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박돈서 교수의 자하재(紫霞齋)

황옥균2007.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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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박돈서 교수의 자하재(紫霞齋)

23개의 중정을 품은 미로를 닮은 집



헤이리의 자하재

건축가 박돈서 교수의 자하재(紫霞齋)나무 정원에서 나란히 선 박 돈서 교수 부부. 23개의 정원은 벽과 벽으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한쪽에서 바라보면 이렇게 양쪽에 거울을 두고 비춘 듯 몇 개의 통로가 한눈에 보인다. 각 각의 정원에는 이탈리아 봉숭아, 패랭이, 꽃잔디, 박달나무, 작약, 홍단풍 등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꽃과 나무들이 각각의 공간마다 다른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헤이리에 위치한 자하재(紫霞齋)는 ‘2005년 건축가협회상 베스트7’과 ‘2005년 한국건축문화대상 특선’ 등 건축계 최고의 상을 2개나 받아 그 디자인을 인정받 은 유명한 건물이다. 이 건물에 살고 있는 이는 아주대학교 건축과 교수와 거제대학교 학장을 거쳐 현재는 아주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박돈서 교수로, 헤이리에 지어지는 건물들을 심의하는 헤이리 건축 심의 위원이기도 하다. 『건축의 색 도시의 색』, 『건축색채학』 등의 저서에서 알 수 있듯 특히 건축 색 채 분야를 꾸준히 연구해온 분이다. 그리고 「공동경비구역 JSA」, 「친절한 금자씨」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자하재(紫霞齋)라는 이 름은 당신의 호(號)를 딴 것으로 자하문 밖에서 태어나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박교수는 평생을 건축과 교수로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다른 젊은 건축가에게 의뢰해 지었다. 본인이 지으면 아무래도 살기 편하게만 지을 것 같아서 였다고 말하지만, 주위 사람들에 의하면 후배들에게 기회를 더 주기 위한 박교수의 배려였다고 한다.

건축가 박돈서 교수의 자하재(紫霞齋)건물 외관. 흔히 외벽만 노출 콘크리트로 시공하는 다른 집들과 달리 이 집은 내부까지 모두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졌다. 2세대가 사는 집으로, 양쪽에 출입문이 따로 있다.

이 집의 설계를 맡은 이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주)김영준도시건축의 김영준 건축가. 일산 허유재병원 등을 설계한 그는 어김없이 독특 하고 실험적인 설계를 해왔는데 자하재의 설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설계도를 한눈에 딱 봐도 공간이 좁고 수납 공간도 부족해 살기엔 불편한 데다, 사는 데는 전혀 필요 없는 그러나 이 설계의 핵심 디자인이기도 한 여러 개의 벽을 세워야 하니 공사비가 만만치 않게 들 것임을 뻔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해심 많은 건축주는 파격적인 디자인에 후한 점수를 주고 과감하게 OK 사인을 했다. 게다가 원래 건축주라는 사람은 집 전체를 보지 못한 채 부분만 보고 공사 중에 이 러쿵저러쿵하면 원래의 콘셉트와는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지라 건축가가 일관된 콘셉트와 철학으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배 려했다. 그리하여 건축가는 만만치 않은 집주인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그림을 마음껏 그려나갈 수 있었다. 건축가는 자신이 짓는 집 을 작품으로 봐주는 훌륭한 건축주를 만난 것이니 이런 건축물이 우수 건축물로 선정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스스로를 “건축가의 작품을 관리하면서 사는 관리자”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건축가를 믿어주는 마음이 자하재를 집이 아닌 건축 작품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건축가 박돈서 교수의 자하재(紫霞齋)2층 서재 베란다에서 바라본 중정의 모습. 이 집의 구조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1주택 1세대, 휴먼 스케일에 맞춘 공간 분할

건축가 박돈서 교수의 자하재(紫霞齋)1 주방 쪽에서 바라 본 거실. 소파가 놓인 공간 외에는 남는 공간이 별로 없을 정도로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해 보이지 않는 건 어느 방향에서나 밖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 기 때문이다.
2 부부 침실. 3면의 벽을 따라 창문이 4개나 있다. ‘창이 곧 액자’가 되어 멀리 전원 풍경이 걸리고, 23개의 중정 중 하나가 그림처럼 걸린다. 보기 싫 은 운동기구들을 일일이 커버를 만들어 씌워놓은 모습에 한 번 더 감동.

자하재의 특징 중 하나는 1주택 2가구라는 점이다. 겉에서 보면 하나의 건물로 되어 있지만 내부는 2세대가 살 수 있도록 2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출 입문을 따로 쓰는 등 두 공간은 독립적이면서도 동시에 서로 맞물리는 공통된 부분을 절묘하게 배치해놓아 아주 이상적인 1주택 2가구의 예를 보여주고 있다 . 1층에서는 중정을 통해, 2층에서는 구름 계단을 통해 서로 왕래할 수 있는데, 그 사이엔 지붕이 없어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가야 한다.

이 집은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안으로 들어가니 공간이 너무도 좁았다. 땅 하나에 두 집을 짓다 보니 좁아진 면도 있고, 40%를 정원으로 할애했기 때문이기 도 하다. 하지만 더 큰 요인은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휴먼 스케일을 바탕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휴먼 스케일’이란 쉽게 말해 사람이 생활하는 데 적당한 크 기와 공간을 말한다. 박돈서 교수가 거주하는 한쪽 공간 1층에는 침실과 복도, 거실, 주방, 세탁실이 있고 2층에는 서재 하나만 두는 등 아파트처럼 파우더룸 이니 게스트룸이니 하는 불필요한 공간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그 공간들마저도 사람이 편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크기인 360cm를 기준으로 나누었다. 더 넓으면 공간 낭비고, 정서적으로도 허전하다. 거실도 이 크기, 방도 이 크기다. 정원마저도 공간을 나누고 또 나누었다. 이 점 이 자하재의 가장 큰 특징이다.

건축가는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을 모티브로 이 집을 설계했다 한다. 알함브라 궁전은 궁전답지 않게 좁고 미로처럼 공간이 나누어져 있으며 정원과 실내가 마구 뒤섞여 있는 구조다. 이 집 또한 위에서 보면 미로처럼 하나의 공간이 여럿으로 나누어져 있고, 정원과 실내가 서로 연결된다. 각 공간에는 그 공간만큼 의 외부 공간(중정)이 덧붙여져 있다. 각 공간은 외부와 연결이 되도록 창문을 내었는데 그래서 어느 공간, 어느 방향에 있어도 중정이 보인다. 재미있는 건 한 공간에서 보이는 중정이 3~4개나 된다는 사실이다.

건축가 박돈서 교수의 자하재(紫霞齋)3 중정은 화장실까 지 따라 다니면서 그림을 만들어 낸다.
4 거실 한쪽에는 여행하면서 모은 세계의 유명 건축물 모형과 장식 종이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다.23개의 중정을 품은 집

건축가 박돈서 교수의 자하재(紫霞齋)5 2층에 자리한 서 재. ㄱ자 형태로 2층과 1층이 서로 통하도록 되어 있다. 거실에서 볼 때는 좁은 공간에 높은 천장을 줌으로써 넓어 보이는 효과와 더불어 1층과 2층이 서로 연 결되어 있게 된 부분이다.
6 교수님이 가장 좋아한다는 위치다. 노출 콘크리트 가운데에 난 프레임을 통해 보이는 다른 공간의 모습 중에 가장 멋진 그림이 나오는 곳이라고.

미리 얘기를 듣긴 했는데, 99칸 대궐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집 안에 중정을 23개나 가질 수 있겠는가 반신반의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마치 제주도의 미로 공원처럼 큰 정원 하나를 벽과 벽으로 나눠놓은 형태. 따라서 각 공간에서는 서로 다른 중정을 보게 되고 정원을 거닐면 계속해서 새로운 풍경들을 만나게 되 는 구조다. 더 재미있는 점은 이 23개의 중정들은 모두 그 모습이 다르다는 것. 공간과 공간을 나눈 벽의 생김새도 닮은 듯 다르고, 바닥 재료와 심는 식물도 달리해서 흙으로 된 정원, 돌이 깔려 있는 정원, 나무가 깔린 정원 등 정원을 만드는 재료까지 변화를 주었다. 노출 콘크리트 벽으로 칸을 나누면서도 구멍을 뚫어 프레임을 만들고 시선에 따라 여러 가지 풍경이 보이도록 했다. 이 23개의 중정에는 각각 이름도 있다. 소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은 송정, 매화나무가 있 는 곳은 매정, 대나무가 있는 곳은 죽정, 단풍나무가 있는 곳은 풍정 등. 이렇게 다르게 꾸며놓아 거실에서 보는 중정의 모습도 모두 다르다. 이 자연 풍경 그 림은 계절마다 달라지고, 밤낮이 다르고, 누워서 보는 것과 서서 보는 것이 다르다. 프레임에 들어오는 경치를 생각해서 나무와 꽃의 종류까지 나눠 심는다고 하니 어찌나 놀랍던지. 취재하는 날 아침에도 2시간이나 걸려 정원을 돌보았다고 하니 이런 멋진 그림이 예사로 나오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집주인을 닮은 집

건축가 박돈서 교수의 자하재(紫霞齋)7 중정 하나하나가 참 스타일리시하다.
8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 집의 구조가 한눈에 보인다. 마치 미로 공원에 와 있는 듯한 기분.

점심을 함께 들던 교수님은 막걸리 반 병을 주문하셨다. 손수 한 잔씩 따라주시고는 건배까지 제의하셨다.
“내가 ‘당신’ 할 테니, 여러분은 ‘멋져’라고 하세요. 이유는 마시고 나서.”
시키신 대로 술잔을 맞대면서 “당신 멋져”라는 구호를 외쳤다.
“당신 멋져, 참 좋은 구호지요. ‘당’은 ‘당당하게’, ‘신’은 ‘신나게’, ‘멋’은 ‘멋지게’, ‘져’는 ‘져주자’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당당하고, 신나고, 멋지게 살되 그래도 져주면서 사는 것이 최고라는 말씀이었다. 이 말 한마디로 어떤 인생관을 가진 분인지 알고도 남았다. 스스로 겸손해하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교수님의 인생관과 참 닮은 구호가 아닌가 싶다. 헤이리의 최고 연장자로 헤이리의 굳은 일은 모두 맡아주시는 등 헤이리 사람들의 삶의 멘토가 되시는 분. 집 생김새를 촬영하러 갔던 기자는 멋진 삶의 모토까지 배워 돌아왔다. ‘당신 멋져’ 소리 듣는 사람으로 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