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Mahler)

김영생2007.08.20
조회46
말러 (Mahler)

 

 

 

 

<어떤 작품을 좋아한다>는 말에는 여러가지의 단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나는 케네디를 안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수년간 케네디의 보좌관을 한 어떤 사람이 

 

 <나는 아직도 케네디를 모르겠다>라고 말할때

<안다>는 말은 서로 정의를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말러를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는 것>에 대하여도

여러 단계가 있고

 

현재 말러를 막 좋아하게 된 분이나

오랫동안 심취하신 분들도  계속 들을수록

말러를 이전에 알았던 <앎>의 의미가 자꾸 바뀔것입니다.

 

 

 

 

그것은 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할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산이 앞에 보일것입니다.

 

그 산을 여러번 오르면 나무들의 다양함이 보일것이고

계속 간다면 전에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야생화가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야생화밑에 가려있던 이름 모를

작고 세부적이나 아름다운 것들....

 

또한 나무가지들 사이로 비추는

찬란한 빛줄기를 발견하게 될것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보니 형형색색의 산새들과

귀한 산짐승들이 뛰노는 것에 놀랍니다.

 

나무들이 내뿜는 신선한 향...

전에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새로움에 계속 놀라게 될것입니다.

 

 

 

 

다른 작곡가들도 그러하겠습니다만

말러를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교향곡이 웅장하고 화려하고 뭔가 있는것 같아서

좋아해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가 그 상태에 계속 머물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교향곡의 번호와 악장도 바뀝니다.

 

한 부분에 아주 오랫동안.. 때로는 십년이상 머물러 있다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진주를 발견하게도 됩니다.

 

말러의 작품들이 단순히 현학적으로 화려한 것이 아닙니다.

 

말러의 광풍에 문제가 있다는 견해들과

말러 곡들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귀한 가치는 별개입니다.

 

 

 

 

첼리비다케가 말러를 비난하였다는 것은 음악사에서 존재하는

여러 지휘자,음악가,연주자들의 다양한 견해들 중의 하나입니다.

 

바그너를 비판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모짜르트를 베토벤이나 브루크너에 비하여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말러의 사상과 곡들에 배어있는 철학에 하나씩 눈 뜨고

인간적 고뇌와 절제가 전해져오는 여러 교향곡들의 특정 악장,

 

특정부분에 이르렀을때

그 감동은 설명하거나 글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범인들이 수십번 아니 수백번 들어서 알게된

<인간에게 감동을 준 그것>을

 

그는 어떻게 찾아내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는가?"

단지 이런 것들에 경외감을 느낄뿐입니다.

 

누군가가 예술이란

<신적인 순간을 잡아채서 인간에게 보여주는 것>이란 말이

정확한것 같습니다.

 

 

 

 

고전음악은 음악 그 자체만으로 듣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쌓이는 이런 저런 체험들이 쌓이면서

 

어떤 막연한 그리움과 동경이 음악과 알수 없는 결합을 이루어

더 진지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20대에 말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30대, 40대 더 나아가 그 이상이 되었을때

다가오는 느낌이 다를 것입니다.

 

20대, 30대에 말러를 비판하는 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30대,40대에 가서 말러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아무도 알수없습니다.

40대나 그 이상에서 말러를 비판하시는 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계속 변하고 더군다나

고전음악을 듣는 분들은 더 그런 것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그 한 예가 모짜르트 오페라인 것같습니다.

 

마술피리는 오페라를 넘어선 인류애와

인간 실존의 가치의 표현이요

 

피가로의 결혼의  Dove sono 에서 느껴지는 삶의 가치와 환희,

돈죠반니의 Non mi dit 에서 불어오는 신선함과

 

그의 선율의 천재성은

참으로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가볍게 들릴지 모르는 <후궁탈출>은 어떻습니까?

그 아리아를 들을때 삶에 예찬을 그린 모짜르트의 위대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이도메네오>의 독백들은 왜 그리 깊고 절절합니까?

 

 

 

 

갑자기 모짜르트를 이야기 하는 이유가 뭡니까?

바로 모짜르트의 이런 오페라들을 사랑하고 즐겨 지휘한 사람이

구스타프 말러였습니다.

 

모짜르트를 존경한 말러의 교향곡들은

오늘날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말러와 모짜르트 누가 더 위대합니까?

 

 

 

모짜르트를 말한 것은 사실 하이든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사랑하는 분들은 알것입니다.

그 작품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들에게 뭔가 있는 것 같아서 좋아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계속 듣는다면 거기서 머물러 있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말러, 모짜르트, 하이든, 리하르트 쉬트라우스,

시벨리우스(교향곡 7개), 바그너, 브루크너..

 

그들은 모두 위대합니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것이 확실히 있습니다.

 

그들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면

인간 무의식에서 흐르던 내적 에너지를 발견하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삶을 더 가치있고 귀하게 여기게 만들어

나날이 대자연과 함께 더 힘있게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하게 만들것입니다.

이것이 고전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느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