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문득문득 자살 충동을 느낀다.내 몸에서 쓰레기 냄새가 난다. 지독하게모두들 삶이 고달프다고 한다.아주 때때로 감동과 행복이 지나가지만대체로 행복하지 않다고 뭔가가 부족하다고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지속한다. 많은이가 희망이라고 한다.희망..짙은 안개속에 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난 코앞의 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 있다.내 삶의 방향키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고그냥 내키는대로 표류하고 있는것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아니면 낭떨어지로 가는지도 모르는채 혹자는 이런 나를 알아보고삶이 소중하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다.떼네고 싶고 잊고싶은 추잡한 사람으로부터내 모습을 들켰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들은왜 내 모습을 알아볼까?그리고 그것을 안쓰럽게 생각한다.고마워해야하는 것이겠지만그들이 싫다. 역겨운 냄새가 그들로 인해 비롯된 것처럼난 지금의 내 모습이 죽기보다 싫은가보다. 하늘이 날 아직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만난 내가 날 버리고 싶은것 같다.삶이계속 삶이계속해야 할 삶이 자꾸 무겁고 무섭고 두렵다.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내가 대학원 다닐적힘들어 정신병원을 다녀왔다.정신병원은 상담 시간이 길어지면 진료비를 더 많이 낸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듣더니내가 말한 사람들 중 그가 알고 있던 사람과 매치하려했다.그리고 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며 입원을 권유했다. 난 그때 유리로 손목을 그었다.유리가 무디게 깨져있어 내 손목은 핏줄까지 미치지 못했고상처하나 남지않고 깨끗하다. 난 언제나 돼야 강해질 수 있을까?우울증이라면 약을 먹고 또 괜찮아 질까? 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행복으로 가득찬 그 순간은 있을까? 자식이 생긴다면난 말도 안되는 동화책은 읽히고 싶지 않다.차라리 삶을 제대로 표현한 시 한귀절이나삶의 통찰을 보인 명언 한소절을 들려주리라 더하기 빼기와 곱하기 나누기 보다한자 사자성어나 영어 한문장 보다 인생에 넘어지지 않도록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고스스로 원하는 삶을 설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리라 뚜렷한 목적으로 흔들려 뽑히지 않는튼튼한 뿌리로 그 목적이 하늘에 닿을 수 있도록 항상 표류했던 내 삶으로깨달은 것은 이것뿐이다.지금 다시 인생을 설계해 앞으로 나간다는 것이이나라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모두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방탕하게 보냈던 어린시절로 얻게된 학력과 이력이죽을때까지 꼬리표처럼 붙어내 인생에 걸림돌이 될 줄은 그들은 몰랐으리라 그것을 극복한답시고 거짓을 말한 것이또 그들에게 주홍글씨처럼 붙어모두에게 손가락질 받을지 그들도 몰랐으리라 초중등시절 공부를 그다지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못하지 않았었던 내가공부잘하지 않기로 유명했던 고등학교에 아무리 높은 등수로 붙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왜이렇게 잘 되어 있는지내가 대학을 가고 편입을하고 대학원에 갔고잡지사와 지역신문사에서 기자라는 이름을 붙여 생활해도 '너 어느고등학교 나왔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아직도 컴플렉스로 작용하는 그것내가 유학을가서 박사를 따온들그때 그 이력이 지워지지 않아난 주홍글씨처럼 붙어있던 그 학교 이름을 지워버리고 싶었다.거짓을 말한적이 있었다. 금방 탄로날 그 거짓을내게 다시 쓰레기 냄새가 난다. 난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한 자리에 남자친구를 데리고간적이 있다. 그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남자친구는 다른 고등학교이름을 대며 그학교 동창들중에 누구누구를 안다고 말했다. 내 얼굴은 새빨게 졌지만 고등학교 친구들은 그 순간을잘 넘어가게 해줬다.난 다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더 큰 거짓말이 생길것만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진했다.더 충실하게 삶을 살았다.대학원에서도 최선을 다했고 이후의 주어진 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최고의 결과물을 내놔 프로젝트를 맡긴 어떤 곳에서도 결과에 만족했다. 하지만 내게 칭찬의 말과 몇푼의 돈뿐삶에 디딤돌이 되지는 않았다. 원죄처럼 고등학교와 편입 전 대학교의 이력이내 발목을 잡고 있는것 처럼 느끼기도 한다.새로운 무엇인가에 도전할때 그것이 내 치부로 느껴진다. 난 단지 최종학력을 밝히기기만 할뿐고등학교 이력과 편입 전 학교의 이력때문에 문제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피하고만 싶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내 지도교수의 얼굴도 떠오른다.최종학력과 교환교수로 갔던 외국대학의 이름을 명기할뿐자신이 나온 지방대학의 이름은 어디에도 넣기싫어하는 것을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나와 같은 이유라는 것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더 열심히 노력해 얻고 있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고있기에그렇게 우리들은 숨기고 싶은 부분이 되기도하고심지어 거짓을 말하게 되는 난 삶에있어 지난 몇년간 최선을 다해 정직했고그로인해 난 완벽했던 프로젝트들에도 불구하고버림받고 좌절하고 아직도 치료되지 않은채 상처로 남았다. 삶이 지겹다.난 왜이렇게 자신이 없어졌을까?내게 희망이 생기게 하려면무엇을 해야할까?
난 문득문득 자살 충동을 느낀다.내 몸에서 쓰레기 냄
난 문득문득 자살 충동을 느낀다.
내 몸에서 쓰레기 냄새가 난다. 지독하게
모두들 삶이 고달프다고 한다.
아주 때때로 감동과 행복이 지나가지만
대체로 행복하지 않다고 뭔가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지속한다.
많은이가 희망이라고 한다.
희망..
짙은 안개속에 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난 코앞의 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 있다.
내 삶의 방향키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내키는대로 표류하고 있는것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낭떨어지로 가는지도 모르는채
혹자는 이런 나를 알아보고
삶이 소중하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떼네고 싶고 잊고싶은 추잡한 사람으로부터
내 모습을 들켰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들은
왜 내 모습을 알아볼까?
그리고 그것을 안쓰럽게 생각한다.
고마워해야하는 것이겠지만
그들이 싫다.
역겨운 냄새가 그들로 인해 비롯된 것처럼
난 지금의 내 모습이 죽기보다 싫은가보다.
하늘이 날 아직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만
난 내가 날 버리고 싶은것 같다.
삶이
계속 삶이
계속해야 할 삶이 자꾸 무겁고 무섭고 두렵다.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내가 대학원 다닐적
힘들어 정신병원을 다녀왔다.
정신병원은 상담 시간이 길어지면
진료비를 더 많이 낸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듣더니
내가 말한 사람들 중 그가 알고 있던 사람과 매치하려했다.
그리고 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며 입원을 권유했다.
난 그때 유리로 손목을 그었다.
유리가 무디게 깨져있어 내 손목은 핏줄까지 미치지 못했고
상처하나 남지않고 깨끗하다.
난 언제나 돼야 강해질 수 있을까?
우울증이라면 약을 먹고 또 괜찮아 질까?
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행복으로 가득찬 그 순간은 있을까?
자식이 생긴다면
난 말도 안되는 동화책은 읽히고 싶지 않다.
차라리 삶을 제대로 표현한 시 한귀절이나
삶의 통찰을 보인 명언 한소절을 들려주리라
더하기 빼기와 곱하기 나누기 보다
한자 사자성어나 영어 한문장 보다
인생에 넘어지지 않도록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고
스스로 원하는 삶을 설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리라
뚜렷한 목적으로 흔들려 뽑히지 않는
튼튼한 뿌리로 그 목적이 하늘에 닿을 수 있도록
항상 표류했던 내 삶으로
깨달은 것은 이것뿐이다.
지금 다시 인생을 설계해 앞으로 나간다는 것이
이나라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두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방탕하게 보냈던 어린시절로 얻게된 학력과 이력이
죽을때까지 꼬리표처럼 붙어
내 인생에 걸림돌이 될 줄은 그들은 몰랐으리라
그것을 극복한답시고 거짓을 말한 것이
또 그들에게 주홍글씨처럼 붙어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을지 그들도 몰랐으리라
초중등시절 공부를 그다지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못하지 않았었던 내가
공부잘하지 않기로 유명했던 고등학교에
아무리 높은 등수로 붙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왜이렇게 잘 되어 있는지
내가 대학을 가고 편입을하고 대학원에 갔고
잡지사와 지역신문사에서 기자라는 이름을 붙여 생활해도
'너 어느고등학교 나왔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아직도 컴플렉스로 작용하는 그것
내가 유학을가서 박사를 따온들
그때 그 이력이 지워지지 않아
난 주홍글씨처럼 붙어있던 그 학교 이름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거짓을 말한적이 있었다. 금방 탄로날 그 거짓을
내게 다시 쓰레기 냄새가 난다.
난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한 자리에 남자친구를 데리고간적이 있다. 그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남자친구는 다른 고등학교이름을 대며 그학교 동창들중에 누구누구를 안다고 말했다.
내 얼굴은 새빨게 졌지만 고등학교 친구들은 그 순간을
잘 넘어가게 해줬다.
난 다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더 큰 거짓말이 생길것만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진했다.
더 충실하게 삶을 살았다.
대학원에서도 최선을 다했고 이후의 주어진 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최고의 결과물을 내놔 프로젝트를 맡긴 어떤 곳에서도 결과에 만족했다.
하지만 내게 칭찬의 말과 몇푼의 돈뿐
삶에 디딤돌이 되지는 않았다.
원죄처럼 고등학교와 편입 전 대학교의 이력이
내 발목을 잡고 있는것 처럼 느끼기도 한다.
새로운 무엇인가에 도전할때 그것이 내 치부로 느껴진다.
난 단지 최종학력을 밝히기기만 할뿐
고등학교 이력과 편입 전 학교의 이력때문에 문제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피하고만 싶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내 지도교수의 얼굴도 떠오른다.
최종학력과 교환교수로 갔던 외국대학의 이름을 명기할뿐
자신이 나온 지방대학의 이름은 어디에도 넣기싫어하는 것을
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나와 같은 이유라는 것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더 열심히 노력해 얻고 있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고있기에
그렇게 우리들은 숨기고 싶은 부분이 되기도하고
심지어 거짓을 말하게 되는
난 삶에있어 지난 몇년간 최선을 다해 정직했고
그로인해 난 완벽했던 프로젝트들에도 불구하고
버림받고 좌절하고 아직도 치료되지 않은채 상처로 남았다.
삶이 지겹다.
난 왜이렇게 자신이 없어졌을까?
내게 희망이 생기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