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살라. 밤하늘 별빛이 유난히 반짝거리는 곳. 해발고도 1700m, 히말라야 설산 자락에 있는 수천 년 역사의 고도(古都). 달라이라마 거주지로 더 유명한 인도 속 티벳 망명정부 땅, 그 ‘작은 티벳’을 다녀왔다. 글·사진 김정삼
아침 6시 경, 다람살라 맥그로드 간지에서 맞이한 아침은 서늘하기까지 하다. 고산지대 특유의 성긴 바람이 정신을 깨우는 곳. 이른 아침부터 좁은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걸어 나온다. 한 손으로 마니차(불교 진언을 감은 도구)를 돌리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며 발걸음이 부산한 사람들. 그들이 향한 곳은 도시 한 가운데 있는 남갈사원 코라(순례길)다. 사원 밑을 시계방향으로 걷는 순례는 다람살라에 사는 티벳인이면 빼놓지 않는 일과라고 한다.‘옴마니반메흠(연꽃 속에 핀 내 보석이여)’, 이라는 진언이 코라 곳곳에 새겨져 있고, 오색의 깃발 룽다는 나뭇가지에 여러 갈래 걸쳐서 펄럭인다. 돌로 쌓은 스투빠(탑)도 보인다. 순례길이 끝나는 사원 입구에 다다르면, 마니차를 옮겨 놓은 듯한 대형 경전통이 늘어서 있다. 원통을 한바퀴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 것이 된다고 한다. 기복신앙이 묻어있기에 여행자들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티벳인들은 아침부터 무엇을 빌고 있는 것일까. 이방인들이 쉬이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의 기도는 한결같다고 한다. 주문을 외면서 깨달음을 얻는 티벳 불교의 만트라 수행법. 무엇보다도 티벳인들이 빼놓지 않는 기도는 살아있는 성불 달라이라마의 건강과 자신들의 조국 티벳의 독립이다.
‘프리 티벳’을 외치는 해방 도시 인도에는 십수만 명에 달하는 티벳인들이 살아간다. 다람살라는 특히 지난 1959년 중국에서 건너온 14대 달라이라마가 임시 망명정부를 수립한 이래, ‘작은 티벳’으로 불리울 정도로 티벳인들의 숫자가 나날이 증가하는 곳. 조국 티벳은 중국에 점령된 지 반세기가 지나고, 인도 속 임시 망명정부는 조국으로 돌아갈 날이 기약이 없다. 지금도 평균 6,000m에 달하는 히말라야 산맥을 타고,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달라이라마를 찾아오는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 국경 수비대의 총알받이가 되면서도, 티벳인들은 자신들의 해방구 다람살라를 찾는다. 그렇게 하나둘 모여서 만든 도시가 다람살라다. 달라이라마궁, 남갈사원, 티벳트박물관, 노블링카(달라이라마의 별장), 티벳청소년학교 등등. 반세기가 넘은 세월은 인도 속에 작은 티벳을 일궈냈다. 티벳사원인 남갈사원에는 현재 3백여 명의 승려가 거주한다. 티벳 불교의 전통에 따라 경전을 외는 수행승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의 법회는 그침이 없다. 건장한 청년 수백 명이 붉은 가사를 입고 사원에서 경전만을 읽는 모습을 보면 수행이란 어떤 것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들 조국의 현실은 경전을 읽는 것만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일까. 혹여 ‘프리 티벳(free Tibet)’을 위해 무장 항쟁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여행자들의 여러 갈래 시선을 견디면서, 그들은 변함없이 자신들의 수행을 이어간다.
도전 받는 달라이라마 평화노선 달라이라마는 말한다. 중국과 무장 항쟁이 아닌 비폭력과 평화주의로 조국 티벳을 중국으로부터 되찾을 수 있다고. 올해로 71세인 그는 평화주의자로, 독립운동가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지난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세계는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국제 정세는 과연 그에게 유리하게 흐르고 있는 걸까. 그의 종교적 외침이 해방을 가져다줄 까. 그를 만나기 위해 여행자들은 남갈사원과 달라이라마궁을 찾는다. 일반 여행자도 프리 티벳을 위한 일정 기금을 내면 달라이라마를 만날 수 있다. 지난 9월 초, 일행이 찾아간 달라이라마궁에 그는 없었다. 집사에 따르면 캐나다에서 일주일간 외교활동을 벌이는 중이라고 했다. 다람살라에서 지내는 동안 일행들은 달라이라마의 평화노선에 대해 한동안 의견이 분분했다. 일제시대 상해 임시정부를 떠올리면서, 외교 현실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아니다. 피를 부르지 않는 평화 노선만이 해결책이다. 소수의견을 단다. 현지에서는 티벳 지식인과 젊은 승려들 가운데에서 티벳 해방노선을 놓고 잦은 충돌이 일어난다고 했다. 과연 어떨까. 현실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보다 복속된 나라가 더 많다는 데 있다. 달라이라마의 평화노선을 논박하면서, 여행자들은 티벳 속으로,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사실 식민지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해방 노선은 많지 않다. 우리 역사는 끊임없는 국내외 무장항쟁으로 민족 해방에 대한 세계 지지를 이끌어 낸 경험이 있다. 남갈사원에서 만난 젊은 승려들의 하루는 이방인의 걱정보다 무척 여유로워 보였다. 사실 과히 탐탁치 않았다. 그들의 젊음은 ‘프리 티벳’을 위해 어떻게 소용되어야 할까.
은하수 아름다운 맑은 밤하늘 남갈사원 부근에는 티벳 박물관이 있다. 1959년 히말라야를 건너 인도로 망명하는 달라이라마의 탈출 행렬 사진, 무려 50만 명이나 중국군에게 학살된 티벳 라싸 사람들의 다큐멘터리 영화, 티벳인들의 해방을 기원하는 방명록, 티벳인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전시품 등등, 박물관 안을 돌면서 우리 나라의 식민지 시대를 떠올리게 되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정서다. 좁은 골목길을 노점으로 차지한 상인들은 대부분 티벳 유민.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팔면서 티벳 특유의 문화를 팔고 있다. 티벳 요리와 티벳어 배우기, 전통 음악 교습 등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거리 게시판, 다람살라의 티벳인들은 인도를 더욱 생기있게 만드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타국에서 꾸려가는 그들의 부지런한 삶을 이해하는 데서 ‘프리 티벳’ 운동은 출발한다. 다람살라는 그런 도시다. 장기 체류하는 여행자들도 많다. 히말라야 산맥 다울라기리를 끼고 있는 고산지대여서 쾌적하고, 티벳인들이 부지런히 사는 모습에 감동받아 무언가 삶의 자극을 찾으려고 남는 이들도 있다. 특히 밤 풍경에 매료된다. 가파른 고갯길에 세워진 여행자들의 게스트하우스. 깜깜한 저녁시간이 되면, 옥상으로 올라가서 고즈넉한 도시 풍경을 둘러본다. 히말라야 설산 서늘한 바람이 밤공기를 타고 여행자의 코끝에 당도한다. 눈을 올려다본 밤하늘은 그야말로 은하수 천지.
INTERVIEW 무소의 뿔처럼 사는 여행가 박영민 그는 스물여덟살이다. 8년 째 해외여행을 하는 속칭 '배낭족'. 지난 9월 초 리시케쉬와 다람살라에서 두 번이나 우연히 마주친 박영민(28·경기도 수원시)씨. 인도 여행만 4년째라나, 옷차림새가 눈에 띈다. 종교 수행자처럼 흰 천으로 몸 전체를 가린 게 예사롭지 않다. 그는 열두 살 때부터 여행가 꿈을 꿨다. 스무 살 때 홀로 인도로 떠나면서 그 꿈은 현실이 됐다고. 불혹이 될 때까지 전 세계를 도는 게 그의 바람. 여행 비용은 일년에 삼사 개월 국내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충당한다고 했다. 지난해 인도를 소재로 한 국내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돼 여비에 큰 보탬을 하기도 했다. 그의 여행 지론은 패기가 넘친다. “평생 여행을 하면서 내 삶을 살 수 있다. 여행에 지치지 않으려고 꾸준히 요가도 하고, 영혼을 살찌우는 독서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나의 스승이다. 세상 속에서 나를 채운다.” ‘무소의 뿔처럼 살아가라’라고 말한 2500년 전 한 청년의 자유로운 삶을 좇고 싶다고 했다. 오늘도 그는 어느 도시를 홀로 지나고 있을 테다.
달라이라마 사는 "작은 티벳"배낭여행자의 인도방랑기
달라이라마 사는 '작은 티벳'
배낭여행자의 인도방랑기4
다람살라. 밤하늘 별빛이 유난히 반짝거리는 곳. 해발고도 1700m, 히말라야 설산 자락에 있는 수천 년 역사의 고도(古都). 달라이라마 거주지로 더 유명한 인도 속 티벳 망명정부 땅, 그 ‘작은 티벳’을 다녀왔다. 글·사진 김정삼
아침 6시 경, 다람살라 맥그로드 간지에서 맞이한 아침은 서늘하기까지 하다. 고산지대 특유의 성긴 바람이 정신을 깨우는 곳. 이른 아침부터 좁은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걸어 나온다. 한 손으로 마니차(불교 진언을 감은 도구)를 돌리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며 발걸음이 부산한 사람들. 그들이 향한 곳은 도시 한 가운데 있는 남갈사원 코라(순례길)다. 사원 밑을 시계방향으로 걷는 순례는 다람살라에 사는 티벳인이면 빼놓지 않는 일과라고 한다.‘옴마니반메흠(연꽃 속에 핀 내 보석이여)’, 이라는 진언이 코라 곳곳에 새겨져 있고, 오색의 깃발 룽다는 나뭇가지에 여러 갈래 걸쳐서 펄럭인다. 돌로 쌓은 스투빠(탑)도 보인다. 순례길이 끝나는 사원 입구에 다다르면, 마니차를 옮겨 놓은 듯한 대형 경전통이 늘어서 있다. 원통을 한바퀴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 것이 된다고 한다. 기복신앙이 묻어있기에 여행자들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티벳인들은 아침부터 무엇을 빌고 있는 것일까. 이방인들이 쉬이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의 기도는 한결같다고 한다. 주문을 외면서 깨달음을 얻는 티벳 불교의 만트라 수행법. 무엇보다도 티벳인들이 빼놓지 않는 기도는 살아있는 성불 달라이라마의 건강과 자신들의 조국 티벳의 독립이다.
‘프리 티벳’을 외치는 해방 도시
인도에는 십수만 명에 달하는 티벳인들이 살아간다. 다람살라는 특히 지난 1959년 중국에서 건너온 14대 달라이라마가 임시 망명정부를 수립한 이래, ‘작은 티벳’으로 불리울 정도로 티벳인들의 숫자가 나날이 증가하는 곳. 조국 티벳은 중국에 점령된 지 반세기가 지나고, 인도 속 임시 망명정부는 조국으로 돌아갈 날이 기약이 없다. 지금도 평균 6,000m에 달하는 히말라야 산맥을 타고,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달라이라마를 찾아오는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 국경 수비대의 총알받이가 되면서도, 티벳인들은 자신들의 해방구 다람살라를 찾는다. 그렇게 하나둘 모여서 만든 도시가 다람살라다. 달라이라마궁, 남갈사원, 티벳트박물관, 노블링카(달라이라마의 별장), 티벳청소년학교 등등. 반세기가 넘은 세월은 인도 속에 작은 티벳을 일궈냈다.
말한다. 중국과 무장 항쟁이 아닌 비폭력과 평화주의로 조국 티벳을 중국으로부터 되찾을 수 있다고. 올해로 71세인 그는 평화주의자로, 독립운동가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지난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세계는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국제 정세는 과연 그에게 유리하게 흐르고 있는 걸까. 그의 종교적 외침이 해방을 가져다줄 까. 그를 만나기 위해 여행자들은 남갈사원과 달라이라마궁을 찾는다. 일반 여행자도 프리 티벳을 위한 일정 기금을 내면 달라이라마를 만날 수 있다. 지난 9월 초, 일행이 찾아간 달라이라마궁에 그는 없었다. 집사에 따르면 캐나다에서 일주일간 외교활동을 벌이는 중이라고 했다.
티벳사원인 남갈사원에는 현재 3백여 명의 승려가 거주한다. 티벳 불교의 전통에 따라 경전을 외는 수행승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의 법회는 그침이 없다. 건장한 청년 수백 명이 붉은 가사를 입고 사원에서 경전만을 읽는 모습을 보면 수행이란 어떤 것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들 조국의 현실은 경전을 읽는 것만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일까. 혹여 ‘프리 티벳(free Tibet)’을 위해 무장 항쟁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여행자들의 여러 갈래 시선을 견디면서, 그들은 변함없이 자신들의 수행을 이어간다.
도전 받는 달라이라마 평화노선
달라이라마는
다람살라에서 지내는 동안 일행들은 달라이라마의 평화노선에 대해 한동안 의견이 분분했다. 일제시대 상해 임시정부를 떠올리면서, 외교 현실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아니다. 피를 부르지 않는 평화 노선만이 해결책이다. 소수의견을 단다. 현지에서는 티벳 지식인과 젊은 승려들 가운데에서 티벳 해방노선을 놓고 잦은 충돌이 일어난다고 했다. 과연 어떨까. 현실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보다 복속된 나라가 더 많다는 데 있다. 달라이라마의 평화노선을 논박하면서, 여행자들은 티벳 속으로,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사실 식민지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해방 노선은 많지 않다. 우리 역사는 끊임없는 국내외 무장항쟁으로 민족 해방에 대한 세계 지지를 이끌어 낸 경험이 있다. 남갈사원에서 만난 젊은 승려들의 하루는 이방인의 걱정보다 무척 여유로워 보였다. 사실 과히 탐탁치 않았다. 그들의 젊음은 ‘프리 티벳’을 위해 어떻게 소용되어야 할까.
은하수 아름다운 맑은 밤하늘
남갈사원 부근에는 티벳 박물관이 있다. 1959년 히말라야를 건너 인도로 망명하는 달라이라마의 탈출 행렬 사진, 무려 50만 명이나 중국군에게 학살된 티벳 라싸 사람들의 다큐멘터리 영화, 티벳인들의 해방을 기원하는 방명록, 티벳인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전시품 등등, 박물관 안을 돌면서 우리 나라의 식민지 시대를 떠올리게 되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정서다. 좁은 골목길을 노점으로 차지한 상인들은 대부분 티벳 유민.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팔면서 티벳 특유의 문화를 팔고 있다. 티벳 요리와 티벳어 배우기, 전통 음악 교습 등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거리 게시판, 다람살라의 티벳인들은 인도를 더욱 생기있게 만드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타국에서 꾸려가는 그들의 부지런한 삶을 이해하는 데서 ‘프리 티벳’ 운동은 출발한다. 다람살라는 그런 도시다. 장기 체류하는 여행자들도 많다. 히말라야 산맥 다울라기리를 끼고 있는 고산지대여서 쾌적하고, 티벳인들이 부지런히 사는 모습에 감동받아 무언가 삶의 자극을 찾으려고 남는 이들도 있다. 특히 밤 풍경에 매료된다. 가파른 고갯길에 세워진 여행자들의 게스트하우스. 깜깜한 저녁시간이 되면, 옥상으로 올라가서 고즈넉한 도시 풍경을 둘러본다. 히말라야 설산 서늘한 바람이 밤공기를 타고 여행자의 코끝에 당도한다. 눈을 올려다본 밤하늘은 그야말로 은하수 천지.
INTERVIEW
무소의 뿔처럼 사는 여행가 박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