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독교인이다. 부모님께 이어받은 이른바 모태신앙이고, 수십 년간 지극정성으로 새벽예배를 빠뜨리지 않으시는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 아래 지금까지 가냘픈 믿음을 이어오고 있다.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때부터 습관을 들였는데, 마을 중앙에 솟은 높다란 교회를 중심으로 지역구 커뮤니티(?)가 조성되었던 듯 하다. 그만큼 교회를 다니는 일은 생활의 일부처럼 여겨졌고, 자율적이었지만 몇 번 빠지면 또래들 사이에서 꽤나 심심해했어야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중등부에 들어갔다. 토요일 저녁 예배가 끝나고 학년별로 나뉘어져 따로 성경공부를 했는데, 그때 교회 선생님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고” 당시엔 이해를 못했다.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선데이 크리스챤’ 이란 말도 알게 되었다. 주일(일요일) 낮예배만 참석하는 다소 부지런하지 못한 신앙인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내가 믿음생활을 처음 시작한 교회는 일주일 내내 예배가 있었다. 매일 새벽 4~5시에 예배가 있고, 수요일 저녁, 금요일 밤, 토요일 청년부(중학생~ 20대), 일요일 낮과 밤까지. 지금은 약간 다르게 운영되고 있는 교회도 있다고 들었다. 어쨌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되지 말자는 말은 지금까지도 맴돌고 있다. 그 뜻을 알게 된 지금까지 기독교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었다. 이 글은 그 앎에 대한 작은 생각의 드러냄이다.
사춘기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맞았다. 교회를 다니는 것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 사이에는 죄책감, 신념, 개인 사정 등의 여러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불 꺼진 교회에서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과 밖에서 친구들과 욕을 섞어가며 이야기하는 생활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배운 만큼 착하게 사는 것과 지킬 것을 지키며 사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진로를 결정해야 할 때가 왔고 그때까지 같이 교회를 다니던 친구와 선후배들 중 상당수가 신학대학을 선택했다. 나도 한때 갈등을 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믿음을 유지하는 것과 그 믿음이 비롯된 기원과 역사, 철학, 진실 등 학문적인 방향으로 공부를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여겨졌다. 신앙이 뜨겁고 예배에 거의 빠지지 않았더라도 꼭 신학대학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길을 선택한 주위 사람들의 순수함과 열정, 자유의지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들을 통해 연구하고 지식으로 체화 시켜 나가는 과정을 선택한 일이 대단해 보였다.
나이가 늘면서 거주지가 바뀌고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 그때까지의 경험과 고민을 토대로 정의된 것들이 내재된 결과였다. 교회는 쉽게 옮기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지만 상황에 따른 최선의 선택은 피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교회와 신도수만큼 나눠지신 것이 아니라고 여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바를 포함한 여러 이유로 빠지는 빈도가 잦아질 때마다 죄책감의 수위도 점점 높아갔다. 그것은 습관이 무너짐에 따라 생기는 공허함과 달랐다. 난 그제서야 내가 얼마나 절대자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원하고 또 받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설명하기 쉽지 않고 다소 개인적인 사연이 많이 녹아있지만, 분명한 건 ‘필연’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난 절대자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정말 이기적이었다. 기도로서 하는 일은 감사가 아닌 ‘무조건 원함’ 이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도를 하는데 익숙해진 본인이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고 외치는 말들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달라는 ‘기적의 무한리필(refill)’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모든 만물을 이루고, 인간계(?)를 다루시는 그분에게 능치 못할 일은 없지만, 죄를 피할 수 없는 입장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절대자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용서와 감사가 아닌 ‘제 사정이 이러이러 하니까 좀 봐주시고 무조건 해주세요’ 라는 뻔뻔함과 비겁한 자세였다. 하나님은 나와 비슷한 인간들에게 동전을 넣으면 물건이 나오는 자판기 같은 대우를 받고 계셨던 것이다.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자각하고 다소 변화된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나는 용서와 감사에 비해 원하고 받는 것이 훨씬 많았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게 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며 방향을 바꾸어보면. 모두가 알다시피 기독교에 대한 말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리 적지 않다고 여겨지는 경험과 고민을 토대로 비추어볼 때, 기독교에 대한 비난은 신의 영역이 아닌 인간의 영역 안에서 일어난 일들에서 비롯된 게 대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많이 부족한 본인이지만 감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실제 뜻과 그 뜻을 해석하고 전파하는 이들의 생각은 때때로 적잖은 격차를 보이고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드러난 결과만으로 다루기엔 무리가 있지만, 해석의 오류와 남용은 오해와 불신을 키우고 극단적으로 양분화된 논쟁으로 커지고 만다.
종교의 자유와 순수한 개인의지를 뒤로 한 채 세력과 권력의 상징으로 비춰지는 기독교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볼 때마다 답답하다.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선 갈등의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 갈등자체가 또 다른 문제의 꼭지가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며 문제의 적극적 수용과 오해의 여지에 대한 의견을 표출해 보지만 한쪽으로 기운 의견이 중심을 잡기란 쉽지 않다. 나날이 잦아지는 분쟁과 부정적인 기운들을 느낄 때마다 이러다 정말 때가 가까워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한 마음도 생기곤 하는 것이다.
인간의 탈을 쓴 채 신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인간들과 그들이 실제 저지르는 악행들, 그리고 그런 인간들의 행동이 순수한 종교 전체의 의미를 대변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 또 그들에게 동조하는 이들과 이에 극단적으로 반발하는 신앙인들, 또 이들 사이에서 중재에 나선 사람들. 내가 아는 것이라곤 기독교의 교회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자신의 죄를 알고 인정하는 이들이 용서를 구하고, 일상의 배려에 대해 감사를 드리기 위해 예배를 드리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확대되어 사회적인 기능을 하는 곳으로 발전되어 ‘기업화’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그 영역이 넓혀지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월과 상황의 변화에 따른 기능적인 면이지 그 본질은 흐려질 수 없다고 생각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이해와 바로잡음이다. 많은 이들이 해외선교 중 납치로 인해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이들의 무사귀환을 바란고 있는 이때, 납치된 당사자들과 기독교에 대한 논쟁은 살아 돌아온 이후에 이뤄져도 늦지 않을 거라 여겨진다. 덧붙여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일부 행동들이 신의 뜻을 대신하는 것이 아닌 특정집단의 극히 ‘인간적인’ 이익을 위한 것은 아닌지 재고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와 하나님, 그리고 기독교
*민감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본 글을 통해 드러나 있는
정리되지 않은 소견과 부족한 견문에 대해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부모님께 이어받은 이른바 모태신앙이고, 수십 년간 지극정성으로 새벽예배를 빠뜨리지 않으시는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 아래 지금까지 가냘픈 믿음을 이어오고 있다.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때부터 습관을 들였는데, 마을 중앙에 솟은 높다란 교회를 중심으로 지역구 커뮤니티(?)가 조성되었던 듯 하다. 그만큼 교회를 다니는 일은 생활의 일부처럼 여겨졌고, 자율적이었지만 몇 번 빠지면 또래들 사이에서 꽤나 심심해했어야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중등부에 들어갔다. 토요일 저녁 예배가 끝나고 학년별로 나뉘어져 따로 성경공부를 했는데, 그때 교회 선생님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고” 당시엔 이해를 못했다.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선데이 크리스챤’ 이란 말도 알게 되었다. 주일(일요일) 낮예배만 참석하는 다소 부지런하지 못한 신앙인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내가 믿음생활을 처음 시작한 교회는 일주일 내내 예배가 있었다. 매일 새벽 4~5시에 예배가 있고, 수요일 저녁, 금요일 밤, 토요일 청년부(중학생~ 20대), 일요일 낮과 밤까지. 지금은 약간 다르게 운영되고 있는 교회도 있다고 들었다. 어쨌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되지 말자는 말은 지금까지도 맴돌고 있다. 그 뜻을 알게 된 지금까지 기독교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었다. 이 글은 그 앎에 대한 작은 생각의 드러냄이다.
사춘기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맞았다. 교회를 다니는 것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 사이에는 죄책감, 신념, 개인 사정 등의 여러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불 꺼진 교회에서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과 밖에서 친구들과 욕을 섞어가며 이야기하는 생활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배운 만큼 착하게 사는 것과 지킬 것을 지키며 사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진로를 결정해야 할 때가 왔고 그때까지 같이 교회를 다니던 친구와 선후배들 중 상당수가 신학대학을 선택했다. 나도 한때 갈등을 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믿음을 유지하는 것과 그 믿음이 비롯된 기원과 역사, 철학, 진실 등 학문적인 방향으로 공부를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여겨졌다. 신앙이 뜨겁고 예배에 거의 빠지지 않았더라도 꼭 신학대학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길을 선택한 주위 사람들의 순수함과 열정, 자유의지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들을 통해 연구하고 지식으로 체화 시켜 나가는 과정을 선택한 일이 대단해 보였다.
나이가 늘면서 거주지가 바뀌고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 그때까지의 경험과 고민을 토대로 정의된 것들이 내재된 결과였다. 교회는 쉽게 옮기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지만 상황에 따른 최선의 선택은 피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교회와 신도수만큼 나눠지신 것이 아니라고 여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바를 포함한 여러 이유로 빠지는 빈도가 잦아질 때마다 죄책감의 수위도 점점 높아갔다. 그것은 습관이 무너짐에 따라 생기는 공허함과 달랐다. 난 그제서야 내가 얼마나 절대자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원하고 또 받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설명하기 쉽지 않고 다소 개인적인 사연이 많이 녹아있지만, 분명한 건 ‘필연’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난 절대자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정말 이기적이었다. 기도로서 하는 일은 감사가 아닌 ‘무조건 원함’ 이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도를 하는데 익숙해진 본인이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고 외치는 말들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달라는 ‘기적의 무한리필(refill)’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모든 만물을 이루고, 인간계(?)를 다루시는 그분에게 능치 못할 일은 없지만, 죄를 피할 수 없는 입장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절대자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용서와 감사가 아닌 ‘제 사정이 이러이러 하니까 좀 봐주시고 무조건 해주세요’ 라는 뻔뻔함과 비겁한 자세였다. 하나님은 나와 비슷한 인간들에게 동전을 넣으면 물건이 나오는 자판기 같은 대우를 받고 계셨던 것이다.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자각하고 다소 변화된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나는 용서와 감사에 비해 원하고 받는 것이 훨씬 많았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게 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며 방향을 바꾸어보면. 모두가 알다시피 기독교에 대한 말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리 적지 않다고 여겨지는 경험과 고민을 토대로 비추어볼 때, 기독교에 대한 비난은 신의 영역이 아닌 인간의 영역 안에서 일어난 일들에서 비롯된 게 대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많이 부족한 본인이지만 감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실제 뜻과 그 뜻을 해석하고 전파하는 이들의 생각은 때때로 적잖은 격차를 보이고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드러난 결과만으로 다루기엔 무리가 있지만, 해석의 오류와 남용은 오해와 불신을 키우고 극단적으로 양분화된 논쟁으로 커지고 만다.
종교의 자유와 순수한 개인의지를 뒤로 한 채 세력과 권력의 상징으로 비춰지는 기독교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볼 때마다 답답하다.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선 갈등의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 갈등자체가 또 다른 문제의 꼭지가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며 문제의 적극적 수용과 오해의 여지에 대한 의견을 표출해 보지만 한쪽으로 기운 의견이 중심을 잡기란 쉽지 않다. 나날이 잦아지는 분쟁과 부정적인 기운들을 느낄 때마다 이러다 정말 때가 가까워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한 마음도 생기곤 하는 것이다.
인간의 탈을 쓴 채 신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인간들과 그들이 실제 저지르는 악행들, 그리고 그런 인간들의 행동이 순수한 종교 전체의 의미를 대변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 또 그들에게 동조하는 이들과 이에 극단적으로 반발하는 신앙인들, 또 이들 사이에서 중재에 나선 사람들. 내가 아는 것이라곤 기독교의 교회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자신의 죄를 알고 인정하는 이들이 용서를 구하고, 일상의 배려에 대해 감사를 드리기 위해 예배를 드리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확대되어 사회적인 기능을 하는 곳으로 발전되어 ‘기업화’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그 영역이 넓혀지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월과 상황의 변화에 따른 기능적인 면이지 그 본질은 흐려질 수 없다고 생각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이해와 바로잡음이다. 많은 이들이 해외선교 중 납치로 인해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이들의 무사귀환을 바란고 있는 이때, 납치된 당사자들과 기독교에 대한 논쟁은 살아 돌아온 이후에 이뤄져도 늦지 않을 거라 여겨진다. 덧붙여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일부 행동들이 신의 뜻을 대신하는 것이 아닌 특정집단의 극히 ‘인간적인’ 이익을 위한 것은 아닌지 재고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