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을 잃어버린 파수꾼

녹색연합2007.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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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을 잃어버린 파수꾼
산양을 잃어버린 파수꾼
  산양을 잃어 버린 파수꾼

산양을 잃어버린 파수꾼

대피소 창문으로 어슴프레 빛이 들어오고 있다. 어둠이 걷히려면 아직도 두어시간이 지나야 하지만 산에 들면 언제나 이른 새벽에 잠이 깬다. 어둠속에 누워 산길을 더듬어 오른다. 날렵하게 몸을 솟구쳐 바위벼랑을 오르고 능선을 달리면서 설악산의 정기를 마시고 정상으로 이어지는 암릉의 꿈틀거림에서 힘을 얻고 살아가는 산양을 본다. 일어나야겠다.


어둠이 걷히면서 쏟아질 듯 박혀있던 별들이 스러지고 하현달이 빛을 잃고 서녁으로 기울고 있다. 이맘때는 사람이 없어 대피소가 더욱 썰렁하고 을씨년스럽다. 대피소안에 찬기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어깨만 움추러 든다. 아침을 맞은 새들의 노래소리가 썰렁한 분위기를 바꾸고 있을 뿐이다. 어제 먹다 남은 우거지국을 데워 찬밥을 말아서 먹는다.산에서 먹는 일은 중요하면서도 가장 귀찮은 일중에 하나다. 무엇을 먹을까, 어떻게 먹을까 때문이 아니라 추위에 게을러져 손쉬운 것으로 끼니를 떼우기가 십상이다. 또 하나 귀찮은 일은 이른 아침에 화장실가는 일이다. 겨울철에는 더욱 그렇다. 오늘 아침도 예외가 아니어서 미적거리다가 밥을 먹고 나서야 겨우 몸을 풀었다.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일도 시원치가 않아서 뒤끝이 개운치가 않다. 할 수 없지 뭐. 옷을 추수리고 짐을 챙긴다.

산양을 기록하기 위한 카메라,비디오,필름, 바위벼랑을 내려서기 위한 밧줄, 발자국의 폭과 크기를 재기 위한 줄자, 늦을 때를 위한 헤드랜턴, 느낌이나 일의 상황을 적기 위한 기록구, 산양의 흔적을 표시하기 위한 지도와 나침반, 발자국과 똥을 확인 하기 위한 족적도감, 돋보기, 멀리서 현장을 살피기 위한 쌍안경, 짐승의 똥을 모으기 위한 수집통, 방풍과 보온을 위한 여벌 옷, 뜨거운 차를 담은 보온병, 점심용 식빵 두쪽, 치즈두장, 햄두쪽, 간식용 건빵 한봉지 등 될 수 있으면 가볍게 짐을 챙기고 모자와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고 길을 나선다.

어제부터 불어대던 바람은 오늘도 종일 불어제낄 모양이다. 숲길을 벗어나 수렴동계곡으로 들어선다. 아직 햇살이 퍼지지 않아서 한기가 도는 계곡의 얼음장 위로 올라서면 쩡쩡소리를 내며 얼음이 갈라진다. 멀리 공룡능선과 곰릉, 감투봉 능선이 하늘금을 그으며 병풍처럼 둘러섰고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바람은 몸속으로 파고 들어 온기를 빼앗아 간다.

인디언들은 불어오는 바람속에서도 자연의 메시지를 들었다는데 지금 불어대는 바람은 내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일까?

수렴동계곡을 벗어나 좁고 험한 귀떼기골로 들어선다. 언제나 골짜기로 들어설 때면 기대와 설레임이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사람들이 왔다 갔는지, 무엇 때문에 왔는지, 걱정부터 앞서고 발자국을 살피게 된다. 바로 이곳에 몇마리 남지 않은 산양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새해연휴때 지나간 등산객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나있다. 이곳은 다닐 수 없는 곳인데도 늘 이지경이다. 지켜져야 할 일들이 제대로 지켜지는 세상은 언제나 보게 될까.

자주 이길을 드나들다 보니 길섶에 자라는 나무 하나하나에 정이 가고 돌봐 주는이 없어도 잘자라는 어린 젓나무들이 대견스럽다. 큰나무,작은나무들이 엮어내는 아름다움은 산길을 오를 때 마음속을 자연에 대한 외경심으로 가득차게 만든다.

겨울철이면 골짜기는 해가 귀떼기청봉 위로 솟아 올라야 햇볕이 든다. 열시가 넘어서야 쏟아지는 햇살을 받고 나뭇가지들이 빛나기 시작하면서 그늘에 묻혀 있던 숲이 되살아난다. 숲를 헤치며 산비탈을 오른다. 잔돌이 가득 깔린 비탈길은 발을 디디면 무너져 내려 오르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낙엽이 깔린 비탈길에 희미하게 길의 흔적이 뱌위벼랑 밑으로 이어진다. 가파른 비탈에서 그래도 편안하게 느껴지는 길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힘들지 않고 편한 길을 찾아서 다니는 것은 마찬가진가 보다.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흔적을 살피면서 길을 따라 오른다. 먼저 눈에 띈것은 바위벼랑 밑에 버티고 있던 토종벌통이다. 그리고 벌통 옆에는 산양똥이 소복이 쌓여 있다. 사람들이 자주 오르내리게 되면 산양이 살아가는데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사람과 짐승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이야 바람직한 세상이지만 그럴만큼 믿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사진을 찍으려고 장갑을 벗었더니 바로 손이 뻣뻣하게 굳어진다. 기온이 무척 내려간 모양이다. 굳은 손으로 겨우 사진을 찍고 똥의 수를 세고 크기를 잰 다음 수집통에 똥을 담는다. 바위턱의 너비와 길이도 재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은 자국은 없는지 살펴본다. 싸리나무 아랫부분이 한뼘 정도 벗겨져 있으나 이빨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 쬐는 양지바른 곳에서도 바람이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많이 떨어져 춥다. 눈물이 고이고 콧물이 코 끝에 매달린다.

귀떼기청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8-9부 쯤을 이루고 있는 바위벼랑 밑을 따라 오른다. 벼랑 밑으로 이어지는 길도 매우 가파르고 잔돌이 깔려 있어서 밟으면 흘러내리곤 해서 힘들게 올라도 제자리다. 위험하긴 하지만 바위를 타고 오르는 것이 흔적을 살피고 기록하면서 가는데 더 편할 것 같아 바위를 잡고 오른다. 간간이 바위턱이 나오고 산양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바위벼랑에는 소나무와 신갈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자라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바위벼랑에 뿌리를 내리고 서있는 모습은 한겨울에 더욱 힘차 보인다.

산양들이 쉬었다 가는 곳은 거의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바위를 등지고 앞쪽으로 낭떠러지를 이룬 바위턱에는 어김없이 산양이 누웠다간 흔적과 똥이 보이고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산양이 다니는 길을 따라가는 일은 내가 산양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희미하게 보이는 좁은 길을 따라가다 윗쪽으로 이어진 곳에서 깊이 찍힌 발자국들을 보면 산양도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바위턱에 다달아 눌린 흙바닥과 똥을 보면 산양이 누워서 쉬었다 갔음을 알 수 있다. 손을 대보면 산양의 체온이 느껴지는 듯 하다. 한겨울에 산양들은 낮은지역 양지바른 곳에서 겨울을 나고 여름에는 높은지역으로 옮겨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요즈음 다니면서 조사해본 결과 높은지역에서는 오래된 똥뿐이었고 북쪽 눈쌓인 곳에서는 산양의 발자국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짐작뿐이고 극심한 겨울가뭄으로 눈이 없어 발자국을 쫓을 수도 없고 눈밭에 찍힌 발자국을 보고 개체수나 행동반경을 어림 잡아볼 수도 없다. 눈이 올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자연과 함께 하는 일은 겸손과 외경심을 가지고 끈질긴 기다림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 더구나 사랑하는 산양을 위해서 하는 일에 있어서랴.

한낮인데도 추위는 물러설줄 모른다. 목덜미로 파고드는 바람이 차고 매섭다. 카메라가 얼었는지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비디오는 밧데리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서버렸다. 몸도  춥고 마음도 춥고 이래저래 겉과 속이 다춥다. 햇볕이 쪼이는 양지쪽에 자리를 잡지만 바람 때문에 떨리기는 마찬가지다. 늦은 점심을 먹는다. 식빵에 철판처럼 굳어버린 치즈와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얼어버린 햄을 끼워서 꾸역꾸역 씹어 넘긴다. 그래도 입안에 넣고 오래 씹다보면 넘기기가  조금은 쉬워진다. 빵으로 끼니를 떼우는 일은 아직도 익숙칠 못하다. 이럴 땐 그저 뜨거운 국물에 밥한공기면 그만일 것을. 보온병을 꺼내 뜨거운 차를 따라 마신다. 속에서부터 떨려오던 추위가 조금은 가신다. 추위를 떨쳐버리는 방법은 걷는 것이다. 가자.

지난번에 왔던 곳에 이르러 바뀐 것은 없는지 살펴본다. 새로 찍힌 발자국은 없는지, 새로 싼 똥은 없는지, 지나간 흔적이나 쉬었다간 흔적을 찾아본다. 산양의 똥은 크기가 땅콩만하고 검정색인데 전혀 색깔이 다른 황금색 똥이 눈에 띈다. 냄새를 맡아보고 눌러본다. 냄새도 없고 단단하다. 다른 똥이나 다를바가 없는데 왜 색깔이 다를까? 먹이 때문일까? 속병이 있어서 일까? 똥이 시간에 따라 굳어지는 정도를 알고 싶고, 어미와 새끼는 똥의 크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먹이에 따라 똥의 색깔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소화가 안될 때 똥의 모양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똥을 들여다 보아도 궁금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마침 가지고 왔던 사과가 있어서 잘라서 놓아두고 갔었는데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산양이 먹은 것 같다. 무인자동카메라를 설치했었다면 산양의 모습을 찍었을텐데 아쉽다. 사진을 찍고 상황을 기록하고 다른곳을 살펴본다.

서식지 안에서 흔적이 뚜렷한 곳 몇군데를 정해 놓고 정기적으로 살펴 보면 산양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산양들의 쉼터 역할을 한곳으로 여겨지는, 오래된 똥위에 새똥이 계속 쌓이고 있는 곳을 찾아 조사할 곳으로 정하고 지도에 표시를 한다음 번호와 날자를 적고 사진을 찍는다.

어느덧 능선에 올라서고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버린다. 볼이 얼얼하고 감각이 없다. 그래도 마음먹었던대로 둘러보았고 새로운 방법을 적용해서 조사를 했다는 것으로 추위도 크게 느끼지 못하고 돌아다녔다. 겨울은 낮이 짧아서 내려가는 일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더구나 등산로를 따라 다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둠속에 온산을 헤메고 다니는 고역을 치룰 수도 있다. 서북능선에서 흘러내린 산줄기들이 겹겹으로 이어져 있고 멀리 정상부가 눈에 들어온다. 늘 보아왔던 산, 언제나 새로움으로 다가서는 산. 많은 날들을 그 산의 품속에서 지냈고 앞으로도 그 품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눈이 쌓인 북쪽 산비탈을 타고 내려온다. 가끔씩 산짐승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히기도 했고 산양의 발자국도 바위밑을 돌아 나갔다.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 온몸에 땀이 배어 나오고 덥다, 능선이 활처럼 휘어져서 어느곳에서 내려와도 거의 같은 곳으로 내려서게 된다. 해는 이미 산능을 넘어가고 바람은 어둠이 내리는 계곡을 타고 내달린다. 얼음장을 밟으며 내려온다. 너무 맑게 얼은 곳은 물위를 걷는 것처럼 신기하고 불안하다. 쪼그리고 앉아서 조용히 들여다 보면 물고기들이 한덩어리가 되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추위를 이겨내는 방법인가 보다.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소리, 보금자리로 돌아가는산새들의 노래소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서로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 들이는 모습이 아닐까.

대피소에 들어선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희미한 불빛이 비추고 있을 뿐 조용하다. 짐을 내려 놓고 계곡의 얼음을 깨고 물을 한통 길어온다. 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이면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 보고 내일의 일정을 잡아본다. 올 겨울 들어 제일 추운날씨였고 며칠 계속 춥겠다는 기상예보다. 내일은 바람만이라도 잠잠해졌으면 좋겠다. 산행일기를 쓴다. 두서너 시간이 걸릴 정도로 이생각 저생각에 밀려 다녀도 긴긴 겨울밤을 지새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잠자리를 마련해 놓고 밖으로 나간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찰랑찰랑 넘칠 것처럼 물기를 담은 별들이 가득하다. 산양은 지금쯤 어디에서 별빛을 받으며 쉬고 있을까. 보고 싶다.         

2000.1.8일 산양을 조사하고 쓴 산행일기입니다.  
설악산에서 산양의 동무 작은뿔  박 그 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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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설악녹색연합 사이트 http://www.sanyang.net/ 에서 박그림 대표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