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궁리-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다

이진경2007.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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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사랑하게 해주세요

역사 속의 금기와 반항아들

 

동서고금을 살펴보면 수많은 금기를 발견할 수 있다. 좋은 일을 앞두고 부정 탈까 봐 알아서 몸조심한 '터부'에서부터 법률로 억압한 사회적 '금기'에 이르기까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금기들을 따랐지만 그걸 거스르고 자기 일을 걸은 사람도 드물지 않다.

 

 

역사상 최초의 금기 위반 사례는 강렬한 성욕에서 비롯되었다. 원시시대에는 지속적인 소유가 아니라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사랑을 했으나, 가족제도가 생기면서 남의 소유가 되어버린 사람과 연애하는 것이 금기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금지된 사랑'은 인류 최초의 금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더불어 귀족들 사이에 경쟁이 격화되면서 가문간의 적대감 때문에 맺어지지 못하는 슬픈 사랑도 생겨났으니, 기워전 3000년 고대 바밀로니아 점토판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쓴 처엄 당시 젊은 남녀는 가문의 운명 탓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남성 주도 사회에서 사랑은 권력보다 결코 앞설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랑에 있어 약자는 대체로 여성이었는데 그 운명을 거부한 사람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조르주 상드( George Sand)였다. 상드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남편 뒤드방 남작과의 결혼생활을 과감히 청산하고 자유연애를 택했다. 이때부터 언제나 남자처럼 옷을 차려입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가 하면 문필활동을 하면서 이름도 남성형인 '상드'를 썼다.

 

여자에게 바지조차 허용되지 않던 시대에 남장 차림은 사회적 금기에 대한 분명한 도전이었다. 따라서 상드는 일반이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희한하게도 지성인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넘어 끈끈한 구애를 받았다.

 

그다지 뛰어난 미모도 아니었고, 한창 젊은 나이도 아니었건만 거침없는 정신세계가 묘한 매력을 풍긴 모양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하이네, 마르크스, 플로베르, 쇼팽,뮈세, 발자크, 보들레르, 위고, 뒤마 등 당대 명사들이 상드와 사랑을 나눴다.

 

 

우리 역사에도 금지된 사랑의 아픔이 적지 않다. 고려시대까지는 남녀를 불문하고 비교적 자유롭게 연애했으나 조선 중엽을 기점으로 여자의 성욕을 집중적으로 통제했다. 남자들은 첩까지 거느리면서 여자들에게는 한 남자에게 철저히 순종할 것을 강요하고 세뇌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성종 때 여러 관리 및 유생들과 관계를 맺은 어우동을 풍기문란 죄로 사형에 처하면서 금기를 어긴 댓가가 어떠한지 확실히 보여줬다.

 

 

어우동의 행실이 옳은 건 아니지만, 남편에게 소박 맞은 뒤 벌인 행동이라는 점과 같은 죄목으로 사형당한 남자가 없음을 감안하면 어우동은 명백히 사회적 금기의 희생물이었던 것이다.

 

 

성애(性愛와 연관된 금기는 현대에도 여전히 많다. 1896년 개봉된 영화(미망인 존스)가 최초로 키스 장면을 담아 언론으로부터 '참을 수없이 역겹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해 흥해에 성공한 것이나, 1954년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영화 이 한국 최초로 키스 장면을 선보여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면서 흥행에 성공한 것은 금기를 깨는 일이 얼마나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일인지 입증하는 사례들이다.

 

'사랑의 금기'가 사실상 남성의 독점적 소유욕에서 비롯됐다면 '금주'는 남성의 욕망을 짓누른 억압이었다. 지금은 음식물이 비교적 여유롭지만 옛날에는 식량확보가 쉽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흉년이 들면 식량 확보를 위해 금주령을 내리곤 했다.

 

조선 태조 7년 최초로 금주령이 내려진 이래 500년 동안 수시로 술을 빚지 못하게 했으며, 단속하여 걸릴 경우 매우 중한 벌을 내렸다. 세종의 경우 치료용으로 먹는 약술을 끊으면서까지 신하와 백성에게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금주령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양반은 공공연히 소주를 마셨어도 권력의 힘으로 빠져나갔고, 백성은 노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 몰래 막걸리를 마시다가 적발되곤 했다. 하여 '가난뱅이만 우연히 막걸리 한 모금 마시다 걸린다'라는 말이 나돌았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조선 영조 때 선전관 宣傳管유진항이 어명을 받들어 몰래 술 빚는 집을 찾아내 그 집에서 책을 읽고 있는 젊은이를 칼로 처형하려했다. 이때 그 집의 노모와 며느리가 자진하여 자신들이 대신 죽겠다고 나섰고 유진항은 차마 죽이지 못하고 칼을 던졌다.

 

유진항은 그 죄로 귀양을 갔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풀려나 강령 현감이 되었다. 얼마 후 암행어사가 출두하여 유진항을 삭탈관직하려다가 얼굴을 보니 구면이었다. 이에 암행어사는 유진항의 죄를 덮어주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서로 비리를 저지른 것이지만, 사회적 금기인 밀주가빚어낸 애매한 풍경이기도 했다.

 

 

금주령 하면 1920년대의 미국을 빼놓을 수 없다. 1919년 금주법이 통과되면서 주류 제조 및 거래가 금지됐으나 오히려 이 시대에 음주 관련 사고가더 많이 일어났다.

 

술 원료인 포도 값이 상승하고 와인 소비량은 급격히 늘어났으며 갱단의 두목 알 카포네는 밀주 유통으로 떼돈을 벌었다. 아무리 법의 취지가 좋고 위력이 세도, 개인적 욕망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관심을 다스리기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금기는 어딘지 모르게 부정적 느끼이 강하다. 그렇지만 의외로 금기로 인해 사회개혁이 이뤄진 일도 많으니 무조건 금기를 나쁘게 볼 수많은 없다.

 

예컨데 종교의 경우 한결같이 기존 사회의 타락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발생했고, 그 교리가 설득력이 있으면 큰 호응을 얻었다.

 

박영수-역사, 문화, 인물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여 문화 웹진 '감성사서함(www.feelingbox.co.kr)통해 친근하고 재밌는 글로 소개하고 있는 문화칼럼니스트입니다.(암호이야기-역사 속에 숨겨진 코드) (유물 속의 동물 상징 이야기) (알면 재미있고 모르면 당황하는 지구촌 문화여행)등의 책을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