려한 붉은색 승복은 그 무명천을 직접 만지고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처럼 생생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달 표면처럼 얼룩덜룩한 갈색의 티베트 고원, 방금 내린 푸른 빛 나는 눈으로 엷게 뒤덮인 둥근 언덕들이 골짜기와 갈라진 틈까지도 섬세하게 새겨져 있었다. 사진 오른쪽 끝에는 짙은 초록색의 커다란 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레팅 사원(라싸 서북쪽에 위치한 중요한 사원으로,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거의 파괴되었다.)의 유명하고 매우 신성한 노간주나무들이었다.
 1980년대 중반, 티베트의 성스런 장소들을 찾아다니며 찍은 수천 장의 슬라이드 사진들 중에서도 그 사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무심한 관찰자의 심금을 더 크게 자극할 만한 사진들이 많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의 티베트 특집 기사에 오를 만한 더 좋은 후보작도 있었다. 하지만 수도승 두명을 찍은 그 사진은 거의 20년 가까이 내 침대 머리맡에 걸려 있었다. 어쩌면 두 수도승이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히 난간에 기대어 서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티베트 인들의 천진난만하고 근심 걱정 없는 자연스러움은 내가 세상과 관계하는 방식과는 너무 달랐다.
 처음 사진을 액자에 넣어 달라이 라마에게 주었을 때, 그는 달리 감동하지 않았었다. 무심히 사진을 보고는, 금방 텐진 타클라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선물을 많이 받았으며, 거의 언제나 보좌관들에게 넘겨 주어 안전하게 보관토록 했다. 그는 감사의 표시를 하면서도, 아름답든 아름답지 않든 물건에 그다지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텐진 타클라에게 사진 액자를 건내고 난 뒤, 뒤늦게 떠오른 듯 달라이 라마가 물었다.
 "이 장소가 어딥니까?"
 내가 대답했다.
 "레팅 사원입니다."
 그가 반가워 하며 소리쳤다.
 "레팅이라! 1956년에 그곳에 갔었습니다."
 그는 텐진이 놀랄 정도로 덥석 사진을 빼앗아 뚫어져라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레팅 사원! 잘 기억하고 있어요. 그곳에 갔을 때 특별한 친근감을 느꼈었어요."
 내가 말했다.
 "내가 찍은 많은 티베트 사진들 중에서 이 사진만큼은 항상 내 곁에 두어 왔습니다."
 달라이 라마가 말했다.
 "그래요, 우리 둘 다 레팅에 대해 특별한 느낌을 갖고 있군요. 그곳에 갔을 때 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몇 가지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내 자신이 그 장소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레팅에 오두막을 짓고 그곳에서 내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 당시 나는 그 사진이 달라이 라마가 여러 해에 걸쳐 받은 훌륭한 선물이나 기념품들을 제치고 큰 보물 창고 같은 곳의 좋은 자리에 보관될 것이라 여겼었다. 그런데 그 방에서 내 사진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텐진이 내가 사진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크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양손을 무릎에 단정히 올려놓은 상태에서 그는 엄지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워 보였다.
 그랬다, 내 사진이 달라이 라마와 아주 가까이, 그가 명상하는 방에 놓여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고 자랑스러웠다. 그가 특별히 나를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에 사진을 거기에 둔 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기보다는, 레팅 사원이 그의 마음속에 특별한 장소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사진이 그곳에 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바깥이 점점 밝아져 오고 있었다.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캉그라 골짜기 아래쪽에 옅은 안개가 깔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새벽 명상이 끝난 듯, 달라이 라마가 내게 물었다.
 "이 정도면 되겠어요?"
 내가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달리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하루 종일 당신과 함께 있고 싶다고?
 달라이 라마가 탁자 뒤켠에서 몸을 일으켰다. 텐진과 나도 얼른 일어났다. 달라이 라마는 벽화 쪽으로 다가가 진열대 위에 놓인 작은 청동 조각품들과 버터 등잔들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어깨 너머로 나를 불렀다.
 "이쪽으로 오시오."
 그는 내게 인도풍의 작은 불교 사원 복제품 하나를 건네주었다. 회색빛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가 7센티미터쯤 되는 것이었다.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2층으로 된 구조물 지붕에는 5층까지 중앙 탑이 얹혀져 있고, 네 모서리에는 더 작은 네 개의 탑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것을 조각한 사람은 각 층마다 작은 창과 출입문, 그 밖의 세부적인 것들을 정성껏 새겨 놓았다. 작은 것치고는 무게가 꽤 나가는 것이었다.
 달라이 라마가 말했다.
 "보드가야에 있는 절입니다. 당신에게 선물하는 겁니다."
 붓다가 깨달음에 이른 장소인 북인도 보드가야는 불교도들에게는 최고의 순례지다.
 그런 다음 달라이 라마는 두번째 것을 내게 건넸다. 큰 구슬 크기의 보석이 청동판에 박혀 있는 것이었다. 보석은 갈색이 단계적으로 변화를 이루고 있고, 흰새 줄 하나가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보석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달라이 라마는 그것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나는 선물을 받고 놀랐다. 격식에 따라 티베트의 전통적인 선물인 흰 스카프 카따를 준 것을 제외하고는, 그에게서 선물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 두가지 물건은 달라이 라마의 명상실에 놓여 있었으므로, 그것들이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음에 분명했다.
 달라이 라마는 내 손을 부드럽게 잡고 문 쪽으로 안내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더 많은 청동 조각품과 또 다른 신기한 물건들이 담긴 진열 상자로 몸을 돌렸다. 그는 뭔가를 찾으려는 듯 상자를 뒤적였다.
 "아하!"
 마침내 그는 기쁜 표정을 하고서 작은 조각상 하나를 집어올렸다. 허리까지 수염을 기른, 나무로 조각한 노인상이었다. 큰 얼굴에 콘날이 뚜렷하고, 짙은 눈썹을 한 전형적인 동양인의 용모였다. 오른쪽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져 있었다. 중국 현자의 조각상 이었다.
 달라이 라마가 그것을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당신 겁니다. 자, 곧 다시 만납시다."

 그날 일정을 마치고 여인숙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노랫가락을 흥얼거렸다. 내 방문이 얼려 있었고, 여인숙 아래 옥상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티베트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멀어서 잘 들리진 않았지만 그녀 역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아침에 촬영한 장면을 보기 위해 비디오 카메라를 꺼냈다. 스위치를 켜고 테이프를 처음으로 되감았다. 작은 LCD 화면에 뜬 첫번째 영상은 명상하는 방의 탁자 뒤켠에 앉아 있는 달라이 라마의 모습이었다. 그는 명상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명도 적당하고 소리도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에 가로줄들이 나타났다. 벽화 대신, 회색 바탕에 반투명의 가로줄들만 보였다. 달라이 라마는 화면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빨리감기 버튼을 눌렀다. 가로줄들이 가볍게 흔들리면서 춤을 추었다. 테이프를 정지시켰다가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역시 가로줄들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테이프를 처음으로 되감은 뒤 첫 장면을 다시 틀었다. 조명이 약해 색이 어두웠지만, 막 가부좌를 하고 있는 달라이 라마의 모습이 선명했다. 그 다음의 명상하는 장면들은 어찌된 일인지 다 지워져 있었다. 배터리가 다 닳을 때까지 반보거해서 테이프를 되감고 재생을시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