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

고광제2007.07.23
조회43,422

난 어릴때,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았다.

 

내가 국민학교 5학년(95')때 나는 산수 8점을 받고

 

"양"을 받았다.

 

4학년땐 미를 받았었지만, 양은 매우 놀라운 성적이었다.

 

그래도, 나의 부모님은 그것을 가지고 나에게 특별히 비난하시지

 

않으셨다. 그저, 안아주면서 잘했다고 했을뿐...

 

6학년때던가, 전과목 시험에서, 내기억에 18개 인가를 틀렸다.

 

보통 과목수가 12과목정도 됐을 테니까, 한과목당 1개나 2개 정도

 

를 틀린 것이었으리라...게중에는 100점짜리도 있었겠지.

 

그러나, 그 시험은 나에게 사실은 꽤 잘친 시험이었다. 그 앞에

 

시험에서 20개를 넘었었으니까...

 

그래도 내 주변엔 신기하게 5개 미만인 아이들의 울상이 더

 

깊었었다.

 

"엄마한테 죽었다...ㅠㅠ" 며, 벌벌 떨면서, "학원 선생님한테

 

죽었다..." 며, 울상 짓던 친구들...

 

내가 6학년때 18개를 틀렸었던 것을 말하면서 자랑스럽게

 

아이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모두가 경악했다.

 

"예? 18개가 잘친시험이었다구요???"

 

 

 

초등학교,

 

초등학교에서 나의 기억에 남는 것은 멋진 수업이나, 잘친 시험

 

보다도, 내가 잡았던 벌레, 내가 만들었던 찰흙, 내가 그렸던 그림

 

내가 달렸던 릴레이 경주들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노란 장화와 노란 우비를 입고 운동장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던 것과,

 

여름이면 곤충채집한다며 한손에는 채집통, 한손에는 장대에 그물

 

달린...(이름이 뭐더라) 하여간 그걸 들고 열심히 풀밭을 헤집고

 

다녔다.

 

가끔씩 x 가 둥둥 떠다니던 남천동 삼익 유수풀장에서 수영도 많이

 

했고, 버려진 자전거를 수리해서, 그멀다는 (2학년에겐) 용호동

 

이기대까지 "여행"을 떠나기도 했었던 것이 나의 초등학교의

 

기억들중의 그림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친구들과 대화도 없고, 부모와의 대화도 없다

 

오로지 대답없이 일방적으로 눈과 귀를 빼앗아버리는 컴퓨터 만이

 

유일한 그들의 친구이며, 이제는 인터넷 속에선, "초딩" "초글링"

 

이라는 비하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다.

 

 

94년 PC 통신 하이텔에 접속하던 당시, 초등학생이라고 하면

 

반겨주면서, 나이도 어린데 벌써 이런걸 할줄 아냐면서 좋은 이야기

 

많이 해주시던, 30먹은 아저씨들, 나우누리에서 만났던 중학교 누나

 

들...유니텔에서 지금 네이트 온처럼 누가 들어왔나 부터 체크하던

 

그때가 나의 94년 96년 4학년 5학년 6학년 때이다.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

 

더이상 어린이는 사랑의 대상이 아닌게 되어가고 있다.

 

어린이는 점수를 따는 기계로 변하고, 점수를 잘 따는 기계는

 

곧, 돈을 잘버는 기계로 변하고, 돈을 잘 버는 기계는...또....

 

 

 

나의 초등학교때 꿈은, 달리기 선수였다.

 

그러나, 지금 "초딩"들의 꿈은,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