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c. 1669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러시아 « 생페스부르그 » 의 « 에르미타주 » 미술관에는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과 용서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는 명화가 한 점 걸려있다. 작품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그림 속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더라도. 한 청년이 아버지로 보이는 한 노인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는 이야기라는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서 하는 어쩔 수 없이 구차하게 용서를 비는 모습이 아닌 진심으로
뉘우치고 잘못했음을 인정하는 모습이다. 노인 역시 아무 것도 묻지 않으며 살며시 청년을 안아 주고 있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 하다.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참된 사랑과 용서 그리고 진실한 뉘우침이 느껴지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마치 인생말년의 황혼의 빛처럼 저녁 무렵의 은은하게 내리쬐는 따사로운 빛은 살며시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으로 퍼지며 이들의 모습을 잔잔하게 비추어 준다. 그리고는 고요한 빛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변의 어두움과 조화를 이루며 화면전체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이 그림의 이야기는 성경 누가복음 15장 18절에 나오는 « 돌아온 탕아 »의 이야기 이다.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c. 1669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 중 한 몫을 챙겨 집을 나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원망하지
않고,잠도 제대로 못 주무신다.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 궁핍과 죽음의 위험 가운데 놓일 것을
누구보다도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 날부터 아버지는 문도 잠그지 않고 주무신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도 동구 밖을 내다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아버지는 어느 날 멀리서
오는 사람이 아들임을 알아채고 맨발로 뛰어 나가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춘다.
아들은 자신이 아들의 자격이 없으니 품꾼으로 채용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품꾼으로 아들을 채용하지 않고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겨서 아들로서의 권위를 회복시켜 주신다.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잡고 동네사람들을 초청하고
성대한 잔치를 한다. 그 잔치에는 잃었던 아들을 찾았던 한 아버지의 기쁨이 가득했다.
맏아들이 고된 일을 마치고 집 가까이 이르자 풍악소리와 함께 춤추는 소리가 들렸다.
종을 불러 어찌된 일인가 하고 물으니 종이 대답하기를 « 당신의 동생이 돌아와서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되어서 살찐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
맏아들은 노하여 들어가서 즐기지를 아니하자 아버지가 나와서 맏아들에게 들어가서 함께 기뻐
하자고 권한다. 그러나 서운했던 맏아들이 아버지께 이야기 하기를 « 나는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었지만 내게는 염소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신 일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팔아버린 동생이 돌아오니 이를 위하여 살찐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께서는 맏아들에게 말씀 하셨다. “아들아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지 않느냐?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c. 1669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돌아온 탕아의 신발은 모두 헤지고 발가락은 모두 퉁퉁 부었다. 세상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가족을 져버리고 세상으로 뒤쳐 나갔지만. 결국 얼마 가지 않아 모든 것을 탕진한다.
렘브란트는 낡고 헤진 신발과 누더기가 된 옷을 탕아에게 입혀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통을 당했는지를 이야기 해준다. 마치 잠시 동안의 행복에 취해 자기자신을 과신하며 모든 것을 잃은 렘브란트는 자기 자신을 모든 것을 잃은 탕아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c. 1669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아버지는 기력이 다해 보인다. 등은 굽어 있고 고개를 들 힘조차 남아있는 것 같지 않다.
두 눈은 나이가 들어 잘 보이지 않는 듯 하다. 귀도 잘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기억력도 많이 안 좋아지신 것 같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뒤로 하고 재산의 절반을
가지고세상으로 나갔다. 하루하루를 자식의 그리움으로 보낸 아버지는 아들이 너무나 걱정스럽
기만 하다. 아들은 세상으로 나가 여자와 놀고, 도박을 하고 여흥을 즐기다가 결국 남은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여기저기서 구걸하며 생을 연명하지만 결국 아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와 형제에게 너무나 죄송하여 막상 집으로 돌아가기가 겁이 난다.
자신을 나무랄 줄 알았던 아버지는 말없이 아들을 감싸 않는다.
그리고는 너무나 기뻐하시면서 아들에게 신과 가락지와 좋은 옷을 내어준다.
세상에 그 어떤 매서운 꾸지람보다 자신으로 인해 몰라보게 기력이 쇠한 아버지를 대하자
아들은 아버지 보기가 너무나 죄스럽다. 그리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사랑으로써 아들을 용서한다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c. 1669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생의 마지막 해인 1669년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빛”의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은 이 그림을 완성하고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젊은 시절 인생의 찬란했던 명예와 부를 경험했고, 불꽃 같은 사랑도 해보았다. 그리고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고 슬픈 사랑도 해보았다. 경제적 파탄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떠나 보내고 이제는 홀로 남은 말년의 슬픔을 간직했던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
그는 그의 파란만장 했던 일생을 탕아에 투영하여 신께 속죄하는 듯한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돌아온 탕아”라는 작품을 남겼다..
사랑하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헨드리케”를 위해 “목욕후의 밧세바”라는 작품을 남겼고.
자신의 모습을 욕정에 사로잡힌 다윗으로 묘사하면서. 사랑하는 연인에게 용서를 구했다면.
이제는 신께 용서를 받고자 자신을 만신창이가 되어 기댈 곳이 없는 탕아로 묘사했다.
곧 다가올 죽음을 예견 하였는지 한 많은 이 세상이 너무나 야속하였는지 “렘브란트”는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누군가에게 목놓아 울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속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으로써 용서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삼국유사의 한 일화의 “조신”이라는 이름의 한 승려처럼,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부와 명예의 정점까지 올랐던 렘브란트 이지만, 남은 것이 하나도 없는 극도의 허무함과
쓸쓸한 인생을 경험하는 “렘브란트 반 레인”. 그는 그의 인생말년에 자신이 느끼는 인생의 허무
함을 초연하고 은은한 빛을 사용하여 쓸쓸한 자신의 인생을 따뜻하게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누가복음 15장 18절…
오늘 하루 오랜만에 아버지를 생각해본다. 그 동안 잠시 잊었던 아버지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고 늘 못난 자식을 생각 하시면서 밤잠을 설치실 아버지에게 전화라도 한 번 해볼 것이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을 때 목놓아 울어도 가만히 나를 안아주실 아버지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서와 사랑.]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c. 1669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러시아 « 생페스부르그 » 의 « 에르미타주 » 미술관에는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과 용서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는 명화가 한 점 걸려있다. 작품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그림 속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더라도. 한 청년이 아버지로 보이는 한 노인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는 이야기라는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서 하는 어쩔 수 없이 구차하게 용서를 비는 모습이 아닌 진심으로
뉘우치고 잘못했음을 인정하는 모습이다. 노인 역시 아무 것도 묻지 않으며 살며시 청년을 안아 주고 있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 하다.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참된 사랑과 용서 그리고 진실한 뉘우침이 느껴지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마치 인생말년의 황혼의 빛처럼 저녁 무렵의 은은하게 내리쬐는 따사로운 빛은 살며시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으로 퍼지며 이들의 모습을 잔잔하게 비추어 준다. 그리고는 고요한 빛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변의 어두움과 조화를 이루며 화면전체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이 그림의 이야기는 성경 누가복음 15장 18절에 나오는 « 돌아온 탕아 »의 이야기 이다.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c. 1669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 중 한 몫을 챙겨 집을 나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원망하지
않고,잠도 제대로 못 주무신다.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 궁핍과 죽음의 위험 가운데 놓일 것을
누구보다도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 날부터 아버지는 문도 잠그지 않고 주무신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도 동구 밖을 내다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아버지는 어느 날 멀리서
오는 사람이 아들임을 알아채고 맨발로 뛰어 나가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춘다.
아들은 자신이 아들의 자격이 없으니 품꾼으로 채용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품꾼으로 아들을 채용하지 않고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겨서 아들로서의 권위를 회복시켜 주신다.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잡고 동네사람들을 초청하고
성대한 잔치를 한다. 그 잔치에는 잃었던 아들을 찾았던 한 아버지의 기쁨이 가득했다.
맏아들이 고된 일을 마치고 집 가까이 이르자 풍악소리와 함께 춤추는 소리가 들렸다.
종을 불러 어찌된 일인가 하고 물으니 종이 대답하기를 « 당신의 동생이 돌아와서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되어서 살찐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
맏아들은 노하여 들어가서 즐기지를 아니하자 아버지가 나와서 맏아들에게 들어가서 함께 기뻐
하자고 권한다. 그러나 서운했던 맏아들이 아버지께 이야기 하기를 « 나는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었지만 내게는 염소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신 일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팔아버린 동생이 돌아오니 이를 위하여 살찐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께서는 맏아들에게 말씀 하셨다. “아들아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지 않느냐?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c. 1669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돌아온 탕아의 신발은 모두 헤지고 발가락은 모두 퉁퉁 부었다. 세상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가족을 져버리고 세상으로 뒤쳐 나갔지만. 결국 얼마 가지 않아 모든 것을 탕진한다.
렘브란트는 낡고 헤진 신발과 누더기가 된 옷을 탕아에게 입혀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통을 당했는지를 이야기 해준다. 마치 잠시 동안의 행복에 취해 자기자신을 과신하며 모든 것을 잃은 렘브란트는 자기 자신을 모든 것을 잃은 탕아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c. 1669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아버지는 기력이 다해 보인다. 등은 굽어 있고 고개를 들 힘조차 남아있는 것 같지 않다.
두 눈은 나이가 들어 잘 보이지 않는 듯 하다. 귀도 잘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기억력도 많이 안 좋아지신 것 같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뒤로 하고 재산의 절반을
가지고세상으로 나갔다. 하루하루를 자식의 그리움으로 보낸 아버지는 아들이 너무나 걱정스럽
기만 하다. 아들은 세상으로 나가 여자와 놀고, 도박을 하고 여흥을 즐기다가 결국 남은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여기저기서 구걸하며 생을 연명하지만 결국 아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와 형제에게 너무나 죄송하여 막상 집으로 돌아가기가 겁이 난다.
자신을 나무랄 줄 알았던 아버지는 말없이 아들을 감싸 않는다.
그리고는 너무나 기뻐하시면서 아들에게 신과 가락지와 좋은 옷을 내어준다.
세상에 그 어떤 매서운 꾸지람보다 자신으로 인해 몰라보게 기력이 쇠한 아버지를 대하자
아들은 아버지 보기가 너무나 죄스럽다. 그리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사랑으로써 아들을 용서한다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c. 1669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생의 마지막 해인 1669년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빛”의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은 이 그림을 완성하고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젊은 시절 인생의 찬란했던 명예와 부를 경험했고, 불꽃 같은 사랑도 해보았다. 그리고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고 슬픈 사랑도 해보았다. 경제적 파탄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떠나 보내고 이제는 홀로 남은 말년의 슬픔을 간직했던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
그는 그의 파란만장 했던 일생을 탕아에 투영하여 신께 속죄하는 듯한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돌아온 탕아”라는 작품을 남겼다..
사랑하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헨드리케”를 위해 “목욕후의 밧세바”라는 작품을 남겼고.
자신의 모습을 욕정에 사로잡힌 다윗으로 묘사하면서. 사랑하는 연인에게 용서를 구했다면.
이제는 신께 용서를 받고자 자신을 만신창이가 되어 기댈 곳이 없는 탕아로 묘사했다.
곧 다가올 죽음을 예견 하였는지 한 많은 이 세상이 너무나 야속하였는지 “렘브란트”는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누군가에게 목놓아 울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속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으로써 용서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삼국유사의 한 일화의 “조신”이라는 이름의 한 승려처럼,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부와 명예의 정점까지 올랐던 렘브란트 이지만, 남은 것이 하나도 없는 극도의 허무함과
쓸쓸한 인생을 경험하는 “렘브란트 반 레인”. 그는 그의 인생말년에 자신이 느끼는 인생의 허무
함을 초연하고 은은한 빛을 사용하여 쓸쓸한 자신의 인생을 따뜻하게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누가복음 15장 18절…
오늘 하루 오랜만에 아버지를 생각해본다. 그 동안 잠시 잊었던 아버지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고 늘 못난 자식을 생각 하시면서 밤잠을 설치실 아버지에게 전화라도 한 번 해볼 것이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을 때 목놓아 울어도 가만히 나를 안아주실 아버지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나는 아버지에게 감사함을 확인 할 것이다.
할말은 기나긴 시간 속에 묻어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