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기만하던 1980년 5월....광주 그리고 28년이 지난 2007년 지금 난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았다.. 백과 사전에 나온 개요대로 착실히 만들어진 영화였다.. 너무 무거운 내용의 실화를 이 영화에선 절대 가볍지도...너무 무겁지도 않게... 적절히 위트를 넣어가며 영화에만 집중하게 만들어줬다... 왜 그때 광주에 다니던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폭도로 통했단 말인가?? 그럼 먼저 5.18 이전으로 돌아가보자...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후 전두환.노태우등의 신군부가 최규하 과도 정부를 유명무실하게 하고 정승화 계엄 사령관을 대통령 시해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하면서 군부의 권력을 장악한 12.12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이 군사독재를 연장하려하자 학생을 중심으로한 수만명의 시민들은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서 계엄 철폐 등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해산하게 된다 (여기까진 백과 사전에 나온 5.18민주화 운동의 사건 개요였습니다..이제부터 영화의 처음이자 제가 보고 듣고 배운것..그리고 제 의견을 통합해서 적겠습니다) 그리고 부산 대구 대학생들에게서도 시위를 일으킬 조짐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기세를 수그러들게 만들 무언가가 필요했다... 수도권에서 제일 멀고 그 당시 전남 출신인 전 김대중대통령을 감금하여 광주학생들과 시민들이 북한의 명령을 하달 받은 김대중을 감싼다는 핑계로 광주 시민들은 폭도에 북한군이 되버렸다.. 전두환은 그래서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명과 함께 광주를 쓸어버려 라는 명령을 하달했다고 한다... "쓸어버려라는 상부 지시와 함께 광주 시민들을 항해 총을 겨눴다"고 몇년전 5.18 묘소를 찾아온 그 당시 계엄군이었던 분이 뉴스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었다.... 그 말이 너무도 가슴 깊히 박혀서 떠나질 않았다... 하나 둘...계엄군의 총탄과 착검한 총에 아무런 이유 없이 광주에 산다는 이유로.. 죽어가기 시작하였다 이에 반발한 시민들과 학생들은 광주나 화순..담양...장성....등 시골 파출소를 습격하여 격납고에 무기를 탈취하여 무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저 이유 없이 죽어가는 옆집 아저씨..아줌마..부모님..동생..친구들을 보며 살기위해....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그리고 한명이라도 더 광주 시민들을 살려내기 위해 총을 들고 투쟁한것이다.. 총을 든 시민군들을 이기기 위해 탱크와 장갑차로 중무장한 계엄군들... 그리고 그 당시 150여명 정도 죽었다고 나오는 보도들 아니다..150명은 외신 기자들 눈에 보이는 광주 시민들 시체였을뿐.... 군인 트럭에 잡힌채 외지로 끌려가 땅 구덩이를 깊게 판후 시민들보고 들어가라 하고선 총을 난사하고 흙으로 묻어버렸다...ㅠㅠ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하는 유가족분들이 5.18 묘역에 시체가 없는 빈 묘소에 잔을 올리고 눈물을 흘린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까진 나도 5.18을 몰랐다... 아니 어느 누구도 애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5.18의 주역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정권을 잡고 있었기때문에 함부로 그런 말 꺼네다 걸리면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가야 했던 광주 전남의 현실이었다 그러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1988년 올림픽이 한창이던 어느날.. 아버지께서 책 한권을 선물로 사 오셨다 그리고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역사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그 책의 내용에 대해서 애기하면 안된다고 당부의 말씀까지 기억이 난다,, 그 책 첫 장을 열자 마자 난 바로 책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며칠동안 그 사진들이 기억에서 떠나지 않아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장갑차에 깔린듯 얼굴 형상이 완전 일그러진 사진이며 얼굴 반쪽이 없는 사진... 어린 나에겐 전설의 고향보다도 더 무서운 사진들이었다... 이 글을 보시는 네티즌들도 한번 그 사진들을 보시고 싶으시다면 이미지 검색을 해보세요.... 그리고 마지막 엔딩 장명이었던 결혼식 사진 촬영 장면... 짧았지만 너무도 강렬한 무언가가 너무도 깊이 남겨진것 같다.. 5.18이 없었더라면 저들은 저렇게 행복한 웃음을 지며 행복하게 살았을텐데,,, 다들 웃고 있지만 이요원의 슬픈듯 아무 감정이 없는 듯한 표정... 죽으신분들은 지금 5.18 민주화 운동의 자그마한 영웅으로 기억되지만 살아남은자는 평생을 그 지옥같은 기억에서 살아야한다는 5월에 신부가 5월에 악몽이 되버린듯한 느낌에 자막이 올라가는 한참동안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 광주가 있고..... 모든 진실이 언론에 조작되던 역사는 이 한편의 영화로 다시 살아났다... P.S. 엄밀히 따지면 계엄군도 피해자이지만.... 이 영화는 처절했던 광주 시민들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거라 그리고 요즘 넘 오락 영화에 빠지셨던 분들은 다큐 영화처럼 지루하셨을 분들도 더러 계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럼 제가 이 영화를 좀 더 실감 나게 보는 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전 먼저 5.18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보고 가세요...이미지 검색이든지..사건 개요든지 조금이라도 알고 가셔야 이 영화의 진짜 숨겨진 의미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80년대 도청을 그대로 옮겨 놓은 화려한휴가 셋트장은 광주광역시 북구 오룡동 1-2번지로 첨단 과학 기술원 뒤편에 자리잡고 있답니다....
5.18과 화려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