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남이 싫다. 강남이 싫고, 그 거리가 싫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싫고, 그들의 발걸음이 싫으며, 그 발이 닿는 보도블럭과, 그것에 연해있는 술집과, 나이트와, 스타벅스 커피숍이 싫다.
거리는 꽤나 정직한 초상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길을 걷는 이들이 수 십년 동안 남긴 작은 흔적들이 살아 숨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그 거리가 가진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그 역사와, 역사를 매만진 수 많은 이들의 손길 속에서 해석될 수 있다. 작은 포스터 하나, 걸인, 쓰레기통, 거리에 주차된 차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침묵하지 않고, 거리의 문화와 문화를 일궈낸 사람을, 인생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강남역 사거리, 이 젊음의 거리에서 나는 문화를, 젊음을 찾을 수 없다. 나는 배설과 향락과 사치를 문화라 부를 수 없다. 테헤란밸리로 출근하는 엘리트 사무직 노동자에게서나, 씨티극장 앞에 포진하고 있는 연인들에서, 지하철역 앞에 늘어서서 전단지를 뿌리는 아주머니들 까지, 누구 하나 여유를 말하지 않고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상이 피곤한 이들은 술을 마신다. 나이트에 가거나 엔비에서 춤을 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신다. 여자친구와 고급 빠에서에서 칵테일을 마신다. 이 거리의 모든 문화는 소비와, 일시적 쾌감과, 고단한 일상의 반복을 압축해서 보여줄 뿐이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구속의 시스템은 판에 박힌 인생을 만들어 내고, 이 거리의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 판에 박힌 인생을 즐기는데 몰두한다. 반성과 성찰을 가질 여유는 없다. 빨리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러 가야한다.
일 년 전쯤에는 매일 밤 아이겐 포스트 앞에서 록밴드의 공연이 있었다. 물론 몇 개월 만에 중단 되었다. 이 거리 공연은 정말 판단 착오였다. 강남역은 대학로나 홍대 앞이 아니다. 술을 마시러 가는 20대, 졸부의 자녀들에게 록은 귀찮고 시끄러울 따름이다. 편하고 즐거운, 무엇하나 불편함 없는 인생에 록은 쓸데없는 괴성이며 저급한 문제제기일 뿐이다. 이들의 문화란 오직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소비하는 것이다. 문화는 20년만에 치솟은 땅값과 졸부들이 만들어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오다노 옆 골목과 7번 출구 앞에서 파는 물건들은 이 거리를 만들어낸 계급의 기저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판 위에는 아디다스, 폴로, 프라다, 베르사체, 수많은 가짜 명품들이 즐비하다. 이 곳에서는 누가 얼마나 더 많이 소비하느냐에 따라 그 신분이 결정된다. 명품의류는 그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과시하는 명함이며, 더욱 원활한 소비와 그에 걸맞는 대접을 위한 도구다. 이 거리의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소비에 민감한 사람들이며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자들이다. 가짜 명품으로 그들을 모방하려는 자들 또한 이 곳에는 가득하다. 이 거리는 현대의 가장 썩은 정신이 지배하는 곳이다. 썩은 구조 위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이 스스로의 배설을 위해 만들어낸 장소다.
거리 문화론<강남역>
강남역, 강남대로
나는 강남이 싫다. 강남이 싫고, 그 거리가 싫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싫고, 그들의 발걸음이 싫으며, 그 발이 닿는 보도블럭과, 그것에 연해있는 술집과, 나이트와, 스타벅스 커피숍이 싫다.
거리는 꽤나 정직한 초상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길을 걷는 이들이 수 십년 동안 남긴 작은 흔적들이 살아 숨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그 거리가 가진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그 역사와, 역사를 매만진 수 많은 이들의 손길 속에서 해석될 수 있다. 작은 포스터 하나, 걸인, 쓰레기통, 거리에 주차된 차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침묵하지 않고, 거리의 문화와 문화를 일궈낸 사람을, 인생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강남역 사거리, 이 젊음의 거리에서 나는 문화를, 젊음을 찾을 수 없다. 나는 배설과 향락과 사치를 문화라 부를 수 없다. 테헤란밸리로 출근하는 엘리트 사무직 노동자에게서나, 씨티극장 앞에 포진하고 있는 연인들에서, 지하철역 앞에 늘어서서 전단지를 뿌리는 아주머니들 까지, 누구 하나 여유를 말하지 않고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상이 피곤한 이들은 술을 마신다. 나이트에 가거나 엔비에서 춤을 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신다. 여자친구와 고급 빠에서에서 칵테일을 마신다. 이 거리의 모든 문화는 소비와, 일시적 쾌감과, 고단한 일상의 반복을 압축해서 보여줄 뿐이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구속의 시스템은 판에 박힌 인생을 만들어 내고, 이 거리의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 판에 박힌 인생을 즐기는데 몰두한다. 반성과 성찰을 가질 여유는 없다. 빨리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러 가야한다.
일 년 전쯤에는 매일 밤 아이겐 포스트 앞에서 록밴드의 공연이 있었다. 물론 몇 개월 만에 중단 되었다. 이 거리 공연은 정말 판단 착오였다. 강남역은 대학로나 홍대 앞이 아니다. 술을 마시러 가는 20대, 졸부의 자녀들에게 록은 귀찮고 시끄러울 따름이다. 편하고 즐거운, 무엇하나 불편함 없는 인생에 록은 쓸데없는 괴성이며 저급한 문제제기일 뿐이다. 이들의 문화란 오직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소비하는 것이다. 문화는 20년만에 치솟은 땅값과 졸부들이 만들어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오다노 옆 골목과 7번 출구 앞에서 파는 물건들은 이 거리를 만들어낸 계급의 기저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판 위에는 아디다스, 폴로, 프라다, 베르사체, 수많은 가짜 명품들이 즐비하다. 이 곳에서는 누가 얼마나 더 많이 소비하느냐에 따라 그 신분이 결정된다. 명품의류는 그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과시하는 명함이며, 더욱 원활한 소비와 그에 걸맞는 대접을 위한 도구다. 이 거리의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소비에 민감한 사람들이며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자들이다. 가짜 명품으로 그들을 모방하려는 자들 또한 이 곳에는 가득하다. 이 거리는 현대의 가장 썩은 정신이 지배하는 곳이다. 썩은 구조 위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이 스스로의 배설을 위해 만들어낸 장소다.
문화는 오바이트하는 취객에게나 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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