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과 화백과 남덕여사의 편지

박숙영2007.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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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모든 걸 바쳐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결코 훌륭한 일을 할 수 없소.

예술은 무한한 애정의 표현이오.
참된 애정에 충만함으로써 비로소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이오.
마음의 거울이 맑아야 우주의 모든 것이
올바르게 마음에 비치는 것 아니겠소?
 
이중섭 [ 李仲燮 , 1916.4.10~1956.9.6 ]


이중섭 作 편지에 수채 및 펜, 20× 27cm
1951년경-아이와 아내를 그리워 하며 쓴 편지그림
 
 
 
나의 사랑하는 남덕에게
 
당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
아오리군은 머릿속과 눈이 차츰 더 맑아지고
자신감이 넘치고 넘쳐서 번쩍번쩍 빛나는 머리와 안광으로
제작, 제작 - 표현 또 표현을 계속하고 있다오.
 
한없이 살뜰하고..한없이 상냥한..
오직 나만의 천사여,
더욱 더 힘을 내어,
더욱더 올차게 버티어 주시오.
 
기필코 화공 이중섭군이
가장 사랑하는 현처 남덕군을 행복의 천사로
높게 아름답게 널리 빛내어 보이겠소.
자신만만.
 
나는 당신들과 선량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참으로 새로운 표현을,
더없는 대표현을 계속하고 있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 남덕 천사, 만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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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섭은 1951년 한 해 동안 무려 80점 가량의
그림 편지와 엽서를 아내와 자식들에게 그려 보냈다.
가슴을 쥐어뜯는 그리움과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편지만은 이토록 따뜻하다. 사람의 체온을 가진 냥.
 
  그의 말대로, 그에게 예술은 무한한 애정의 표현이었다.
죽음을 향해 걷던 생의 마지막 5년, 그가 가장 절망한 순간에조차.
 그의 그림은 세상과 사람을 향한 포기할 수 없는 애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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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남덕 여사의 편지..

마흔 나이로 요절한 그의 극적인 삶에서
유일한 위안이 되었던 일본인 아내 이남덕 여사.
 
6·25전쟁 후 생활고로 인해 원치 않게 이별하면서
이때부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재회를 기약하는 편지들이 오갔다.

 


   [동아일보 2004-07-20]

 

1955년 4월 24일
 
 어떤 세세한 일이라도 좋으니
당신에 대한 일을 알고 싶은 것이
부인으로서의 심정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써 주세요.
 
 
1955년 5월 10일
 
무슨 나쁜 일이라도 있었던 것이 아닌가요,
지금까지와 같이 위대한 인내력으로
당신으로부터의 길보를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꼭, 꼭, 꼭 좋은 일이라도, 나쁜 일이라도 소식을 전해 주세요,
마음으로부터 당신의 남덕.
 
 
6월 22일
(이중섭과 절친한 교분을 나눴던 구상 시인에게)
 
“제 편지를 (남편이) 받고 계신지 아닌지
그것도 알 수 없는 상태라 불안합니다.
생활력이 왕성하여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분이라면
이렇게 걱정하지 않을 텐데 아시다시피
그런 성격이고, 신경도 둔한 분이라
하루라도 떨어져 있으면 불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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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중섭은 영양실조와 황달 신경쇠약까지 겹쳐
성가병원, 수도육군병원, 성베드로병원 등을 전전하고 있어
이 편지들은 전달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다.

그리고 1956년 9월 6일 오전 1시40분,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는 가운데 홀로 숨을 거둔 이 화백의 시신은
3일간 무연고자로 취급되어 시체실에 방치되었다.
 
그러나 세간이 후에 미루어 짐작하는 것처럼,
그 죽음이 그토록 비참하고 쓸쓸했을까.
 
미농지 8장에 만년필로 촘촘히 써내려간 저 편지들을 보면...
왠지 저 마음이, 마지막 길 떠나는 그를 지켜주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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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절절한 마음들..
감히 상상하건대,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들.
괴롭고 괴로워도
사랑하고 사랑받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