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통은 북한은 한국민을 상대로 자주 조항을 더 강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민을 자극해, ‘김정일=민족주의자’라는 등식을 심어줘, ‘김정일=공산주의자’라는 인식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암암리에 한국 흔들기에 들어간다. 지하당을 이용한 대남 공작을 강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상회담 이후의 남북 협상 과정을 보면, 조선로동당 대남비서 김용순(金容淳)이 계속 전면에 나서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김용순은 조선로동당에서 대남 업무에 참여하는 통일전선부·작전부·사회문화부·대외정보조사부를 책임진 ‘비서’이자, 북한의 통일 방안을 마련하는 통일전선부의 부장이다. 그러한 김용순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 장소로 유력시되는 제주도를 사전답사하고 돌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대남공작 최고책임자가 남북협상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남북협상과 대남공작을 한 묶음으로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조선로동당 4개 대남 부서에 대항하는 한국의 4대 기관은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경찰청 보안국·국군기무사령부 방첩처 그리고 국군정보사령부이다. 앞의 3개 기관은 북한에서 파견한 공작원을 잡는 대공수사기관이고, 국군정보사는 북한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기관이다. 기무사 방첩처는 주로 군대에 침투한 간첩이나 좌익 사범을 추적하고, 경찰 보안국과 국정원 대공수사국은 일반 사회에서의 간첩사건을 추적한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4개 기관은 간첩 사건이 발생하면 즉각 ‘합신조(합동신문조)’를 구성해 수사에 착수하고 있다.
기자는 조선로동당의 대남공작을 알기 위해 앞의 3개 기관 공보실에 취재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 경찰청 공보실은 보안국 요원과 전화 통화를 하는 데까지는 도와주었으나, 보안국 요원들은 하나같이 “시절이 시절인만큼 취재에 응할 수 없다. 양해해 달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국정원과 기무사에서는 아예 연락조차 없었다. 그러나 4년여 전부터 기자는 탈북자나 귀순자를 만나 차근차근 북한의 공작 조직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왔다.
귀순자들은 대개 국정원이나 경찰 관계자와 함께 기자를 만났다. 귀순자들은 이들을 의식해, 북한의 대남공작 조직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려 했다. 그러나 이 사람 저 사람의 이야기를 수집해 가자 서서히 북한의 대남공작 조직의 실체가 잡히기 시작했다. 이러한 취재를 통해 기자가 내린 결론은 놀랍게도 ‘광복 전후 남한 땅에서 벌어졌던 남로당과 경찰 간의 싸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였다.
남로당 서울지도부와 한민전
남로당은 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로 이어져 왔다. 그리고 간첩사건 때마다 거론되는 지하당을 거쳐,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조직을 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로 통칭하기로 한다. 평양에서 이를 지휘하는 사람이 곧 조선로동당 대남비서인 김용순인 것이다(남로당과 조선로동당 관계에 대해서는 이 기사 말미에 있는 별도 기사를 참조하기 바람).
광복 전후 이땅의 대공수사기관은 경찰과 SIS와 CIC로 불렸던 군 방첩부대(기무사의 전신)뿐이었다. 1961년 6월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가 창설되면서 대공수사국이 추가됐는데, 이때부터는 국정원이 대공수사 기관의 대표가 되었다.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을 제치고 남조선 혁명을 완성하려는 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의 지독한 투쟁이 ‘대남공작’이고, 이러한 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를 뿌리째 뽑아내겠다는 것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의 엄숙한 다짐이 ‘대공투쟁’인 것이다.
조선로동당 4개 대남부서 중에서 ‘수석’은 통일전선부(통전부)다. 김용순은 물론이고 이효순·김중린·허담 등 역대 통일전선부장은 조선로동당의 대남 비서를 겸했다. 통전부는 북한이 추진하는 대남공작의 기본 골격을 만드는 곳이다. 북한이 추진하는 통일방안을 만드는 싱크탱크 격이다. 이산가족 만남을 위한 적십자회담이나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회담은 전부 이곳에서 도맡는다. 남한 땅에 떨어지는 북한 삐라도 대부분 이곳에서 만들고 있다. 통전부 요원은 영사 직함으로 해외에 나가 해외교포 포섭활동도 한다. 일본에 있는 조총련도 이곳에서 관장하고 있다.
한국에서 육군 소장을 달고 논산훈련소장을 지낸 최홍희(현재 캐나다 거주)와 육군 중장 출신으로 외무부장관을 지낸 최덕신(崔德新·사망)이 1979년과 1986년 북한으로 망명했다. 이 사건은 97년 발생한 황장엽 비서의 한국 망명 만큼이나 충격적이었는데, 두 사람을 상대로 포섭 공작을 한 것이 바로 통전부였다. 최근 남북협상 과정에서 전면에 등장하는 ‘아·태평화위’와 그전에 자주 등장했던 ‘조평통’, 그리고 8·15 대회를 주도하는 범민련 북측본부 등은 전부 통전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고 있다.
통전부가 북한의 통일방안을 만드는 ‘두뇌’라면 사회문화부는 통전부가 만든 통일방안을 실행하는 ‘수족’이다. 사회문화부는 남한으로 침투해 지하당(서울지도부)을 만드는 일을 한다. 92년까지 지하당인 남조선로동당을 만들어 관리해 오다 북한으로 도주해 지난해 북한에서 사망한 ‘할머니 공작원’ 이선실, 95년 10월24일 부여에서 총격전을 벌이다 검거된 ‘부여간첩’ 김동식, 97년 10월27일 부인 강연정과 함께 울산에 침투했다가 검거된 후 부인은 자살한 ‘울산부부간첩’ 최정남, 98년 12월까지 민혁당을 지도하다 여수앞바다에서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으로 돌아가다 해군 광명함의 포격을 받아 반잠수정이 격침됨으로써 사망한 윤태림 등이 전부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이었다.
유고급 잠수정 운영하는 작전부
이러한 사회문화부와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것이 작전부다. 작전부는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을 한국으로 침투시키고, 임무를 마친 공작원을 북한으로 데려오는 일을 한다.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수십 개의 침투 지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 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작전부(당시는 조사부라고 했다)는 휴전선을 통해 주로 육상으로 침투했다. 그러나 한국이 남방한계선 전체에 철책을 친 다음부터는 해상침투가 많아졌다. 해상침투를 위해 작전부는 서해의 남포와 해주, 동해의 원산과 청진에 연락소를 운영하고 있다.
작전부는 크게 두 종류의 선박을 운영한다. 하나는 유고급 잠수정이고 다른 하나는 반잠수정이나 자선을 싣고 다니는 공작모선이다. 유고급 잠수정은 수심이 깊은 동해에서 주로 이용되고, 공작모선은 동·서해 모두에서 활용되고 있다. 한국 해군은 그동안 자선은 여러번 격침시켰다. 그러나 반잠수정 격침은 드문 편이다.
반잠수정은 대개 5t급으로, 275마력짜리 OMC엔진을 세 개 달고 있다. 30(시속 55km 정도)내지 35노트로 달리는 일반 모터보트에 붙이는 엔진의 대당 가격이 1000만∼1500만원인데 반해, OMC엔진의 대당 가격은 무려 5000여 만원이다. 이렇게 좋은 엔진을 세 개나 달고 있기 때문에 반잠수정은 57노트(시속 102km 정도)까지 달릴 수 있다. 한국 해군 함정 중에서 가장 빠른 고속정도 35노트 이상은 달릴 수 없다. 따라서 반잠수정은 보고도 놓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해군은 이러한 반잠수정을 딱 두 번 격침시켰다. 1983년 12월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 이상규와 전충남을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 상륙시키고 빠져나가던 반잠수정을 격침시킨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로는 98년 12월 여수 해안에서 민혁당을 지도한 윤태림을 태우고 빠져나가던 반잠수정을 수십 척의 함정을 동원해 차단함으로써 완벽히 격침시킨 적이 있다.
공작모선은 대개 80t급으로 북한에서 제작한 1100마력짜리 라시보 엔진 4대를 달고 있어, 최고 53노트까지 달릴 수 있다. 한국 해군은 이러한 공작모선을 딱 한번 격침시켰다. 1983년 8월13일 울릉도 부근에서 작전하던 구축함 ‘강원함’(DD-922)은 ‘어선인지 상선인지, 또 국적이 어디인지’가 불분명한 선박을 발견하고 정선(停船)을 명령했다. 작전부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으로도 침투한다(일본 침투에 대해서는 뒤에서 밝힌다). 이 선박은 ‘풍산호’라는 위장 명칭을 붙이고 일본으로 가던 공작모선이었다.
정선 명령을 받은 풍산호는 전속력으로 도주했다. 강원함의 최고 속도는 30노트에 불과했으나 이 함정에는 헬기가 실려 있었다. 간첩선이라고 판단한 강원함은 헬기를 띄워 풍산호를 격침시켰다. 해군 함정 중에 유일하게 공작모선을 잡은 강원함은 2000년 12월 퇴역했다.
1999년 3월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은 수상한 선박을 발견해 정선 명령을 내렸으나 이 선박은 소총을 쏘며 고속으로 청진까지 도주했다. 불심검문을 거부하고 했다고 해서 일본에서는 ‘불심선(不審船)’으로 불렸던 이 선박도 작전부가 운영하는 공작모선이었다.
80t급인 유고급 잠수정은 아예 발견조차도 않되는 경우가 많은데 98년 6월 22일 속초 앞바다에서 우연찮게 걸려들었다. 잠수함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어선들이 쳐놓은 그물이다. 그물이 잠수함 스크루에 걸리면 오도가도 못 하므로 물 위로 부상한 다음, 사람이 나가서 칼로 그물을 잘라내야 한다. 이날 유고급 잠수정은 어민들이 쳐놓은 꽁치 그물에 걸려들었다. 물위로 부상한 잠수정은 승조원을 밖으로 내보내 칼로 그물을 뜯어내다가 어민에게 발견되었다. 어민 신고를 받는 해군 함정이 달려오자 승조원들은 잠수정 안으로 들어가 폭사(爆死)했다(유고급 잠수정은 작전부에서 운용하나 덩치가 큰 300t급의 상어급 잠수함은 인민무력성(인민군) 산하 정찰국에서 운영한다. 상어급 잠수함은 96년 9월 강릉에서 좌초한 바 있다).
간첩은 포경수술을 하지 않는다
공작모선으로 침투할 경우에는 해안에서 40해리(약 72km) 떨어진 곳에서 반잠수정을 내린다. 그러나 유고급 잠수정으로 침투하면 1∼2km까지 바짝 접근한다. 해안까지의 거리가 1km 내외일 경우 작전부 소속 안내조와 사회문화부 소속의 공작원이 오리발을 신고 수영해서 침투한다. 그 이상일 경우에는 추진기를 타고 들어온다. 추진기는 스크루를 가진 소형 엔진인데, 수중에서 이를 붙잡고 있으면 수영보다 훨씬 빠른 3∼5노트의 속도로 침투할 수가 있다(추진기는 스쿠터라고도 하는데, 스쿠버를 즐기는 사람들은 잠수시 스쿠터를 자주 이용한다. 스쿠터는 이미 레저 용품이 된 지 오래다).
추진기는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이 아니라 작전부 소속의 안내조를 침투시킬 때 주로 이용한다. 2명으로 구성된 안내조는 육상에 올라가 약정한 드보크에 공작원에게 전달할 물품(돈이나 무기, 난수표 등)을 묻어놓거나, 공작원이 드보크에 묻어놓은 물품을 갖고 돌아온다. 추진기에는 통상 3명이 타는데, 추진기를 조작하는 추진기 기수는 육상에 올라간 안내조가 돌아올 때까지 추진기를 갖고 해안에서 기다린다. 공기통은 추긴기 기수만 매는데, 공기통에서 3개의 호흡대를 뽑아내 추진기 기수와 안내조 2명이 입에 물고 호흡을 한다.
98년 7월12일 묵호 앞바다에서는 이러한 추진기와, 공기통을 맨 채 사망한 추진기 기수 시체가 발견되었다. 수면의 기압은 1기압이나 10m의 바닷속은 2기압이다. 2기압 속에 있다가 갑자기 1기압으로 나오면 허파 속에 있던 공기와 혈관 속에 있던 공기의 부피가 두 배로 커진다. 이렇게 되면 혈관 속에 있던 작은 공기방울이 커져 머리로 연결된 뇌혈관을 막는다. 공기방울이 뇌혈관을 막아 피를 흐르지 못하게 하면 사람은 입과 코로 피를 흘리며 사망한다. 잠수 세계에서는 이를 ‘공기 색전증(塞栓症)이라고 하는데, 추진기 기수는 공기색전증으로 죽은 것이었다. 그러나 함께 추진기를 타고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안내조 2명은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작전부의 안내조는 사격이나 특공무술 훈련도 받기 때문에 테러나 암살 임무도 수행한다. 울산부부간첩 최정남의 진술에 따르면 96년 분당에서 김정일의 처이질 이한영을 저격 사망케 한 것도 작전부였다고 한다.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남자 시체가 해안에서 발견되었다. 합신조가 달려가 죽은 사람이 무기를 갖고 있는지, 이 사람의 지문이 남한에 있는지 등을 면밀히 조사해 간첩인지의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대공수사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에 따르면 한눈에 죽은 자가 간첩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고 한다.
이 남자의 ‘거시기’에 ‘고래가 잡혀 있으면’(包莖수술을 했으면) 남한인이고, 그렇지 않으면 북한인이다. 북한 공작원들은 왜 포경수술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에는 아직 포경수술을 하는 문화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작원도 그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 지내는 것이다. 때문에 합신조에 참가한 사람들은 과학적인 수사에 앞서 변사자의 생식기부터 살피게 된다.
대외정보조사부(조사부)는 영사와 무역원으로 위장해, 해외에서 교민이나 외국으로 온 한국인을 상대로 공작한다. 작전부가 조사부던 시절, 대외정보조사부는 작전부 산하의 조사실이었다. 그러다 81년 조사부가 작전부가 되면서 조사실이 독립해 대외정보조사부가 되었다. 1978년 홍콩에서 최은희·신상옥 부부를 북한으로 납치한 것이 조사부다. 그러나 한국에 있던 두 사람을 홍콩으로 가게 한 데는 사회문화부의 공작이 있었다. 87년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시킨 ‘위장 일본인 부녀(父女)’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김현희), 그리고 96년 7월에 검거된 ‘교수 간첩’ 무하마드 깐수(정수일)도 조사부 소속이었다.
조선로동당 3호청사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조선로동당의 4개 대남 부서를 북한에서는 ‘3호청사’로 부른다. 대남공작 부서가 3호 청사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총무처는 경기도 과천시에 여러 동의 건물을 지어놓고 정부 기관을 입주시켰는데 이를 가리켜 ‘과천 정부청사’라고 한다. 1982년 그와 똑같이 조선로동당도 중앙청사를 짓고 로동당 산하 부처를 입주시켰다. 이러한 건물에는 1호 청사·2호 청사…7호 청사란 이름이 붙었다.
정부 부처 중에는 업무 성격상 타 기관과 함께 있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국방부나 국가정보원·대검찰청·감사원·경찰청처럼 비밀을 다루는 군사·정보·사정 기관이 그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기관들은 종합청사에 들어가지 않고 단독 청사를 마련하고 있다.
조선로동당도 같은 이유로 비밀을 지켜야 하는 대남공작 기관은 단독 청사를 갖게 했다. 통전부를 비롯한 4개 부서는 일련 번호에 따라 3호 청사에 들어가야 하는데, 3호 청사는 평양시 대성구역 합장동에 따로 지어준 것이다. 이런 이유로 ‘대남공작=3호 청사’라는 등식이 만들어졌다.
왜 남조선 혁명인가
현재 한국에는 전문적으로 대북공작원을 양성하는 기관이 없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HID로 불렸던 육군 첩보부대 예하에 대북공작원을 양성하는 기관을 운영했다. HID가 관리했던 대북공작원들은 북한에 들어가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첩보를 수집했다.(‘신동아’ 2001년 1월호에 실린 ‘피의 보복 부른 공작원의 세계’ 참조). 그러나 한국은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 후 테러와 폭파로 점철된 대북공작을 중단했다.
하지만 북한은 7·4 남북공동성명 후에도 76년의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83년 아웅산 사건, 87년의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등 테러와 폭파를 거듭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가’로 지정해, 북한과의 경제 교류를 일체 봉쇄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들어 한국이 북한과의 경제 교류를 늘리려 하자,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가 대신 ‘불량국가(rogue state)’로 지정했다. 테러지원국가와 불량국가는 내용상 큰 차이가 없다. 여기서 북한 분석가들은 미국은 김대중 정부의 요구에 부응해 주는 척 하기 위해 불량국가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을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북한의 4대 공작기관이 노리는 것은 남조선 혁명이다. 1980년대 대학 운동권에서는 한국의 사회의 발전단계를 놓고 ‘식민지 반(半)자본주의 단계다’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다’ 등의 논의가 있었다. 식민지 반자본주의를 줄여서 ‘식반자론(植半資論)’,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는 ‘신식국독자론(新植國獨資論)’이라 불렸다. 이 두 이론은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 혹은 ‘신식민지’로 보는 차이가 있지만 미국의 식민지로 보는 공통점이 있다. 또 남한의 경제발전 단계는 반(半)자본주의냐, 정부가 자본주의를 이끄는 국가독점자본주의냐의 차이는 있으나 자본주의 단계로 보는 공통점이 있다.
식민 지배를 벗어나 독립하는 것을 북한에서는 ‘해방’이라고 한다(마찬가지로 북한 인민을 공산 독재 체제로부터 벗어나게 할 때도 ‘해방’이라고 한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는 치명적인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주의로 발전한다’는 역사 발전 이론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이러한 역사 발전을 가로막는 자본가 세력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세력을 꺾고 사회가 사회주의·공산주의로 발전하도록 하는 것을 ‘혁명’이라고 한다(그러나 동구권이 무너져 민주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세계 언론은 이를 ‘혁명’ 혹은 ‘시민혁명’이라고 표현했다).
남조선 혁명이란 남조선을 식민지배와 모순된 자본주의의 질곡에서 일거에 벗어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북한 통전부는, ‘북조선은 1945년 공산화와 더불어 이러한 과제를 달성했으나, 남조선은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이러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따라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해방과 혁명 그리고 통일을 동시에 이루는 길이다’는 신념을 창출했다. 이러한 남조선 혁명을 이루기 위해 발로 뛰는 조직이 사회문화부다.
한국은 북한보다 20배나 잘 산다. 그런데도 지하당을 구축하기 위해 장기간 체류해 남한 실상을 잘 아는 사회문화부 요원들은 자수하는 경우가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공작원들이 품은 ‘신념’에 있다.
한국의 대공수사관은 약간의 수사 교육과 이념 교육을 받은 후, 자신의 경험과 노력만으로 이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한다. 그러나 북한은 대학 과정을 통해 대남공작원을 양성하고 있다.
교육을 책임진 작전부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이 대학은 광복 직후 강동학원으로 출범했다가 3·1학원→서울정치학원→금강학원→금성정치군사대학으로 개칭되며 김정일정치군사대학으로 발전해 왔다(금성정치군사대학의 ‘금성’은, 김일성에서 ‘일’자를 빼고 김을 ‘금’으로 읽어서 만든 이름이다).
북한 귀순자들은 북한 최고 명문인 김일성대학(김대)의 군사학부가 바로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이라고 주장한다. 김대 군사학부인 만큼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의 입학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우선 고등중학교(우리의 중고교를 합쳐 놓은 것으로 6년제다)의 성적이 좋아야 한다. 이러한 학생들 중에서 성분이 좋고 신체검사를 통과한 학생만 입교하는데, 입교자는 매년 200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여학생은 선발하지 않는다고 한다(작전부에는 여자가 없다는 뜻이다).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는 7개 반(班)이 있다. 항해1반·항해2반, 기관1반·기관2반, 통신반, 안내1반·안내2반이 그것이다. 항해1·2반은 공작선 운영자를 키우는데, 이 과정을 이수하면 공작선 항해사를 거쳐 선장이 된다. 기관1·2반은 공작선의 엔진 부분을 책임진 기관사를 양성한다. 항해와 가관반의 차이를 비유해서 말하면, 자동차 운전술과 도로 지리를 배우는 것이 항해 과정이고, 자동차 정비술을 배우는 것이 기관 과정이다. 한국해양대학을 비롯한 한국의 학교에서도 항해와 기관 과정은 분리돼 있다.
통신반은 공작모선과 연락소의 통신을 담당한다. 이러한 통신을 감청·해독하고, 공작모선의 움직임을 좇는 것이 ○○○○부대로 불리는 한미연합 감청부대다. 한미연합 감청부대는 98년 12월 한국에서 민혁당을 지도해온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 윤태림을 태우기 위해 여수 쪽으로 접근해온 공작모선의 통신을 완벽히 추적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북한 공군의 미그 19기 두 대가 야간 비행 훈련을 하다 공중 충돌한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처럼 한미연합 감청부대의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공작모선과 연락소는 반드시 음어와 암호로 교신한다. 때에 따라서는 한미연합 감청부대를 속이기 위해 허위 전파를 발사할 때도 있다. 일반 언어를 음어나 암호로 바꾸는 것은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로직(logic)이 있다. 통신반에서는 이 로직을 배운다.
안내 1·2반은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을 한국에 침투시키는 안내조 요원을 키운다. 공작모선에서 내린 반잠수정을 몰고 가 공작원을 한국에 침투시키고, 북한으로 복귀하는 공작원을 싣고 오는 것이 안내조다. 안내반에서는 사격·폭파 같은 특수 공작, 남한 해안의 특성과 조류 변화 따위를 학습한다. 이러한 교육 때문에 안내조는 인민군 정찰국 요원만큼 강인한 체력이 요구된다.
작전부가 운영하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당연히 학비가 없다. 학생들은 좋은 식사를 제공받으며 기숙사 생활을 한다. 월급은 없지만 담배와 사탕·과자를 제공받는다. 이 학교에서 학생 1명을 키우는 데 드는 돈은 김대생 5명을 키우는 교육비와 맞먹는다고 한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자부심을 심어주기 때문에 작전부 요원을 비롯한 북한 공작원은 남한의 발전상을 보아도 쉬 귀순하지 않는 것이다. 학업을 마친 학생들은 100% 작전부 등에 취직한다. 건강이 나빠 퇴교한 학생도 워낙 신분과 실력이 좋기 때문에, 각군(郡)에 있는 조선로동당 군당 위원회 지도원으로 채용된다고 한다.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마치고 작전부에 배치된 사람은 165원의 월급을 받고, 1년이 지나면 185원을 받는다. 북한 일반 노동자들의 봉급이 60∼70원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고소득이다. 결혼하지 않은 북한 공작원들은 사회안전성(경찰청에 해당) 산하 인민경비대가 지켜주는 위수구역 안의 관사에서 생활한다. 위수구역 안에는 처녀가 없어 이들은 위수구역 밖에 사는 여자들 중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신원조회를 한 후 이상이 없을 때만 결혼한다. 결혼 후 여자는 위수구역 안에 들어와 경제적으로는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살림을 한다.
사회문화부는 위탁교육
작전부가 운영하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사회문화부를 비롯한 타 부서가 뽑은 요원을 위탁 교육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작전부로 갈 학생들과 뒤섞여 공부하지 않고 별도의 장소에서 개별교육을 받는다. 일반 대학을 다니다 이 학교로 옮겨오는 학생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울산 부부간첩으로 생포된 최정남이다. 최정남은 사리원대학을 다니다 공작원으로 선발돼 이 대학에 들어와 교육을 받았다.
대남공작은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사회문화부 요원과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졸업한 작전부 요원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이루어진다.
해상으로 침투할 경우 공작모선을 이끌고 연락소를 출발해 반잠수정을 내릴 때까지는 항해반 출신의 선장이 최고 책임자다. 공작모선에서 반잠수정을 내려 해안으로 침투할 때까지는 안내조 조장이 ‘왕’이다. 그리고 한국 해안에 상륙한 다음부터는 사회문화부의 공작조장이 모든 것을 책임진다.
잠시 북한 공작원들이 작전 중에 먹는 음식을 살펴보기로 하자. 98년 묵호 앞바다에서 공기색전증으로 사망한 추진기 기수의 시체가 발견됐을 때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팀이 부검했다. 국과수는 추진기 기수가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이 호박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왜 간첩은 호박을 먹은 것일까.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정된다.
앞서 밝혔듯 공작모선과 반잠수정은 속도가 매우 빠르다. 빠른 배는 하나같이 요동이 심하다. 더구나 날씨가 나빠져 파도가 거세지면 80t에 불과한 공작모선은 마구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유고급 반잠수정은 이보다 낫겠지만 원체 배가 작기 때문에 날씨가 나쁘면 많이 흔들린다고 한다. 심한 요동에 시달리면, 아무리 뱃사람일지라도 항해조·기관조·통신조·안내조 그리고 한국으로 침투할 공작조 모두 멀미에 시달리게 된다. 이럴 경우 밥은 아예 먹지 못하고 생계란이나 호박죽을 먹는다고 한다.
신라면과 한국음료수 먹는다
북한 공작원 출신들은 “한국 해안을 지키는 육군 향토사단이나 해병대는 별것 아니다. 그러나 해상에서 날씨가 나빠지면 정말 괴롭다”고 말한다. 96년 9월 강릉에서 좌초한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은 조선로동당이 작전부가 아니라 인민무력성 정찰국 소속이었다. 잠수함 내부를 조사한 합신조는 ‘신라면’ 봉지를 발견했다. 이 봉지를 근거로 유일한 생포자인 이광수를 추궁하자 이런 대답이 나왔다.
“잠수함은 작은데 정찰조와 안내조 등 많은 사람을 태우다 보니 밥을 해먹기 위해 불을 피울 공간이 없다. 그래서 남조선에서 탁아소 어린이들에게 주라고 지원한 신라면을 실었다. 신라면을 맹물에 넣고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퍼지면 먹는다.”
북한에 대한 라면 지원이 전면 중단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간편하게 제작된 남한의 인스턴트 식품은 북한 공작원들에게는 아주 좋은 휴대식량이 되고 있다. 98년 6월 꽁치 그물에 걸려든 작전부 소속 반잠수정 안에서도 한국 음료수 PET 병이 여러 개 발견되었다.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마쳤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대남공작에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 간첩사건 관련 보도에서는 ‘초대소’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대개 공작원은 초대소에서 밀봉 교육을 받았다고 발표된다(밀봉 교육이란 외부와 접촉을 끊고 고립된 공간에서 받는 교육을 말한다).
그렇다면 초대소는 간첩 교육 장소란 뜻일 텐데 북한은 지난해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을 백화원 초대소로 안내했다(그러나 북한은 회담 직전 이곳을 백화원 영빈관으로 바꿔 불렀다).
여기서 독자들은 초대소의 정체를 몰라 적잖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초대소란 우리 개념으로 말하면 ‘초특급 리조트 호텔’에 해당한다. 대형 건물 안에 여러 개의 방을 마련한 호텔이 아니라, 풍광이 수려한 곳마다 드문드문 ‘스위트 룸’을 만들어 놓은 호텔이 초대소다. 북한 공작원은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교육받는 것이다. 이러니 이들은 남한의 물질적 부에 현혹되지 않을 수 있다.
위수구역에 살지 않는 공작원에게는 평양에 있는 고급 아파트와 고급 승용차가 제공된다. 부여간첩 김동식이 대표적인 데, 90년 10월17일 이선실 황인오와 함께 북한에 들어간 그는 평양의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벤츠 승용차를 제공받았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북한은 성(性)이 문란하다’는 고정관념이다. 김정일이 용모가 뛰어난 젊은 여성을 뽑아 ‘기쁨조’를 만들고, 여러 여자와 생활했다는 것 때문에 이러한 고정관념이 생겨났는데, 사실은 그 반대다.
북한을 비롯한 공산체제는 부화(간통)나 풍기문란 같은 행위는 강력히 처벌한다. 지난호 신동아는 99년 북한군 보위사령부가 혜산시를 대숙청했다고 보도했는데, 이때 숙청 이유로 거론된 것이 부화와 풍기문란, 그리고 자본주의화였다. 공산주의는 성을 상품화하고 성을 이용한 쾌락을 즐기는 데 대해 유교(儒敎) 이상으로 반대한다.
이러한 공산주의의 특성을 잘 드러낸 책이 ‘강철’ 김영환씨가 쓴 ‘강철서신’이다. 이 책에서 혁명가의 품성을 정리한 품성론을 읽어보면 혁명가는 세계 최고의 도덕군자다.
여기서 아주 예외적인 인물이 김정일로, 김정일은 최고 권력에 올랐기 때문에 많은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탈북자는 “한국 언론은 김정일이 이혼녀인 성혜림과 결혼해 아들(김정철)을 낳았다고 보도했는데, 북한 최고 권력자의 아들인 김정일이 어찌 이혼녀와 결혼할 수 있겠는가. 성혜림과 한때 관계했는지는 몰라도, 김정일은 성혜림과 결혼한 적이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남과 북 첩보전쟁 반세기(4)
군축과 연계한 대남공작
소식통은 북한은 한국민을 상대로 자주 조항을 더 강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민을 자극해, ‘김정일=민족주의자’라는 등식을 심어줘, ‘김정일=공산주의자’라는 인식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암암리에 한국 흔들기에 들어간다. 지하당을 이용한 대남 공작을 강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상회담 이후의 남북 협상 과정을 보면, 조선로동당 대남비서 김용순(金容淳)이 계속 전면에 나서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김용순은 조선로동당에서 대남 업무에 참여하는 통일전선부·작전부·사회문화부·대외정보조사부를 책임진 ‘비서’이자, 북한의 통일 방안을 마련하는 통일전선부의 부장이다. 그러한 김용순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 장소로 유력시되는 제주도를 사전답사하고 돌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대남공작 최고책임자가 남북협상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남북협상과 대남공작을 한 묶음으로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조선로동당 4개 대남 부서에 대항하는 한국의 4대 기관은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경찰청 보안국·국군기무사령부 방첩처 그리고 국군정보사령부이다. 앞의 3개 기관은 북한에서 파견한 공작원을 잡는 대공수사기관이고, 국군정보사는 북한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기관이다. 기무사 방첩처는 주로 군대에 침투한 간첩이나 좌익 사범을 추적하고, 경찰 보안국과 국정원 대공수사국은 일반 사회에서의 간첩사건을 추적한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4개 기관은 간첩 사건이 발생하면 즉각 ‘합신조(합동신문조)’를 구성해 수사에 착수하고 있다.
기자는 조선로동당의 대남공작을 알기 위해 앞의 3개 기관 공보실에 취재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 경찰청 공보실은 보안국 요원과 전화 통화를 하는 데까지는 도와주었으나, 보안국 요원들은 하나같이 “시절이 시절인만큼 취재에 응할 수 없다. 양해해 달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국정원과 기무사에서는 아예 연락조차 없었다. 그러나 4년여 전부터 기자는 탈북자나 귀순자를 만나 차근차근 북한의 공작 조직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왔다.
귀순자들은 대개 국정원이나 경찰 관계자와 함께 기자를 만났다. 귀순자들은 이들을 의식해, 북한의 대남공작 조직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려 했다. 그러나 이 사람 저 사람의 이야기를 수집해 가자 서서히 북한의 대남공작 조직의 실체가 잡히기 시작했다. 이러한 취재를 통해 기자가 내린 결론은 놀랍게도 ‘광복 전후 남한 땅에서 벌어졌던 남로당과 경찰 간의 싸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였다.
남로당 서울지도부와 한민전
남로당은 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로 이어져 왔다. 그리고 간첩사건 때마다 거론되는 지하당을 거쳐,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조직을 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로 통칭하기로 한다. 평양에서 이를 지휘하는 사람이 곧 조선로동당 대남비서인 김용순인 것이다(남로당과 조선로동당 관계에 대해서는 이 기사 말미에 있는 별도 기사를 참조하기 바람).
광복 전후 이땅의 대공수사기관은 경찰과 SIS와 CIC로 불렸던 군 방첩부대(기무사의 전신)뿐이었다. 1961년 6월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가 창설되면서 대공수사국이 추가됐는데, 이때부터는 국정원이 대공수사 기관의 대표가 되었다.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을 제치고 남조선 혁명을 완성하려는 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의 지독한 투쟁이 ‘대남공작’이고, 이러한 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를 뿌리째 뽑아내겠다는 것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의 엄숙한 다짐이 ‘대공투쟁’인 것이다.
조선로동당 4개 대남부서 중에서 ‘수석’은 통일전선부(통전부)다. 김용순은 물론이고 이효순·김중린·허담 등 역대 통일전선부장은 조선로동당의 대남 비서를 겸했다. 통전부는 북한이 추진하는 대남공작의 기본 골격을 만드는 곳이다. 북한이 추진하는 통일방안을 만드는 싱크탱크 격이다. 이산가족 만남을 위한 적십자회담이나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회담은 전부 이곳에서 도맡는다. 남한 땅에 떨어지는 북한 삐라도 대부분 이곳에서 만들고 있다. 통전부 요원은 영사 직함으로 해외에 나가 해외교포 포섭활동도 한다. 일본에 있는 조총련도 이곳에서 관장하고 있다.
한국에서 육군 소장을 달고 논산훈련소장을 지낸 최홍희(현재 캐나다 거주)와 육군 중장 출신으로 외무부장관을 지낸 최덕신(崔德新·사망)이 1979년과 1986년 북한으로 망명했다. 이 사건은 97년 발생한 황장엽 비서의 한국 망명 만큼이나 충격적이었는데, 두 사람을 상대로 포섭 공작을 한 것이 바로 통전부였다. 최근 남북협상 과정에서 전면에 등장하는 ‘아·태평화위’와 그전에 자주 등장했던 ‘조평통’, 그리고 8·15 대회를 주도하는 범민련 북측본부 등은 전부 통전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고 있다.
통전부가 북한의 통일방안을 만드는 ‘두뇌’라면 사회문화부는 통전부가 만든 통일방안을 실행하는 ‘수족’이다. 사회문화부는 남한으로 침투해 지하당(서울지도부)을 만드는 일을 한다. 92년까지 지하당인 남조선로동당을 만들어 관리해 오다 북한으로 도주해 지난해 북한에서 사망한 ‘할머니 공작원’ 이선실, 95년 10월24일 부여에서 총격전을 벌이다 검거된 ‘부여간첩’ 김동식, 97년 10월27일 부인 강연정과 함께 울산에 침투했다가 검거된 후 부인은 자살한 ‘울산부부간첩’ 최정남, 98년 12월까지 민혁당을 지도하다 여수앞바다에서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으로 돌아가다 해군 광명함의 포격을 받아 반잠수정이 격침됨으로써 사망한 윤태림 등이 전부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이었다.
유고급 잠수정 운영하는 작전부
이러한 사회문화부와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것이 작전부다. 작전부는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을 한국으로 침투시키고, 임무를 마친 공작원을 북한으로 데려오는 일을 한다.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수십 개의 침투 지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 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작전부(당시는 조사부라고 했다)는 휴전선을 통해 주로 육상으로 침투했다. 그러나 한국이 남방한계선 전체에 철책을 친 다음부터는 해상침투가 많아졌다. 해상침투를 위해 작전부는 서해의 남포와 해주, 동해의 원산과 청진에 연락소를 운영하고 있다.
작전부는 크게 두 종류의 선박을 운영한다. 하나는 유고급 잠수정이고 다른 하나는 반잠수정이나 자선을 싣고 다니는 공작모선이다. 유고급 잠수정은 수심이 깊은 동해에서 주로 이용되고, 공작모선은 동·서해 모두에서 활용되고 있다. 한국 해군은 그동안 자선은 여러번 격침시켰다. 그러나 반잠수정 격침은 드문 편이다.
반잠수정은 대개 5t급으로, 275마력짜리 OMC엔진을 세 개 달고 있다. 30(시속 55km 정도)내지 35노트로 달리는 일반 모터보트에 붙이는 엔진의 대당 가격이 1000만∼1500만원인데 반해, OMC엔진의 대당 가격은 무려 5000여 만원이다. 이렇게 좋은 엔진을 세 개나 달고 있기 때문에 반잠수정은 57노트(시속 102km 정도)까지 달릴 수 있다. 한국 해군 함정 중에서 가장 빠른 고속정도 35노트 이상은 달릴 수 없다. 따라서 반잠수정은 보고도 놓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해군은 이러한 반잠수정을 딱 두 번 격침시켰다. 1983년 12월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 이상규와 전충남을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 상륙시키고 빠져나가던 반잠수정을 격침시킨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로는 98년 12월 여수 해안에서 민혁당을 지도한 윤태림을 태우고 빠져나가던 반잠수정을 수십 척의 함정을 동원해 차단함으로써 완벽히 격침시킨 적이 있다.
공작모선은 대개 80t급으로 북한에서 제작한 1100마력짜리 라시보 엔진 4대를 달고 있어, 최고 53노트까지 달릴 수 있다. 한국 해군은 이러한 공작모선을 딱 한번 격침시켰다. 1983년 8월13일 울릉도 부근에서 작전하던 구축함 ‘강원함’(DD-922)은 ‘어선인지 상선인지, 또 국적이 어디인지’가 불분명한 선박을 발견하고 정선(停船)을 명령했다. 작전부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으로도 침투한다(일본 침투에 대해서는 뒤에서 밝힌다). 이 선박은 ‘풍산호’라는 위장 명칭을 붙이고 일본으로 가던 공작모선이었다.
정선 명령을 받은 풍산호는 전속력으로 도주했다. 강원함의 최고 속도는 30노트에 불과했으나 이 함정에는 헬기가 실려 있었다. 간첩선이라고 판단한 강원함은 헬기를 띄워 풍산호를 격침시켰다. 해군 함정 중에 유일하게 공작모선을 잡은 강원함은 2000년 12월 퇴역했다.
1999년 3월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은 수상한 선박을 발견해 정선 명령을 내렸으나 이 선박은 소총을 쏘며 고속으로 청진까지 도주했다. 불심검문을 거부하고 했다고 해서 일본에서는 ‘불심선(不審船)’으로 불렸던 이 선박도 작전부가 운영하는 공작모선이었다.
80t급인 유고급 잠수정은 아예 발견조차도 않되는 경우가 많은데 98년 6월 22일 속초 앞바다에서 우연찮게 걸려들었다. 잠수함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어선들이 쳐놓은 그물이다. 그물이 잠수함 스크루에 걸리면 오도가도 못 하므로 물 위로 부상한 다음, 사람이 나가서 칼로 그물을 잘라내야 한다. 이날 유고급 잠수정은 어민들이 쳐놓은 꽁치 그물에 걸려들었다. 물위로 부상한 잠수정은 승조원을 밖으로 내보내 칼로 그물을 뜯어내다가 어민에게 발견되었다. 어민 신고를 받는 해군 함정이 달려오자 승조원들은 잠수정 안으로 들어가 폭사(爆死)했다(유고급 잠수정은 작전부에서 운용하나 덩치가 큰 300t급의 상어급 잠수함은 인민무력성(인민군) 산하 정찰국에서 운영한다. 상어급 잠수함은 96년 9월 강릉에서 좌초한 바 있다).
간첩은 포경수술을 하지 않는다
공작모선으로 침투할 경우에는 해안에서 40해리(약 72km) 떨어진 곳에서 반잠수정을 내린다. 그러나 유고급 잠수정으로 침투하면 1∼2km까지 바짝 접근한다. 해안까지의 거리가 1km 내외일 경우 작전부 소속 안내조와 사회문화부 소속의 공작원이 오리발을 신고 수영해서 침투한다. 그 이상일 경우에는 추진기를 타고 들어온다. 추진기는 스크루를 가진 소형 엔진인데, 수중에서 이를 붙잡고 있으면 수영보다 훨씬 빠른 3∼5노트의 속도로 침투할 수가 있다(추진기는 스쿠터라고도 하는데, 스쿠버를 즐기는 사람들은 잠수시 스쿠터를 자주 이용한다. 스쿠터는 이미 레저 용품이 된 지 오래다).
추진기는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이 아니라 작전부 소속의 안내조를 침투시킬 때 주로 이용한다. 2명으로 구성된 안내조는 육상에 올라가 약정한 드보크에 공작원에게 전달할 물품(돈이나 무기, 난수표 등)을 묻어놓거나, 공작원이 드보크에 묻어놓은 물품을 갖고 돌아온다. 추진기에는 통상 3명이 타는데, 추진기를 조작하는 추진기 기수는 육상에 올라간 안내조가 돌아올 때까지 추진기를 갖고 해안에서 기다린다. 공기통은 추긴기 기수만 매는데, 공기통에서 3개의 호흡대를 뽑아내 추진기 기수와 안내조 2명이 입에 물고 호흡을 한다.
98년 7월12일 묵호 앞바다에서는 이러한 추진기와, 공기통을 맨 채 사망한 추진기 기수 시체가 발견되었다. 수면의 기압은 1기압이나 10m의 바닷속은 2기압이다. 2기압 속에 있다가 갑자기 1기압으로 나오면 허파 속에 있던 공기와 혈관 속에 있던 공기의 부피가 두 배로 커진다. 이렇게 되면 혈관 속에 있던 작은 공기방울이 커져 머리로 연결된 뇌혈관을 막는다. 공기방울이 뇌혈관을 막아 피를 흐르지 못하게 하면 사람은 입과 코로 피를 흘리며 사망한다. 잠수 세계에서는 이를 ‘공기 색전증(塞栓症)이라고 하는데, 추진기 기수는 공기색전증으로 죽은 것이었다. 그러나 함께 추진기를 타고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안내조 2명은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작전부의 안내조는 사격이나 특공무술 훈련도 받기 때문에 테러나 암살 임무도 수행한다. 울산부부간첩 최정남의 진술에 따르면 96년 분당에서 김정일의 처이질 이한영을 저격 사망케 한 것도 작전부였다고 한다.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남자 시체가 해안에서 발견되었다. 합신조가 달려가 죽은 사람이 무기를 갖고 있는지, 이 사람의 지문이 남한에 있는지 등을 면밀히 조사해 간첩인지의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대공수사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에 따르면 한눈에 죽은 자가 간첩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고 한다.
이 남자의 ‘거시기’에 ‘고래가 잡혀 있으면’(包莖수술을 했으면) 남한인이고, 그렇지 않으면 북한인이다. 북한 공작원들은 왜 포경수술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에는 아직 포경수술을 하는 문화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작원도 그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 지내는 것이다. 때문에 합신조에 참가한 사람들은 과학적인 수사에 앞서 변사자의 생식기부터 살피게 된다.
대외정보조사부(조사부)는 영사와 무역원으로 위장해, 해외에서 교민이나 외국으로 온 한국인을 상대로 공작한다. 작전부가 조사부던 시절, 대외정보조사부는 작전부 산하의 조사실이었다. 그러다 81년 조사부가 작전부가 되면서 조사실이 독립해 대외정보조사부가 되었다. 1978년 홍콩에서 최은희·신상옥 부부를 북한으로 납치한 것이 조사부다. 그러나 한국에 있던 두 사람을 홍콩으로 가게 한 데는 사회문화부의 공작이 있었다. 87년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시킨 ‘위장 일본인 부녀(父女)’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김현희), 그리고 96년 7월에 검거된 ‘교수 간첩’ 무하마드 깐수(정수일)도 조사부 소속이었다.
조선로동당 3호청사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조선로동당의 4개 대남 부서를 북한에서는 ‘3호청사’로 부른다. 대남공작 부서가 3호 청사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총무처는 경기도 과천시에 여러 동의 건물을 지어놓고 정부 기관을 입주시켰는데 이를 가리켜 ‘과천 정부청사’라고 한다. 1982년 그와 똑같이 조선로동당도 중앙청사를 짓고 로동당 산하 부처를 입주시켰다. 이러한 건물에는 1호 청사·2호 청사…7호 청사란 이름이 붙었다.
정부 부처 중에는 업무 성격상 타 기관과 함께 있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국방부나 국가정보원·대검찰청·감사원·경찰청처럼 비밀을 다루는 군사·정보·사정 기관이 그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기관들은 종합청사에 들어가지 않고 단독 청사를 마련하고 있다.
조선로동당도 같은 이유로 비밀을 지켜야 하는 대남공작 기관은 단독 청사를 갖게 했다. 통전부를 비롯한 4개 부서는 일련 번호에 따라 3호 청사에 들어가야 하는데, 3호 청사는 평양시 대성구역 합장동에 따로 지어준 것이다. 이런 이유로 ‘대남공작=3호 청사’라는 등식이 만들어졌다.
왜 남조선 혁명인가
현재 한국에는 전문적으로 대북공작원을 양성하는 기관이 없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HID로 불렸던 육군 첩보부대 예하에 대북공작원을 양성하는 기관을 운영했다. HID가 관리했던 대북공작원들은 북한에 들어가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첩보를 수집했다.(‘신동아’ 2001년 1월호에 실린 ‘피의 보복 부른 공작원의 세계’ 참조). 그러나 한국은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 후 테러와 폭파로 점철된 대북공작을 중단했다.
하지만 북한은 7·4 남북공동성명 후에도 76년의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83년 아웅산 사건, 87년의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등 테러와 폭파를 거듭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가’로 지정해, 북한과의 경제 교류를 일체 봉쇄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들어 한국이 북한과의 경제 교류를 늘리려 하자,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가 대신 ‘불량국가(rogue state)’로 지정했다. 테러지원국가와 불량국가는 내용상 큰 차이가 없다. 여기서 북한 분석가들은 미국은 김대중 정부의 요구에 부응해 주는 척 하기 위해 불량국가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을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북한의 4대 공작기관이 노리는 것은 남조선 혁명이다. 1980년대 대학 운동권에서는 한국의 사회의 발전단계를 놓고 ‘식민지 반(半)자본주의 단계다’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다’ 등의 논의가 있었다. 식민지 반자본주의를 줄여서 ‘식반자론(植半資論)’,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는 ‘신식국독자론(新植國獨資論)’이라 불렸다. 이 두 이론은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 혹은 ‘신식민지’로 보는 차이가 있지만 미국의 식민지로 보는 공통점이 있다. 또 남한의 경제발전 단계는 반(半)자본주의냐, 정부가 자본주의를 이끄는 국가독점자본주의냐의 차이는 있으나 자본주의 단계로 보는 공통점이 있다.
식민 지배를 벗어나 독립하는 것을 북한에서는 ‘해방’이라고 한다(마찬가지로 북한 인민을 공산 독재 체제로부터 벗어나게 할 때도 ‘해방’이라고 한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는 치명적인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주의로 발전한다’는 역사 발전 이론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이러한 역사 발전을 가로막는 자본가 세력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세력을 꺾고 사회가 사회주의·공산주의로 발전하도록 하는 것을 ‘혁명’이라고 한다(그러나 동구권이 무너져 민주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세계 언론은 이를 ‘혁명’ 혹은 ‘시민혁명’이라고 표현했다).
남조선 혁명이란 남조선을 식민지배와 모순된 자본주의의 질곡에서 일거에 벗어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북한 통전부는, ‘북조선은 1945년 공산화와 더불어 이러한 과제를 달성했으나, 남조선은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이러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따라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해방과 혁명 그리고 통일을 동시에 이루는 길이다’는 신념을 창출했다. 이러한 남조선 혁명을 이루기 위해 발로 뛰는 조직이 사회문화부다.
한국은 북한보다 20배나 잘 산다. 그런데도 지하당을 구축하기 위해 장기간 체류해 남한 실상을 잘 아는 사회문화부 요원들은 자수하는 경우가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공작원들이 품은 ‘신념’에 있다.
한국의 대공수사관은 약간의 수사 교육과 이념 교육을 받은 후, 자신의 경험과 노력만으로 이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한다. 그러나 북한은 대학 과정을 통해 대남공작원을 양성하고 있다.
교육을 책임진 작전부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이 대학은 광복 직후 강동학원으로 출범했다가 3·1학원→서울정치학원→금강학원→금성정치군사대학으로 개칭되며 김정일정치군사대학으로 발전해 왔다(금성정치군사대학의 ‘금성’은, 김일성에서 ‘일’자를 빼고 김을 ‘금’으로 읽어서 만든 이름이다).
북한 귀순자들은 북한 최고 명문인 김일성대학(김대)의 군사학부가 바로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이라고 주장한다. 김대 군사학부인 만큼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의 입학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우선 고등중학교(우리의 중고교를 합쳐 놓은 것으로 6년제다)의 성적이 좋아야 한다. 이러한 학생들 중에서 성분이 좋고 신체검사를 통과한 학생만 입교하는데, 입교자는 매년 200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여학생은 선발하지 않는다고 한다(작전부에는 여자가 없다는 뜻이다).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는 7개 반(班)이 있다. 항해1반·항해2반, 기관1반·기관2반, 통신반, 안내1반·안내2반이 그것이다. 항해1·2반은 공작선 운영자를 키우는데, 이 과정을 이수하면 공작선 항해사를 거쳐 선장이 된다. 기관1·2반은 공작선의 엔진 부분을 책임진 기관사를 양성한다. 항해와 가관반의 차이를 비유해서 말하면, 자동차 운전술과 도로 지리를 배우는 것이 항해 과정이고, 자동차 정비술을 배우는 것이 기관 과정이다. 한국해양대학을 비롯한 한국의 학교에서도 항해와 기관 과정은 분리돼 있다.
통신반은 공작모선과 연락소의 통신을 담당한다. 이러한 통신을 감청·해독하고, 공작모선의 움직임을 좇는 것이 ○○○○부대로 불리는 한미연합 감청부대다. 한미연합 감청부대는 98년 12월 한국에서 민혁당을 지도해온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 윤태림을 태우기 위해 여수 쪽으로 접근해온 공작모선의 통신을 완벽히 추적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북한 공군의 미그 19기 두 대가 야간 비행 훈련을 하다 공중 충돌한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처럼 한미연합 감청부대의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공작모선과 연락소는 반드시 음어와 암호로 교신한다. 때에 따라서는 한미연합 감청부대를 속이기 위해 허위 전파를 발사할 때도 있다. 일반 언어를 음어나 암호로 바꾸는 것은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로직(logic)이 있다. 통신반에서는 이 로직을 배운다.
안내 1·2반은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을 한국에 침투시키는 안내조 요원을 키운다. 공작모선에서 내린 반잠수정을 몰고 가 공작원을 한국에 침투시키고, 북한으로 복귀하는 공작원을 싣고 오는 것이 안내조다. 안내반에서는 사격·폭파 같은 특수 공작, 남한 해안의 특성과 조류 변화 따위를 학습한다. 이러한 교육 때문에 안내조는 인민군 정찰국 요원만큼 강인한 체력이 요구된다.
작전부가 운영하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당연히 학비가 없다. 학생들은 좋은 식사를 제공받으며 기숙사 생활을 한다. 월급은 없지만 담배와 사탕·과자를 제공받는다. 이 학교에서 학생 1명을 키우는 데 드는 돈은 김대생 5명을 키우는 교육비와 맞먹는다고 한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자부심을 심어주기 때문에 작전부 요원을 비롯한 북한 공작원은 남한의 발전상을 보아도 쉬 귀순하지 않는 것이다. 학업을 마친 학생들은 100% 작전부 등에 취직한다. 건강이 나빠 퇴교한 학생도 워낙 신분과 실력이 좋기 때문에, 각군(郡)에 있는 조선로동당 군당 위원회 지도원으로 채용된다고 한다.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마치고 작전부에 배치된 사람은 165원의 월급을 받고, 1년이 지나면 185원을 받는다. 북한 일반 노동자들의 봉급이 60∼70원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고소득이다. 결혼하지 않은 북한 공작원들은 사회안전성(경찰청에 해당) 산하 인민경비대가 지켜주는 위수구역 안의 관사에서 생활한다. 위수구역 안에는 처녀가 없어 이들은 위수구역 밖에 사는 여자들 중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신원조회를 한 후 이상이 없을 때만 결혼한다. 결혼 후 여자는 위수구역 안에 들어와 경제적으로는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살림을 한다.
사회문화부는 위탁교육
작전부가 운영하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사회문화부를 비롯한 타 부서가 뽑은 요원을 위탁 교육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작전부로 갈 학생들과 뒤섞여 공부하지 않고 별도의 장소에서 개별교육을 받는다. 일반 대학을 다니다 이 학교로 옮겨오는 학생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울산 부부간첩으로 생포된 최정남이다. 최정남은 사리원대학을 다니다 공작원으로 선발돼 이 대학에 들어와 교육을 받았다.
대남공작은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사회문화부 요원과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졸업한 작전부 요원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이루어진다.
해상으로 침투할 경우 공작모선을 이끌고 연락소를 출발해 반잠수정을 내릴 때까지는 항해반 출신의 선장이 최고 책임자다. 공작모선에서 반잠수정을 내려 해안으로 침투할 때까지는 안내조 조장이 ‘왕’이다. 그리고 한국 해안에 상륙한 다음부터는 사회문화부의 공작조장이 모든 것을 책임진다.
잠시 북한 공작원들이 작전 중에 먹는 음식을 살펴보기로 하자. 98년 묵호 앞바다에서 공기색전증으로 사망한 추진기 기수의 시체가 발견됐을 때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팀이 부검했다. 국과수는 추진기 기수가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이 호박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왜 간첩은 호박을 먹은 것일까.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정된다.
앞서 밝혔듯 공작모선과 반잠수정은 속도가 매우 빠르다. 빠른 배는 하나같이 요동이 심하다. 더구나 날씨가 나빠져 파도가 거세지면 80t에 불과한 공작모선은 마구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유고급 반잠수정은 이보다 낫겠지만 원체 배가 작기 때문에 날씨가 나쁘면 많이 흔들린다고 한다. 심한 요동에 시달리면, 아무리 뱃사람일지라도 항해조·기관조·통신조·안내조 그리고 한국으로 침투할 공작조 모두 멀미에 시달리게 된다. 이럴 경우 밥은 아예 먹지 못하고 생계란이나 호박죽을 먹는다고 한다.
신라면과 한국음료수 먹는다
북한 공작원 출신들은 “한국 해안을 지키는 육군 향토사단이나 해병대는 별것 아니다. 그러나 해상에서 날씨가 나빠지면 정말 괴롭다”고 말한다. 96년 9월 강릉에서 좌초한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은 조선로동당이 작전부가 아니라 인민무력성 정찰국 소속이었다. 잠수함 내부를 조사한 합신조는 ‘신라면’ 봉지를 발견했다. 이 봉지를 근거로 유일한 생포자인 이광수를 추궁하자 이런 대답이 나왔다.
“잠수함은 작은데 정찰조와 안내조 등 많은 사람을 태우다 보니 밥을 해먹기 위해 불을 피울 공간이 없다. 그래서 남조선에서 탁아소 어린이들에게 주라고 지원한 신라면을 실었다. 신라면을 맹물에 넣고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퍼지면 먹는다.”
북한에 대한 라면 지원이 전면 중단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간편하게 제작된 남한의 인스턴트 식품은 북한 공작원들에게는 아주 좋은 휴대식량이 되고 있다. 98년 6월 꽁치 그물에 걸려든 작전부 소속 반잠수정 안에서도 한국 음료수 PET 병이 여러 개 발견되었다.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마쳤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대남공작에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 간첩사건 관련 보도에서는 ‘초대소’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대개 공작원은 초대소에서 밀봉 교육을 받았다고 발표된다(밀봉 교육이란 외부와 접촉을 끊고 고립된 공간에서 받는 교육을 말한다).
그렇다면 초대소는 간첩 교육 장소란 뜻일 텐데 북한은 지난해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을 백화원 초대소로 안내했다(그러나 북한은 회담 직전 이곳을 백화원 영빈관으로 바꿔 불렀다).
여기서 독자들은 초대소의 정체를 몰라 적잖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초대소란 우리 개념으로 말하면 ‘초특급 리조트 호텔’에 해당한다. 대형 건물 안에 여러 개의 방을 마련한 호텔이 아니라, 풍광이 수려한 곳마다 드문드문 ‘스위트 룸’을 만들어 놓은 호텔이 초대소다. 북한 공작원은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교육받는 것이다. 이러니 이들은 남한의 물질적 부에 현혹되지 않을 수 있다.
위수구역에 살지 않는 공작원에게는 평양에 있는 고급 아파트와 고급 승용차가 제공된다. 부여간첩 김동식이 대표적인 데, 90년 10월17일 이선실 황인오와 함께 북한에 들어간 그는 평양의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벤츠 승용차를 제공받았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북한은 성(性)이 문란하다’는 고정관념이다. 김정일이 용모가 뛰어난 젊은 여성을 뽑아 ‘기쁨조’를 만들고, 여러 여자와 생활했다는 것 때문에 이러한 고정관념이 생겨났는데, 사실은 그 반대다.
북한을 비롯한 공산체제는 부화(간통)나 풍기문란 같은 행위는 강력히 처벌한다. 지난호 신동아는 99년 북한군 보위사령부가 혜산시를 대숙청했다고 보도했는데, 이때 숙청 이유로 거론된 것이 부화와 풍기문란, 그리고 자본주의화였다. 공산주의는 성을 상품화하고 성을 이용한 쾌락을 즐기는 데 대해 유교(儒敎) 이상으로 반대한다.
이러한 공산주의의 특성을 잘 드러낸 책이 ‘강철’ 김영환씨가 쓴 ‘강철서신’이다. 이 책에서 혁명가의 품성을 정리한 품성론을 읽어보면 혁명가는 세계 최고의 도덕군자다.
여기서 아주 예외적인 인물이 김정일로, 김정일은 최고 권력에 올랐기 때문에 많은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탈북자는 “한국 언론은 김정일이 이혼녀인 성혜림과 결혼해 아들(김정철)을 낳았다고 보도했는데, 북한 최고 권력자의 아들인 김정일이 어찌 이혼녀와 결혼할 수 있겠는가. 성혜림과 한때 관계했는지는 몰라도, 김정일은 성혜림과 결혼한 적이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