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의 축구환상곡] "포백의 완성" 베어벡호는 박수 받아야 한다

손일환2007.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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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의 축구환상곡] '포백의 완성' 베어벡호는 박수 받아야 한다

 

'베어벡호는 박수를 받아야 한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팀이 28일 밤 차기 대회(2011년) 자동 진출권이 주어지는 3위 메달을 들고 'AFC 아시안컵 2007'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를 마친 핌 베어벡 감독(51, 네덜란드)은 경기 후 기자 회견에서 자진 사퇴의 뜻을 밝혔다.

 

[한준의 축구환상곡] "포백의 완성" 베어벡호는 박수 받아야 한다

 

베어벡은 이미 한국축구의 영웅이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축구 대표팀 감독의 자리는 갖은 비난과 욕이 수반되는 자리다. 하지만 최종적인 평가는 대회가 마무리 된 뒤, 그의 임기가 마무리 된 뒤에야 정리 된다. 임기 중 첫번째 과업이었던 아시안컵에서 베어벡 감독은 47년 만의 정상 도전이라는 꿈에 도달하지는 못했으나 결과적으로 다수의 팬들이 그에 대한 재신임을 뜻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행보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대회 내내 재미 없고 무기력한 축구라는 비판이 계속됐으며 현재까지도 그의 공격 전술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하며 경질론을 주장하고 있는 이들이 있으나 이번 아시안컵의 베어벡호는 박수를 받아야하는 팀이었다. 베어벡호는 유니폼에 아로 새겨진 '투혼'이라는 팀의 모토를 온 몸으로 보여줬으며,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수비 불안과 포백 수비의 정착이라는 과업ㅡ한국 입성과 함께 포백 수비를 펼치겠다고 말한 거스 히딩크와 딕 아드보카트는 결국 본선에서 3백 수비를 사용했다. 그리고 베어벡은 모든 과정을 함께 한 뒤 새로운 얼굴들로 매듭지었다ㅡ을 완수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

 

▲ 어린 선수 중심의 포백 수비, '아시안컵의 블랙홀'로 활약하다

 

김치우(24, 전남) - 강민수(21, 전남) - 김진규(22, 서울) - 오범석(23, 포항). 이번 아시안컵 이전까지 성인 대표팀의 주전 수비수로 이름을 올리기엔 낯선 선수들이었다. K리그에서도 수준급의 선수임에는 분명하지만 최고라는 꼬리표를 붙이기엔 아직은 성장하는 위치에 있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아시안컵을 통해 대표팀 수비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이들이 함께 나선 5경기에서 필드골 실점은 없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실책성 플레이로 내준 페널티킥이 유일하게 한국의 골망을 통과했다.

 

이번 대회에서 최고의 화력을 자랑하던 이란, 이라크, 일본이 토너먼트 무대에서 한국을 만나 무기력한 모습으로 득점에 실패했다. 사우디의 경우 바레인과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일본의 골문에 도합 11골을 몰아쳤음에도 한국전에선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며 방황했었다. 한국 수비는 '아시안컵의 블랙홀'이라는 별명처럼 철벽 수비를 펼쳤다. 아시아 축구 열강들의 무력화 시킨 이들의 평균 연령은 22.5세에 불과하다. 김진규를 제외하고는 대회 전까지 A매치 출전 기록이 10회에 이르지 못했다.

 

대회 초반 경험 미숙의 문제점을 지적받던 김치우와 오범석은 3위 결정전을 치른 뒤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며 공수 양면에 걸쳐 완숙한 경기력을 뽐냈고, 오래간 대표팀 수비로 활동했던 김진규는 마침내 그의 프로필에 '안정감'이라는 단어를 추가할 수 있게 됐다. 올림픽 대표팀 수비수 강민수 역시 비록 마지막 경기에서의 퇴장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향한 물음표에 마침점을 찍을 수 있었다. 2010년 월드컵까지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미래형 수비 라인이라는 점에서 의미는 더 크다.

 

현대 축구의 주류, 더블 식스 시스템이 자리 잡다

 

수비의 안정화는 네 선수 만의 공은 아니다. 이들을 무한 신뢰하며 조련한 것이 바로 베어벡 감독이며, 무엇보다 선수 개개인의 역량이 아닌 튼실한 수비 조직을 만들어낸 것이 베어벡 감독이다. 2006 독일 월드컵을 통해 드러났듯 현대 축구의 새로운 조류로 떠오른 포메이션은 결승전에서 격돌한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구축했던 '4-2-3-1'이다. 포백 수비에 두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전방에 포진하는 '더블 식스 시스템'은 이 전형의 핵심이다. 몇몇 특출난 선수들의 능력에 의한 수비가 아닌 전술적 틀에 의한 수비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마침내 대표팀에서 최적의 자리를 찾은 김상식과 클럽팀에서 그의 짝으로 활동하는 손대호는 어린 포백과 함께 상대 중원 공격을 완전히 차단했다. 공격 가담 능력도 소홀히 하지 않는 좌우 풀백과 이들의 오버래핑 시 적절히 배후를 지키는 두 명의 미드필더는 수비 공간을 정확히 인지하며 움직였다. 여기에 이운재라는 풍부한 경험의 탑 클래스 골키퍼가 준 안정감이 더해진 한국의 더블 식스는 그야말로 철옹성이었다. A매치 경험 미숙으로 인한 몇몇 차례 실수 외에 흔들림이 없었고, 시간이 흐를 수록 견고해졌다. 단판 승부로 이어지는 본선 2라운드에서는 3경기를 내리 120분 혈전을 치렀음에도 마지막 집중력을 놓치지 않았다. 선수들이 전술적으로, 정신적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팀 리빌딩의 기본 바탕이며 최우선 과제는 수비의 안정이다. 감독의 역량이 진정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개인 능력과 창조성이 부각되는 공격 전술 보다는 수비 조직력이다. 장기간 펼쳐지는 리그에선 막강 화력을 갖춘 팀이 우승하지만 단기간의 토너먼트에서는 수비가 강한 팀이 우승에 더욱 근접한다. 2002 월드컵의 브라질, 유로2004의 그리스, 2006 월드컵의 이탈리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승리의 근본은 안정된 수비였다. 이제 임기 1년을 맞은 베어벡 감독이 아시안컵에 임하며 내린 선택은 비록 '재미없는 축구' 였을지 몰라도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한국은 아시안컵에서 가장 강력한 수비를 구축하며 해답에 근접했다.

 

▲ 답답한 공격진에 대한 변명

 

한국의 경기가 재미없었던 이유, 끝내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한 상대 공격을 완전히 무력화시켰지만 한국의 공격 역시 무기력했기 때문이다. 지난 1년 간 줄기차게 이어져온 '단조로운 공격 전술'은 베어벡 감독의 사퇴 여론을 부채질해왔던 주 원인이다. 실제로 한국 대표팀은 상대의 페널티 박스에서 전혀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중앙 공격은 거의 실종되다 시피했고, 유효 슈팅도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고립된 원톱에 지루한 측면 돌파, 2선 공격의 부재라는 문제가 대회 내내 고쳐 지지 못했다. 이과정에서 베어벡 감독이 전술적 유연성을 보이지 못한 부분도 분명 문제가 됐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베어벡 감독만의 잘못일까?

 

대회 개막 3개월을 앞두고 팀 전력의 절반으로 평가되된 공격의 견인차 박지성(26,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부상으로 쓰러졌고, 1개월을 앞두고는 측면 공격수 설기현(28,레딩)이 무릎 수술로 대회 참가가 불가능해졌다. 대회 직전에 팀의 주장 김남일(30,수원)이 부상으로 낙마했고, 대표 골잡이 이동국(28,미들즈브러)은 최종 엔트리에 합류했으나 대회가 끝나는 순간까지 정상 컨디션을 되찾지 못했다.

 

(박지성은 매끄러운 2선에서의 연결, 설기현은 측면에서의 날카로운 배급, 김남일은 중원에서의 원숙한 조율, 이동국은 전방에서의 날카로운 한방을 지닌 한국 축구 최고의 스타들이다.) 화려한 오버래핑 능력을 자랑하는 레프트백 이영표와 마찬가지로 부상으로 대표 선발의 기회를 잡지 못한 박주영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막대한 전력 손실이다. 이 모든 손실에 대안을 준비할 시간은 충분치 못했다.

 

대회 직전 줄부상… 대안은 부족했다

 

대안이 될 수 있었던 김두현은 클럽 팀 동료들과 나란히 대표팀에 합류했음에도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고(그는 예선전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인물이다), 해결사로 기대를 모았던 이천수는 분투했으나 대회 내내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했다. 주위의 적절치 못한 지원 속에 전방에서 고립된 조재진은 혼자 힘으로 상대 밀집 수비를 흐트러트리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더블식스 시스템의 정착에 공헌한 두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는 공격진과는 유기적인 연결을 이루지 못했다. 공격진은 환경적인 어려움과 기술적인 어려움, 전술적인 어려움을 동시에 겪었다.

 

선수층이 두터운 몇몇 축구 강국 조차 팀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빠지면 곤란을 겪으며, 그에 미치지 못하는 팀들의 경우 그 손실은 막대하다. 감독의 전술적 준비도 충분하지 못했으나 이를 모두 감독의 탓으로 돌리기엔 여건이 충분치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베어벡이 한국에 처음 온 것이 2002년이지만 그가 감독을 맡은 것은 이제 겨우 1년이며 그가 참가한 2002, 2006 월드컵에 임한 선수단과 이번 아시안컵의 선수단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만약 부상으로 제외된 선수들이 모두 합류해 대회를 치렀다면 지금쯤 우리는 우승 트로피와 함께 찬사를 받고 있는 베어벡 감독을 모습을 볼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투혼'을 보여준 베어벡호, 성에 차지 않겠지만 피땀 흘려 차지한 3위 트로피와 함께 환하게 웃는 그들은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 베어벡은 남아야 한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이라는 목표 달성에 실패한 뒤 두 차례 월드컵에서 수석 코치로 활약한 핌 베어벡이 감독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은 그의 감독 경력이 일천했음에도 각계에서 환영을 받았다. 사령탑 공백기를 최소화 했고, 이미 한국 축구에 대한 파악을 마쳤기에 그동안의 유산을 이어받고 시행 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으리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베어벡 감독의 지난 1년이 그러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던 모습은 아니었으나 이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감독이 처음 맞은 1년에는 의례 있을 수 있는 과정이었다. 이란, 시리아와의 아시안컵 예선 무승부,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이라크에게 당한 패배에서 보인 수비의 취약점은 아시안컵이라는 첫번째 평가 무대에서 해결해 보였다.

 

베어벡이 사퇴 의사를 밝히자 팬들의 반대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점에서의 우려다. 더 좋은 감독이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도 있지만 새로운 감독의 선임은 베어벡의 지난 1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수비를 안정시킨 베어벡 감독에겐 다음 1년은 공격을 가다듬을 시기가 될 수 있다. 선임 초기에 베어벡이기에 보낼 수 있었던 기대감은 아직까지 유효하다.

 

게다가 베어벡 감독이 겸임 중인 2008 올림픽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은 당장 8월 22일에 열릴 예정이다. 2008 올림픽까지 계약했던 베어벡은 아시안컵에서도 올림픽 대표 선수들을 중용했다. 올림픽팀은 훈련 시간이 부족했음에도 큰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다. 올림픽팀의 경우 과중한 업무량이 문제가 되었을지 몰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누가 베어벡 보다 잘할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는가?

 

베어벡은 일본과의 3위 결정전에서 퇴장을 불사를 만큼 팀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였고, 선수들 역시 승부차기 승리 이후 감독과 진한 포옹을 나누며 서로간의 신뢰 관계를 보였다. 눈시울을 붉힌 베어벡의 모습은 한국 대표팀에 대한 그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갑작스런 사령탑의 공백, 베어벡 보다 분명히 나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감독을 찾고, 데려오고, 정착시키는 일은 성공 가능성이 결코 높지 않다.

 

이미 2002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루는데 수석 코치직을 맡아 결정적인 공헌을 한 베어벡은 한국 축구사에 빼놓을 수 없는 영웅 중 한명이다. 2006 독일 월드컵 대회에서도 8개월여를 앞두고 돌아와 1승 1무 1패의 성적을 올리며 16강 진출의 문턱까지 한국팀을 이끈 공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제 겨우 1년을 보낸 베어벡의 감독으로서의 시간은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지난 1년간 감독직을 맡으며 받은 비난은 베어벡에게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심정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그가 거둔 절반의 성공이 완전한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그가 자진 사퇴 의사를 철회해야만 한다. 베어벡이 한국에서 자신의 과업을 완수하고 떠나길 바란다.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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