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략)... 우리는 한 달 동안 계약연애를 하기로 하

임경하200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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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우리는 한 달 동안 계약연애를 하기로 하고 만났다.

그 기간에 나는 많은 일을 했다. 하루는 그녀의 다이어리를 뒤져서 쇼핑 리스트를 훔쳤다.

넘버 어쩌고 하는 향수, 어디어디 메이크업 베이스, 어느 백화점에서 파는 무늬 스타킹....

하루에 그걸 다 사서 그녀에게 갖다줬다.

집 앞에가서 그녀를 불러내 아이만큼 큰 인형을 안겨 주며 "네가 보고 싶어서 왔어"하고는 그대로 돌아오기도 했다. 유치한 수법이긴 하지만. 나 오늘 월급 탔거든 (내가 무슨 월급을 타?), 내가 봐 둔 식당이 있거든... 그녀를 불러내기 위한 이유도 많았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결정의 순간. '그때'가 되었다. 우리는 밤 11시 30분에 통화를 하면서 이렇게 약속했다. 사귀고 싶으면 호출기에 0을 찍고, 그만두고 싶으면 1을 찍지고.
둘다 0이 나오면 다음날 하얏트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둘다 1이 나오면 포장마차에서 밤 10시에 만나 술먹고, 한쪽만 1이 나오면 저녁에 만나 로바다야키에서 술 먹자고.
전화를 끊고 자정이 되기를 기다렸다. 호출기가 울렸다. 0이 다섯 개였다.!

시간을 봤더니 밤 11시 57분이었다. 우리는 다음날 하얏트에서 조식을 먹었다.

- 유희열 삽화집, <익숙한 그 집앞>中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