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형에게, 형, 잘 다녀왔습니다. 그야말로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산행을 엄동설한에 하고 돌아왔어요. 귀국길에 잠깐 들렀었던 홍콩에서부터 그러더니 귀국 후에도 계속 킬리만자로 꿈만 꿉니다. 형도 잘 아시다시피 저야 한 번 잠이 들면 꿈 같은 거 잘 안꾸고 자는 타입인데 이상해요. 하루 이틀 그러려다 말겠지 했는데 요새도 계속 그 타령입니다. 꿈 같은 얘기지만 정상에서 표범을 만나기도 하고, 등산화가 자꾸 풀려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아프리카 야생화가 어른거리고, 여하튼 온통 킬리만자로 꿈을 꾸다가 아침을 맞이하는 요즈음 입니다. 적도 가까이에, 뜨거운 대륙 아프리카에 있으면서 머리에 만년설을 이고 있는, 태생 자체가 약간은 아이러니한 5,895m 킬리만자로에 가기로 마음먹으면서 전 비밀스럽게 제 자신에게 꼭 정상을 간다고 약속을 했어요. 무릎이 다 까지더라도, 기어서라도, 기필코 간다, 뭐 그런 비장함까지 품은 채… 그런데 형, 아쉽게도 전위봉, ‘길만 포인트’ 5,685m를 코앞에 두고 고소증상이 심하게 오는 바람에, 여명의 길만 바위언덕이 눈앞에 선한데 그만 하산을 했지요. 아, 아, 그 상실감이란, 엄 홍길 대장 뵙기도 부끄럽고, 3,700m 호롬보 산장에서 한 이틀 폭음하면서 마음을 달랬습니다. 하산 길 내내 괴롭히던, 상처 받은 마음을 추스리게 해준 건 또 킬리만자로였어요. 눈 뜨면 걷기 시작해서 자기 전까지 걸어오면서, 몇 일 곰곰 생각해보니, 정상을 꼭 가겠다는 결심은 허욕이었지요, 헛된 꿈이었습니다. 우리 자랑스러운 대원들 모두, 각자 최선을 다해 올라갔던 생애 최고의 높이가, 과정이 바로 각자의 삶이요, 꿈이었지요. 정상을 오른, 못 오른 것은 중요하지가 않았어요. 구름 위를 걷는 등정이었는데요. 킬리만자로가 한 보름 여의 여정에서 상처 주고, 치유하고, 병 주고, 약 주고 다 한 거죠. 그래요, 형, 제 평생 다시 킬리만자로를 갈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묵묵히 그 곳에 있었던 킬리만자로와 등정을 같이한 서른 여명의 원정 대원들 모두는 제 삶에 킬리만자로처럼 자리 잡고 있겠지요. 형,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겨울쯤에 시간 내서 히말라야나 다시 한 번 가도록 하시지요.
킬리만자로의 꿈
P형에게,
형, 잘 다녀왔습니다. 그야말로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산행을
엄동설한에 하고 돌아왔어요. 귀국길에 잠깐 들렀었던
홍콩에서부터 그러더니 귀국 후에도 계속 킬리만자로 꿈만 꿉니다. 형도 잘 아시다시피 저야 한 번 잠이 들면 꿈 같은 거 잘 안꾸고
자는 타입인데 이상해요. 하루 이틀 그러려다 말겠지 했는데 요새도 계속 그 타령입니다.
꿈 같은 얘기지만 정상에서 표범을 만나기도 하고, 등산화가
자꾸 풀려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아프리카 야생화가 어른거리고, 여하튼 온통 킬리만자로 꿈을 꾸다가 아침을 맞이하는 요즈음
입니다.
적도 가까이에, 뜨거운 대륙 아프리카에 있으면서 머리에
만년설을 이고 있는, 태생 자체가 약간은 아이러니한 5,895m 킬리만자로에 가기로 마음먹으면서 전 비밀스럽게 제 자신에게 꼭 정상을 간다고 약속을 했어요. 무릎이 다 까지더라도, 기어서라도,
기필코 간다, 뭐 그런 비장함까지 품은 채…
그런데 형, 아쉽게도 전위봉, ‘길만 포인트’ 5,685m를 코앞에
두고 고소증상이 심하게 오는 바람에, 여명의 길만 바위언덕이
눈앞에 선한데 그만 하산을 했지요. 아, 아, 그 상실감이란, 엄 홍길 대장 뵙기도 부끄럽고, 3,700m 호롬보 산장에서 한 이틀
폭음하면서 마음을 달랬습니다.
하산 길 내내 괴롭히던, 상처 받은 마음을 추스리게 해준 건 또 킬리만자로였어요. 눈 뜨면 걷기 시작해서 자기 전까지 걸어오면서, 몇 일 곰곰 생각해보니, 정상을 꼭 가겠다는 결심은 허욕이었지요, 헛된 꿈이었습니다. 우리 자랑스러운 대원들 모두, 각자 최선을
다해 올라갔던 생애 최고의 높이가, 과정이 바로 각자의 삶이요,
꿈이었지요. 정상을 오른, 못 오른 것은 중요하지가 않았어요.
구름 위를 걷는 등정이었는데요.
킬리만자로가 한 보름 여의 여정에서 상처 주고, 치유하고,
병 주고, 약 주고 다 한 거죠. 그래요, 형, 제 평생 다시
킬리만자로를 갈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묵묵히 그 곳에 있었던 킬리만자로와 등정을 같이한 서른 여명의 원정 대원들 모두는 제 삶에 킬리만자로처럼 자리 잡고 있겠지요.
형,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겨울쯤에 시간 내서 히말라야나 다시 한 번 가도록 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