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약 1년 전 신문에 난 글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읽기 싫으시면 아래 제가 쓴 글만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지평선] 말 안 듣는 국민
한국일보 | 기사입력 2006-08-06 17:42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여성의 정조만 보호한다’. 오래 전 회자됐던 명판결의 취지를 국가와 국민의 일반적 관계로 넓혀 보면, 국가는 보호할 가치가 있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만 보호한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물론 국가의 의무를 이렇듯 좁게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대 민주국가는 정의의 여신처럼 눈을 가린 채 모든 국민을 차별 없이 돌보는 것이 이상이다. 토마스 홉스 이래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국민은 국가의 권위에 순응하는 대가로 보호를 받지만, 더러 그 권위를 무시하는 이들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어설픈 국가론 같지만, 이런 사리는 서구사회에서 재외 국민 보호를 둘러싼 시비를 가리는 준거가 된다. 이를테면 정부의 경고와 만류를 무릅쓰고 전쟁지역에 들어갔다 곤경에 처한 국민을 위해 어디까지 힘써야 하느냐는 논란과 관련해서다.
엄격한 법률가와 여론은 정부의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 위험을 초래한 이들을 위해 구조팀과 전세기를 보내는 등, 선량한 다수 국민이 낸 세금을 쓸 국가의 의무는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어느 정부든 재외 국민 보호에 관한 법규정을 떠나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무장 세력에 잡힌 인질을 구하기 위해 거액의 몸값을 대신 치른 사례도 드물지 않다. 몸값 거래는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구출된 인질에게 몸값을 청구하기도 어려워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 된다.
그렇다고 정부 방침을 앞세워 몸값 거래를 거부하다 자칫 인질이 희생되면, 여론의 질책과 유족들의 소송까지 각오해야 한다. 다만 독일 헌법재판소가 이런 헌법소송에서 “국민보호 의무를 수행하는 효과적 방법을 결정할 책임과 권한은 국가에 있다”며 정부 손을 들어준 선례는 각국 정부에 위안이 될 만하다.
■전쟁상태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슨 평화축제를 열려던 기독교인들이 정부의 만류와 아프간 측의 출국조치로 행사를 취소한 것은 다행이다. 그들은 뜻 깊은 계획이 무산된 것이 아쉽겠지만, 이슬람 사회의 반감과 테러 등을 우려한 정부가 ‘말 안 듣는 국민’까지 보호하기 위해 애쓴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일부 신도는 정부가 행사를 방해했다며 소송을 낼 것이라니 지나치다. 아무리 하느님의 권위가 크고 높더라도, 현실의 국가 권위와 정부의 성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제라도 위험에 처하면 정부를 찾지 않을 것인지 묻고 싶다.
제가 바라보는 한국 개신교의 모습과 악플...
우선 약 1년 전 신문에 난 글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읽기 싫으시면 아래 제가 쓴 글만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지평선] 말 안 듣는 국민
한국일보 | 기사입력 2006-08-06 17:42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여성의 정조만 보호한다’. 오래 전 회자됐던 명판결의 취지를 국가와 국민의 일반적 관계로 넓혀 보면, 국가는 보호할 가치가 있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만 보호한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물론 국가의 의무를 이렇듯 좁게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대 민주국가는 정의의 여신처럼 눈을 가린 채 모든 국민을 차별 없이 돌보는 것이 이상이다. 토마스 홉스 이래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국민은 국가의 권위에 순응하는 대가로 보호를 받지만, 더러 그 권위를 무시하는 이들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어설픈 국가론 같지만, 이런 사리는 서구사회에서 재외 국민 보호를 둘러싼 시비를 가리는 준거가 된다. 이를테면 정부의 경고와 만류를 무릅쓰고 전쟁지역에 들어갔다 곤경에 처한 국민을 위해 어디까지 힘써야 하느냐는 논란과 관련해서다.
엄격한 법률가와 여론은 정부의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 위험을 초래한 이들을 위해 구조팀과 전세기를 보내는 등, 선량한 다수 국민이 낸 세금을 쓸 국가의 의무는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어느 정부든 재외 국민 보호에 관한 법규정을 떠나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무장 세력에 잡힌 인질을 구하기 위해 거액의 몸값을 대신 치른 사례도 드물지 않다. 몸값 거래는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구출된 인질에게 몸값을 청구하기도 어려워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 된다.
그렇다고 정부 방침을 앞세워 몸값 거래를 거부하다 자칫 인질이 희생되면, 여론의 질책과 유족들의 소송까지 각오해야 한다. 다만 독일 헌법재판소가 이런 헌법소송에서 “국민보호 의무를 수행하는 효과적 방법을 결정할 책임과 권한은 국가에 있다”며 정부 손을 들어준 선례는 각국 정부에 위안이 될 만하다.
■전쟁상태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슨 평화축제를 열려던 기독교인들이 정부의 만류와 아프간 측의 출국조치로 행사를 취소한 것은 다행이다. 그들은 뜻 깊은 계획이 무산된 것이 아쉽겠지만, 이슬람 사회의 반감과 테러 등을 우려한 정부가 ‘말 안 듣는 국민’까지 보호하기 위해 애쓴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일부 신도는 정부가 행사를 방해했다며 소송을 낼 것이라니 지나치다. 아무리 하느님의 권위가 크고 높더라도, 현실의 국가 권위와 정부의 성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제라도 위험에 처하면 정부를 찾지 않을 것인지 묻고 싶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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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워낙에 갑론을박이 격하다 보니
뭐라 말하기도 귀찮고 그저 생환을 바라며 희생자를 애도할 따름입니다만...
이번 네티즌들의 엄청난 비난과 비판은 그동안 한국 개신교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느냐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논지를 전개하기 전에 확실하게 짚어두고 넘어가죠.
저는 개신교인들이 말하는 [일부] 혹은 [이단]이라 말하는 자들의 행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개신교의 정통과 이단에 대한 논쟁은 유독 한국에서 더욱 극심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러한 것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정당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누군가 돌을 맞고 있는데 개신교인이라더라...
그러면 그는 자연스레 [이단]으로 낙인찍히고
정통이라 자칭하는 자들로부터 그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며
여론의 뭇매를 감당해야 하죠.
이단 또한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다른 잎사귀 아닙니까?
나무 하나에서 수만개의 잎이 나는데 각각의 잎이 다른 잎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왜 이단이라는 것을 자기 정당화의 수단으로 삼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살펴볼 때,
과연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성토하는 대상은 [이단]에 국한된 것입니까?
저는 확언하건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개신교의 문화가 그러합니다.
하나님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는다 하나 실은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그것을 맹신하는 것이고
목사님의 설교가 성경에 부합하는지 확인해 볼 능력이 부족한 것 또한 그들의 모습이고
그러한 줄도 모르고 그저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명제에 철저히 부합하는 그들의 모습...
물론 일부 개념있는 신도들께서는 인터넷상으로나마
다른 네티즌들에게 사과를 하기도 하고 자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싸이월드 광장에서 활동하는 [노아성]씨와 같은 경우
졸려진 목을 붙잡고 발버둥이라도 치는 듯한 행동으로 오히려 안티-개신교인을 양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실로 의문스럽습니다. 냉정하게 쓴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이렇게나 없다는 것이...
진정 이것이 한국 개신교의 참모습입니까?
표현이 부드럽고 거칠고를 떠나 누가봐도 분명한 잘못에 대해 지적하고 성토하면
겸허히 수용하고 설령 그것이 귀에 거슬리는 소리라 할지라도
성경의 가르침대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세를 보였다면
작금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일부 극렬 악플러들을 막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여론이 이정도로 개신교인들에게 안좋은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개신교에 쓴소리를 자주 해 오던 사람입니다.
아는 분은 아십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글에서도 밝혔듯이 한국의 개신교가 더 나은 모습을 보이기를 갈망합니다.
사회에서 환영받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일이 다시한번 일어나도 모든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를 받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신교인들은 더욱 성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더욱 겸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종교적 정치적 신념이 투철하고 소중하듯이
타인의 그것 또한 유일무이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줄 때
여러분의 신념 또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지만 스크롤의 압박이 느껴지기에 이만 줄이겠습니다.
생명은 소중합니다. 그러한 생명을 향해 악플을 던지는 네티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십시오.
당신들의 지나온 발자취가 얼마나 대중에게 불쾌감을 주었고
당신들의 생각과 말이 대중에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었기에
그들이 그렇게 잔인한 말을 내뱉을까요?
자기정화능력이 결여된 종교는 몰락하게 되어있습니다.
부디 그 성스러운 능력을 잃지 말고 반성하고 달라지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