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아니 제 주위에서조차도 예수님 말씀처럼 이웃을 원수를 사랑하지 못 하고 있는 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하나님의 자녀됨을 허락해주셔서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프간 피랍 사건으로 인해 기독교를 폄하하고 비하하는 글들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파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를 포함한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행실들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죄송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욕을 먹을 지언정 하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글솜씨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신앙으로 인해 깊이있게 말하지 못하더라도 제가 알고 있고 따르려고 하는 기독교에 대해 쓰고자 합니다. 기독교인에 의해 기독교에 불만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더더욱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피랍사건에 대해 기독교인에 대한 반감만으로 쉽고 간단하게 리플을 달기 전에, 피랍자들이 믿고있을 기독교가 어떤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제가 기독교인이라는 전제 하에 이 글을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를 종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기독교는 진리입니다. 여기서 바로 제가 기독교인이라는 전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 이 세상의 시작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혹시 이 세상을 만든 신이 있는 것은 아닐까?" 기독교인들은 이 해답을 하나님으로부터 구하는 것입니다.
음악에서 어떤 이는 클래식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재즈를 좋아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선호도를 표현하고자 하는 수치가 아니라 삶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들은 기독교를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일까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익히 들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것을 받아들인 후에야 기독교인들의 '배타성'을 이해하실 수 있을겁니다.)
1.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손으로 직접 만드십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닮게 만드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과의 끈',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한번 쯤은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무엇을 좇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해봤을 것입니다. 분명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껴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손으로 지어졌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해야합니다. 우리가 아플 때엔 힘들 때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과의 끈" 입니다.
"저 별을 따다 줄게!" 달콤한 연인들만 나눌 것 같은 일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직접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별도 달도 해도, 이 아름다운 지구를 만들어주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신 이 땅은 우리를 향한 "사랑의 선물"이기 때문에 귀하게 여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이야기는 또한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행실로 인한 것입니다. 귀한 선물일 수록 더욱 아끼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모든 것을 마련해놓으셨음으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인해 비교당하고 열등감을 가지며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돈, 학벌, 명예와 같은 것들은 인간에게 허락하신 것이지 인간이 좇아야 할, 혹은 고통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뭉뚱그려서 말해지는 기준조차 애매한 "존엄성" 이라는 추상적 단어로 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손수 지으신 창조물이기 때문에 그 존재만으로 가치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세상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허락하신 또 하나가 바로 "자유의지" 입니다.
이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도, 또 혹시 마귀가 있다면 마귀 또한 의아해 할 선물입니다. 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을까요? 자유의지를 허락하지 않았다면,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지도 않았을 텐데요. 또한 선악과가 아예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정말 우리를 만드셨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기쁘고 행복하다면 , 우리가 억지로라도 하나님께 묶여있는 것이 오히려 좋은 것이 아니였을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도 하나님께 나오며 겪게 될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마치 아기가 아장아장 걸음마하며 아빠에게 갔을 때에 아기 또한 기쁠 것 마냥,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올 때에 느낄 기쁨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어쩌면 아기의 걸음마가 힘들지도 모릅니다. 우리 또한 그렇구요!) 그러나 그러한 자유의지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할 수도 있는 상황에 있습니다.
선악과는 왜 만드셨을까요?
선악과는 그 나무 자체의 의미가 강조될 때가 많은데, 사실상 선악과가 같는 의미는 "하나님의 금령"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선악과는 "자유의지" 다음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선과 악의 분명한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선악과는 저주이기 보다 오히려 우리를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해주는 "올바르고 기쁜 기준" 입니다.
그런데 모두 아시다시피 아담과 하와는 그 선악과를 따먹고 맙니다.
2. 하나님의 아들 된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셨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절대 선"이시기 때문에 죄가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 나아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시대에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나오기 위해서는 흠 없고 가장 귀한 양을 데리고 나와 자신의 죄 값으로 죽인 후에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끔찍합니다. 내가 얼마나 이뻐하고 사랑해준 딸랑이를 내 죄 때문에 죽이고 피를 뿌리고 각을 떠야 한다니..ㅠㅠ
양의 제사를 드리면서 자신의 죄를 그 양에게 씌우는데 혹여 회개하지 못 하고 하나님을 만나러 갔다가는 가자마자 즉사해 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들어가기 전에 다리에 밧줄을 묶었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번거로움을 없애시고, 더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예수님을 보내십니다.
아니, 전능하다는 신이 왜 굳이 아들을 죽여서만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거지?
나니아연대기에서 사자는 공의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희생을 치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죄의 값을 치르지 않고 인간을 하나님께로 부를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죄인이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 없는 어린양.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십니다.
그리고 병들고 외롭고 가난한 자, 세리(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지위가 낮은 친일파?)와 어울리며 그들을 고치고 위로해주고 아껴주셨으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결국은 십자가를 지셨죠?
십자가는 그 시대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냐? 나에겐 그저 이야기같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치 초능력을 지닌 자처럼 갖출 거 다 갖추지 않았느냐. 그게 무슨 희생이냐?
아- 맨날 듣는 얘기 또 하나 싶으시겠죠? 목사님 딸인 저는ㅠ 정말 귀에 박히도륵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저는 깜짝 놀랬습니다.
우리집 강아지 딸랑이는 마당에 묶여 있었습니다. 너무 순하고 멍청하고 착해서 동네 아이들 안 가리고 다 친하게 지냈고 돌맹이로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그래도 짖지도 않아요ㅠㅠ) 코카 스페니엘인데 약간 섞여서 머리 모양이 살짝 예수님을 닮았지요ㅠ 아무튼 너무 착한 강아지였어요. 그런데 이놈의 꼬맹이가 비를 너무좋아해서 비만 오면 자기 집 위에 올라가서 비를 맞는 거에요. 장마가 왔어요. 며칠 세차게 비가 내렸는데 그러다가 감기에 걸리고. 하루 시름시름 앓더니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빠엄마 나 다 나와서 엉엉 울었지요. 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가 정말 사랑하는 딸랑이에게 얼른 돌아가서 "비 맞지 말라고!! 그러다 죽는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정말. 사랑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딸랑이를 살리기 위해, 딸랑이에게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내가 강아지가 되어서 그들의 언어로 전해줄 수 있을까? 어차피 내 지식에는 머리 안에 있고 몸만 강아지 (헐..) 일 뿐이지 문도 열 수 있고 화장실 물도 내릴 줄 알고, 덧셈 뺄셈 곱셈 다 하고 사람 말도 다 알아듣고 오나전 천재강아지잖아!
그렇지만, ..... 내가 아무리 딸랑이를 사랑한다 한들 어찌 개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직접 그 피조물이 되어 오십니다. 아무리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든, 죽은 자를 살린다 한들 창조자가 피조물이 되어 온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는데, 창조주가 어디에서 났습니까?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나셨습니다. 가장 천한 모습으로 오셔서 가난한 자들을 향해 직접 그들의 존재 가치를 "사랑"으로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유대 민중들에게 "메시야"로 인정될 만큼 인기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을 좇던 제자들 조차도 "왕이 되거든 오른 편에~ 왼 편에 나를 앉혀달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통한 죄에서의 승리를 이루시기 위해 오신 겸손의 왕이였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 지셨던 무거운 짐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후에 "나의 하나님 나의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만큼 고통스러운 일이었겠지요.
예수님을 고통스럽게 한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떨어짐" 이었습니다. 죄를 대신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고, 그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과 떨어져계셨음으로 우리는 더 이상 죄로인해 하나님과 멀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내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과 대면하여 소통할 수 있는 천국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믿기만 하면 올 수 있도록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 착한데 하나님 모르면 지옥가고 나쁜데 하나님 믿으면 천국행?
사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실재하시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안타까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른다고 무조건 벌을 줘야 하는 겁니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지옥이 '안 믿는데에서 오는 형벌'이 아니라, 지옥에 가지 않게 하기 위해 계획하신 게 예수님이고 천국입니다. 지옥 반 천국 반 편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죄의 값을 치르지 않았을 때에 지옥에 가기 때문에 열어두신 길이 십자가이고 천국인 것입니다.
이미 열어두신 길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예수쟁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을 외치며 돌아다니시는 분들을 보면 가끔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저도 하나님 안에 구원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저의 가까운 친구에게까지도 전하지 못하는 닫힌마음에 부끄럽습니다. 정말 정신적인 병을 지니신 분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 주위의 따가운 눈초리까지도 버텨가며, 욕을 먹어가면서도 그분의 사랑을 전합니다. ( 실제로 하루에 2-3명 정도는 하나님에 대해 궁금해하며 물어본다고 합니다. )
(.. 김우현감독의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라는 영상을 참고하셨으면 좋겠어요!)
또한, 선교를 합니다.
단순한 교세확장이 아닙니다. 우리 편을 늘리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종교가 아닌 감춰진 진리를 알리길 원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수많은 선교사가 와서 하나님 사랑과 하나님 나라를 전했고 직접 순교당하거나 풍토병으로 인해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안 사람들은 우리 지역, 우리 나라에만 국한된 사랑을 지니지 않습니다. 한국에 왔던 선교사님들은 자신의 편한한 고향땅, 직장을 버리고까지 와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언더우드선교사님은 가정에서조차 버림받는 흑사병에 걸린 아이들을 데려다가 치료하였고 그 모습에 고종이 감동하여서 교회를 지어주었답니다. 또한 한국의 선비의 모습을 보며 교육에 희망이 있음을 발견하고 연세대를 창립하였습니다. 에비슨선교사님은 토론토의대에서 교수직에 있었지만, 한국의 열악함을 보고 교수의 자리를 포기하고 가족 모두가 한국으로 와서 병자를 치료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외에 아펜젤러, 스크랜튼, 토마스, 헤론, 베델, 등의 선교사님들도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전했습니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원에 가면 이름도 없이 묻혀진 선교사님들을 포함하여 414명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편안함을 버리고 낯선 땅에 와서 섬기며 전한 하늘나라는 절대 쓸모없는 곳이 아닙니다.
** 진정한 기독인의 선행
천국 가기 위해서 착한 일 한다?
구원은 행위로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 주신 것이 구원이기에 그 어느 누구도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착한 일 안 해도 되는 건가요?
구원의 기쁨과 감사를 바로 안 사람은 나 또한 다른 사람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타인을, 혹은 내가 하나님께 이 만큼 사랑을 받았기에 이거라도! 하는 마음으로 남을 섬기게 됩니다. 그것이 결코 선행으로 인한 뿌듯함이나 기쁨이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기쁘겠지만요.)
또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열심히 선행해야합니다.
아프간 문제로 인해서 "안티 기독교"가 드세게 일어났는데, 이것은 그저 익명성에 의존한 일로 보이진 않습니다.
기독교가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본을 보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 겁니다.
종종 매체에 보도되는 대형교회의 비리들을 보면서 저 또한 그들을 비난하지만. 저의 삶의 자리를 돌아보았을 때에도 과연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부끄럼이 없었나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도대체 저의 삶은 다른이들에게 본이 되지 못 하였고 그리하여 저의 선행,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을 알고자 했던 친구도 없었습니다.
** 하나님 나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여덟가지 복을 아십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5 :2-11
하나님이 바라시고 계획하신 나라에는 마음이 가난하고 청결하며, 의를 위해 핍박받고 온유한 자들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남을 섬기게 하시며, 왕으로 오신 예수께서는 "섬기려 오셨다"고 하시며, 섬기는 자로서의 리더를 말씀하십니다. 부요한 자로서 스스로 가난하여져서 인간을 섬기셨던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 마 5:13
예수님께서 기독인을 통해 이 땅에 이루시길 바라는 하나님 나라는 빛과 소금이 있는 나라입니다. 지금 어쩌면 우리의 짠 맛을 잃어 세상에서 밟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밥천국보다 쓸모없는 예수천국"
목숨을 걸고서라도 전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리플을 보면서 저는 오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죄송합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내세울 것은 하나 없지만, 그래도 기독교인을 대표해서 바르게 살지 못 한것에 대해 사죄합니다. 저의 바르지 못한 행동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고, 하나님께 나오는데 방해가 되었던 것에 대해 깊이 사죄합니다.
많은 분들이 생각하고 어쩌면 기대하시듯이, 하나님을 믿으라! 고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시고 기다리십니다.
이번 아프간 사건을 통해 기독교인으로서의 저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그 어떤 말보다도 먼저 마음의 중심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날 용서하시듯 남을 용서하며 사랑해야겠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자더라도 여전히 나약함으로 인해 늘 선할 수는 없음을 고백합니다. ( 그래서 기독교에서의 구원은 "성화"라는 현재적 차원의 것도 포함됩니다.)
우리는 사람인지라 여전히 약합니다. 물론 우리의 책임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부족함으로 인해 "기독교"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기독교인으로인해 상처받지 마시고 먼저 하나님을 만나셨으면 합니다.ㅠ 아무리 하나님을 전한다 한들
제 입술로는, 제 행동으로는 그 분을 다 담아낼 수 없습니다.
(또한 피랍자분들을 너무 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위에 글을 다 읽으셨다면 그분들이 어떤 마음자세로 그곳에 갔을지 이해가 되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과정 상에 문제가 있었지만, 가서 먼저 섬기고 자신이 지닌 좋은 소식을 전하러 간 것 자체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에 대해 너무 쉽게 타자를 두들이는 것은 정말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 3:11
하나님, 우리의 행실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 할 망정
당신의 이름을 더럽히고 당신께 나오는 이들의 문을 막은 저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나라는 영원하며 영광스러움을 고백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로 인해 당신을 욕하고 손가락질하지만. 하나님ㅠ 이 낮은 곳에서 당신을 높여드립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이 땅을 사랑하셔서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주시고 이제는 우리가 선교강국이 되었지만, 수적 성장 만큼이나 영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이땅에 흘려진 순교의 피를 기억하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저희가 당신을 위해여 철저히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하시고, 모든 영광은 당신께로 올려지길 원합니다. 제 모습 여전히 약하고 악하지만 저를 당신 보시기에 아름다운 그릇으로 빚어주시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온전히 영광받으시길 원합니다.
아버지, 이일을 통하여서 우리 한국 기독교가 회개하고 다시금 십자가를 붙잡고 섬김과 사랑의 실천을 행하게 하소서. 저희 행실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며 하나님의 법과 사랑이 바로 선 나라가 되게 하소서.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이 시대에, 아니 제 주위에서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이 시대에, 아니 제 주위에서조차도 예수님 말씀처럼 이웃을 원수를 사랑하지 못 하고 있는 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하나님의 자녀됨을 허락해주셔서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프간 피랍 사건으로 인해 기독교를 폄하하고 비하하는 글들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파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를 포함한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행실들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죄송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욕을 먹을 지언정 하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글솜씨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신앙으로 인해 깊이있게 말하지 못하더라도 제가 알고 있고 따르려고 하는 기독교에 대해 쓰고자 합니다. 기독교인에 의해 기독교에 불만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더더욱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피랍사건에 대해 기독교인에 대한 반감만으로 쉽고 간단하게 리플을 달기 전에, 피랍자들이 믿고있을 기독교가 어떤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제가 기독교인이라는 전제 하에 이 글을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를 종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기독교는 진리입니다. 여기서 바로 제가 기독교인이라는 전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 이 세상의 시작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혹시 이 세상을 만든 신이 있는 것은 아닐까?" 기독교인들은 이 해답을 하나님으로부터 구하는 것입니다.
음악에서 어떤 이는 클래식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재즈를 좋아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선호도를 표현하고자 하는 수치가 아니라 삶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들은 기독교를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일까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익히 들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것을 받아들인 후에야 기독교인들의 '배타성'을 이해하실 수 있을겁니다.)
1.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손으로 직접 만드십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닮게 만드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과의 끈',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한번 쯤은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무엇을 좇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해봤을 것입니다. 분명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껴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손으로 지어졌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해야합니다. 우리가 아플 때엔 힘들 때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과의 끈" 입니다.
"저 별을 따다 줄게!" 달콤한 연인들만 나눌 것 같은 일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직접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별도 달도 해도, 이 아름다운 지구를 만들어주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신 이 땅은 우리를 향한 "사랑의 선물"이기 때문에 귀하게 여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이야기는 또한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행실로 인한 것입니다. 귀한 선물일 수록 더욱 아끼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모든 것을 마련해놓으셨음으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인해 비교당하고 열등감을 가지며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돈, 학벌, 명예와 같은 것들은 인간에게 허락하신 것이지 인간이 좇아야 할, 혹은 고통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뭉뚱그려서 말해지는 기준조차 애매한 "존엄성" 이라는 추상적 단어로 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손수 지으신 창조물이기 때문에 그 존재만으로 가치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세상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허락하신 또 하나가 바로 "자유의지" 입니다.
이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도, 또 혹시 마귀가 있다면 마귀 또한 의아해 할 선물입니다. 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을까요? 자유의지를 허락하지 않았다면,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지도 않았을 텐데요. 또한 선악과가 아예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정말 우리를 만드셨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기쁘고 행복하다면 , 우리가 억지로라도 하나님께 묶여있는 것이 오히려 좋은 것이 아니였을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도 하나님께 나오며 겪게 될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마치 아기가 아장아장 걸음마하며 아빠에게 갔을 때에 아기 또한 기쁠 것 마냥,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올 때에 느낄 기쁨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어쩌면 아기의 걸음마가 힘들지도 모릅니다. 우리 또한 그렇구요!) 그러나 그러한 자유의지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할 수도 있는 상황에 있습니다.
선악과는 왜 만드셨을까요?
선악과는 그 나무 자체의 의미가 강조될 때가 많은데, 사실상 선악과가 같는 의미는 "하나님의 금령"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선악과는 "자유의지" 다음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선과 악의 분명한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선악과는 저주이기 보다 오히려 우리를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해주는 "올바르고 기쁜 기준" 입니다.
그런데 모두 아시다시피 아담과 하와는 그 선악과를 따먹고 맙니다.
2. 하나님의 아들 된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셨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절대 선"이시기 때문에 죄가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 나아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시대에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나오기 위해서는 흠 없고 가장 귀한 양을 데리고 나와 자신의 죄 값으로 죽인 후에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끔찍합니다. 내가 얼마나 이뻐하고 사랑해준 딸랑이를 내 죄 때문에 죽이고 피를 뿌리고 각을 떠야 한다니..ㅠㅠ
양의 제사를 드리면서 자신의 죄를 그 양에게 씌우는데 혹여 회개하지 못 하고 하나님을 만나러 갔다가는 가자마자 즉사해 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들어가기 전에 다리에 밧줄을 묶었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번거로움을 없애시고, 더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예수님을 보내십니다.
아니, 전능하다는 신이 왜 굳이 아들을 죽여서만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거지?
나니아연대기에서 사자는 공의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희생을 치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죄의 값을 치르지 않고 인간을 하나님께로 부를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죄인이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 없는 어린양.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십니다.
그리고 병들고 외롭고 가난한 자, 세리(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지위가 낮은 친일파?)와 어울리며 그들을 고치고 위로해주고 아껴주셨으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결국은 십자가를 지셨죠?
십자가는 그 시대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냐? 나에겐 그저 이야기같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치 초능력을 지닌 자처럼 갖출 거 다 갖추지 않았느냐. 그게 무슨 희생이냐?
아- 맨날 듣는 얘기 또 하나 싶으시겠죠? 목사님 딸인 저는ㅠ 정말 귀에 박히도륵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저는 깜짝 놀랬습니다.
우리집 강아지 딸랑이는 마당에 묶여 있었습니다. 너무 순하고 멍청하고 착해서 동네 아이들 안 가리고 다 친하게 지냈고 돌맹이로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그래도 짖지도 않아요ㅠㅠ) 코카 스페니엘인데 약간 섞여서 머리 모양이 살짝 예수님을 닮았지요ㅠ 아무튼 너무 착한 강아지였어요. 그런데 이놈의 꼬맹이가 비를 너무좋아해서 비만 오면 자기 집 위에 올라가서 비를 맞는 거에요. 장마가 왔어요. 며칠 세차게 비가 내렸는데 그러다가 감기에 걸리고. 하루 시름시름 앓더니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빠엄마 나 다 나와서 엉엉 울었지요. 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가 정말 사랑하는 딸랑이에게 얼른 돌아가서 "비 맞지 말라고!! 그러다 죽는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정말. 사랑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딸랑이를 살리기 위해, 딸랑이에게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내가 강아지가 되어서 그들의 언어로 전해줄 수 있을까? 어차피 내 지식에는 머리 안에 있고 몸만 강아지 (헐..) 일 뿐이지 문도 열 수 있고 화장실 물도 내릴 줄 알고, 덧셈 뺄셈 곱셈 다 하고 사람 말도 다 알아듣고 오나전 천재강아지잖아!
그렇지만, ..... 내가 아무리 딸랑이를 사랑한다 한들 어찌 개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직접 그 피조물이 되어 오십니다. 아무리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든, 죽은 자를 살린다 한들 창조자가 피조물이 되어 온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는데, 창조주가 어디에서 났습니까?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나셨습니다. 가장 천한 모습으로 오셔서 가난한 자들을 향해 직접 그들의 존재 가치를 "사랑"으로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유대 민중들에게 "메시야"로 인정될 만큼 인기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을 좇던 제자들 조차도 "왕이 되거든 오른 편에~ 왼 편에 나를 앉혀달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통한 죄에서의 승리를 이루시기 위해 오신 겸손의 왕이였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 지셨던 무거운 짐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후에 "나의 하나님 나의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만큼 고통스러운 일이었겠지요.
예수님을 고통스럽게 한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떨어짐" 이었습니다. 죄를 대신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고, 그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과 떨어져계셨음으로 우리는 더 이상 죄로인해 하나님과 멀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내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과 대면하여 소통할 수 있는 천국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믿기만 하면 올 수 있도록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 착한데 하나님 모르면 지옥가고 나쁜데 하나님 믿으면 천국행?
사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실재하시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안타까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른다고 무조건 벌을 줘야 하는 겁니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지옥이 '안 믿는데에서 오는 형벌'이 아니라, 지옥에 가지 않게 하기 위해 계획하신 게 예수님이고 천국입니다. 지옥 반 천국 반 편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죄의 값을 치르지 않았을 때에 지옥에 가기 때문에 열어두신 길이 십자가이고 천국인 것입니다.
이미 열어두신 길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예수쟁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을 외치며 돌아다니시는 분들을 보면 가끔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저도 하나님 안에 구원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저의 가까운 친구에게까지도 전하지 못하는 닫힌마음에 부끄럽습니다. 정말 정신적인 병을 지니신 분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 주위의 따가운 눈초리까지도 버텨가며, 욕을 먹어가면서도 그분의 사랑을 전합니다. ( 실제로 하루에 2-3명 정도는 하나님에 대해 궁금해하며 물어본다고 합니다. )
(.. 김우현감독의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라는 영상을 참고하셨으면 좋겠어요!)
또한, 선교를 합니다.
단순한 교세확장이 아닙니다. 우리 편을 늘리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종교가 아닌 감춰진 진리를 알리길 원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수많은 선교사가 와서 하나님 사랑과 하나님 나라를 전했고 직접 순교당하거나 풍토병으로 인해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안 사람들은 우리 지역, 우리 나라에만 국한된 사랑을 지니지 않습니다. 한국에 왔던 선교사님들은 자신의 편한한 고향땅, 직장을 버리고까지 와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언더우드선교사님은 가정에서조차 버림받는 흑사병에 걸린 아이들을 데려다가 치료하였고 그 모습에 고종이 감동하여서 교회를 지어주었답니다. 또한 한국의 선비의 모습을 보며 교육에 희망이 있음을 발견하고 연세대를 창립하였습니다. 에비슨선교사님은 토론토의대에서 교수직에 있었지만, 한국의 열악함을 보고 교수의 자리를 포기하고 가족 모두가 한국으로 와서 병자를 치료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외에 아펜젤러, 스크랜튼, 토마스, 헤론, 베델, 등의 선교사님들도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전했습니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원에 가면 이름도 없이 묻혀진 선교사님들을 포함하여 414명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편안함을 버리고 낯선 땅에 와서 섬기며 전한 하늘나라는 절대 쓸모없는 곳이 아닙니다.
** 진정한 기독인의 선행
천국 가기 위해서 착한 일 한다?
구원은 행위로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 주신 것이 구원이기에 그 어느 누구도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착한 일 안 해도 되는 건가요?
구원의 기쁨과 감사를 바로 안 사람은 나 또한 다른 사람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타인을, 혹은 내가 하나님께 이 만큼 사랑을 받았기에 이거라도! 하는 마음으로 남을 섬기게 됩니다. 그것이 결코 선행으로 인한 뿌듯함이나 기쁨이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기쁘겠지만요.)
또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열심히 선행해야합니다.
아프간 문제로 인해서 "안티 기독교"가 드세게 일어났는데, 이것은 그저 익명성에 의존한 일로 보이진 않습니다.
기독교가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본을 보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 겁니다.
종종 매체에 보도되는 대형교회의 비리들을 보면서 저 또한 그들을 비난하지만. 저의 삶의 자리를 돌아보았을 때에도 과연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부끄럼이 없었나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도대체 저의 삶은 다른이들에게 본이 되지 못 하였고 그리하여 저의 선행,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을 알고자 했던 친구도 없었습니다.
** 하나님 나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여덟가지 복을 아십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5 :2-11
하나님이 바라시고 계획하신 나라에는 마음이 가난하고 청결하며, 의를 위해 핍박받고 온유한 자들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남을 섬기게 하시며, 왕으로 오신 예수께서는 "섬기려 오셨다"고 하시며, 섬기는 자로서의 리더를 말씀하십니다. 부요한 자로서 스스로 가난하여져서 인간을 섬기셨던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 마 5:13
예수님께서 기독인을 통해 이 땅에 이루시길 바라는 하나님 나라는 빛과 소금이 있는 나라입니다. 지금 어쩌면 우리의 짠 맛을 잃어 세상에서 밟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밥천국보다 쓸모없는 예수천국"
목숨을 걸고서라도 전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리플을 보면서 저는 오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죄송합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내세울 것은 하나 없지만, 그래도 기독교인을 대표해서 바르게 살지 못 한것에 대해 사죄합니다. 저의 바르지 못한 행동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고, 하나님께 나오는데 방해가 되었던 것에 대해 깊이 사죄합니다.
많은 분들이 생각하고 어쩌면 기대하시듯이, 하나님을 믿으라! 고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시고 기다리십니다.
이번 아프간 사건을 통해 기독교인으로서의 저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그 어떤 말보다도 먼저 마음의 중심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날 용서하시듯 남을 용서하며 사랑해야겠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자더라도 여전히 나약함으로 인해 늘 선할 수는 없음을 고백합니다. ( 그래서 기독교에서의 구원은 "성화"라는 현재적 차원의 것도 포함됩니다.)
우리는 사람인지라 여전히 약합니다. 물론 우리의 책임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부족함으로 인해 "기독교"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기독교인으로인해 상처받지 마시고 먼저 하나님을 만나셨으면 합니다.ㅠ 아무리 하나님을 전한다 한들
제 입술로는, 제 행동으로는 그 분을 다 담아낼 수 없습니다.
(또한 피랍자분들을 너무 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위에 글을 다 읽으셨다면 그분들이 어떤 마음자세로 그곳에 갔을지 이해가 되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과정 상에 문제가 있었지만, 가서 먼저 섬기고 자신이 지닌 좋은 소식을 전하러 간 것 자체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에 대해 너무 쉽게 타자를 두들이는 것은 정말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 3:11
하나님, 우리의 행실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 할 망정
당신의 이름을 더럽히고 당신께 나오는 이들의 문을 막은 저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나라는 영원하며 영광스러움을 고백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로 인해 당신을 욕하고 손가락질하지만. 하나님ㅠ 이 낮은 곳에서 당신을 높여드립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이 땅을 사랑하셔서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주시고 이제는 우리가 선교강국이 되었지만, 수적 성장 만큼이나 영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이땅에 흘려진 순교의 피를 기억하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저희가 당신을 위해여 철저히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하시고, 모든 영광은 당신께로 올려지길 원합니다. 제 모습 여전히 약하고 악하지만 저를 당신 보시기에 아름다운 그릇으로 빚어주시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온전히 영광받으시길 원합니다.
아버지, 이일을 통하여서 우리 한국 기독교가 회개하고 다시금 십자가를 붙잡고 섬김과 사랑의 실천을 행하게 하소서. 저희 행실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며 하나님의 법과 사랑이 바로 선 나라가 되게 하소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 당신을 신뢰합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