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처음부터 형제는 없었다

최은희2007.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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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북 상주에 살고있는 28살 이남이녀를 둔 아줌마 입니다.

제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는 억울한 사연이 있어 글을 올립니다.

이제부터 나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나는 1남 4녀중 막내입니다 . 5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할머니와 나는 큰댁으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1년뒤 할머니는 내앞에서 내 걱정을 하시며 눈을 감으셨습니다. 나의 6살의 어리광은 할머니의 3일장이 끝나고 바로 없어졌으니까요. 할머니의 3일장이 끝나자 큰엄마는 6살인 나에게 청소와 밭일을 시키셨고 밖에 놀다가 오는 날이면 몽둥이로 온몸을 때리셨습니다.

 언니들과 오빠와는 나이터울이 많아 대구로 일하러 갔었고 혼자 남겨진 나는 눈치밥과 외로움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 나는 언니 오빠가 사는 대구로 와 오빠와 살게 되었습니다.

1년후 오빠는 집만 얻어주고 다니는 회사 기숙사로 들어가 버렸고 나는 또 혼자 지내게 되었습니다. 큰언니는 한달에 한번 아니면 몇달에 한번씩 들려 쌀과 김치 및 돈 일이천원을 주고는 갔습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워 신문배달을 해서 생활을 했습니다. 내가 중학교 들어갈때 쯤에는 공장을 하는 큰언니네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집에는 형부와 시어머니(형부의 새 어머니)와 의붓동생 조카가 있었습니다. 언니의 집에 들어간 나는 새로 태어난 조카를 비롯한 여섯식구의 뺄래와 청소 그리고 밥까지 다하며 식모아닌 식모생활을 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형부의 어머니도 새어머니였고 동생도 의붓동생이여서 언니도 눈치를 봐야 했던건 알고 있었고 나도 어릴쩍부터 눈치를 보고 사는것에 익숙해 아무런 표현도 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 중학교 1학년 5월쯤 어느날, 그날은 수업을 일찍마쳐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2시간 늦은 오후 5시에 집에 들어갔습니다. 나는 2시간 늦은 이유로 언니의 시동생에게 파이프로 얼굴을 제외한 온몸을 사정없이 맞았습니다. 내가 맞는 모습을 보며 큰언니랑 형부, 조카 그리고 시어머니는 밖으로 나갔다 저녘 늦게 돌아왔습니다.

온몸에 멍이 든 나는 다음날과 그 다음날까지도 학교의자에 제대로 앉지도 못할 정도 였습니다. 그렇게 맞아도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와 온갖 집안일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후에도 내가 조금만 잘못을 해도 언니의 시동생은 파이프로 발바닥을 견디지 못할정도로 때렸습니다.

싫었습니다.

 뛰쳐나가고 싶었습니다.

중3이되고 친구들은 진로 결정을 할때 나는 그런 친구들이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나는 내뜻과는 달리 구미에 있는 산업체 고등학교를 간 나는 4개월 정도 학교를 다니다 적응을 못해 학업을 포기했습니다.그리고 학교 안다니고 가출한 친구들과 지냈습니다. 나도 그런 처지였으니까요. 그아이들과 나는 다방에 취직을 했었고, 그리고 흩어지고 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1997년 5월 18일 나는 새볔에 친구들과 성서 대구은행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내친구들과 가해자는 나를 병원으로 옮겼고 나는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2달동안 나는 혼수상태로 있다가 깨어났습니다. 큰언니는 간병인을 자기 시어머니로 두었고 그 시어머니는 내가 깨어난 뒤에 정신을 못차린다고 수술한 머리를  수시로 쥐어 박았습니다. 그것을 본 다른환자의 보호자 분들이 큰언니에게 사실을 알려주었지만 상관하지 말라며 무시해 버렸습니다. 4달간 더 병원신세를 지고 퇴원한 나는 다시 돌아오고 싶지않았던 큰언니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또 예전과 같은 생활을 하면서 심지어 공장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내 교통사고에 대한 보상합의금으로 보험회사에서 1억5천5백만원을 개인합의로 시어머니입으로 3천만원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미성년자였기때문에 자기들이 대신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그 후 나는 갈수록 심해지는 큰언니 시어머니의 잔소리가 싫어 작은언니집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고 큰언니는 검정고시 학원에 보내준다는 말만 하고 나한테 기다리라고만 했습니다. 몇달을 기다리고 일년을 넘게 가다렸습니다. 나는 다시 방황했습니다. 다시 가출을 한 나는 다방일을 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사랑조차 받아보지 못한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내 남편에게는 1남2녀가 있었고 나는 그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답니다. 언제나 외톨이 였고 혼자였던나는 이제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 생긴 거였죠 . 그후 1년뒤 가족이 한명 더 늘어났습니다. 남편과 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 나는 큰언니에게 보상금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고 나의 사고 보상금을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내 남편은 형제간 우애가 깨진다고 잊어버리자고 말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잊을수가 없었습니다.

그후로도 같은 얘기를 몇번이나 하였습니다. 그럴때마다 그 보상금은 오빠랑 큰언니랑 나누어 쓰고 없다고 했습니다. 10년전에는 미성년자여서 아무것도 몰랐었지만 지금은 가정을 꾸리고 사는 나는 내가 죽었다 살아난 내 목숨값을 찾아야겠습니다. 몇일전 나는 또 보상금에 관한 얘기를 큰언니에게 하였고 큰언니의 답변은 이러 했습니다. 지금  큰언니의 아들이 대학교 일학년이고 우리집 꼬맹이가 여섯살인데 우리집 꼬맹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 언니의 아들 보고 챙겨주라고 시켰답니다.

또 그돈은 내 목숨과 같은 소중한 돈이니 돌려달라고 하니 나한테 하는 말이

 " 니 살았잖아 이럴줄 알았으면 수술동의서에 괜히 싸인해줬다 " 며 지금돈도 없고 못주니까 니 맘대로 해라 하더군요 이럼 끝난거죠.

 나에게 형제는 없습니다.

나는 더이상 그사람들의 형제가 아님니다 . 처음부터 날 동생취급도 안해주고 자기네들끼리 나는 무시하고 그런줄을 알았지만 정말 이렇게 까지 나온다는건 나를 무엇으로 생각한다는 애기일까요 ...

내가 바보일까요? 이런 주장하는 내가 잘못된 건가요 ? 나는 내것을 찾고 싶어요 .

 나는 사고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10원도 구경못한 내 사고 보상금(1억8천5백만원 : 보험회사합의금 1억5천5백만원 , 개인합의금 3천만원 )그 권리를 찾고 싶습니다.

 큰언니랑 오빠랑 둘이서 나누어 썼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저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기에 도움을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