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과 복종은 어디까지 해야 할 것인가?

배경우2007.07.14
조회45

 

순종과 복종은 어디까지 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읽어보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사람들은 정말 진지하게 이렇게 묻는다.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합니까? 권위 있는 사람이 무슨 일을 시키든 무조건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십니까? 나한테 죄를 범하게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은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무조건 순종하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복종은 태도의 문제고 순종은 명령을 수행하는 문제임을 잊지 말라.


유일하게 권위에 순종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유일한 예외다. 바로 하나님이 말씀에 명시하신 것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일을 권위가 우리에게 시키는 경우다. 다시 말해 지도자들이 우리에게 죄를 지으라고 명하면 순종할 책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도 우리는 겸손히 복종하는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


바빌론 왕인 느부갓네살은 잔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많이 죽이고 이스라엘을 유린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을 당신의 종이라 부르셨다(렘 25:9, 27:5-7). 인간에게 권위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임을 다시 한번 확증하는 대목이다. 느부갓네살은 남아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빌론에 포로로 잡아왔다. 그 중에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있었다.


왕은 악기 소리가 들리면 금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라고 모든 백성에게 명령했다. 이 명령을 거역하면 대가를 치러야 했다. 풂에 던져져야 했다. 히브리 신하들은 풀무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기에 왕명에 순종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둘째 계명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인간의 명령에 불순종했다.


이 불순종이 느부갓네살 귀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사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격노한 느부갓네살은 그들을 잡아와 심문했다. 이들의 대답을 들어보라.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 3:16-18)


이렇게 전혀 굽힘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서도 왕에게 예우를 갖춰 말했다. 느부갓네살을 ‘왕’ 이라고 불렀다. “이 한심한 양반아, 우리는 절대 당신 말대로 못해!” 하지 않았다. 그렇게 불경하게 말했다면 반역이다. 이처럼 권위의 명령에 불순종해야 할 때도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베드로가 아내 된 이들에게 준 가르침에도 그 점이 나와 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공경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벧전 3:1-2).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할 뿐 아니라(딛 2:5) 복종하는 태도로 남편을 공경해야 한다. 베드로 역시 행동과 복종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거기에 정결함과 남편을 공경하는 생활방식도 더해야 한다. 베드로는 남편의 권위를 공경하는 태도를 지키라고 가르친다. 남편이 신자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남편이 죄를 지으라고 시키는데도 순종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남편의 남편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고 그 권위를 공경하는 것이 아내의 소명이다.


신자인 아내가 전화를 받았는데 불신자인 남편이 상대와 통화하고 싶지 않아 “나 없다고 해요” 라고 말하는 경우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럴 때는 “여보, 거짓말은 안 할게요. 지금은 당신이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해도 괜찮겠지요?” 하고 대답하면 적절할 것이다. 아내는 남편의 권위를 공경하는 태도를 지키면서도 거짓말하라는 요청에는 불순종한 것이다.


.........................(중략)...........................


권위의 영역이 정부든, 가정이든, 교회든, 사회든 하나님은 복종과 공경의 태도를 지니라고 명령하신다. 권위가 성경에서 명백히 죄라고 하는 일을 시키지 않는 한, 행동으로 순종해야 한다. ‘명백히’ 라는 말을 강조한다.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부인하라든지 사람을 죽이라든지 다른 신을 섬기라든지 하는, 예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스르라는 명령에는 순종하지 않았다. 그런 지시는 회색 지대나 판단의 재량 문제가 아니었다.


교회 직원이 사람들에게 들은 회색 지대의 예는 이런 것이다. “우리 목사님은 근무시간 중에 사람들과 상담하거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처사가 아니며, 사랑으로 행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생각대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의 주관적 판단이다. 자기 해석이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라고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이 보수를 받는 것은 타이핑이나 서류 정리, 데이터 처리, 기타 이런저런 업무를 하기 때문이지, 기도를 하기 때문은 아니다.


본질상 이들은 불복종 때문에 도둑질을 면할 수 없다. 정말 남을 위해 기도하고 싶거든, 목사의 허락을 받아 업무가 끝난 후 (즉 자기 시간에)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 목사는 그것조차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 목사는 교회로 전화해 도움을 청하는 교인들을 상담하는 훈련을 직원들이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목사의 그런 결정이 틀렸다면 하나님이 직접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이 일은 그 목사의 권위 아래 있는 이들이 판단할 일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수많은 예 중 하나일 뿐이지만 요지는 늘 같다. 명백히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날 때만 권위에 불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일을 시키면 어떻게 하나? 누가 보기에도 어리석은 일을 내게 시킨다면? 기도 중에 하나님이 내게 보여주신 것과 반대인 일을 시키면 어떻게 하나?” 아직도 그런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다음 장에서 그런 의문에 대한 성경적 답을 제시하겠다.

-

존 비비어



*위 “목사의 그런 결정이 틀렸다면 하나님이 직접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에서 많은 목사들은 쉽게 공감을 하겠지만(얼마 전 어느 목사님의 설교 도중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말씀이 잠깐 스쳐지나갔다), 그 외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할 것 같아, 목사는 아니지만, 저것을 쉽게 공감하는 사람으로서 한마디 설명을 덧붙인다.


내가 이것을 잘 아는 이유는, 직업이 목사는 아니지만, 설교를 많이 해봐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교를 한다는 것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자기가 하는 설교로부터 자기가 자유롭지 못하다면, 즉, 자기의 설교하는 말씀을 자기가 지키지 않는 것이거나, 자기의 설교하는 말씀이 거짓이라면, 그 말씀이 곧 검이 되어 자신을 강력하게 찌르게 된다. 이것은 설교를 듣는 사람이 찔리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강력함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교를 한다는 것에는 아는 사람은 아는 중대한 책임이 따른다. 이런 것을 이해한다면,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왜 하나님의 명령인지를 조금은 더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권위를 가진 자는 편하고 권위에 복종하는 자는 불편한 것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사실은 권위에 복종하는 사람일수록 그 삶의 짐이 가볍고 권위를 가질수록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김정일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섭리다. 김정일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아주 편하고 근심 없는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권위에 관해서만큼은 한참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다. 김정일은 국가 지도자라는 큰 권위의 짐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큰 죄를 동시에 짊어지고 있다. 이처럼 무거운 짐으로 눌린 삶을 사는 사람은 세상에 흔치 않을 것이다. 김정일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다. 복한 사람들이 그 권위에 복종은 하되,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명령에는 불순종 하는 것이, 위 존 비비어의 글에서처럼, 하나님의 뜻에 합한 행위라는 것이다.

-

배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