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11시쯤 서울을 출발해부모님을 뵈러 전주

곽미영2007.08.05
조회45

지난 금요일 11시쯤 서울을 출발해

부모님을 뵈러 전주로 향했습니다.

 

여름 휴가철이라 그런지 고속도로도 곳곳이 정체되고

결국 전주엔 서울을 떠난지 거의 6시간정도 경과해 도착을 했지요.

 

평소와 같았음 두시간 반에서 세시간 정도면 도착했을 거리인데

두배가까이 소요가 되었습니다.

 

가는 길에 집에 전화를 걸어 기다리실까봐 차가 막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친정오빠에게 언제 내려오는지 문자를 보냈는데

20분 후 전화가 왔더군요.

 

지금 어디냐고...전주 친정에 내려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아빤 지금 서울에 올라오고 계시는 중이시라고

집엔 엄마만 계신다고...

 

큰아버지 댁 막내아들인,사촌오빠가 금요일 밤에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고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 올라오는 중이시라고...

 

시골서 농사를 지으시는 큰아버지는

전형적인 우리네 시골 농부의 모습입니다.

큰 일이 있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시면 아버지와 자주 상의를

하시곤 했지요.

 

작년 봄,큰어머니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시고

혼자서 적적하실텐데도 그래도 꿋꿋하게 깔끔하게

혼자서 그런데로 잘 지내시는 것 같았는데

자식의 사고소식에 그만 정신을 놓으시고 병원에 계신다고 하더군요.

 

기쁜 마음으로 들떠 친정에 내려가던 마음이 갑자기 무거워졌습니다.

 

친정에 들러 엄마께 왜 말 하지 않았는지 불평을 늘어놓고

저녁식사를 하고 바로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지만

아빠께서 전화를 하시어 중환자실에 있어 면회도 안되고

볼 수 없다며...올라오지 말고 아빠도 내일 전주로 내려오신다고

하시어 ...

 

다음날 낮 1시정도 아빠께서 집에 오셔서 함께 식사를 하고

우리 부부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병원에 가 살아계실때라도 한 번 뵙고 싶었습니다.

가봐야 했었는데.....

출근때문에 미루고

월요일 퇴근 후 병원에 가 좀 있을 생각으로

화요일 연차를 내었는데

왠지 자꾸 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께 수시로

사촌오빠는 좀 어떤지 물었는데 아직 별 다른 연락은 없었다고

하셨는데...12시 반정도.다시 전화를 하니..

조금전에 운명 하셨다고 하더군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정말 많이 아팠습니다.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그저 눈물만 났습니다.

 

가여운 용옥오빠...

고작 그렇게 그 짧은 생을 살다 가려고 그리 순탄치만은 않은

삶을 살았던가..

그리 착하고 순한 분..너무 어이없게 그렇게 간건가..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누구는 그럴 수 있습니다.사촌오빠인데..그렇게까지...슬픈가..

사촌도 형제이고 가족입니다.

특히나 더할나위 없이 정말 선한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가슴을 메이게 한 것은..

사고 후 벌어진 일들은,다시 생각해봐도

어쩌면 살 수 있었던 생명이

그렇게 떠나게 된 것만 같은 생각에

아직도 무거운 마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빨리 이 무거운 마음을 버려야 할텐데...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사촌오빠를

우회전 하는 자가용이 받아 오토바이와 함께 쓰러져서..

근처 다니던 정형외과에 직접 택시를 타고 그때까진

걸어서 갔었다고 합니다.

헌제 그 병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곤 큰병원으로 가보라고..

 

그말에 오빠와 가해자는 부천 성가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다른 응급환자가

있다며 치료를 미루고 다른병원으로 사촌오빠를 보냈답니다.

 

그렇게 해서 간 부천 다니엘 병원에서

이런 저런 검사를 하는 동안 몇시간이 지났고

검사결과를 본 병원에선 검사결과가 좋지 않자

아무래도 안되겠으니 다시 부천성가병원으로

보낸것입니다.

 

그렇게 해 부천성가병원으로 다시 도착했을 땐

과다출혈로 서서히 의식이 없어지고 이내...

부러진 갈비뼈가 복부안 장을 손상시켜 장파열로 인한

내출혈로 ..

 

손 쓸 수 있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응급수술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듣자하니 처음에 처치만 잘 했어도 그렇게까지는

안됬을텐데라는 말을 하는데..

수술 후 의사의 말이 어떻게 했어도 살 가망이 없었다라고

하더랍니다.

 

의사가 되가지고 사명감도,책임감도 없이 어찌 그런 말을..

물론 의사의 힘으로 의학으로 어쩔 수 없는 일,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병원에 제발로 걸어와 처치를 원했을 때

그때만 제대로 치료를 했어도 최소한 이렇게 가엽게

하늘나라로 가진 않았을 것입니다.

정말 병원에서 최선을 다 했을까

 

다른 병원으로 보냈을때 아무 생각도 못했을까

장파열,내장출혈 의심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 해도 가슴 아프고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납득이 안됩니다.

 

그렇게 중학교 다니는 아들 둘과 아내를 남기고

열심히 살다가 죄 없이,제대로 처치도 받지 못하고

평소 살던데로 순하게 그렇게 싫은 소리 한마디

아프다 소리 한마디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버렸습니다.

 

그저..주님께서 그 아픔을 다 치유해주시고

좋은자리 주님 옆에서 많이 사랑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빈소에 가해자가 찾아와 무릎을 꿇고 두손을 모아

빌고 빌었습니다.

 

병원에 있을때도 그렇게 몇 차례 찾아왔었다고 하더군요.

 

아들의 사고 소식에 정신을 놓으신 큰아버님은 결국

입원을 하시고 장례식장에는 오지 못하셨습니다.

 

장례식장을 내내 지키시던 고모 두분께서 오열속에

가해자에게 힘겹게 이성을 잃지 않으시기 위해

안간힘 쓰시며 당신 머리를 다 뜯어놓고 당신몸도

똑같이 해놓고 우리 조카가 살아 온다면 그렇게라도

분풀이라고 하겠지만

 

왜 운전을 그렇게밖에 못했냐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울분을 터뜨리시며

하지만 당신도 앞으로 짊어지고 갈 평생의 짐이

될 것이 마음 아프다고...여기까지 온 마음이 산사람 정신은

아니었을거라며...앞으로 속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라며

가라고 돌려 보냈습니다.

 

바들 바들 떨며 울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

마음 아팠습니다.

 

부축을 하고 돌려보내기 위해 밖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가해자는,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정도로 보이던 여자 였습니다.

자식들도 있을테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을 것입니다.

조용히 한마디만 했습니다.

 

좋은 곳에서 사랑 많이 받기를 기도 해달라고..

 

사고가 난 금요일부터 그날까지 한끼도 먹지 않고 금식기도 중이라고..여기서 돌아가면 기도원에 가 기도만 하겠노라고..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늘로 떠난 사촌오라버니도..그 여자도 너무 가엽고

마음이 아픕니다.

 

더이상은 나와 내 주변에 그 어떤 아픈일도 생기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사랑하는 가족들 모두의 평안을

지켜주실 것을..

살갗에 스치는 바람과 같은 상처조차도 나지 않고

눈을 감고 잠을 잘때나 일을 할때나 사람을 만날때

밥을 먹을때 길을 걸을때 운전을 할 때 차를 탈때

무언가를 행하고 쉬는 그 모든 시간속에 항상

지켜주심을 사랑해주심을 믿습니다.

 

하늘에 있는 사촌 용옥오빠,

부디..그곳에선 여기서 누리지 못한 행복,아팠던 것 모두 잊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