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그는 누구인가

이재영2007.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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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에게는 신화라는 말이 따라 다닌다. 샐러리맨 신화, 청계천 신화를 등에 업은 그가 대권 신화까지 만들어낼지는 아직 어느 누구도 모른다. 그의 인생을 키워드로 분석한다.

◇ 극복의 힘

청년기까지 삶을 짓누른 것은 가난이었다. 그냥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가난이었다. 그는 언젠가 “딱지치기나 구슬놀이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 적 있다. 어린 나이부터 어머니를 따라 풀빵장사, 생선장사를 했기 때문이다.

가난을 버티게 해준 힘은 어머니였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창피했던 때를 “야간 고교를 다니며 여학교 앞에서 뻥튀기 장사를 했을 때”라고 기억한다. “너무 창피해서 밀짚모자로 얼굴을 가렸다”고 했다. 그 때 옆에 있었던 어머니가 “네가 네 힘으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데 무엇이 부끄러우냐”고 호통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 후보는 서울시장 재직시절 ‘노숙자 일자리 특강’에서 모자를 눌러쓴 노숙자들에게 제일 먼저 “모자를 조금 올려 쓰라”고 당부했다.

병역 면제 의혹에 휘말릴 때였다. 그는 “리어커 행사하던 어머니가 ‘네 몸이 군대에 못 갈 정도로 아픈지 몰랐다’며 흰쌀밥에 날계란 하나인 저녁을 손수 지어주셨다”고 아파했다. 경선 과정에서 ‘어머니가 일본인이다’ ‘이복형제다’라는 온갖 루머에 DNA 검사로 정면돌파했다. 그는 “어머니를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분노했다.

또다른 힘은 기독교다. 함영준 특보는 “기독교는 그에게 있어 세상을 긍정하는 힘”이라고 파악했다. 가난했던 어린 아이가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대권후보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배경에 종교적 믿음이 크게 작용했다. 그 자신의 부지런함도 성공의 자양분이었다. 그는 “하루에 4시간 이상 잔 적이 없다”며 “그래서 불면증이 없다”고 말했다.

한 심리학과 교수는 “이 후보는 가난했지만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대기업 CEO를 거쳤다”면서 “그래서인지 자수성가한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컴플렉스가 없다”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빗대 표현했다.

◇불도저와 청계천

성공신화를 상징하는 두 트레이드 마크다. 불도저를 통해 이명박은 경제인으로 성장했고, 청계천에서 정치인으로 재탄생했다.

이 후보를 평할 때 ‘불도저식 뚝심’, ‘불도저식 추진력’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 샐러리맨 신화를 쌓은 직장이 현대건설이라는 점도 불도저 이미지를 부추긴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에게 건설장비는 낯설기만 했다. 당시 정주영 사장에게 혼줄이 나도록 깨진 것이 여러번이었다. 그래서 어느날 직원들과 멀쩡한 불도저를 분해했다. 기본을 모르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뒤 장비 때문에 핀잔을 들은 적은 없었다. 또 청와대와 거래를 하던 협력업체가 자꾸 현대건설과의 약속을 어긴 일이 있었다. 그 업체는 청와대 핑계를 대면서 현대건설 요구를 기피하고 있었다. 그는 불도저를 몰고 그 회사 진입로를 파버렸다. 청와대까지 나섰지만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중동 열도 건설현장을 지휘할 때도 불도저식 뚝심이 밑에 깔려 있었다.

불도저라는 표현이 항상 긍정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그의 대표적 공약인 경부운하 건설을 비판할 때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그런 불도저식 공약이 먹히겠느냐는 주장이 나온다. 불도저는 지금 병주고 약주는 양날을 가진 이미지다. 그래서 요새 ‘컴퓨터가 달린 불도저’라는 의미의 ‘컴도저’라는 애칭을 설파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청계천은 다르다. 항상 그에게 플러스 효과를 주고 있다. 청계천을 복원할 때였다. 인근 상인들은 “생존권을 지켜달라”며 연일 아우성이었다. 그는 협조를 얻을 때까지 청계천 상인들을 무려 4200번 만났다. 오지말라고 해도 찾아가 문전박대를 당했다. 끝내 상인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지금도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대목이다.

이명박은 청계천을 복원했고 청계천은 제2의 이명박을 낳았다. 청계천을 한번만 둘러보면 이명박 지지자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청계천이 없었다면 대권후보 이명박이 있었을까.

◇아픔과 넘어야 할 산

1996년 15대 총선 서울 종로 지역구. 당시 신한국당 이명박, 국민회의 이종찬,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출마했다. YS와 민자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다퉜던 이종찬이나 현 대통령 노무현, 그리고 지금 대권을 노리는 이명박이 한 지역구에 출마했던 것이다. 투표함을 열어본 결과, 승자는 이명박이었지만 패자 역시 이명박이었다. 법정선거비 초과 사용 사실이 밝혀져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선거법 위반으로 치뤄진 보궐선거에서 노무현 국민회의 후보가 당시 한나라당 정인봉 후보를 따돌리고 국회에 재입성한 것도 아이러니다. 하여튼 이 사건은 두고두고 정치인 이명박의 발목을 잡았다.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도곡동 땅은 이 후보를 끝까지 괴롭힐 가능성이 크다. 도곡동 땅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경우 대선 판도는 거대한 회오리 속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BBK도 문제다. 미국에 있는 김경준 BBK 전 대표는 “조만간 귀국해 전모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 입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또 대선과정에서 새로운 의혹이 불거나져 나올 수도 있다. 청와대 신화까지는 아직도 걸림돌이 많은 셈이다.

◇개인적 이야기들

생일(1941년생)과 결혼기념일(1970년)은 공교롭게 올해 대선일인 12월19일이다. 올해 생일이자 결혼기념일에 웃을 수 있을지 자뭇 관심이 쏠린다. 그는 성형수술에 대해 전혀 생각이 없지만 쌍커풀 수술을 권유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테니스 스타 마리아 사라포바다. 이유는 이 후보가 좋아하는 테니스도 치면서 돈도 잘 벌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교육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갑에는 현금 10만원 정도를 가지고 다닌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을 때는 첫 손주를 봤을 때라고 답했다. 반면 가장 후회되는 일은 어머니 살아 생전에 새 옷 한벌 못해 준 것을 떠올렸다. 학교를 다닐 때 가장 성적이 나빴던 등수가 3등이었다. 패션은 전적으로 부인 의견에 따른다.