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워] 심형래의 아름다운 도전

송상희2007.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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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 코미디언 심형래의 인기를 요즘 세대들에게 설명하려면 과연 어느 연예인에 비유를 해야 할까... 아무리 누군가를 떠올려보려고 해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이 정감어린 바보연기 전문 코미디언에 대한 어린이들의 사랑은 유독 각별해서 '소년중앙', '어깨동무', '새소년' 류의 어린이잡지에서 독자엽서 투표로 순위가 가려지는 연예인 인기순위에서 심형래는 몇 년 동안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그것도 2위와 4~5배의 득표수 차이로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다.

 

브라운관에서 시작된 심형래의 인기는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이어져 나도 방학시즌이면 어김없이 그가 등장하는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4년 연속 연예인 소득 랭킹 1위를 기록했던 심형래는 언제부턴가 영화에 전념하기 시작하면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좀처럼 얼굴을 보기 힘들어졌고 그가 출연 뿐 아니라 감독까지 맡은 영화는 꾸준히 제작되었지만 나는 우뢰매 5편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그의 영화를 보지 않게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친구들과 극장을 찾아다니며 본 토탈리콜, 터미네이터2, 로보캅2 등은 우뢰매의 조악한 특수효과와는 비교될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었다.

 

나의 뇌리 속에서 점점 멀어져간 심형래는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오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용가리'를 세상에 내놓았고 신지식인이니 뭐니 떠받들던 세상은 어느순간 그를 웃음거리로 전락시키며 사기꾼으로까지 몰아갔다. 한동안 잊고 살던 어린 시절의 우상을 보며 내심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던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었을거다. 그리고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가면서 또 괴수영화를 만들겠다는 소식을 접하니 한편으론 갑갑하기까지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실체를 드러낸 디워는 상당한 수준의 예고편으로 높아진 기대를 배신하지 않으며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들과 객관적으로 비교하더라도 떨어지지 않는 CG를 자랑한다. 수백마리의 괴수들이 도시를 파괴하며 군대와 전투를 벌이는 장면은 특수효과의 수준은 물론 액션 연출의 박진감에서도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와 어깨를 겨룰 만 하다.

 

미국 시사회 이후 어느 평론가의 'A급 그래픽과 Z급 스토리' 발언은 훌륭한 그래픽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스토리라인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스필버그에게 배신감을 느낄 정도로 허접한 스토리의 트랜스포머를 화려한 볼거리만으로 재미있게 봤다면 디워 역시 무리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살짝 지루한 드라마는 주로 앞쪽에 배치되어있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강력한 장면들이 나오면서 영화 막판에 다다르면 예고편에서조차 거의 선보이지 않은 엄청난 전투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아드레날린 분비가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엔딩 크레딧을 맞게 된다는 점도 영화 개봉 이후 좋은 입소문을 기대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아쉬운 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종종 납득되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다소 설득력이 부족한 몇몇 설정, 그리고 무엇보다 밋밋한 대사 및 표정처리와 함께 캐릭터 구축에 약점을 드러내는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어린시절 우상이었던 영구 심형래에 대한 의리라든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초토화된 국내 영화계에 대한 애정이나 애국심 따위는 싹 지워버리고 오로지 '볼거리'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다 해도 이 영화는 관람료가 결코 아깝지 않은 흥미진진한 90분을 보장해준다. 운이 좋아 남들보다 조금 먼저 기자 시사회를 볼 수 있었지만 심형래의 팬으로서도 아니고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으로서도 아닌 오로지 괴물이 나오는 SF 영화를 좋아하는 팬으로써 놀랍도록 잘 만들어진 이 재미있는 영화를 한번 더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 영화가 무조건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로 인해 심형래 감독의 또다른 도전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지고 나아가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무르고 있는 한국영화계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교두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일년에 수십억(지금 물가로 환산하면 수백억)을 벌어들이던 잘나가는 코미디언의 길을 버리고 다들 무모하다고 했던 험한 길을 걸어간 심형래 감독의 도전이 아름다운 전설로 남았으면 좋겠다. 영화 속 잭의 대사 'This is Korean Legend'처럼...

 

뱀발 하나 : 영구아트 직원들마저 말렸다던 아리랑 삽입은 훌륭한 선택이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다른 음악으로 바뀌는게 아쉬울 정도로 아리랑의 선율은 아름다웠다.

 

뱀발 둘 : 엔딩에서 다소 닭살스런 자막이 올라가는데 심형래 감독이 아닌 배급사 사장의 권유로 삽입되었다고 한다. 미국 개봉시엔 빠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