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hsheba at Her Bath1654Oil on canvas, 142 x 142 cmMusée du Louvre, Paris 예술과 낭만의 도시 프랑스 "파리"... 그 곳엔 "루브르 박물관"이 있다. 개인적으로 고전을 좋아하는 내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은 바로 "루브르"일 것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비교적 뜸한 "루브르 박물관"의 리슐리외관 3층에는 한편의 슬픈 누드화가 있다.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 지라도, "렘브란트"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사람일 지라도, 그리고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일 지라도,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발길이 멈춰지고 왠지 모르게 한 없이 슬퍼 보이고,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이 벌거벗은 여인을 응시 할 것이다. 저녁 때에 이르매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 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고하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나이까...... 사무엘하 11장 2절... "다윗"이라는 인물은 우리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인물일 것이다. 거인 "골리앗"을 맞이하여 신앙심으로써 승리하는 성경 속의 영웅이 바로 청년 "다윗"이다. 보통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의 "다윗"은 미성숙하고 순수한 "용기"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성경속의 그 영웅도 훗날 유대의 왕이 되어서는 지울 수 없는 크나 큰 죄를 저지르고 만다. 유대의 왕이 된 "다윗"은 어느 날 저녁 잠이 오지 않아 왕궁지붕을 거닐다가. 목욕하고 있는 아름다운 한 여인을 발견 하게 된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그녀를 발견하고, 이내 사람을 보내어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 보게 하는데. 그녀는 다름아닌 자신을 위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장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다. 한 여인의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육체에 혼이 빠져 욕정에 사로잡힌 "다윗"은 결국 이미 한 남자의 아내이자, 신앙심 깊은 한 여인에게 자신의 침실로 오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서신을 보낸다. Bathsheba at Her Bath1654Oil on canvas, 142 x 142 cmMusée du Louvre, Paris 이 장면은 목욕하는 중에 "다윗"의 서신을 받고, 고민하고 있는 "밧세바"를 포착했다. 보통 누드화 라고 함은 여성의 섹시함을 강조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지만. "렘브란트"는 고민하고 있는 한 여성의 누드화를 그려내었다. 옷을 다 벗고 있지만 그림을 보고있는 우리는 색욕에 사로 잡히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 여인을 애틋하고 안타깝게 바라보며 여인에게 옷을 입혀주어 어깨를 토닥거리며 위로를 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편지를 받은 "밧세바"는 고민한다. "다윗"의 침실로 가자니. 하느님과 남편 대하기 죄스럽고. 가지 않자니. 내 목숨과 내 남편의 목숨이 위태롭다. 그러나 "밧세바"는 "다윗"에 대한 증오하는 모습이 아닌. 자신의 처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힘없는 한 여인의 체념한 모습이다. 결국..."밧세바"는 "다윗"의 침실로 간다. 곧 "밧세바"는 아이를 갖게 되고. 겁이 덜컥 났던 "다윗"은 전장에 있던 부하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집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나"우리아"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성밖에서 그의 군사들과 함께 밤을 새운다. 다급해진 "다윗"은 "우리아"를 다시 전선의 최전방에 배치 시키고 후방부대를 후퇴시켜 버린다. 결국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그리고 한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 "우리아"를 전사시킨다. 천인공노할 짖을 저지른 "다윗"은 남편의 죽음을 슬퍼할 시간도 허용하지 않고 "밧세바"를 차지한다. 신께서 분노하사 죄로써 잉태한 첫째 아이의 숨을 이레 만에 거두어 가고. 다윗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참회하고 속죄한다. 마침내 신의 용서를 받고 축복 속에서 다윗과 밧세바는 한 아이를 탄생시킨다. 그가 바로 지혜의 왕 "솔로몬"이다. 그런데 왜 하필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주제로 선택 하였을까? 그리고 "밧세바"를 당시에 사랑하던 "헨드리케"를 모델로 그려 넣었을까? "렘브란트"는 1606년 네덜란드 레이덴의 풍차방앗간 집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난다. 당시 풍차 방앗간 집은 그다지 부자도 아니고,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집안 이었다. 14세에 대학에 입학하지만, 흥미를 잃고 곧 학교를 그만두며 "라스트만" 공방에서 그림을 배운다. 26세에 "튈프박사의 해부학 강의"라는 단체 초상화를 그리면서 그의 명성은 쌓여만 갔다. 27세에 운명 같은 한 여인을 만나 결혼 하는데 그녀의 이름은 "사스키아"였다. "렘브란트"는 그녀와 결혼 하면서 인생의 정점에 이를 수가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리슬란트출신의 레바르덴 전직 시장이었고. 결혼 할 때 가지고 온 지참금만 무려 40,750 길더에 달했다. 그녀와 결혼으로 상류사회의 많은 고위인사들과도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일생은 화려함의 정점에 오르는 동시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29세 때 첫 아들 "륄베르투스" 출생, 그러나 2달 만에 사망한다. 32세 때 첫 딸 "코르넬리아" 출생, 그러나 한 달도 못되어 사망. 34세 때 둘째 딸 "코르넬리아" 출생, 그러나 한 달도 못되어 사망. 같은 해 9월 "램브란트" 모친 사망. 35세 때 둘째 아들 "티투스" 출생, 기적으로 잘 자라줌. 그러나 이듬 해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 사망. "사스키아"는 죽기직전 이러한 유언을 남긴다. 유산 40,750만 길더중 2만 길더는, 우리의 아이 "티투스"가 성인이 될 때까지 보관해 주세요. 나머지 2만 길더는 당신이 쓰시되, 만일 다른 여자와 결혼 하면. 2만 길더 라는 당신 명의의 유산은 모두 친정 집으로 돌아갑니다. "렘브란트"의 아들 "티투스"의 나이 이제 겨우 1살 이었다, 여느 때 보다 더, 작품활동에 전념해야 했던 "렘브란트"는 결국 트럼펫주자의 미망인인 "헤르테 디르크스"를 "티투스"의 유모로 고용한다.그러나 "헤르테"와 "렘브란트"사이에 또 다른 한 여자가 등장 하면서 "헤르테"는 정식으로 "렘브란트"의 정식 재산권을 요구하였다. "헤르테"와의 스캔들이 법정공방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돈을 지불하고."램브란트"의 명성이 땅에 떨어진다. 그림주문이 줄어 들고, 재산은 점점 줄어들고 경기는 더욱 안 좋아져만 갔다. 46세 때 네덜란드와 영국 사이에 전쟁 발발하며 "램브란트"는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Supper at Emmaus 1648Oil on canvas, 42 x 60 cmMusée du Louvre, Paris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누가복음 24장 13절.. "렘브란트"는 "엠마오의 만찬"이라는 또 하나의 성화를 완성하였다. 예수께서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엠마오 마을근처에서 두 제자를 만나고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두 제자들과 저녁만찬을 하며, 담소가 오간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 때서야 비로소 두 제자는 예수를 알아본다. 빛과 어둠은 은은하게 조화를 이루며 이 세상을 구성하고 서로를 긍정한다. 이것은 마치 삶과 죽음, 죽음과 부활의 관계와 같다. 그렇다 죽은 자가 살아 왔다면 아마도 혼돈 그 자체 였을 것이다. 그러나 램브란트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서 내 앞에 있더라 하더라도. 그리 놀라워 하지 않는다. "램브란트"는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가 뼈에 사무칠 정도로 그리웠다. 이미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그의 아내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죽은 아내가 다시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했는지도 모른다. 너무도 그립고 간절하여 그는 죽음과 부활의 주제로 자신의 바램을 표현한 듯 하다. 그리고 죽은 자가 다시 돌아온다 하더라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 했을 것이다. Suzanna in the Bath1647Oil on panel, 76 x 91 cmStaatliche Museen, Berlin 고대 바빌론 사람 요야힘의 아내이면서 미모와 정숙으로 이름난 여인이었던 수산나는 어느날 목욕을 하는 중에 욕정을 품고 접근하는 두 공회원의 유혹을 거절한다. 그러자 앙심을 품은 그 두 장로는 수산나를 간부로 고발한다. 유대 율법에 간음한 자는 사형이었으므로 재판 결과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으로 끌려가는데 다니엘이라는 청년이 나타나 새로운 증언을 함으로써 그녀의 결백이 밝혀진다. 그리스어역 성경(외경) "다니엘서"의 서문... 이 시기에 한 줄기 희망으로 다가왔던 여인이 바로 "헨드리케"이다. "램브란트" 보다 23년 연하였던 "헨드리케 스토펠스도히테르 야헤르". 운명적 사랑이었던 전 부인 "사스키아"와 외모와 성격이 놀랍도록 닮았던 여인. 1649년 렘브란트의 정부가 되어 1663년 사망할 때까지 "렘브란트"의 아들 "티투스"를 보살피고, 딸 "코넬리아"를 낳았던 여인 결혼도 하지 못하고 한 집에서 동거하며, 반 쪽짜리 사랑을 해온 여인 당시의 신교도적인 금욕적 사상이 팽배하던 네덜란드 사회에서 온갖 냉대와 비웃음과 주변의 손가락질을 인내하며 그 여인은 계속 사랑하는 "렘브란트"와 살았다. 공식적으로 램브란트가 헨드리케를 만난시기는 1649년이다. 그러나 1647년에 그린 "수산나의 목욕"의 주인공은 "헨드리케"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여인과 재혼 할 수 없었던 "램브란트"는 "헨드리케"와 몰래 사랑을 키워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은 인정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늘만은 허락했다고 위로하며. 이 그림을 완성 했을 것이다. 그 것만이 램브란트가 사랑하는 헨드리케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을 것이다. Bathsheba at Her Bath1654Oil on canvas, 142 x 142 cmMusée du Louvre, Paris 전 부인이었던 "사스키아"의 유산을 잃지 않기 위해... 운명의 시간까지 조차 "헨드리케"와의 결혼을 거부해온 "렘브란트". 아마도 그는 사랑하지만 결혼 할 수없는 자신의 모습을 "다윗"으로 그리면서 한 남자에게 사랑받는 그저 평범한 가정조차 함께 꾸려 줄 수 조차 없는 "헨드리케"를 "밧세바"의 모습으로 투영하여. 자신으로 이기심 으로 인해 "헨드리케"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련을 주는 것을 자책하며, "밧세바"의 얼굴에 "헨드리케"의 얼굴을 그려 넣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신께서 "다윗"에게 자식의 숨을 거두어 가는 벌을 내렸듯이. 자신도 "다윗"과 버금가는 죄를 지었으며 그러한 벌을 달게 받겠다는 듯이... 비록 페미니스트 적인 관점에서 보았다면 "팜프파탈"의 밧세바로써 관능적인 자신의 몸매로써 다윗을 유혹하고 팔자를 고쳤다 라고 볼 수 있는 밧세바라 할 지라도........... 그 어떤 보상으로도 치유해 줄수 없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 램브란트는 "밧세바"를 아니 "헨드리케"를 그렸을 것이다..............
[목욕하는 밧세바] 사랑하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그녀에게.
Bathsheba at Her Bath
1654
Oil on canvas, 142 x 142 cm
Musée du Louvre, Paris
예술과 낭만의 도시 프랑스 "파리"... 그 곳엔 "루브르 박물관"이 있다.
개인적으로 고전을 좋아하는 내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은 바로 "루브르"일 것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비교적 뜸한 "루브르 박물관"의 리슐리외관 3층에는 한편의 슬픈 누드화가 있다.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 지라도, "렘브란트"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사람일 지라도,
그리고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일 지라도,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발길이 멈춰지고
왠지 모르게 한 없이 슬퍼 보이고,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이 벌거벗은 여인을 응시 할 것이다.
저녁 때에 이르매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 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고하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나이까......
사무엘하 11장 2절...
"다윗"이라는 인물은 우리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인물일 것이다.
거인 "골리앗"을 맞이하여 신앙심으로써 승리하는 성경 속의 영웅이 바로 청년 "다윗"이다.
보통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의 "다윗"은 미성숙하고 순수한 "용기"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성경속의 그 영웅도 훗날 유대의 왕이 되어서는 지울 수 없는 크나 큰 죄를 저지르고 만다.
유대의 왕이 된 "다윗"은 어느 날 저녁 잠이 오지 않아 왕궁지붕을 거닐다가.
목욕하고 있는 아름다운 한 여인을 발견 하게 된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그녀를 발견하고,
이내 사람을 보내어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 보게 하는데. 그녀는 다름아닌 자신을 위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장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다.
한 여인의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육체에 혼이 빠져 욕정에 사로잡힌 "다윗"은 결국
이미 한 남자의 아내이자, 신앙심 깊은 한 여인에게 자신의 침실로 오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서신을 보낸다.
Bathsheba at Her Bath
1654
Oil on canvas, 142 x 142 cm
Musée du Louvre, Paris
이 장면은 목욕하는 중에 "다윗"의 서신을 받고, 고민하고 있는 "밧세바"를 포착했다.
보통 누드화 라고 함은 여성의 섹시함을 강조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지만.
"렘브란트"는 고민하고 있는 한 여성의 누드화를 그려내었다.
옷을 다 벗고 있지만 그림을 보고있는 우리는 색욕에 사로 잡히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 여인을
애틋하고 안타깝게 바라보며 여인에게 옷을 입혀주어 어깨를 토닥거리며 위로를 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편지를 받은 "밧세바"는 고민한다. "다윗"의 침실로 가자니. 하느님과 남편 대하기 죄스럽고.
가지 않자니. 내 목숨과 내 남편의 목숨이 위태롭다. 그러나 "밧세바"는 "다윗"에 대한 증오하는
모습이 아닌. 자신의 처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힘없는 한 여인의 체념한 모습이다.
결국..."밧세바"는 "다윗"의 침실로 간다. 곧 "밧세바"는 아이를 갖게 되고.
겁이 덜컥 났던 "다윗"은 전장에 있던 부하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집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나"우리아"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성밖에서 그의 군사들과 함께 밤을 새운다.
다급해진 "다윗"은 "우리아"를 다시 전선의 최전방에 배치 시키고 후방부대를 후퇴시켜 버린다.
결국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그리고 한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 "우리아"를 전사시킨다.
천인공노할 짖을 저지른 "다윗"은 남편의 죽음을 슬퍼할 시간도 허용하지 않고 "밧세바"를 차지한다.
신께서 분노하사 죄로써 잉태한 첫째 아이의 숨을 이레 만에 거두어 가고.
다윗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참회하고 속죄한다. 마침내 신의 용서를 받고
축복 속에서 다윗과 밧세바는 한 아이를 탄생시킨다. 그가 바로 지혜의 왕 "솔로몬"이다.
그런데 왜 하필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주제로 선택 하였을까?
그리고 "밧세바"를 당시에 사랑하던 "헨드리케"를 모델로 그려 넣었을까?
"렘브란트"는 1606년 네덜란드 레이덴의 풍차방앗간 집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난다.
당시 풍차 방앗간 집은 그다지 부자도 아니고,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집안 이었다.
14세에 대학에 입학하지만, 흥미를 잃고 곧 학교를 그만두며 "라스트만" 공방에서 그림을 배운다.
26세에 "튈프박사의 해부학 강의"라는 단체 초상화를 그리면서 그의 명성은 쌓여만 갔다.
27세에 운명 같은 한 여인을 만나 결혼 하는데 그녀의 이름은 "사스키아"였다.
"렘브란트"는 그녀와 결혼 하면서 인생의 정점에 이를 수가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리슬란트출신의
레바르덴 전직 시장이었고. 결혼 할 때 가지고 온 지참금만 무려 40,750 길더에 달했다.
그녀와 결혼으로 상류사회의 많은 고위인사들과도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일생은 화려함의 정점에 오르는 동시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29세 때 첫 아들 "륄베르투스" 출생, 그러나 2달 만에 사망한다.
32세 때 첫 딸 "코르넬리아" 출생, 그러나 한 달도 못되어 사망.
34세 때 둘째 딸 "코르넬리아" 출생, 그러나 한 달도 못되어 사망.
같은 해 9월 "램브란트" 모친 사망.
35세 때 둘째 아들 "티투스" 출생, 기적으로 잘 자라줌.
그러나 이듬 해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 사망.
"사스키아"는 죽기직전 이러한 유언을 남긴다.
유산 40,750만 길더중 2만 길더는, 우리의 아이 "티투스"가 성인이 될 때까지 보관해 주세요.
나머지 2만 길더는 당신이 쓰시되, 만일 다른 여자와 결혼 하면.
2만 길더 라는 당신 명의의 유산은 모두 친정 집으로 돌아갑니다.
"렘브란트"의 아들 "티투스"의 나이 이제 겨우 1살 이었다,
여느 때 보다 더, 작품활동에 전념해야 했던 "렘브란트"는 결국 트럼펫주자의 미망인인
"헤르테 디르크스"를 "티투스"의 유모로 고용한다.그러나 "헤르테"와 "렘브란트"사이에 또 다른 한 여자가 등장 하면서 "헤르테"는 정식으로 "렘브란트"의 정식 재산권을 요구하였다.
"헤르테"와의 스캔들이 법정공방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돈을 지불하고."램브란트"의 명성이 땅에 떨어진다. 그림주문이 줄어 들고, 재산은 점점 줄어들고 경기는 더욱 안 좋아져만 갔다.
46세 때 네덜란드와 영국 사이에 전쟁 발발하며 "램브란트"는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Supper at Emmaus
1648
Oil on canvas, 42 x 60 cm
Musée du Louvre, Paris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누가복음 24장 13절..
"렘브란트"는 "엠마오의 만찬"이라는 또 하나의 성화를 완성하였다.
예수께서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엠마오 마을근처에서 두 제자를 만나고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두 제자들과 저녁만찬을 하며, 담소가 오간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 때서야 비로소 두 제자는 예수를 알아본다.
빛과 어둠은 은은하게 조화를 이루며 이 세상을 구성하고 서로를 긍정한다. 이것은 마치 삶과 죽음,
죽음과 부활의 관계와 같다. 그렇다 죽은 자가 살아 왔다면 아마도 혼돈 그 자체 였을 것이다.
그러나 램브란트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서 내 앞에 있더라 하더라도. 그리 놀라워 하지 않는다.
"램브란트"는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가 뼈에 사무칠 정도로 그리웠다.
이미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그의 아내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죽은 아내가 다시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했는지도 모른다.
너무도 그립고 간절하여 그는 죽음과 부활의 주제로 자신의 바램을 표현한 듯 하다.
그리고 죽은 자가 다시 돌아온다 하더라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 했을 것이다.
Suzanna in the Bath
1647
Oil on panel, 76 x 91 cm
Staatliche Museen, Berlin
고대 바빌론 사람 요야힘의 아내이면서 미모와 정숙으로 이름난 여인이었던 수산나는
어느날 목욕을 하는 중에 욕정을 품고 접근하는 두 공회원의 유혹을 거절한다.
그러자 앙심을 품은 그 두 장로는 수산나를 간부로 고발한다.
유대 율법에 간음한 자는 사형이었으므로 재판 결과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으로 끌려가는데
다니엘이라는 청년이 나타나 새로운 증언을 함으로써 그녀의 결백이 밝혀진다.
그리스어역 성경(외경) "다니엘서"의 서문...
이 시기에 한 줄기 희망으로 다가왔던 여인이 바로 "헨드리케"이다.
"램브란트" 보다 23년 연하였던 "헨드리케 스토펠스도히테르 야헤르".
운명적 사랑이었던 전 부인 "사스키아"와 외모와 성격이 놀랍도록 닮았던 여인.
1649년 렘브란트의 정부가 되어 1663년 사망할 때까지
"렘브란트"의 아들 "티투스"를 보살피고, 딸 "코넬리아"를 낳았던 여인
결혼도 하지 못하고 한 집에서 동거하며, 반 쪽짜리 사랑을 해온 여인
당시의 신교도적인 금욕적 사상이 팽배하던 네덜란드 사회에서 온갖 냉대와 비웃음과
주변의 손가락질을 인내하며 그 여인은 계속 사랑하는 "렘브란트"와 살았다.
공식적으로 램브란트가 헨드리케를 만난시기는 1649년이다.
그러나 1647년에 그린 "수산나의 목욕"의 주인공은 "헨드리케"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여인과 재혼 할 수 없었던 "램브란트"는 "헨드리케"와 몰래 사랑을 키워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은 인정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늘만은 허락했다고 위로하며.
이 그림을 완성 했을 것이다.
그 것만이 램브란트가 사랑하는 헨드리케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을 것이다.
Bathsheba at Her Bath
1654
Oil on canvas, 142 x 142 cm
Musée du Louvre, Paris
전 부인이었던 "사스키아"의 유산을 잃지 않기 위해...
운명의 시간까지 조차 "헨드리케"와의 결혼을 거부해온 "렘브란트".
아마도 그는 사랑하지만 결혼 할 수없는 자신의 모습을 "다윗"으로 그리면서
한 남자에게 사랑받는 그저 평범한 가정조차 함께 꾸려 줄 수 조차 없는 "헨드리케"를
"밧세바"의 모습으로 투영하여. 자신으로 이기심 으로 인해 "헨드리케"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련을 주는 것을 자책하며,
"밧세바"의 얼굴에 "헨드리케"의 얼굴을 그려 넣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신께서 "다윗"에게 자식의 숨을 거두어 가는 벌을 내렸듯이.
자신도 "다윗"과 버금가는 죄를 지었으며 그러한 벌을 달게 받겠다는 듯이...
비록 페미니스트 적인 관점에서 보았다면 "팜프파탈"의 밧세바로써 관능적인 자신의
몸매로써 다윗을 유혹하고 팔자를 고쳤다 라고 볼 수 있는 밧세바라 할 지라도...........
그 어떤 보상으로도 치유해 줄수 없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
램브란트는 "밧세바"를 아니 "헨드리케"를 그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