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대만 산청(三重)시. 세계에서 컴퓨터용 마우스를 두 번째로 많이 만드는 2위 업체인 KYE 시스템즈 본사 건물에는 기계 소리도, 망치 소리도 없었다. 시설도 쇼룸과 회의실, 검사실이 전부였다. 이곳이 마이크로소프트(MS), 소니(Sony)에 납품하는 세계적인 생산업체인가 싶었다. 복도는 직원이 없어 썰렁하기만 했다. 리 파이샨(李百祥) KYE 부사장은 “본사보다 10배나 많은 직원이 근무하는 공장이 모두 중국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만 타이베이시 신시가지인 네이후(內湖) 지역에 위치한 마이택(Mitac)본사도 마찬가지였다. 델(DELL), 인텔(INTEL)에 제품을 납품하는 업체이지만 기계 돌아가는 소리라고는 에어컨 소리뿐이다. 빌리 호(Billy Ho) 사장은 “대만의 공장에서 일부 하이 엔드(High-end·고부가가치)제품을 생산할 뿐 컴퓨터, 서버, 포켓 PC 등은 이제 중국 광둥(廣東)·장쑤(江蘇)공장에서 쏟아진다”고 말했다.
세계 IT(정보통신)시장의 ‘얼굴 없는 강자’ 대만 기업들이 중국과 결합한 차이완(Chaiwan) 경제를 세우고 있다.
◆세계 전자제품은 ‘메이드 인 차이완’
차이완의 주된 힘은 주문 생산(OEM·ODM)이다. 독자적인 브랜드를 가진 제품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이들은 어느 주문 생산업체보다 강하다. 최근 주문 생산업체의 매출 규모는 연 수십조원에 이익 규모도 5~6%에 달한다. 생산 품종도 거의 전 제품을 망라한다. 애플의 아이팟·아이폰,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3(PS3), 인텔 칩 등 최신 IT 제품이 모두 차이완 기업에서 생산된다. 메인 보드, 노트북, LCD 모니터, PDA(휴대용 정보기기) 부문에서 대만이 세계 생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주문 생산이지만 워낙 물량이 많다 보니 특정 발주처의 주문에 흔들리는 일도 없다.
그러다 보니 차이완은 주문 생산만으로 삼성·LG전자의 바로 턱 밑까지 치고 올라갔다. 삼성 휴대전화의 경쟁 제품은 애플·모토로라를 막론하고 모두 대만 혼하이·컴팔의 ODM(개발자 주도형 생산) 제품이다. LCD 패널시장에서도 대만 기업이 바로 삼성과 LG 뒤에 바짝 붙어 있다. 에이서는 델, HP, 레노보와 함께 PC시장의 ‘빅4’다. 최대 전자·반도체 제조업체 혼하이·TSMC는 각각 삼성의 텃밭인 LCD와 종합 반도체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원가·품질 경쟁력으로 한국 턱 밑까지 추격
한국도 중국 등 신흥 시장에서 아웃소싱(외부 조달)을 하고 있다. 그러나 차이완 기업의 원가구조는 이미 한국이 대응 가능한 수준을 뛰어넘었다. 필요한 때 필요한 단가로 물건을 조달하는 대만 특유의 ‘소싱 네트워크’가 대만과 중국 사이에 거미줄처럼 쳐졌기 때문이다.
애플의 아이팟 mp3플레이어가 대표적이다. 애플은 한국 업체에도 아이팟 납품을 제안했지만 낮은 단가에 모두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대만 기업은 달랐다. 자신만의 노하우로 단가를 맞춰 낼 수 있는 중국 공장과 협력업체가 있기 때문이다.
품질 관리도 뛰어나다. 최근 화제가 된 아이폰의 깔끔한 마감 처리는 바로 대만 혼하이 작품. 옥영재 코트라 타이베이무역관 관장은 “대만 기업들은 세 가지가 없다. 주문시 물량을 묻지 않고, 대당 이익을 묻지 않고, 납기를 묻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이완 기업의 선두격인 혼하이는 3년간 중국 친황다오(秦皇島)에 10억 달러를 투자해 16번째 산업공단을 만들 예정이다. 테리 구(Terry Gou) 혼하이 회장은 “중국에 대한 투자로 혼하이는 매출이 두 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콴타, 에이서 등 세계적인 PC·노트북업체도 중국에 모두 공장을 짓고 노트북 생산라인을 대만에서 이전했다.
◆세계 100대 IT기업에 대만 14개, 한국 1개
이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브랜드와 일부 핵심 기술에서 이들보다 반 발짝 앞서 있을 뿐이다.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위크는 올해 성장률을 지표로 선정한 세계 100대 IT기업에 14개 대만기업을 포함시켰다. 한국은 하이닉스만이 포함됐다.
나준호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대만 기업의 성장은 부활의 날개를 편 일본 기업보다도 수익·성장면에서 모두 한 수 위”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원가경쟁력과 생산 기술을 갖춘 차이완의 목표는 이제 한국을 뛰어넘는 것이다. 네이후 본사에서 만난 마이택 호 사장은 “삼성·LG가 대단하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이 있다”며 “가격과 품질로 제품 핵심에 집중해 꼭 성공해 보이겠다”고 말했다.
◆대만기업의 3無:
①주문시 물량을 묻지않고 ②대당 이익을 묻지않고 ③납기를 묻지않는다
◆세계 IT 제품 생산량 중 대만 업체의 생산 비중 마더보드: 99.0%, 서버: 86.9%, 노트북 PC: 86.2%, LCD 모니터: 76.5%, PDA: 69.8% 〈 자료:Market Intelligence Center〉
◆차이완(Chaiwan) 차이완은 중국(차이나·China)과 대만(타이완·Taiwan)을 결합한 뜻이다. 차이완 기업은 중국의 막강한 생산력에 자사의 연구개발 능력을 접목한 대만 기업을 말한다. 이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중국 직원과 협력업체를 대만 특유의 네트워킹으로 관리한다.
이름없던 기술 ‘명찰’달고 세계로
'차이완 기업'이 온다
OEM·ODM 경험 저력으로 하청업체서 ‘브랜드 기업’ 변신
인센티브가 본봉 3배나 되기도… “기업가 정신 충만하다”
지난달 23일 대만 타이중(台中)현 다야(大雅). 이곳에 위치한 세계적인 헬스기구 업체 존슨(JOHNSON) 건물 앞에는 농부와 트랙터가 한가롭게 오갔다. 하지만 시골의 중소기업 같던 분위기는 사옥에 들어서자 확 바뀌었다. 사무실마다 LCD TV, 음향기기가 부착된 최신식 헬스기구가 즐비했다. 창업자가 20년간 고향에서 한우물을 판 이 회사는 자체 브랜드로 헬스기구 매출액으로 세계 4위, 영업이익은 세계 1위를 달성했다.
즉석 식품과 음료 등을 생산하는 마스터콩(Master Kong)은 식품 하나로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었다. 타이베이(臺北)에 있는 이 회사는 브랜드 가치가 7억2000만달러(6600여억원)에 달한다. 1년 만에 브랜드 가치가 무려 79% 성장한 이 회사는 올해 대만대외무역발전협회에서 ‘뜨는 별(Rising Star)’로 선정됐다. 대만의 기술역량과 중국의 생산역량을 결합한 ‘차이완(Chaiwan)’ 기업들이 이제 ‘자체 브랜드’를 외치고 있다. OEM(주문자 상표 부착방식), ODM(제조업자 설계생산방식)을 저력으로 다진 이들이 마진이 큰 브랜드 사업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하청업체 거쳐 자체 브랜드화 본격 추진
=생산·설계 역량보다 브랜드가 먼저 성장한 한국과 달리, 차이완 기업은 OEM, ODM의 수순을 계단식으로 차곡차곡 밟아왔다. 그리고 이들은 최근 들어 ‘계단식 브랜드화’의 마지막 단계인 자체 브랜드화를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대만 IT업계가 하청업체 역할을 그만두고 이름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메인보드 업체로 유명한 아수스텍은 자체 브랜드를 위해 주문 생산 사업부를 분사시켰다.
노트북·휴대전화를 주문생산하던 하이테크컴퓨터(HTC)는 ‘HTC’ 로고를 단 휴대전화를 내놓았다. 이 밖에도 대부분의 ODM 기업들이 자체 브랜드로 삼성·LG·델·HP 등 자신의 옛 고객들과 승부에 나서고 있다. 중소기업조차 예외가 아니다. 자오융취안(趙永全) 대만대외무역발전협회 비서장은 “대만의 중소기업은 세계로 뻗어나갈 경쟁력을 준비했다”며 “7년간 중소기업의 브랜드를 집중 지원하는 ‘브랜딩 타이완’”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기업가 정신’으로 끊임없이 도전
= 물론 자체 브랜드로 쉽게 성공할 수는 없다. 실제로 대만의 전자기기 생산업체 벤큐는 지멘스 모바일을 인수해 의욕적으로 자체 브랜드 휴대전화를 생산했다가 1년 만에 휴대전화 사업 부문이 파산을 맞아야 했다.
하지만 차이완 기업들의 도전은 꺾이지 않고 있다. 우선 ‘한방’을 노리지 않고 착실하게 기업을 키워온 사장과 직원의 기업가 정신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개리 웨이(Gary Wei) 존슨 부사장은 “세후 이익의 15~20%를 인센티브로 내걸고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존슨뿐 아니라 상당수 기업이 본봉은 낮추되, 파격적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다. 대만 업체 관계자는 “인센티브가 본봉의 2~3배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 타고 세계 나간다
=브랜드화를 추진하는 배경 중 하나가 중국 시장만으로 ‘세계화’의 절반은 가능하다는 믿음이다. 지난해 대만 기업 중 브랜드 가치가 크게 성장한 마스터콩은 중국 시장 외에 다른 제품을 출시하지 않는다. 마스터콩 관계자는 “285개의 생산기지를 중국 전역에 두고 지역마다 다른 맛의 즉석면(麵)과 음료, 제빵류를 출시해 오로지 중국에 집중해 브랜드를 키웠다”고 말했다.
기업가 정신과 중국을 발판으로 한 이들은 이제 미국 시장을 뚫기 위해 마지막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톰 블래킷(Tom Blackett) 인터브랜드 그룹 부회장은 “중국을 발판으로 한 대만 기업은 세계적 브랜드로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며 “대만 브랜드의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OEM(주문자 상표 부착방식)
ODM(제조업자 설계생산방식)
OEM은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의 약자로, 설계 및 브랜드는 발주회사가 맡지만, 생산만 납품업체에서 대행해주는 시스템을 말한다. 반면 ODM은 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의 약자로, 개발력을 가진 업체가 설계, 개발, 생산을 대행하되, 발주회사의 브랜드를 붙여 판매한다.
차이완을 아시나요??
대만은 연구, 중국은 생산… “한국 덤벼”
'차이완 기업'이 온다
아이폰·인텔 칩 등 싹쓸이 제조
세계최고 원가경쟁력+생산기술
중화 IT벨트 형성… “곧 한국 추월”
지난달 27일 대만 산청(三重)시. 세계에서 컴퓨터용 마우스를 두 번째로 많이 만드는 2위 업체인 KYE 시스템즈 본사 건물에는 기계 소리도, 망치 소리도 없었다. 시설도 쇼룸과 회의실, 검사실이 전부였다. 이곳이 마이크로소프트(MS), 소니(Sony)에 납품하는 세계적인 생산업체인가 싶었다. 복도는 직원이 없어 썰렁하기만 했다. 리 파이샨(李百祥) KYE 부사장은 “본사보다 10배나 많은 직원이 근무하는 공장이 모두 중국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만 타이베이시 신시가지인 네이후(內湖) 지역에 위치한 마이택(Mitac)본사도 마찬가지였다. 델(DELL), 인텔(INTEL)에 제품을 납품하는 업체이지만 기계 돌아가는 소리라고는 에어컨 소리뿐이다. 빌리 호(Billy Ho) 사장은 “대만의 공장에서 일부 하이 엔드(High-end·고부가가치)제품을 생산할 뿐 컴퓨터, 서버, 포켓 PC 등은 이제 중국 광둥(廣東)·장쑤(江蘇)공장에서 쏟아진다”고 말했다.
세계 IT(정보통신)시장의 ‘얼굴 없는 강자’ 대만 기업들이 중국과 결합한 차이완(Chaiwan) 경제를 세우고 있다.
◆세계 전자제품은 ‘메이드 인 차이완’
차이완의 주된 힘은 주문 생산(OEM·ODM)이다. 독자적인 브랜드를 가진 제품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이들은 어느 주문 생산업체보다 강하다. 최근 주문 생산업체의 매출 규모는 연 수십조원에 이익 규모도 5~6%에 달한다. 생산 품종도 거의 전 제품을 망라한다. 애플의 아이팟·아이폰,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3(PS3), 인텔 칩 등 최신 IT 제품이 모두 차이완 기업에서 생산된다. 메인 보드, 노트북, LCD 모니터, PDA(휴대용 정보기기) 부문에서 대만이 세계 생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주문 생산이지만 워낙 물량이 많다 보니 특정 발주처의 주문에 흔들리는 일도 없다.
그러다 보니 차이완은 주문 생산만으로 삼성·LG전자의 바로 턱 밑까지 치고 올라갔다. 삼성 휴대전화의 경쟁 제품은 애플·모토로라를 막론하고 모두 대만 혼하이·컴팔의 ODM(개발자 주도형 생산) 제품이다. LCD 패널시장에서도 대만 기업이 바로 삼성과 LG 뒤에 바짝 붙어 있다. 에이서는 델, HP, 레노보와 함께 PC시장의 ‘빅4’다. 최대 전자·반도체 제조업체 혼하이·TSMC는 각각 삼성의 텃밭인 LCD와 종합 반도체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원가·품질 경쟁력으로 한국 턱 밑까지 추격
한국도 중국 등 신흥 시장에서 아웃소싱(외부 조달)을 하고 있다. 그러나 차이완 기업의 원가구조는 이미 한국이 대응 가능한 수준을 뛰어넘었다. 필요한 때 필요한 단가로 물건을 조달하는 대만 특유의 ‘소싱 네트워크’가 대만과 중국 사이에 거미줄처럼 쳐졌기 때문이다.
애플의 아이팟 mp3플레이어가 대표적이다. 애플은 한국 업체에도 아이팟 납품을 제안했지만 낮은 단가에 모두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대만 기업은 달랐다. 자신만의 노하우로 단가를 맞춰 낼 수 있는 중국 공장과 협력업체가 있기 때문이다.
품질 관리도 뛰어나다. 최근 화제가 된 아이폰의 깔끔한 마감 처리는 바로 대만 혼하이 작품. 옥영재 코트라 타이베이무역관 관장은 “대만 기업들은 세 가지가 없다. 주문시 물량을 묻지 않고, 대당 이익을 묻지 않고, 납기를 묻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이완 기업의 선두격인 혼하이는 3년간 중국 친황다오(秦皇島)에 10억 달러를 투자해 16번째 산업공단을 만들 예정이다. 테리 구(Terry Gou) 혼하이 회장은 “중국에 대한 투자로 혼하이는 매출이 두 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콴타, 에이서 등 세계적인 PC·노트북업체도 중국에 모두 공장을 짓고 노트북 생산라인을 대만에서 이전했다.
◆세계 100대 IT기업에 대만 14개, 한국 1개
이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브랜드와 일부 핵심 기술에서 이들보다 반 발짝 앞서 있을 뿐이다.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위크는 올해 성장률을 지표로 선정한 세계 100대 IT기업에 14개 대만기업을 포함시켰다. 한국은 하이닉스만이 포함됐다.
나준호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대만 기업의 성장은 부활의 날개를 편 일본 기업보다도 수익·성장면에서 모두 한 수 위”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원가경쟁력과 생산 기술을 갖춘 차이완의 목표는 이제 한국을 뛰어넘는 것이다. 네이후 본사에서 만난 마이택 호 사장은 “삼성·LG가 대단하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이 있다”며 “가격과 품질로 제품 핵심에 집중해 꼭 성공해 보이겠다”고 말했다.
◆대만기업의 3無:
①주문시 물량을 묻지않고 ②대당 이익을 묻지않고 ③납기를 묻지않는다
◆세계 IT 제품 생산량 중 대만 업체의 생산 비중
마더보드: 99.0%, 서버: 86.9%, 노트북 PC: 86.2%, LCD 모니터: 76.5%, PDA: 69.8%
〈 자료:Market Intelligence Center〉
◆차이완(Chaiwan)
차이완은 중국(차이나·China)과 대만(타이완·Taiwan)을 결합한 뜻이다. 차이완 기업은 중국의 막강한 생산력에 자사의 연구개발 능력을 접목한 대만 기업을 말한다. 이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중국 직원과 협력업체를 대만 특유의 네트워킹으로 관리한다.
이름없던 기술 ‘명찰’달고 세계로
'차이완 기업'이 온다
OEM·ODM 경험 저력으로 하청업체서 ‘브랜드 기업’ 변신
인센티브가 본봉 3배나 되기도… “기업가 정신 충만하다”
지난달 23일 대만 타이중(台中)현 다야(大雅). 이곳에 위치한 세계적인 헬스기구 업체 존슨(JOHNSON) 건물 앞에는 농부와 트랙터가 한가롭게 오갔다. 하지만 시골의 중소기업 같던 분위기는 사옥에 들어서자 확 바뀌었다. 사무실마다 LCD TV, 음향기기가 부착된 최신식 헬스기구가 즐비했다. 창업자가 20년간 고향에서 한우물을 판 이 회사는 자체 브랜드로 헬스기구 매출액으로 세계 4위, 영업이익은 세계 1위를 달성했다.
즉석 식품과 음료 등을 생산하는 마스터콩(Master Kong)은 식품 하나로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었다. 타이베이(臺北)에 있는 이 회사는 브랜드 가치가 7억2000만달러(6600여억원)에 달한다. 1년 만에 브랜드 가치가 무려 79% 성장한 이 회사는 올해 대만대외무역발전협회에서 ‘뜨는 별(Rising Star)’로 선정됐다. 대만의 기술역량과 중국의 생산역량을 결합한 ‘차이완(Chaiwan)’ 기업들이 이제 ‘자체 브랜드’를 외치고 있다. OEM(주문자 상표 부착방식), ODM(제조업자 설계생산방식)을 저력으로 다진 이들이 마진이 큰 브랜드 사업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하청업체 거쳐 자체 브랜드화 본격 추진
=생산·설계 역량보다 브랜드가 먼저 성장한 한국과 달리, 차이완 기업은 OEM, ODM의 수순을 계단식으로 차곡차곡 밟아왔다. 그리고 이들은 최근 들어 ‘계단식 브랜드화’의 마지막 단계인 자체 브랜드화를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대만 IT업계가 하청업체 역할을 그만두고 이름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메인보드 업체로 유명한 아수스텍은 자체 브랜드를 위해 주문 생산 사업부를 분사시켰다.
노트북·휴대전화를 주문생산하던 하이테크컴퓨터(HTC)는 ‘HTC’ 로고를 단 휴대전화를 내놓았다. 이 밖에도 대부분의 ODM 기업들이 자체 브랜드로 삼성·LG·델·HP 등 자신의 옛 고객들과 승부에 나서고 있다. 중소기업조차 예외가 아니다. 자오융취안(趙永全) 대만대외무역발전협회 비서장은 “대만의 중소기업은 세계로 뻗어나갈 경쟁력을 준비했다”며 “7년간 중소기업의 브랜드를 집중 지원하는 ‘브랜딩 타이완’”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기업가 정신’으로 끊임없이 도전
= 물론 자체 브랜드로 쉽게 성공할 수는 없다. 실제로 대만의 전자기기 생산업체 벤큐는 지멘스 모바일을 인수해 의욕적으로 자체 브랜드 휴대전화를 생산했다가 1년 만에 휴대전화 사업 부문이 파산을 맞아야 했다.
하지만 차이완 기업들의 도전은 꺾이지 않고 있다. 우선 ‘한방’을 노리지 않고 착실하게 기업을 키워온 사장과 직원의 기업가 정신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개리 웨이(Gary Wei) 존슨 부사장은 “세후 이익의 15~20%를 인센티브로 내걸고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존슨뿐 아니라 상당수 기업이 본봉은 낮추되, 파격적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다. 대만 업체 관계자는 “인센티브가 본봉의 2~3배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 타고 세계 나간다
=브랜드화를 추진하는 배경 중 하나가 중국 시장만으로 ‘세계화’의 절반은 가능하다는 믿음이다. 지난해 대만 기업 중 브랜드 가치가 크게 성장한 마스터콩은 중국 시장 외에 다른 제품을 출시하지 않는다. 마스터콩 관계자는 “285개의 생산기지를 중국 전역에 두고 지역마다 다른 맛의 즉석면(麵)과 음료, 제빵류를 출시해 오로지 중국에 집중해 브랜드를 키웠다”고 말했다.
기업가 정신과 중국을 발판으로 한 이들은 이제 미국 시장을 뚫기 위해 마지막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톰 블래킷(Tom Blackett) 인터브랜드 그룹 부회장은 “중국을 발판으로 한 대만 기업은 세계적 브랜드로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며 “대만 브랜드의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OEM(주문자 상표 부착방식)
ODM(제조업자 설계생산방식)
OEM은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의 약자로, 설계 및 브랜드는 발주회사가 맡지만, 생산만 납품업체에서 대행해주는 시스템을 말한다. 반면 ODM은 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의 약자로, 개발력을 가진 업체가 설계, 개발, 생산을 대행하되, 발주회사의 브랜드를 붙여 판매한다.
백승재 기자(타이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