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강릉 잠수함 사건 이들이 김포까지 올라온 것이 알려졌을 때 국군은 10m 간격으로 병력을 배치해 전 김포 지역을 훑었으나 비트를 파고들어간 이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 이들이 쓴 일기를 발견했다. 이 일기는 이들이 북한에 돌아간 후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것인데 이 일기에는 광천에 상륙한 후 어떻게 변장을 해 국군 방어망을 뚫었는지 소상히 기록돼 있었다.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96년 9월18일 강릉에서는 북한 잠수함이 좌초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북한은 북한 해군 소속의 잠수함이 통상적인 작전을 수행하다 조류에 밀려 남쪽으로 내려가 좌초했다고 주장했으나, 이 잠수함은 한국 정탐을 목적으로 내려온 것이었다(그러나 당시 소탕작전을 벌였던 합참과 국방부는 이러한 사실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첩보 세계에서는 상대에 대한 우리쪽의 분석 능력을 숨기기 위해 분석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러한 증거는 생포한 이광수에게서 얻은 것이 아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경찰에 검거돼 합심조로 넘겨져 조사를 받은 이광수는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숨겼다고 한다. 합심조의 조사를 받을 때 이광수는 잠수함 승조원이라고 진술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은 전혀 뜻밖의 자료로 확인되었다.
50년대 한국이 북파 공작원을 보내며 그들이 총부리를 반대로 돌릴까 두려워했듯이 북한 또한 남쪽으로 보낸 공작원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남한에 상륙하지 않고 상륙했다고 허위 보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작원들이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는지 체크하는 장비를 설치했는데 그것이 바로 감시 카메라다.
이 잠수함은 북한 해군이 아니라 대남 공작부대를 내려보내는 인민무력성 정찰국 소속이었다. 그래서 잠수함이 잠수한 상태에서 공작원이 물 속으로 나갈 수 있는 특수한 출입구가 설치돼 있었다. 이 출입구에는 과연 공작원이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는지를 촬영하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 잠수함이 좌초한 후 인민군은 배 내부를 파괴하고 불을 질렀지만 용케도 이 카메라와 카메라에 들어 있는 필름은 파괴되지 않았다.
이를 분석한 합심조는 필름에 잠수복 차림의 이광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잠수복 차림의 이광수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잠수함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장면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추궁하자, 이광수는 잠수함을 운영하는 승조원이 아니라 공작원을 육지로 상륙시키는 안내원이라고 실토했다. 잠수함이 좌초하기 전에 이광수는 공작원을 데리고 한국 해안에 상륙했다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다시 공작원을 태우러 갔다가 그만 잠수함이 바위에 걸려 좌초한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광수는 과거 남한의 다른 곳에도 공작원을 상륙시킨 적이 있었다. 98년 12월 남해 여수 앞바다에서는 북한 노동당의 지휘를 받는 반잠수정이 상륙해, 고정간첩을 태우고 빠져나가다 해군 함정에 걸려 격침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소식통에 따르면 전향한 이후 이광수는 반잠수정 격침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곳은 북한에서 특수 공작대를 상륙시키는 중요한 상륙지점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제보했다고 한다.
김정일이 인공위성 발사를 요구한 이유 이러한 사실들은 적어도 96년 이전에는 북한의 인민군 정찰국이 특수공작부대를 한국에 파견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폭파와 테러 등은 하지 않고 정보 수집에 주력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이 제공하는 첩보위성 사진 덕분에 아예 대북 공작부대를 보내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하지 않는데 이북은 정보를 얻기 위해 계속해서 정전협정을 위반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북한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미국에 제시했다. 한 북한 전문가의 분석이다.
“최근 미국과의 미사일 협상에서 북한은 미국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주면 미사일 발사를 중지하겠다고 제의했다. 첩보위성은 덩치가 크기 때문에 이를 우주 공간으로 쏘아 올리려면 추력이 강한 로켓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이 개발한 대포동 로켓은 이러한 위성을 쏘아 올릴 추력이 없다. 농구공만한 크기의 광명성 위성을 겨우 쏘아 올릴 추력을 낼 뿐이다.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 상당기간이 지나도 북한의 과학기술로는 첩보위성을 쏘아 올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미사일 발사와 수출을 계속하겠다고 위협해 미국으로 하여금 그들이 원하는 첩보위성을 쏘아 올리게 하려는 것이다.”
남북 첩보전쟁에는 남북이 집요하게 추구하는 국가 이익이 깔려 있다. 이 과정에 희생되는 것은 공작원들이다. 80명이던 목장 1기생 중 현재 생존이 확인된 사람은 20여명이다. 북한에 들어갔다가 죽거나 북한으로 귀순했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도 적잖은 수모를 겪어야 했다. 뜻밖의 냉대에 부딪혀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김씨와 함께 사선을 넘은 이철수·홍민수씨가 그런 경우다. 김씨의 말이다.
“내가 사는 곳 부근에서 살인이나 강도 같은 강력 사건이 일어나면 관할지역 형사들이 가장 먼저 내게 달려왔다. 이들은 ‘살인 사건이 일어난 날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며 알리바이가 성립될 때까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 반복될 때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넘겼다. 그러나 세 번 이상 반복되자 ‘나를 뭘로 보는가’ 싶어 분노가 일었다. 그래서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구느냐’고 박차고 일어나면, 10여명의 형사가 에워쌌다. 개중에는 권총을 뽑아드는 형사도 있었다. 그들은 나를 살인 병기쯤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 더러 형사들로부터 맞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생활에 서툴러 사회 적응이 쉽지 않았는데, 강력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형사들이 달려와 괴롭히니 세상으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추측하건대 과거부터 우리를 관리해온 ○○부대에서 우리 신상에 관한 자료를 경찰에 넘겨준 것 같다.”
왕따 당하는 공작원 출신 이런 일이 반복되자 직장에서도 이들을 수상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사선을 함께 넘은 이씨와 홍씨는 나만큼도 표현력이 없는 사내였다. 이들은 점점 더 사회로부터 소외되자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씨는 왜 북파공작원들이 시위를 벌이는지에 대해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이북은 공작원들에게 벤츠를 제공하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훈장 하나와 사회의 냉대뿐이었다. 그래도 북한이니까 그렇지, 하고 참아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광주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에 대해 일일이 보상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민주화도 국가가 있어야 민주화가 되는 것 아닌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에게는 덜렁 훈장 하나만 주고,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에게는 큰 보상비를 주는 것을 보고 나는 크게 실망했다.
사회의 냉대 속에서 상당수 북파 공작원들은 정신질환으로 고생을 한다. 나도 철없던 시절에 저지른 인민군 사살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한참 정신적으로 지쳐 있을 때면 마지막 침투 때 확인사살을 한 인민군들이 도끼와 낫을 들고 내게 덤벼드는 꿈을 꾸곤 했다. 이러한 나를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주었는가.
내가 총상을 입었을 때 왜 병장으로 전역시켰는지를 이제서야 알았다. 군인은 국가의 명령을 받고 근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부상을 입거나 전사를 해도 약간의 보훈 지원이 나오는 것 외에는 다른 지원이 없다. 그러나 민간인이 국가를 위해 싸우다 죽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북한에 들어갈 때 나는 분명히 민간인이었다.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을 냉대하는 국가가 잘 될 수는 없다. 이러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우리는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게 된 것이다.”
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OO연대) vs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
조선로동당 대남공작 부서의 조직과 인원 예산은 얼마나 될까. 한국을 드나드는 북한 공작원의 수는 얼마나 되고, 이들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이에 맞선 한국의 대공수사기관이 펼치는 역공작은…? 6·25전쟁 후 조선로동당은, 남조선 혁명을 이루지 못하고 사라진 남로당의 유업을 이어받기 위해 끊임없이 지하당을 구축해왔다. 지하당 구축의 달인인 정경희와 이선실, 그리고 북한 공작원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검열 나온 검열간첩 김동식 등등….
김대중 정부 들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북정책이다. 지난해 6월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김대통령을 비롯한 이 시대인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은, 이 회담을 남북 통일을 향한 초석으로 만드는 것이다. 정상회담으로 시작된 남북 교류를 통일 물꼬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조심해야 할 것인가.
통일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남북한군 사이에 군사력 감축(軍縮)이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북한은 병영국가이기 때문에 군축에 매우 소극적일 것이다. 따라서 북한을 군축 협상에 끌어내고 실질적인 군축을 이뤄낸다면, 한국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이 된다’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 과연 그럴까? 북한을 군축 협상에 끌어내 군축 합의문에 서명케 하는 것이 북한을 굴복시켜 역사적인 남북통일로 가게 하는 첩경이 될 것인가?
북한에서는 군사력 감축을 ‘축감(縮減)’이라고 표현한다. 북한에서 실력자로 있다가 귀순한 엘리트 탈북자는 “한국인들이여 꿈에서 깨어나라!”고 외쳤다. 그는 “정상회담 후 김대중 대통령은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통일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은 인민들에게 2004년까지 통일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통일 시기를 정해 놓은 것은 통일방안을 마련해 놓았다는 뜻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은 열심히 축감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축감은 오히려 북한이 잘할 것이다. 축감 협상 주도권은 북한이 쥘 것이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6·15 공동선언 제1항에는 ‘통일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 가자’는 문구가 있다(自主 조항). 한국 사회에서는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 대해 신경을 쓰는 사람이 사라졌지만, 북한에서는 6·15 공동선언을 잘 이행하자는 목소리가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왜 북한은 6·15 공동선언 이행을 강조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은 6·15 공동선언을 그들 주도 통일의 초석으로 보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군사력 축감을 위한 예비 회담을 가지면, 북한은 6·15 선언의 자주 조항에 따라 미국을 배제하고 본회담을 갖자고 주장할 것이다. 한국 역시 민족주의가 강한 만큼 이를 받아들여, 남북한은 단독으로 군사력 축감을 위한 본회담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한국 지식인들은, 병영국가 북한이 군사력을 축감하는데 부정적일 것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때문에 북한은 축감을 피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철수하라, 주한미군을 줄이는 만큼 인민군을 줄이겠다’고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큰 오산이다. 물론 협상 초기에는 북한이 이런 식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다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하는 한국측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주한미군 주둔에 동의해 주면 한국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고 역공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이 역공이다.
여기서 북한은 단물(경제적 지원)을 최대한 짜낸 뒤, ‘주한미군은 상징적으로만 축감하라’고 제의해, 한국의 동의를 받아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국은 국군과 주한미군을 합쳐 15만을 축감하고 북조선 인민군도 15만 명을 축감한다’는 합의서에 서명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한미군을 상징적으로만 철수했을 뿐 실제적으로는 축소하지 않아, 한국은 군축회담을 성공리에 마무리지었다고 자축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전략에 말려든 결과가 된다.”
“북한은 군축에 적극적이다”
북한은 왜 주한미군 철수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 이 소식통의 분석은 예리하게 이어진다.
“한국군에서 제대한 15만 병사는 뿔뿔이 집으로 흩어져 생업에 종사하게 된다. 생업에 들어가면서 동원예비군이 되겠지만, 동원예비군은 과거의 전우가 아닌 생소한 사람들과 편성되는 것이므로 이들의 전투력은 급격히 저하된다. 그러나 북한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북한은 제대 병력을 뿔뿔이 흩는 우(愚)를 범하지 않는다. 북한이 병영국가로 불리는 것은 기업소와 관공소 등이 모두 군대 체제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기업소의 총사장은 사단장이고, 반장은 소대장이다.
따라서 군복을 작업복으로 갈아입히고총대신 망치를 잡게 해, ‘고향 앞으로’가 아니라 ‘기업소 앞으로 헤쳐 모여’를 명령하는 것이다. 광산이나 기업소에는 한국의 동원예비군에 비교되는 교도대 조직이 있다. 이들은 사단 편제 그대로 여기에 편입된다.
이러한 교도대는 하루아침에 현역 사단으로 변모할 수가 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1개 군단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는데, 그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의 축감은 실질적인 군사력 저하지만, 북한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북한은 축감에 적극적일 수 있다.
북한은 주한미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이 군사적으로 대칭 관계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 철수를 고집해 2004년 통일이라는 목표를 놓치기보다는 실질적으로 한국군의 전투력을 약화시켜 통일을 이루는 방안을 찾으려 할 것이다. 한국은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북한과의 축감 회담에 응해야 한다.
두 번째로 한국은, 인민군 축감이 실제적인 축감이 되도록 하는 방안을 찾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즉 광산이나 기업소의 교도대로 전환된 인원이 다시 현역화할 수 없도록, 이들이 쓰던 무기를 폐기하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북한은 한국이 병력뿐만 아니라 무기 축감도 주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중국이나 러시아와 비밀 협정을 맺어, 축감 회담이 진행되는 도중 축감될 병력이 사용하던 무기를 두 나라로 옮길 가능성이 있다. 최근 북한이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복원하는데 노력하는 것은 이러한 관점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북한의 무기 빼돌리기가 시작되면 미국은 이를 눈치채고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정보를 받은 한국은 미국이나 UN을 동원해 북한의 무기 빼돌리기를 감시케 하려고 할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은 6·15 공동 선언 제1항의 자주를 거론하며 ‘외세는 개입하지 말라’고 맞설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있기 때문에 북한은 ‘6·15 공동선언을 준수하라’ ‘2004년에 통일하겠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 첩보전쟁 반세기(3)
96년 강릉 잠수함 사건
이들이 김포까지 올라온 것이 알려졌을 때 국군은 10m 간격으로 병력을 배치해 전 김포 지역을 훑었으나 비트를 파고들어간 이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 이들이 쓴 일기를 발견했다. 이 일기는 이들이 북한에 돌아간 후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것인데 이 일기에는 광천에 상륙한 후 어떻게 변장을 해 국군 방어망을 뚫었는지 소상히 기록돼 있었다.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96년 9월18일 강릉에서는 북한 잠수함이 좌초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북한은 북한 해군 소속의 잠수함이 통상적인 작전을 수행하다 조류에 밀려 남쪽으로 내려가 좌초했다고 주장했으나, 이 잠수함은 한국 정탐을 목적으로 내려온 것이었다(그러나 당시 소탕작전을 벌였던 합참과 국방부는 이러한 사실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첩보 세계에서는 상대에 대한 우리쪽의 분석 능력을 숨기기 위해 분석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러한 증거는 생포한 이광수에게서 얻은 것이 아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경찰에 검거돼 합심조로 넘겨져 조사를 받은 이광수는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숨겼다고 한다. 합심조의 조사를 받을 때 이광수는 잠수함 승조원이라고 진술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은 전혀 뜻밖의 자료로 확인되었다.
50년대 한국이 북파 공작원을 보내며 그들이 총부리를 반대로 돌릴까 두려워했듯이 북한 또한 남쪽으로 보낸 공작원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남한에 상륙하지 않고 상륙했다고 허위 보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작원들이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는지 체크하는 장비를 설치했는데 그것이 바로 감시 카메라다.
이 잠수함은 북한 해군이 아니라 대남 공작부대를 내려보내는 인민무력성 정찰국 소속이었다. 그래서 잠수함이 잠수한 상태에서 공작원이 물 속으로 나갈 수 있는 특수한 출입구가 설치돼 있었다. 이 출입구에는 과연 공작원이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는지를 촬영하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 잠수함이 좌초한 후 인민군은 배 내부를 파괴하고 불을 질렀지만 용케도 이 카메라와 카메라에 들어 있는 필름은 파괴되지 않았다.
이를 분석한 합심조는 필름에 잠수복 차림의 이광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잠수복 차림의 이광수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잠수함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장면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추궁하자, 이광수는 잠수함을 운영하는 승조원이 아니라 공작원을 육지로 상륙시키는 안내원이라고 실토했다. 잠수함이 좌초하기 전에 이광수는 공작원을 데리고 한국 해안에 상륙했다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다시 공작원을 태우러 갔다가 그만 잠수함이 바위에 걸려 좌초한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광수는 과거 남한의 다른 곳에도 공작원을 상륙시킨 적이 있었다. 98년 12월 남해 여수 앞바다에서는 북한 노동당의 지휘를 받는 반잠수정이 상륙해, 고정간첩을 태우고 빠져나가다 해군 함정에 걸려 격침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소식통에 따르면 전향한 이후 이광수는 반잠수정 격침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곳은 북한에서 특수 공작대를 상륙시키는 중요한 상륙지점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제보했다고 한다.
김정일이 인공위성 발사를 요구한 이유
이러한 사실들은 적어도 96년 이전에는 북한의 인민군 정찰국이 특수공작부대를 한국에 파견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폭파와 테러 등은 하지 않고 정보 수집에 주력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이 제공하는 첩보위성 사진 덕분에 아예 대북 공작부대를 보내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하지 않는데 이북은 정보를 얻기 위해 계속해서 정전협정을 위반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북한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미국에 제시했다. 한 북한 전문가의 분석이다.
“최근 미국과의 미사일 협상에서 북한은 미국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주면 미사일 발사를 중지하겠다고 제의했다. 첩보위성은 덩치가 크기 때문에 이를 우주 공간으로 쏘아 올리려면 추력이 강한 로켓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이 개발한 대포동 로켓은 이러한 위성을 쏘아 올릴 추력이 없다. 농구공만한 크기의 광명성 위성을 겨우 쏘아 올릴 추력을 낼 뿐이다.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 상당기간이 지나도 북한의 과학기술로는 첩보위성을 쏘아 올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미사일 발사와 수출을 계속하겠다고 위협해 미국으로 하여금 그들이 원하는 첩보위성을 쏘아 올리게 하려는 것이다.”
남북 첩보전쟁에는 남북이 집요하게 추구하는 국가 이익이 깔려 있다. 이 과정에 희생되는 것은 공작원들이다. 80명이던 목장 1기생 중 현재 생존이 확인된 사람은 20여명이다. 북한에 들어갔다가 죽거나 북한으로 귀순했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도 적잖은 수모를 겪어야 했다. 뜻밖의 냉대에 부딪혀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김씨와 함께 사선을 넘은 이철수·홍민수씨가 그런 경우다. 김씨의 말이다.
“내가 사는 곳 부근에서 살인이나 강도 같은 강력 사건이 일어나면 관할지역 형사들이 가장 먼저 내게 달려왔다. 이들은 ‘살인 사건이 일어난 날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며 알리바이가 성립될 때까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 반복될 때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넘겼다. 그러나 세 번 이상 반복되자 ‘나를 뭘로 보는가’ 싶어 분노가 일었다. 그래서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구느냐’고 박차고 일어나면, 10여명의 형사가 에워쌌다. 개중에는 권총을 뽑아드는 형사도 있었다. 그들은 나를 살인 병기쯤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 더러 형사들로부터 맞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생활에 서툴러 사회 적응이 쉽지 않았는데, 강력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형사들이 달려와 괴롭히니 세상으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추측하건대 과거부터 우리를 관리해온 ○○부대에서 우리 신상에 관한 자료를 경찰에 넘겨준 것 같다.”
왕따 당하는 공작원 출신
이런 일이 반복되자 직장에서도 이들을 수상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사선을 함께 넘은 이씨와 홍씨는 나만큼도 표현력이 없는 사내였다. 이들은 점점 더 사회로부터 소외되자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씨는 왜 북파공작원들이 시위를 벌이는지에 대해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이북은 공작원들에게 벤츠를 제공하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훈장 하나와 사회의 냉대뿐이었다. 그래도 북한이니까 그렇지, 하고 참아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광주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에 대해 일일이 보상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민주화도 국가가 있어야 민주화가 되는 것 아닌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에게는 덜렁 훈장 하나만 주고,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에게는 큰 보상비를 주는 것을 보고 나는 크게 실망했다.
사회의 냉대 속에서 상당수 북파 공작원들은 정신질환으로 고생을 한다. 나도 철없던 시절에 저지른 인민군 사살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한참 정신적으로 지쳐 있을 때면 마지막 침투 때 확인사살을 한 인민군들이 도끼와 낫을 들고 내게 덤벼드는 꿈을 꾸곤 했다. 이러한 나를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주었는가.
내가 총상을 입었을 때 왜 병장으로 전역시켰는지를 이제서야 알았다. 군인은 국가의 명령을 받고 근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부상을 입거나 전사를 해도 약간의 보훈 지원이 나오는 것 외에는 다른 지원이 없다. 그러나 민간인이 국가를 위해 싸우다 죽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북한에 들어갈 때 나는 분명히 민간인이었다.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을 냉대하는 국가가 잘 될 수는 없다. 이러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우리는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게 된 것이다.”
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OO연대) vs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
조선로동당 대남공작 부서의 조직과 인원 예산은 얼마나 될까. 한국을 드나드는 북한 공작원의 수는 얼마나 되고, 이들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이에 맞선 한국의 대공수사기관이 펼치는 역공작은…?
6·25전쟁 후 조선로동당은, 남조선 혁명을 이루지 못하고 사라진 남로당의 유업을 이어받기 위해 끊임없이 지하당을 구축해왔다. 지하당 구축의 달인인 정경희와 이선실, 그리고 북한 공작원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검열 나온 검열간첩 김동식 등등….
김대중 정부 들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북정책이다. 지난해 6월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김대통령을 비롯한 이 시대인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은, 이 회담을 남북 통일을 향한 초석으로 만드는 것이다. 정상회담으로 시작된 남북 교류를 통일 물꼬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조심해야 할 것인가.
통일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남북한군 사이에 군사력 감축(軍縮)이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북한은 병영국가이기 때문에 군축에 매우 소극적일 것이다. 따라서 북한을 군축 협상에 끌어내고 실질적인 군축을 이뤄낸다면, 한국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이 된다’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 과연 그럴까? 북한을 군축 협상에 끌어내 군축 합의문에 서명케 하는 것이 북한을 굴복시켜 역사적인 남북통일로 가게 하는 첩경이 될 것인가?
북한에서는 군사력 감축을 ‘축감(縮減)’이라고 표현한다. 북한에서 실력자로 있다가 귀순한 엘리트 탈북자는 “한국인들이여 꿈에서 깨어나라!”고 외쳤다. 그는 “정상회담 후 김대중 대통령은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통일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은 인민들에게 2004년까지 통일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통일 시기를 정해 놓은 것은 통일방안을 마련해 놓았다는 뜻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은 열심히 축감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축감은 오히려 북한이 잘할 것이다. 축감 협상 주도권은 북한이 쥘 것이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6·15 공동선언 제1항에는 ‘통일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 가자’는 문구가 있다(自主 조항). 한국 사회에서는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 대해 신경을 쓰는 사람이 사라졌지만, 북한에서는 6·15 공동선언을 잘 이행하자는 목소리가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왜 북한은 6·15 공동선언 이행을 강조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은 6·15 공동선언을 그들 주도 통일의 초석으로 보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군사력 축감을 위한 예비 회담을 가지면, 북한은 6·15 선언의 자주 조항에 따라 미국을 배제하고 본회담을 갖자고 주장할 것이다. 한국 역시 민족주의가 강한 만큼 이를 받아들여, 남북한은 단독으로 군사력 축감을 위한 본회담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한국 지식인들은, 병영국가 북한이 군사력을 축감하는데 부정적일 것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때문에 북한은 축감을 피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철수하라, 주한미군을 줄이는 만큼 인민군을 줄이겠다’고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큰 오산이다. 물론 협상 초기에는 북한이 이런 식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다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하는 한국측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주한미군 주둔에 동의해 주면 한국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고 역공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이 역공이다.
여기서 북한은 단물(경제적 지원)을 최대한 짜낸 뒤, ‘주한미군은 상징적으로만 축감하라’고 제의해, 한국의 동의를 받아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국은 국군과 주한미군을 합쳐 15만을 축감하고 북조선 인민군도 15만 명을 축감한다’는 합의서에 서명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한미군을 상징적으로만 철수했을 뿐 실제적으로는 축소하지 않아, 한국은 군축회담을 성공리에 마무리지었다고 자축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전략에 말려든 결과가 된다.”
“북한은 군축에 적극적이다”
북한은 왜 주한미군 철수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 이 소식통의 분석은 예리하게 이어진다.
“한국군에서 제대한 15만 병사는 뿔뿔이 집으로 흩어져 생업에 종사하게 된다. 생업에 들어가면서 동원예비군이 되겠지만, 동원예비군은 과거의 전우가 아닌 생소한 사람들과 편성되는 것이므로 이들의 전투력은 급격히 저하된다. 그러나 북한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북한은 제대 병력을 뿔뿔이 흩는 우(愚)를 범하지 않는다. 북한이 병영국가로 불리는 것은 기업소와 관공소 등이 모두 군대 체제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기업소의 총사장은 사단장이고, 반장은 소대장이다.
따라서 군복을 작업복으로 갈아입히고총대신 망치를 잡게 해, ‘고향 앞으로’가 아니라 ‘기업소 앞으로 헤쳐 모여’를 명령하는 것이다. 광산이나 기업소에는 한국의 동원예비군에 비교되는 교도대 조직이 있다. 이들은 사단 편제 그대로 여기에 편입된다.
이러한 교도대는 하루아침에 현역 사단으로 변모할 수가 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1개 군단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는데, 그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의 축감은 실질적인 군사력 저하지만, 북한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북한은 축감에 적극적일 수 있다.
북한은 주한미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이 군사적으로 대칭 관계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 철수를 고집해 2004년 통일이라는 목표를 놓치기보다는 실질적으로 한국군의 전투력을 약화시켜 통일을 이루는 방안을 찾으려 할 것이다. 한국은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북한과의 축감 회담에 응해야 한다.
두 번째로 한국은, 인민군 축감이 실제적인 축감이 되도록 하는 방안을 찾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즉 광산이나 기업소의 교도대로 전환된 인원이 다시 현역화할 수 없도록, 이들이 쓰던 무기를 폐기하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북한은 한국이 병력뿐만 아니라 무기 축감도 주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중국이나 러시아와 비밀 협정을 맺어, 축감 회담이 진행되는 도중 축감될 병력이 사용하던 무기를 두 나라로 옮길 가능성이 있다. 최근 북한이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복원하는데 노력하는 것은 이러한 관점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북한의 무기 빼돌리기가 시작되면 미국은 이를 눈치채고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정보를 받은 한국은 미국이나 UN을 동원해 북한의 무기 빼돌리기를 감시케 하려고 할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은 6·15 공동 선언 제1항의 자주를 거론하며 ‘외세는 개입하지 말라’고 맞설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있기 때문에 북한은 ‘6·15 공동선언을 준수하라’ ‘2004년에 통일하겠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